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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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57-58)



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육체와 영혼이 따로 분리되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 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처럼, 영혼이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머물며 그 사람을 지켜주고 자신의 못다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전전긍긍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한줄기 의심 같은 것은 있다. 그것은 사실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더 가깝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먼저 죽는다면 그들 곁으로 살포시 다가가 내가 여기에 있고, 나는 아주 잘 있으니, 이제는 나를 잊고 당신은 당신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나가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영혼이 있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은, 이 소설속의 저 인용문처럼, 누군가를 향해 복수하고 싶을 때 하기도 한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줬지? 그리고,


왜 나를 죽였지?



소년이 죽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라니,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은가. 그러나 누군가 맨 윗대가리에서, '죽여라'고 명령을 내렸고, 그 밑에 사람들 또 그 밑에 사람들은 그 명령을 충실히 따른 결과, 아무런 죄도 없이, 명분도 없이, 어리고 혹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갔던 일이, 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그 명분 없는, 어이 없는, 원통한 죽음은, 그 당시에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것이 '민주화운동'으로 불리게 된 것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며, 그 일이 사실은 어른들이, 언론이 우리에게 말해준 것처럼, '그런'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아주 나중의 일이다. 억울함을 억울하다고 제대로 전하지도 못한채, 그렇게 가슴 아프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은채, 그렇게 '지독하다'는 지역감정의 누명을 뒤집어 쓴채,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한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건,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늘, 죄책감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이 있으므로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게 굴러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존재하므로 우리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이 세상을 함께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우디 앨런'의 영화 《매치 포인트》는, 우디 앨런이 언제나 그랬듯이 꽤 현실적인데, 사랑했던 가난한 여자를 죽인 후 부자 여자와 결혼해 문제 없이 사는 남자가 나온다. 그러나 겉에서 보기에 문제 없어 보이는 그의 삶이, 그렇다고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의 살인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그러므로 누군가를 죽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지도 않았지만, 부자 여자와 결혼해 전망 좋은 집에서 살지만, 그의 밤 꿈속에는 그가 죽인 여자가 등장한다. 그의 꿈에 자신이 죽인 여자가 나타나는 것. 이것은 그의 '죄책감'이 작용한 탓이 아닐까. 또한 '영혼'이란 게 있다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의 영혼이, '왜 나에게 그랬니' 라고 찾아간 것일 수도 있고.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는 신이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믿는 것은 힘이고, 보려고 한다면 보인다고도 역시 생각한다. 신을 믿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살다보면 간혹 과학이나 이성으로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간혹 생기는 거니까. 그럴 때 이것은 어쩌면 신의 힘이 아닐까, 이것은 기적이잖아, 라고 하는 일들이 생기니, 어쩌면 신은 존재할지도 모르고, 신이 존재한다면 억울한 영혼이 차마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해 사람들 곁을 머무는 귀신도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귀신의 존재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죄책감이 인간을 인간이게 해준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이 모든 인간이 저마다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 죄책감이 한없이 작고 작은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고 혹은, 없애 버렸을런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죄책감을 없애버린 사람에게 그 사람의 잘못을 알려주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법으로 그에게 잘못을 벌하기에도 마땅치 않을 때. 그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그를 두어야할까,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저 모두가 원망하는 채로, 그 원망만 받아가며 살라고, 그렇게 두어야 할까. 나는 귀신의 존재를 바란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그대로 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고통을 호수할 수 있기를 원한다. 더불어 그 고통을 가한 가해자에게 우리만큼 너도 충분히 괴로워해야 한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서 바랐다. 당신들이 하고 싶은 말, 혼으로 남아 하고 싶은 그 말을, 혼으로 남아 하라고. 



그 사람에게 찾아가라고, 매일 밤, 여러분 모두가 찾아가서 그의 꿈속에 나타나라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얘기하라고. 우리가 다 못풀어준 그 억울함을, 세상의 어떤 곳에서 저마다 소리내고는 있지만 미처 그를 벌하기에 충분치 않으니, 당신들도 말하라고.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57-58)



그 말을 해도해도 부족하지 않을테니, 계속해서 외치라고 하고 싶다. 당신들을 쏘아 죽인 사람을 편안히 잠들게 하지 말라고, 매일밤 꿈에 나타나라고 간절히 바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직 살아서 당당히 경호를 요청하고 있는 그 사람의 안위가, 나는,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아왔으니까. 때로 용서는, 필요치 않을런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거니까.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p.117)



나는 명령에 따른 수많은 군인들이 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그 일에 가담했다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명백하게 피해자를 만들었으며, 동시에 명백하게 가해자를 만들기도 했다. 가해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가해자로 만듦으로써 그는, 자신의 죄의 크기를 더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현장에서 자신이 당한 것에, 자신이 본 것에, 자신이 가한 것에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러므로 그는, 편안히 남은 생을 살아서는 안된다.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쳐야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는 것, 누군가의 괴로움을 바라는 것이 결코 옳지 못하다는 것을 물론 나는 안다. 그러나 '아는대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말도 안되는 것을 바라는 것, 그것 밖에 할 수 없어서 스스로가 못나게 느껴진다.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집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p.117)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비서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단발포 직전인 5월 21일 오전, 군용 헬기를 타고 와 그 도시의 땅을 밟는 그의 영상을 보았다. 젊은 장군의 태연한 얼굴. 성큼성큼 헬기를 등지고 걸어와, 마중 나온 장교와 힘차게 악수를 나눈다. (p.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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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15-01-2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한강이 써야만 했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한강이

˝ 무슨 권리로 그걸 나에게 요구합니까. ˝(P. 132)

라고 한다면 대꾸할 말 없지만.

다락방 2015-01-22 10:06   좋아요 0 | URL
아니, 아시마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이제 자주자주 오시는 겁니까? 네? ㅎㅎ 자주 봬요.

음, 저는 `너무 좋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음..좀 부족하게 느껴졌는데요, 한강은 기존의 소설, [희랍어 사전]인가, 거기에서도 느꼈지만, 문장은 참 좋은데 `이야기`보다 문장 위주로 흘러가는 느낌이 들어서요. 잡히는 감정들이 `정확`하질 않고 좀 `모호`하게 느껴진달까요. 그래서 이 책도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쓰여졌다면 우리 엄마한테도 권했을텐데, 싶으면서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어요.

단발머리 2015-01-2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러 번 이 소설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지만 사실 아직도 용기가 안 나요.
작가가 자신의 이 소설만큼은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도 말이지요.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힘든 글을 써낸 사람도 있고, 그 소설을 읽고 이렇게 의미있는 페이퍼를 쓰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지요.
아..... 읽어야하겠지요?

다락방 2015-01-22 17:5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읽는 동안 힘드실 거에요.
정신 단단히 붙잡고, 마음 단단히 붙잡고 읽으세요.
읽으면서 계속 한숨을 쉬게 됩니다.
힘들지만, 읽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레와 2015-01-2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읽어야겠군..


다락방 2015-01-22 17:52   좋아요 0 | URL
네, 레와님. 도전해봐요. 읽다가 자꾸 빡치겠지만.. ㅠㅠ

2015-01-22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2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15-01-2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소설은 제주가는 비행기안에서 읽다가 숨이 막힐것 같아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나요 다락방님.
다락방님 한강의 시는 읽으셨나요? 다락방님이 읽으신 한강의 시는 어떨지 궁금해요!!
이곳에 많은 책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한강의 시집은 챙겨왔어요. 한번씩 들춰보려구요.
저는 [내여자의 열매] [아기부처] [몽고반점] [검은사슴]의 한강을 잊을수 없어요
여전히 제게 한강은 그때로 머물러 있는것 같아요.

다락방 2015-01-23 11:36   좋아요 0 | URL
춤인생님, 아직 한강의 시는 읽어보지 않았어요. 한번씩 들춰볼만큼 좋은가요, 춤인생님? 예전부터 한 번 볼까 싶긴 했었는데 제가 시를 잘 모르고 감상할줄도 모르는 것 같아서요. 시가 제게 오면 제 가치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시무룩..)
저도 몽고반점 좋아했어요. 아기부처랑요. 아기부처는 진짜 독특했어요.

singri 2015-01-23 11: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때의 한강 작품들을 촤륵 들으니 갑자기 맘이 설이레네요. 산문집까지도 참 좋아했어요~

다락방 2015-01-23 11:53   좋아요 1 | URL
산문집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산문집도 괜찮은가 보군요.
한강의 시도 산문도 읽어봐야겠네요.

저는 아기부처 좋아했어요. 좋다기보다 꽤 강한 작품이었어요, 제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