내가 무언가에 겁 먹었을 때, 겁먹지 말라고, 다 지나갈거라고 하는 말들보다는, 누군가 다른 일들에 겁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힘을 얻고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뱃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가르만은, 할머니들과 아빠 그리고 엄마에게 겁나는 게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그들 모두 저마다의 겁나는 상황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것은 가르만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묘하게도 힘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이유로 겁먹고 있구나, 하면서. 그래,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어린아이에게 학교 가는 게 아닌 죽음이나 미끄러운 눈길이 두려울 일이 뭐란 말인가. 그러나 할머니들에게는 학교 가는 것은 죽음이나 눈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다른 두려움에 맞닥뜨리고, 그걸 경험해가면서 한 해 한 해 더 자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림도 생동감 있고, 대화들도 따뜻하다.



엄마의 두려움 앞에서-가르만이 차길을 건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당연하게도 아홉살 소년 오스카가 생각났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의 그 오스카. 잘 살피겠지만, 그래도 더 잘 살피면서 차길을 건넜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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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6 14: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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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6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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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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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장애인 비하와 서울 중심적 표현을 써서 지적받고 사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p.140)



몇해전에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정희진을 처음 만났었다.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사실 그 책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 이 책,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아 그녀가 이렇게 '센' 글을 썼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에서 거부감이 들었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을 때는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은데, 왜이렇게 거부감이 들까. 정작 본문이 시작되고 나서는 거부감이 사라졌지만, 서문에서의 거부감은 정말 컸다. 나는 그녀처럼 읽지도 쓰지도 않을 것이라고, 나는 계속 내 식대로 할 거라고 욱, 하는 마음에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본문을 읽으면서 그런 거부감은 어쩌면 '내가 행동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 에서 초래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위에 인용한 문장, 저 문장을 보면서 빳빳한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얼마나 많은 말실수를 하고 행동의 실수를 할까, 안그러려고 하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은연중에 내게 잠재해있던 차별과 편견 그리고 학대는 얼마나 많이, 빈번하게 입 밖으로 터져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사로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희진조차, 이 무지한 나조차도 차별을 공부하는 이름으로 알고있는 정희진조차, 여전히 지적받고 사과를 한다는 게 아닌가. 아, 인간은 이토록 불완전한 존재인가. 이렇게 지적받으면서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완전한 인간이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반드시 읽어야할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고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저격하자면, 홍준표가 그렇다. 내가 지금은 홍준표를 저격하지만 그건 이 책의 인용문이 홍준표를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고,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겠다. 뿌리 깊은 사고는 책 한 권으로 달라지지 않겠지? 그래도 뭔가 자꾸자꾸 권하고 싶다. 밑에 인용한 283페이지에서도 나오는데, 그들에게 이해를 권하고 싶다. '이해의 영어 표현(under/standing)이 좋다. 이해햐려는 대상 아래 서 있으려는 겸손한 마음, 이것이 첫 번째 자세다.' 라는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까닭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공공 의료는 '좌파 정책'이다. '우파 민중'은 안 아픈가? 공공 의료는 국가의 기본 역할인데? 그는 아나키스트인가? 내가 분노하자 주변에서는 '뭘 기대하냐'는 반응이다. 일부 지도층의 이런 발상에 대한 현저한 면역 결핍이 내 지병이다.

질병은 삶의 부작용이 아니라 본질이다. 의료는 복지 이슈가 아니다. 쌀 수급을 복지 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질병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홍 지사의 사고는 철학의 문제, 그것도 '국정 철학'의 오류다. 그는 '좌파의 국가관'을 의심하기 전에 자신의 공동체관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p.270)

누구의 인생도 피해 경험이 없는 경우는 없으며 동시에 평생 피해자인 사람도 없다. 피해는 상황이지 정체성이나 지칭이 될 수 없다. 타자화는 나를 기준으로 타인을 정의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내용의 호오가 본질이 아니다. 어머니 숭배와 `창녀`혐오는 모두 남성 사회의 판타지다. 섹슈얼리티를 기준으로 여성을 이분하여 시민권 박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성은 `아버지와 남창`, `곰과 여우`로 구분되지 않는다. (p.70)

성 판매는 당연히 노동이다. 그것도 위험한 중노동이다. 그러나 나는 `성 노동`에 반대한다. 노동이되 `어떤 노동`인가, 수천 년간 왜 `여성 직종`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너무 오래된 노동을 두고 `노동이다 vs 아니다`를 논하는 이 사회의 지성이 민망하다. (p.71)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내내 흐르는 1940년대 영화, <밀회(Brief Encounter)>의 우리말 제목은 교양이 없다. `몰래 만난다`는 시선부터 한심하다. 조우(遭遇), 정도가 맞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생면부지의 남녀는 기차역에서 몇 시간 만나고 헤어지지만 평생 두근거릴 가슴을 얻는다. (p.76)

인맥 관리, `밀당`, 포커페이스‥‥‥몸 사리고 계산해봤자다. 남김없이 준다고 해서 바닥나는 마음은 없다. 인간이 바닥을 드러낼 때는 따로 있다. 그러니, 목숨처럼 해 다오. (p.77)

사랑한다는 것은 약점이다. 사랑이 내 몸에 거주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연결되고 싶은 욕망은 지옥이다. 이 마음 자체가 `을`인데 만일 성별, 나이, 계급, 외모 같은 자원에서도 차이가 난다면‥‥‥. 그 괴로움,그 부끄러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견딜 수 없다. (p.80)

상대방에게 떠난 이유를 따지는 것은 젼혀 효과가 없다.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실리 측면에서도 그렇고, 사실 진짜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오하지 않다. `피해자`에게 관심도 없다.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 약자가 될 뿐이다. 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They do because they can.) 인간은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 (p.95)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 개념은 근대화 시각에서 발전주의(progress)를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적대하거나 논쟁하는 세력이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 건설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성 차별과 주류 지향이고, 차이는 `종북`이라는 기이한 용어에서 보듯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드는 일에 통일을 포함하는가 여부와 그 방식일 것이다. (p.122)

여성 상위?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역할(노동량)이 많아진 것이다. 100퍼센트 주부로만 사는 전업주부도 없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이들도 재테크부터 인형에 단추 달기까지 부업을 하거나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남성의 가사 노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여성의 취업은 평등이 아니라 이중 노동이다. (p.142)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오랜 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유명한 글귀의 출처가 바로 이 책(선악을 넘어서-프리드리히 니체)이다. (p.214)

우리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으로 태어났다. 원래 남녀 차이보다 여성과 여성의 차이, 남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더 큰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러한 법칙을 왜곡하여 인간을 남녀로 분류한 제도가 가부장제다. (p.247)

자신이 누군지 모를 수밖에 없는 남성들에게 이 책(남성성/들-R.W. 코넬)의 일독을 권한다. 여자는 자기를 잘 아냐고? 인종 차별 사회에서 유색 인종은 자기 처지를 알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p.248)

술, 담배, 도박, 초콜릿, 관계, 섹스, 쇼핑, 미디어(스마트폰), 게임‥‥‥. 사람들은 다양한 대상에 중독되어 있다. 중독되지 않은 몸은 드물다.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긍정적 중독(일, 운동, 공부‥‥‥)인 경우 문제가 덜 될 뿐이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중독자의 의지 부족이나 인격적 결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대상이 위로와 즐거움을 주거나 삶의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중독은 생존을 도와준다("‥‥‥없이는 못 살아.") 그러니 지나친 수치심이나 굴욕감, 좌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런 감정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중독은 누구나 겪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대응일 뿐, `문제가 아니다`. (p.255-256)

확실성의 볼모가 된다는 것. <기차는 슬프다>가 바로 그것이다. "단 하나의 목소리와 단 하나의 노선으로/정해진 시간에 떠나야 하는 기차보다/더 슬픈 게 있을까?/그 어떤 것들도 이보다는 더 슬프지 않다." 이 구절을 읽을 때 내 시간이 멈췄다. 행복할 때, 정지했으면 하는 그 시간이 실현되었다. 우리는 기차역에 함께 앉아 있었다.
목적이 분명한 기차가 정시에 출발한다는 확실성. 기차역(삶)에 끌려온 사람들은 살아 있는 죽음을 산다.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시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를 이해하는 만큼 기차가 오기 전에 죽는 이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될까. (p.275)

이해(理解)는 읽는 이의 이해(利害)관계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이해는 난이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영역이다. 이해의 영어 표현(under/standing)이 좋다. 이해햐려는 대상 아래 서 있으려는 겸손한 마음, 이것이 첫 번째 자세다. 이해는 사랑과 지식을 아우른다. 사랑은 수용이다. 상대를 수용할 때 이해는 따라온다. (p.283)

몇 해 전에 성별을 기준으로 하여 10대에서 70대까지 열네 개 그룹으로 나누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설문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연령과 성별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내 대답 역시 그렇다. 여기서 `공부`는 10대를 억압하는 입시 공부가 아닌 뭔가 `의미 있는 인생`을 원한다는 뜻일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내가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 무엇인가를 추구했다는 것, 나만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 등으로 다양할 것이다.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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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3 16: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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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3 16: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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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5-03-2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 강연을 듣고 짧은 시간에 참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평생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5-03-24 11:09   좋아요 0 | URL
네, 존경할만한 분이고 이런 분이 계셔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아진다면 아마도 이런분들 덕일테고요. 그렇지만..전 감히 이렇게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휴..

아무개 2015-03-2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우리가 이런책좀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책을 안읽겠지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공부 잘하는 수재들이 정치하면 홍준표 처럼 된다구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2.이 책의 문제점이랄까, 아니 읽고 난후의 문제점은,
안그래도 삐딱한 관점이 더 삐딱해져서 완전 획~ 돌아가버린거 같다는거...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흠....이건 백인남성들에게만 해당되는거 잖아
이러고 있어요... ㅡ..ㅡ:::::::::::::::::::


다락방 2015-03-24 11:1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해왔던 사람일 거라고. 갑자기 생뚱맞게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읽고 아, 삶은 그렇게 살아야하는구나! 하고 깨닫는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하아.

전 이 책을 읽고 더 삐딱해지진 않았어요. 제 자신을 좀 더 단단히 매야 겠다고 생각을 했죠. 조금더 신경써서 말하고 조금더 신경써서 행동하자고요.

푸른알밤 2015-03-2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의 도전 읽고 무심결에 표현하는 편견을 반성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다 잊고 있었네요. 이 책 한 번 봐야겠습니다..

다락방 2015-03-24 11:11   좋아요 0 | URL
네, 푸른알밤님. 읽으면서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7층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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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엄청나게 좋아할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가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싫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가 푸쉬업을 한 손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가 푸쉬업을 하지 못했어도 그를 똑같이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웃음소리가 좋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웃지 않았어도 그를 많이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공부를 잘했던 게 좋다, 그러나 그가 공부를 못했다고 해서 그에게 실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가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게 좋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해도 좋아했....을까? 뭐, 아마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좋아했으므로 그에게서 아주 여러 개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내 눈에는 그의 모든 것들이 장점으로 보였지만, 그가 또한 많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에게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고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렇게 머리를 자르지 말고, 그런 옷을 입지 말고, 그렇게 운전하지 말고, 그렇게 먹지 말고, 그렇게 웃지 말고, 그렇게 하지말고, 하지말고, 하지말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이 가해질 수 있는지를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산다. 분명 폭력적인 말과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사랑해서 그래'라고 하면 그런가, 하고 갸웃해서 그대로 따르게 된다. 나중에, 자신이 아예 망가지고 부숴지고나서야 '그때 그게 사랑이 아니었구나, 그건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었어'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내 안에 커다란 상처가 자리잡고난 후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사랑이란 그 말 하나면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을 것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사랑한다니까, 그게 사랑이라니까 견디고 참고 지탱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많은 사항들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 그래서 반짝거리는 섀도우를 사고 싶고, 핑크빛 볼터치를 사고 싶다. 목에 두를 예쁜 스카프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쁜 원피스도 여러벌 장만하고 싶다. 구두도 샌들도 다 새로 사고 싶고, 더 예뻐지고 싶다. 이건 상대가 내게 요구한 게 아니다. 섀도우를 사라고, 원피스를 사라는 말을 들은 게 아니라, 내가 그에게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고 내가 나를 가꾸고 싶은 것이다. 나는 최상의 사람의 되고 싶고 이것이 내가 그를 좋아하는 데서 나오는 당연한 현상이다. 최상의 나는 그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이자 나의 의지의 발현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그의 요구'여서는 안된다. 그의 요구로 인해 내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폭력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이 책의 '오사'는 대학에 들어가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는 학교내 모두에게 인기가 많고 잘생겼다. 이런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사한 남자다. 그러므로 오사도 그에게 푹 빠진다. 그와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녀는 그에게서 이상한 점들을 보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할 때는 눈을 꼭 뜨라고 말한다. 감고서 니가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떻게 아냐며. 또한 다른 남자들이 옆에 지나갈 때 본인에게 애정 표시를 하지 말라 말한다. 니가 저 남자를 원해서 나에게 애정을 표현하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이 모든 질투들을 단순히 사랑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거라 여겨 그녀는 그냥 넘긴다. 때로는 너무 심한 말들도 그녀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는 그녀에게 모든 친구들을 끊을 것을 요구한다. 그녀의 친구들은 최소한 남자 다섯명하고는 자봤을텐데 그런 여자들은 창녀라면서. 그녀에게도 화장하지 말고 다니라고 하고 그런 옷차림으로 다니지 말라고 한다. 창녀같다고. 문신도 지우라고 말한다, 창녀같다고. 그녀는 자신이 그간 사귀었던 남자들을 세어보며 잠들기 전, 나는 창녀인가 아닌가를 고민한다. 그녀의 방에 있는 모든 그림 액자들은 치워져야 했다. 불결해서 못오겠다고 그가 말했으므로. 그가 요구하면, 그녀는 가족과 통화를 하다가도 전화를 끊어야 했고, 그녀의 방에는 그가 아닌 다른 누구도 와서는 안되었다. 여자 친구일지라도.


그러다 그녀는 급기야 '맞는다'. 그가 무릎으로 그녀의 배를 때리고, 그녀는 '맞는다'는 데서 온 충격에 휩싸인다. 그녀의 머릿속에도 맞는 순간 그에게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녀는 체념한다. 그녀에겐 이제 친구도 아무도 없고 그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에. 한 번 시작된 폭력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녀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로 그에게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고, 운전하는 차 안에서 그로부터 험한 말들과 주먹을 받아내야 한다. 그는 그녀를 혼내줄 장소로 차 안을 선택했다. 그는 운전하지 못하므로 운전은 그녀의 몫이고, 차 안에서 운전중인 그녀의 반항력은 힘을 잃고, 차 안에서 그와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러다 최종적으로 그는 차 안에서 그녀의 손가락 살점을 물어 뜯는다. 살점을 물어 뜯긴 그녀는 그로부터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멀리 떨어져있던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 일을 말하고, 학교의 여자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일을 말한다. 


아버지와 교수는 그녀를 돕는다. 교수는 그녀에게 재차 병원에 꼭 가라고 권고했으며, 그녀는 병원에 가서 말하지 못할 줄 알았지만 울음을 터뜨리며 의사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한다. 이 일로 남자는 벌을 받게 되었고, 그녀는 점차로 안정을 찾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힘이 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아름답다고 말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한심하다고 하면,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한심한 사람이 되어 절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예전에 읽은 책,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서는 '울면서 잠들게 하는 사람을 친구라 할 수 있을까?' 라는 말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나는 한심하고 찌질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그 안에 있을 때, 사랑-이라 생각하는 바로 그 감정-의 중심에 있을 때는 들지 않는다. 다만 상대의 말만이 아주 강하게 나를 후려칠 뿐이다. 이 책 속의 여자도 창녀가 되었고 값싼 여자가 되었다, 그로 인해서. 머리 색을 바꾸고 화장을 안하고 옷을 전혀 다르게 잆어야 했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자기 자신을 잃었다. 


사람은 힘을 가질 수 있고, 그 힘은 제대로 발휘 되어야 한다. 그의 말이 내게 아주 강한 것이 되고 나의 말이 그에게 아주 강한 것이 되는데, 거기에 대고 상대를 깔아뭉개는 발언을 함으로써 상대의 인격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든다면, 그건 힘을 가진 자의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우리는 그 감정 혹은 그 관계로 인해서 더 나은 방향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잃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워지고 힘들어지고 내가 한심해진다면, 그것은 사랑이 만든 것이 아니다. 폭력이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체념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주변에 아무도 없고 그에게 길들여졌어, 이게 어쩌면 사랑일지도 몰라,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별 수 있겠어?, 그는 때때로 잘해주기도 하잖아, 등으로 내가 나 자신을 이 폭력의 상태에 두어서는 안된다.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가슴 속에 의혹이 자라난다면, 주의 깊게 그와 나를 들여다봐야 할 일이다. 또한 맞기 시작했다면, 그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반드시 돌이켜보자. '때리는 남자는 절대 안된다'고 분명히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한번 뿐' 이라든가 '실수겠지' 라는 말로 이 사건을 덮어둬서는 안된다. 힘들고 아프고 두려움이 찾아오겠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행복은 나의 최면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나의 강요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는 감정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더 어떤 말을 보태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이상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책 속의 여자가 그 상황에서 뛰쳐나왔고, 그걸 이렇게 책으로 써낼 수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을거라고 내가 막연히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엘리자베스 헤인스'의 데이트 폭력을 다룬 소설, 《어두운 기억속으로》에서도 여자를 사랑하는 완벽한(줄로만 알았던) 남자는, 여자를 친구들로부터 고립시켰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그는 그녀의 친구들마저 통제한다. 그녀를 고립시키는 것이 자신의 힘을 그녀에게 더 잘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일텐데, 그렇다는 건, 남자 역시 그들의 그런 성향을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된다는 걸 이미 자각하고 있다는 뜻일테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이 책속의 작가는 결국 해냈지만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다른 사람들이 혹여라도 연애를 하면서 어떻게 '그런 남자'인지 알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겟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렇게 시작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세상과 격리시키면서부터. 그녀의 옆에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폭력의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녀로 하여금 대화를 하고 웃고 의지하게 되는 사람이 '나 하나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데이트 폭력의 시발점이 아닐까. 그래야 온전히 자신의 힘을 그녀에게 쏟을 수 있을테니. 그러므로 의혹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만약 데이트를 시작하게 된 남자가 차츰차츰 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면, 온전히 자신에게만 의지하기를 원한다면, 그때부터 나는 그를 경계하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줄 수 있는게 뭔지, 무엇을 줘야하는지를 자주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이 감정이 나를 결국은 행복하게 하고 웃게 하는지. 사랑이란 단어를 듣는 데 흥분이 되는 게 아니라 무섭고 외롭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관계속에 있다면, 그 관계 역시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사랑은,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고, 아프게 하는게 아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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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5 18: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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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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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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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일들을 바로 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뭍에 오르다, p.378) 라는 문장을 오래 생각했고, 여전히 가끔 생각나기에 다시 꺼내들은 책인데, 다시 읽는 <뭍에 오르다>는 그전과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이 소설을 슬픈 소설로 기억하지만, 다시 읽는 이 소설은 '아주 많이' 슬픈 소설이었다. <지옥-천국>을 가장 좋아했고, 그 소설을 여러번 읽었는데, <뭍에 오르다>를 자꾸 떠올렸다.



"그런데 왜 약혼반지는 안 끼고 있어?"

"없으니까."

그는 팔찌를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돌렸다. "어떤 남자가 반지 없이 청혼을 하냐?"

그때 그녀는 청혼은 없었고, 네빈을 잘 알지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테라스에 놓인, 말라버린 화분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호기심에 가득 찬, 겁내지 않는 그의 눈빛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 왜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녀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진실이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바로 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뭍에 오르다, p.378)



나도 꼭 저렇게, 헤마와 같은 진실을 품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헤마는 코쉭에게 말했고,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나 역시 친구에게 내 진실을 말했다. 진실은 때로 지나치게 가혹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어떤 진실은 차라리 모르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그들이 아직 헤어질 수 없는 건 서로에게 분명했다. 몇십 년 동안 보지도, 생각지도, 찾지도 않았지만 뭔가 귀중한 게 거기 있음을 느꼈다. 이 새롭게 생긴 감정이 그대로 방치되어서는 안 되고, 분명 정성을 다해 돌보아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뭍에 오르다, p.376)

어느 날 그에게 웹사이트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그가 보여주었다. 그는 보라고 하고서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 헤마는 침대 위에서, 침대보를 몸에 두른 채 작게 윙윙거리는 그 노트북을 맨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뭍에 오르다, p.380)

그녀는 그가 이제 다른 일을 할거라는 사실에 기뻤다. 코쉭의 어머니가 그랬을 것처럼, 홍콩에서 회의나 주재하면서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 더 이상 위험한 일은 없을 거란 사실에 몰래 기뻐했다. (뭍에 오르다, p.381)

아주 처음부터 몇 주가 지나면 이 관계는 끝날 거라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2주가 더 지나면 모든 건 깨끗한 백지 상태로 돌아갈 테고, 그들은 각자 다른 나라에, 코쉭과 조반나 아파트의 열쇠도 각각 다른 사람들의 손에 있을 터였다. (뭍에 오르다, p.383)

심지어 코쉭이 매번 콘돔을 낀다는 사실에도 벽을 느꼈다. 그 작은 포장을 뜯느라고 잠시 멈출 때마다 지금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결국 합칠 수 없다는 사실을 예감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줄리안 때문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그렇게 오래 사랑하고 난 후에 배운 몇 가지 중 하나였다. (뭍에 오르다, p.384)

"나랑 함께 가자." 코쉭이 말했다.
"어딜?"
"홍콩에." 그러고는 말했다. "그 사람이랑 결혼하지 마, 헤마."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길가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계단 길 위였다. 밑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뒤에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실례합니다`라고 작게 말하며 지나갔다. 그녀는 갑자기 아찔해서 비틀거렸다. 자기에게 무관심하던 그 소년,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정사를 시작한 이 남자, 바로 그가 마지막 순간에 그 이상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녀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기적인 말에, 그녀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네빈과는 달리,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하지 않았다.
"지금 대답하지 마." 이렇게 말하며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둘러 자기 쪽으로, 계단 몇 개 아래로 끌어내렸다. "먼저 인도에 가서 생각을 해보라고. 내가 기다릴게." (뭍에 오르다, p.389)

그는 그런 말을 미리 했어야 했나, 혹시 늦게 말해서 건성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녀가 거절했을 때 퉁명스럽게 대해 후회가 됐다. 어른이 되어 그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을 만난 건, 또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싶은 감정이 들게 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다시 우연히 만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고, 다른 남자와 공유하고 싶지도 않았다. (뭍에 오르다, p.393)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어. 어머니와 이모들이랑 나가서 블라우스를 가봉하고 장신구들을 골랐어. 사리 상점에서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얇은 푸통 위에 앉아 콜라를 마시고 양고기 롤을 먹으면서 남자들이 보여주는 물건들을 구경했어. 나는 다 좋았지만 빨간색 베나사리를 입겠다고 했어.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네 생각만 했어. 내가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하면서. 아직 약간 시차가 있었고, 우리 둘이 함께 먹던 음식들과 좋은 커피와 와인이 너무 먹고 싶었어. 트라이앵굴라 공원에 있는 부모님의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난 바보처럼 네 얼굴을 찾았어. (뭍에 오르다,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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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2-1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난 바보처럼 네 얼굴을 찾았어.

다락방 2015-02-1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단편 참 좋다. 좋으네.

피오나 2015-02-1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아해요!! 다락방님이 옮겨주신 글을 보니 다시 꺼내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ㅎㅎ

다락방 2015-02-12 17:02   좋아요 0 | URL
아, 너무 좋죠, 피오나님! 줌파 라히리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 참 좋아요. 오늘 다시 읽은 뭍에 오르다는 참 좋습니다. 지옥-천국도 짱인데..

moonnight 2015-02-12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런. ㅠ_ㅠ; 여기저기서 좋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지만 어쩐지 자꾸 외면하게 되었던 작가인데 다락방님이 불을 지피시네요. +_+;;; 너무 슬플까봐 두렵. ㅠ_ㅠ;;;

다락방 2015-02-12 18:04   좋아요 0 | URL
책과 내가 만나는 것은 정말이지 타이밍인 것 같아요, 문나잇님.
다시 읽은 이 단편은 처음과는 아주 많이 다른 느낌을 주네요. 아 슬퍼요. ㅠㅠ
줌파 라히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문나잇님.
제 생각에 문나잇 님이라면, 이 단편집의 가장 첫번째 단편인 <길들지 않은 땅>을 좋아하실 것 같아요.

moonnight 2015-02-12 18:09   좋아요 0 | URL
네 이제는 만나야 할 시간인가봐요. 읽어볼께요. 불끈!

에르고숨 2015-02-12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 더 슬픈 소설이라면 정말 슬픈가봅니다.ㅜㅜ 저는 `지옥-천국`까지 읽고 `읽지 않은 책` 코너에 꽂아뒀;; 문장 하나가 계속 생각나 다시 찾아보는 독서 참 좋네요, 다락방 님.

다락방 2015-02-12 18:13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은 내가 읽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또 어떤 책은 `읽었다`는 것만 기억하게 되는데요, 아주 가끔 어떤 책들은 문장들이 기억나요. 외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뉘앙스와 내용 같은 거요. 그건 그 책과 내가 만난 타이밍이 맞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책보다는 기억나는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다시 읽으면서 참 좋았어요. 흣 :)

2015-02-14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6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5-02-1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파 좋다..
나도 다시 읽어봐야지.

다락방 2015-02-16 15:20   좋아요 0 | URL
좋죠 좋죠. 좋더라고요..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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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57-58)



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육체와 영혼이 따로 분리되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 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처럼, 영혼이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머물며 그 사람을 지켜주고 자신의 못다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전전긍긍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한줄기 의심 같은 것은 있다. 그것은 사실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더 가깝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먼저 죽는다면 그들 곁으로 살포시 다가가 내가 여기에 있고, 나는 아주 잘 있으니, 이제는 나를 잊고 당신은 당신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나가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영혼이 있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은, 이 소설속의 저 인용문처럼, 누군가를 향해 복수하고 싶을 때 하기도 한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줬지? 그리고,


왜 나를 죽였지?



소년이 죽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라니,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은가. 그러나 누군가 맨 윗대가리에서, '죽여라'고 명령을 내렸고, 그 밑에 사람들 또 그 밑에 사람들은 그 명령을 충실히 따른 결과, 아무런 죄도 없이, 명분도 없이, 어리고 혹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갔던 일이, 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그 명분 없는, 어이 없는, 원통한 죽음은, 그 당시에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것이 '민주화운동'으로 불리게 된 것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며, 그 일이 사실은 어른들이, 언론이 우리에게 말해준 것처럼, '그런'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아주 나중의 일이다. 억울함을 억울하다고 제대로 전하지도 못한채, 그렇게 가슴 아프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은채, 그렇게 '지독하다'는 지역감정의 누명을 뒤집어 쓴채,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한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건,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늘, 죄책감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이 있으므로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게 굴러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존재하므로 우리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이 세상을 함께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우디 앨런'의 영화 《매치 포인트》는, 우디 앨런이 언제나 그랬듯이 꽤 현실적인데, 사랑했던 가난한 여자를 죽인 후 부자 여자와 결혼해 문제 없이 사는 남자가 나온다. 그러나 겉에서 보기에 문제 없어 보이는 그의 삶이, 그렇다고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의 살인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그러므로 누군가를 죽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지도 않았지만, 부자 여자와 결혼해 전망 좋은 집에서 살지만, 그의 밤 꿈속에는 그가 죽인 여자가 등장한다. 그의 꿈에 자신이 죽인 여자가 나타나는 것. 이것은 그의 '죄책감'이 작용한 탓이 아닐까. 또한 '영혼'이란 게 있다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의 영혼이, '왜 나에게 그랬니' 라고 찾아간 것일 수도 있고.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는 신이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믿는 것은 힘이고, 보려고 한다면 보인다고도 역시 생각한다. 신을 믿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살다보면 간혹 과학이나 이성으로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간혹 생기는 거니까. 그럴 때 이것은 어쩌면 신의 힘이 아닐까, 이것은 기적이잖아, 라고 하는 일들이 생기니, 어쩌면 신은 존재할지도 모르고, 신이 존재한다면 억울한 영혼이 차마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해 사람들 곁을 머무는 귀신도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귀신의 존재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죄책감이 인간을 인간이게 해준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이 모든 인간이 저마다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 죄책감이 한없이 작고 작은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고 혹은, 없애 버렸을런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죄책감을 없애버린 사람에게 그 사람의 잘못을 알려주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법으로 그에게 잘못을 벌하기에도 마땅치 않을 때. 그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그를 두어야할까,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저 모두가 원망하는 채로, 그 원망만 받아가며 살라고, 그렇게 두어야 할까. 나는 귀신의 존재를 바란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그대로 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고통을 호수할 수 있기를 원한다. 더불어 그 고통을 가한 가해자에게 우리만큼 너도 충분히 괴로워해야 한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서 바랐다. 당신들이 하고 싶은 말, 혼으로 남아 하고 싶은 그 말을, 혼으로 남아 하라고. 



그 사람에게 찾아가라고, 매일 밤, 여러분 모두가 찾아가서 그의 꿈속에 나타나라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얘기하라고. 우리가 다 못풀어준 그 억울함을, 세상의 어떤 곳에서 저마다 소리내고는 있지만 미처 그를 벌하기에 충분치 않으니, 당신들도 말하라고.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57-58)



그 말을 해도해도 부족하지 않을테니, 계속해서 외치라고 하고 싶다. 당신들을 쏘아 죽인 사람을 편안히 잠들게 하지 말라고, 매일밤 꿈에 나타나라고 간절히 바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직 살아서 당당히 경호를 요청하고 있는 그 사람의 안위가, 나는,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아왔으니까. 때로 용서는, 필요치 않을런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거니까.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p.117)



나는 명령에 따른 수많은 군인들이 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그 일에 가담했다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명백하게 피해자를 만들었으며, 동시에 명백하게 가해자를 만들기도 했다. 가해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가해자로 만듦으로써 그는, 자신의 죄의 크기를 더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현장에서 자신이 당한 것에, 자신이 본 것에, 자신이 가한 것에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러므로 그는, 편안히 남은 생을 살아서는 안된다.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쳐야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는 것, 누군가의 괴로움을 바라는 것이 결코 옳지 못하다는 것을 물론 나는 안다. 그러나 '아는대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말도 안되는 것을 바라는 것, 그것 밖에 할 수 없어서 스스로가 못나게 느껴진다.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집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p.117)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비서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단발포 직전인 5월 21일 오전, 군용 헬기를 타고 와 그 도시의 땅을 밟는 그의 영상을 보았다. 젊은 장군의 태연한 얼굴. 성큼성큼 헬기를 등지고 걸어와, 마중 나온 장교와 힘차게 악수를 나눈다. (p.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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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15-01-2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한강이 써야만 했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한강이

˝ 무슨 권리로 그걸 나에게 요구합니까. ˝(P. 132)

라고 한다면 대꾸할 말 없지만.

다락방 2015-01-22 10:06   좋아요 0 | URL
아니, 아시마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이제 자주자주 오시는 겁니까? 네? ㅎㅎ 자주 봬요.

음, 저는 `너무 좋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음..좀 부족하게 느껴졌는데요, 한강은 기존의 소설, [희랍어 사전]인가, 거기에서도 느꼈지만, 문장은 참 좋은데 `이야기`보다 문장 위주로 흘러가는 느낌이 들어서요. 잡히는 감정들이 `정확`하질 않고 좀 `모호`하게 느껴진달까요. 그래서 이 책도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쓰여졌다면 우리 엄마한테도 권했을텐데, 싶으면서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어요.

단발머리 2015-01-2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러 번 이 소설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지만 사실 아직도 용기가 안 나요.
작가가 자신의 이 소설만큼은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도 말이지요.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힘든 글을 써낸 사람도 있고, 그 소설을 읽고 이렇게 의미있는 페이퍼를 쓰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지요.
아..... 읽어야하겠지요?

다락방 2015-01-22 17:5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읽는 동안 힘드실 거에요.
정신 단단히 붙잡고, 마음 단단히 붙잡고 읽으세요.
읽으면서 계속 한숨을 쉬게 됩니다.
힘들지만, 읽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레와 2015-01-2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읽어야겠군..


다락방 2015-01-22 17:52   좋아요 0 | URL
네, 레와님. 도전해봐요. 읽다가 자꾸 빡치겠지만.. ㅠㅠ

2015-01-22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2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15-01-2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소설은 제주가는 비행기안에서 읽다가 숨이 막힐것 같아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나요 다락방님.
다락방님 한강의 시는 읽으셨나요? 다락방님이 읽으신 한강의 시는 어떨지 궁금해요!!
이곳에 많은 책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한강의 시집은 챙겨왔어요. 한번씩 들춰보려구요.
저는 [내여자의 열매] [아기부처] [몽고반점] [검은사슴]의 한강을 잊을수 없어요
여전히 제게 한강은 그때로 머물러 있는것 같아요.

다락방 2015-01-23 11:36   좋아요 0 | URL
춤인생님, 아직 한강의 시는 읽어보지 않았어요. 한번씩 들춰볼만큼 좋은가요, 춤인생님? 예전부터 한 번 볼까 싶긴 했었는데 제가 시를 잘 모르고 감상할줄도 모르는 것 같아서요. 시가 제게 오면 제 가치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시무룩..)
저도 몽고반점 좋아했어요. 아기부처랑요. 아기부처는 진짜 독특했어요.

singri 2015-01-23 11: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때의 한강 작품들을 촤륵 들으니 갑자기 맘이 설이레네요. 산문집까지도 참 좋아했어요~

다락방 2015-01-23 11:53   좋아요 1 | URL
산문집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산문집도 괜찮은가 보군요.
한강의 시도 산문도 읽어봐야겠네요.

저는 아기부처 좋아했어요. 좋다기보다 꽤 강한 작품이었어요, 제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