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여자들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5
박문영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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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시의 남자들이 사라진다. 아내를 때리다가, 아이를 성폭행 하려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여자들을 향한 폭력성을 드러냈을 때 그래서 여자들이 공포에 질려있던 그 순간에, 괴물같던 그 남자들은 사라져버린다. 사라지는 남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그 남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무엇이었는지 따져본다. 이내 그들의 폭력성이 세상에 알려지고 남자들은 이제 자신 안의 분노를 다스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자를 죽을때까지 때리던 남자들이 사라진 세상은, 그간 여자들이 살기를 원했던 그런 세상이다. 남자들이 사라지면서 빈 공간을 여자들이 채워나간다. 여자들은 이제 밤늦게 거리를 걷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얻게 되고 승진을 하게 된다. 옷차림도 자유로워진다. 길거리에서 시비를 거는 남자에게 무조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맞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것도 이제 사라졌다. 해방감을 느끼고 자유로움을 느낀다. 진작에 이렇게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세상이 왔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이 사라지는 세상이라면 나 역시 원하던 바다. 그런 남자들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하나도 아쉬울 거 없다고 나 역시 계속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라짐이 알수 없는 정체에 의한 것이라면, 마냥 그들의 사라짐을 기뻐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그들의 사라짐이 없이도 여자들이 안전하게 밤거리를 걷고, 평등하게 일자리를 얻고 승진을 하며, 돌봄노동에 있어서도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일테다. 그러나 그렇게 원하던 세상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힘의 정체를 알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남자 인간과 여자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어떤 무언가가 끼어들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거라면, 그것은 과연 옳은 혹은 정당한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마냥 환영해야 할것인가.



박문영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 된 것같아, 그래 그런 남자들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지겠지, 하며 따라가다가 어느틈에 '그런데, 그래도 될까?'를 수시로 던져준다. '외계의 빛무리'라 부르는 그것이 폭력적인 남자들을 사라지게 만든다면, 그것이 언젠가는 폭력적인 여자들을 향해서도 휘둘러지지 않을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정하려는 것은, 우리가 원했던 세상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인가?


그런 남자들이 사라진 세상이라고 해서 모든 여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여자들은 자신을 때렸던 남편일지언정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도한다. 해방감을 느끼는 여자들에게 그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 여자들도 있다. 이런 세상을 원했다고 환영한다는 여자들이 있고 그러면 안된다고 하는 여자들도 있다. 여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한마음으로 연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아들이 가해자가 될지언정 아들의 편을 들기도 하니까. 아들이 하는 짓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아도 침묵을 택하기도 하니까. 



여전히 딜레마다.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래, 이런 알 수 없는 힘이 남자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해, 그런데 그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이 많은 여자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맞고 움츠려있을거야, 그런 세상이기를 원한거야? 그런 세상이면 안되는 거잖아?

그렇게 이런 세상이 더 낫지 않느냐는 주장과 이런식으로 안정적인 세상이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서로 부딪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부딪친다. 



폭력적인 남자들이 사라지고 그 빈공간을 여자들이 채우는 걸로 끝맺었다면 이 소설은 그저 판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박문영은 계속 거기에 의심과 질문을 던짐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멈춰서서 '정말 그런가', '이것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하게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도 놓지 않으려고 애썼고 혹여라도 창살에 갇힌 동물이 되는 건 아닐까도 고심했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판단이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 나온 것일텐데, 그러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상상력 역시 마찬가지. 상상력도 내가 살아온 환경과 내가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여자작가들의 사이언스 픽션 소설을 앞으로 크게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바라던 것들이 기대이상의 이야기로 펼쳐질 것 같다.  





남편은 느억맘 소스에서 나는 생선 냄새가 역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에게 그 향취는 한국의 멸치 액젓과도 비슷했다. 남편은 자신이 고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게 싫은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탐탁잖은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꾸준히 무시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여자는 출산 직후에 더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엎질러진 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것들을 일일이 반추하며 되돌려 놓는 작업을 하려면 아예 다시 태어나는 게 나았다. - P14

성연은 동아리방 구석에 앉아있던 희수를 회상했다. 날선 미소, 장난기 어린 눈빛이 생생했다. 20년 정도는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다. 해가 간다고 해서 관계가 반드시 성숙하는 것도 아니었다. 십년지기, 이십 년 지기. 사람들은 누군가와의 막역한 관계를 강조하고 싶을 때 이런 말을 썼지만, 사이가 볼품없고 앙상해도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었다. 어쩌면 함께 한 시간의 누추함을 덮기 위해, 내용 없는 대화를 견디기 위해 십년지기라는 표현이 필요한 지도 몰랐다.
성연은 강조할 것이 시간의 길이뿐이라면, 그게 서로를 비추는 유일한 수식이라면 관계를 단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P47

형근의 의식과 무의식에는, 자신처럼 문제 주변을 골똘히 맴도는 사람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원대한 직진성이 있었다. 형근은 눈앞에 놓인 유무형의 장해물을 세세히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그래서일까. 몸짓도 크고 가벼웠다.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었다. 성연은 그런 특질을 공유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알고 지낸 남자들 대부분이었다. - P50

"어쩌면 실종자들의 잘못을 화를 너무 투명하게 분출한 것일지도 모르죠. 이걸 약하다고 합의해봅시다. 그 약자들은 우리 사회 구조를 익히 체득하고, 통념과 위계 유지에 앞장 서 복무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이 만 년이 넘는 이 폭력을 언제까지 이해해야 할까요. 강력범죄에 의해 살해되는 전국 각지의 여성 수가 구주의 실종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남자들이 먼저 화를 냈습니다. 여자들은 스스로를 검열해왔습니다. 자아비판과 회한이 우리 자신입니다. 같이 반성하고 성찰하자고 종용하지 마십시오. 기울기가 다른 땅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지 마십시오." - P154

써 왔던 시를 태우고 싶었다. 강사 일을 관두고 싶었다. 형근과 형근의 어머니를 그만 이해하고 싶었다. 성연은 이런 사건의 피해자가 트라우마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는 예측과 우려를 벗어나고 싶었다. 유형과 증상을 뛰어넘을 수 있을 듯했다. 진단과 병명에 갇히기 싫었다. 자신이 성폭력 생존자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방치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사건은 없던 일이 되어갔다. 하지만 천막 안의 남자를 본 순간, 가격을 당했다. 사촌과 얼굴이 거의 똑같은 남자였다. - P171

느리지만 선명한 변화가 있었다. 남자가 사라진 자리에 여자가 들어갔다. 승진이 막혔던 여자들 앞에 크고 푹신한 의자가 주어졌다. 실종자가 앉던 곳을 차지하고 싶은 남자는 드물었다. 오작동이 잦던 시설은 나날이 안정적으로 복구되고 있었다. 여자들의 모임이 매일 늘어났다. - P191

"포궁이 있으면 동경 받아야 했어요. 사회는 잉태할 수 있는 존재를 존중해야 했어요. 거꾸로죠. 남자들은 여자들을 인간 아래로 뒀어요.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어요. 여자들의 관용은 강요에 가까워요. 길들여진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가진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충성과 숭배예요. 이 구도를 내리찍은 게, 우리가 목도하는 실종이에요. 이게 혁명이 아니면, 여성운동이 아니면 뭐죠?" - P271

"문제가 있으면 그렇게 지워져도 된다고? 도태되었으니 죽어도 괜찮다고?" - P197

"처음엔 좋았어요. 네, 홀가분하기도 했어요."
희수가 성연의 팔을 잡았다. 장작 불똥 몇 개가 젖은 흙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사라진 남자들 옆에는 참고 참은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아픈 여자들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젠 두려워요. 누군가 거슬리는 이들을 간편히 지워나간다는 게 점점 무서워요. 여기 계신 분들은 우리가 계속 남아있을 거라고 확신하세요?" - P259

다급할 때 입에서 나오는 이름은 보통 엄마, 아빠 순이다. 부모라는 단어의 배치와 반대다. 형제자매라는 한자어가 익숙하지만 역시 실제로 뱉는 말은 언니, 오빠다. 몸에서 먼저 튀어나오는 이름은 이상하게도 지면에서 항상 뒤로 밀린다. -작가의 말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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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1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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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글은 여전히 좋고 또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이 책으로 가장 먼저 정희진의 글을 접한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정희진에 열광할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정희진이라면 닥치고 읽어! 라고 마음먹었던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는 '여전히 좋지만 그렇게까지는 좋지 않네' 하였으니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정희진을 좋아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정희진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 열광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저마다 약한 지점이 있다. 같은 사건, 같은 이야기에 그래서 더 건드려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열 개의 사건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다가도 열한개째에서 삐끗할 수 있는데, 정희진에 대해서라면 나는 한 칠십칠개쯤 열광하며 공유하다가 칠십팔개째에서 삐끗하는 것 같더니 그 다음에는 어긋나는 지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전작 『혼자서 본 영화』에서도 영화 《무뢰한》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이 책에서도 무뢰한 너무 좋다고 또 언급하길래 그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말야? 나는 20분도 못보고 '이걸 다 볼 수 있을까..' 했다. 다 보고 나면 나도 좋아지려는지 모르겠어. 시작부터 걍 싫은 영화였다... 뭐, 더 봐야 알겠지만.



예전에 강연에서 정희진 쌤은 '나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은 책으로부터 얻는다'고 하셨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니 '이 분은 그게 충분히 가능하시다!' 생각했던게, 읽는 책의 리스트도 남다를뿐더러, 좋은 책은 여러차례 반복해 읽는 거다. 이런식이라면 세상의 알아야할 모든 것들을 책으로부터 습득하는 게 가능하지 싶다.


알라딘에서야 보잘 것 없는 독서가라고 해도, 알라딘을 벗어나면 그래도 나름 책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이 난데, 그런 내가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책들도 정희진 쌤은 엄청 읽었더라. 목민심서, 도덕경, 신약성서... 정말이지, 나 따위..하찮은 독서가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이 다진다. 나도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 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책으로부터 얻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빠샤!


최근에 한나 아렌트와 시몬 베유 읽으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방향이 잡히기도 했다. 한나 아렌트는...너무 인상적이었어 진짜. 한나 아렌트 전기 읽은 후부터 내 머릿속에서 한나 아렌트가 잠시도 떠나지를 않는다. 대단한 사람..



갑분한나아렌트..



마음, 표현도 번역도 어려운 우리말이다. 마음은 몸의 부위인데(뇌, 심장, 흉부……), 보이지 않는 의미(영혼, 마음 씀, 정신……)에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이분 논리가 문제의 근원. 마음 심(心) 자는 사람의 염통 모양을 본뜬 것이지만 실제 마음을 관장하는 기관은 뇌이고, 의미는 가슴(heart, 심장)으로 통용된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 P29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지젝이 만난 레닌-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읽어주고 싶다. 영어 원제(Revolution At The Gates)가 기가 막히다. 레닌 입문서로도 안성맞춤이다. 책 표지 문구는 왜 혁명이 인간의 영원한 신앙인지를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회귀가 아니라 그 안에 구현할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다는 것을, 그가 하지 못한 일을, 그가 놓친 기회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6백 쪽에 가까운데 문장마다 가슴이 뛴다. - P50

어떤 올바름은, 필연적으로 다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올바름은 없다. ‘PC‘는 불가능한 개념이자 문제를 한 가지 원인으로 축소하는 환원주의의 산물이다. 책에 따르면, 환원론은 실천 없는 이들의 무의식적 위치 이동이다. 어차피 안 될 일, ‘올바르게 보이는‘ 주장이나 해보자는 것이다. - P51

녹색당의 당비 납부율은 전체 정당 중 최고이며 여성 당원의 비중이 가장 높다. 나는 당비만 내는 당원이지만, 녹색당은 집에서도 24시간 정치를 할 수 있는 민생 정당이다. 나는 냉장고, 화장품, 핸드폰, 드라이기, 다리미, 자동차, 샴푸, 냉난방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의류, 신발도 구입하지 않는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최대한 축소된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이런 생활 습관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아니 아예 믿지 않는 독재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 P57

몇 달 전 거리에서 "자연의 섭리"를 외치며 "짐승도 그 짓은 안 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동성애 반대 서명운동을 하는 이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연의 질서를 지키려면 환경운동이 먼저 아닐까요." 실제로 ‘짐승도 안 하는 짓‘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남성이다. - P69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옵니다."(<루가복음> 23장 34절) 이 구절은 상대방과 말이 안 통할 때 위로가 된다. 나는 주로 남들이 ‘사소하다‘고 하는 일에 분노하는 편이라 이 말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억울하고 분할 때 "쟤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를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참았다. 대화한들, ‘가르친들‘, 설득한들 알까? 소통 불가능 상황에서 최선의 지혜는 기대를 접는 것이다. - P79

《몸의 일기》는 구구절절하다.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한 줄의 인생. 개미가 성(城)을 공략한다. 가장 급진적인 개미는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다. ‘이등 시민‘이 몸의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 문명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사회가 이들이 말하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다. 저자는 여성의 일기가 몹시 궁금하다고 했지만, 여성의 일기는 "엄마 배 속에서 죽었어요."(여아 낙태)로 시작될 것이다. - P136

흔한 대화. "환자분, 통증이 1부터 10까지로 쳤을 때 어느 정도 아프세요?" 고통을 수량화한 척도(尺度) 질문인데, 고통이 계량화될 수 있겠는가. 이 물음은 필요하지만 환자를 위한 말이 아니라 치료자를 위한 것이다. - P161

연령주의적 표현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인생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젠더는 명확했다. 1948년생 여성이 1925년생 남성보다 나이듦, 죽음, 치매, 돌봄에 대한 염려와 사유가 훨씬 깊다. ‘여자의 정년‘은 생물학적 나이인 마흔, 남자의 정년은 사회적 일을 그만두는 시기다. - P174

《이야기 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여성주의 철학자인 저자 자신이 겪은, 살인 미수를 동반한 성폭력을 계기로 삼아 자아 개념을 재해석한 빼어난 책이다. 번역은 유려하지만 우리말 제목에는 약간 아쉬움이 있다. 원제는 《여진(餘震)-폭력과 자아의 재구성(Aftermath:Violence and the Remaking of a Self)》.
모든 문장이 깊고 지성이 넘친다. 그래서 치유적이다. 대개 치유를 마음의 평화나 감정적 위안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치유는 사고 방식의 근본적 변화, 인간 행동 중 가장 인지적인 과정이다. 종교든 인문학이든 일시적 ‘부흥회‘로는 치유가 불가능한 이유다. - P180

어떤 이에겐 평화로운 것이 어떤 이에겐 부정의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건의 효과는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무엇을 걱정하는가?"보다 "이 걱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효과적이다.(257쪽, 만들어진 우울증)
한국 사회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진보다 여성주의 이런 쪽(?)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문제 제기, 정확한 질문이 많은 사람도 공격적이라고 기피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모나거나 어두운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사유는 인간 본성(호모 사피엔스!). - P215

‘평화주의자‘들은 이에 반대한다. 대화와 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노를 관리하라고 권한다. 타임 아웃, 나 전달법, 분노 조절 프로그램 따위가 그것이다. ‘평화주의자‘인 내 생각은 다르다. 이 말은 분노와 무관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정의의 기본 법칙이다.
분노의 시작은 억울함이다. 물론,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문제는 "누구의 억울함인가, 정당한 억울함인가?" 이다. 분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부정의하다. 가해자의 피해의식이나 권력자의 분노는 규범이고, 약자의 억울한 감정만 분노로 간주된다. 분노를 표출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다. ‘남성‘은 이런 의문 자체가 없다. 자기 뜻은 분노가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26

권력은 다수의 억울한 마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멘토, 치유자를 자청하는 자들을 불러(?) 고결한 가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비열한 폭력인 용서와 화해 이데올로기로 약자의 상처를 짓이기고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죄의식과 자책까지 떠넘긴다. 그래서 우아함은 가진 자의 성품이요, 흥분과 분노는 약자의 행패가 되었다. - P227

유교의 장례인 삼년상(三年喪)은 ‘好‘, 즉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 …… 일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느낌에 주목하는 것. …… 상실감의 고통, 황폐한 심정, 다시 만날 수 없는 공허감을 느껴보길 촉구하는 의례가 삼년상"(63쪽, 한 칸의 사이)이다. 어미와 자식이 껴안고 있다가 한 사람이 사라졌다. 부정하고 싶은 이 상황을 실감하는 과정이 삼년상이요, 시묘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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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19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이 책 읽고 있는데요, 이 책으로 정희진 쌤 처음 입문하는 분들은 정희진에 그렇게까지 열광할 순 없을 거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을 때의 그 짜릿함을 기대하긴 어려운 책 같아요. ㅎㅎ
일간지에 기고했던 글들 모음이라 좀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락방 2020-02-19 14:24   좋아요 1 | URL
네 전 뭐랄까, 약간..음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흐음.. 갸웃하면서 5권까지 다 읽어말어...하고 있습니다. 예전만큼 흥분이 안되는 건 내가 변한 탓인가, 뭐 그런 생각도 좀 했고요. 킁킁.

2020-02-19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9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0-02-1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책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저는 이 분 책 아직 읽은게 없는데
다른 책부터 시작하는게 맞는건가요?

다락방 2020-02-19 15:42   좋아요 1 | URL
저는 정희진 쌤이라면 일단 [페미니즘의 도전]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책이 일간지 짧은 칼럼을 모은 책이라 읽기에 더 수월할 것 같긴 합니다. 시리즈로 5권까지 나온다고 하니 일단 이 책 1권만 사서 먼저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족스러우시다면 이 책 시리즈로 다 읽으시면 될 것 같고요, 뭔가 살짝 부족한데 싶으면 그 때 [페미니즘의 도전] 이나 [정희진처럼 읽기]로 가시면 될듯 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0-02-19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에 열광하는 사람으로서 글에 공감합니다. ^^
전 근데 한나 아렌트 생각에는 쫌... ㅠ

다락방 2020-02-20 07:55   좋아요 1 | URL
저는 얼마전에 한나 아렌트 전기를 읽고 완전 반했어요! 결국 스승보다 더 유명하고 더 큰 교수가 되었다는 지점이 제일 좋았고요. ㅎㅎ
한나 아렌트 생각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나, 시몬베유]를 읽으셔도 좋을것 같아요. 거기서 시몬 베유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비판하거든요. 아마 시몬 베유쪽이 더 맞지 않으실까, 짐작해봅니다.

그나저나 정희진 선생님 이 책은 5권까지 있다는데 저는 다 살지 말지 망설이게 되네요..

단발머리 2020-02-22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지면의 칼럼을 모은 글이라서 전 한겨레 신문에서 매주 읽었던 글 중 일부가 있더라구요.
전 다시 읽어도 좋아요. 아직은 하트뿅뿅!

다락방 2020-02-23 12:11   좋아요 0 | URL
그동안엔 무조건 정희진이라면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그 마음에서는 조금 사그라들긴 했어요. 그렇지만 정희진의 책이 나온다면 여전히 흥분하고 궁금해할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강연에 갈 때마다 반드시 놀랐던 순간들을 기억해요. 와 진짜 대단하다 이렇게 또 내 생각을 열게 해주셨네, 하면서요. 라라진이 말했던 것처럼 저는 이제 정희진 선생님과 정이 들어버린 것 같아요. 물론 이 정은 선생님 쪽에서는 알지 못하는 저 혼자만의 정이지만요... 후훗.

마태우스 2020-03-0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희진샘 왕팬이고 가장 존경하는 분 1위긴 하지만, 글이 제겐 쉽지 않더라고요. 그냥 송강정철의 후손이다, 정도만 기억에 남아요.

다락방 2020-03-02 08:00   좋아요 0 | URL
오. 정희진샘이 송강정철의 후손인가요? 몰랐어요. ㅎㅎ
저는 정희진샘 글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나온다면 계속 읽고 싶습니다. 벌써 몇년전인가요, 정희진샘 강연을 마태우스님과 함께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련...

마태우스 2020-03-04 05:07   좋아요 0 | URL
아 네.. 그 책에 그 말이 나오더라고요 ^^ 맞아요 다락방님과 정희진샘 강의 같이 들었죠 진짜 아련...
 
에티오피아 구지 모모라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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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좋아하는 여동생에게 홀빈 상태로 보내주었다. 원래 에티오피아 원두가 산미가 좀 있다는데, 식을수록 그게 더 강해진다고. 가볍고 산뜻하지만 지난번에 선물해준 동백이 더 좋다고 한다.


커피 직접 분쇄하고 핸드드립으로 내려먹는 제엄마 때문인지 초등학생인 조카도 커피 전문가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블렌딩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ㅋㅋㅋㅋ 아니 쪼꼬만게 커피 마시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블렌딩인지 싱글인지를 아는거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카는 커피박사. 이 아이는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까? 너무 짜릿해!




- 이상 커피 리뷰가 아니라 조카자랑 이었습니다. 엣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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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20-02-1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조카분이 향을 맡고 블렌딩 여부를 맞추다니 와....

다락방 2020-02-12 16:39   좋아요 1 | URL
저도 모르는 걸 초등학생이 파악했네요. 진짜 신기했어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2-1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구지 모모라가 좋고 동백꽃은 별로야 했는데 동생 분이랑 완전 정반대 취향이에요. 향미 전문가 조카님 귀엽네요.ㅎㅎㅎ

다락방 2020-02-12 16:40   좋아요 1 | URL
저는 둘다 안마셔서 모르지만 사실 마셨어도 딱히 잘 몰랐을 것 같아요. 저는 심하게 맛없는 커피에 대해서만 맛없다... 요정도만 가능합니다. ㅋㅋㅋㅋㅋ

프레이야 2020-02-12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에헴 조카자랑하는 깜찍한 락방님

다락방 2020-02-13 09: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전 아무래도 자랑질을 숨길 수가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겸손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가 좀 합니다 - 일만 알던 내 몸이 요가를 부를 때, 퇴근길에 인도까지
백서현 지음 / 에이치비프레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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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의욕적으로 '오늘은 요가를 가겠어!' 라고 결심하지만, 퇴근이 가까워올수록 '가지말까'하는 마음이 크게 생긴다. 새벽 다섯시 이십분에 일어나 시작하는 하루는 내게 너무나 길고 오후 세네시경이면 이미 지쳐있다. 그런참에 퇴근하고 요가센터로 간다는 건 사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갈까말까 고민하는 내게 여동생은 '그냥 가' 혹은 '그냥 가지마' 라며 그게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어렵기만 하다. 이런 나의 고민에 매일 요가를 하는 지인은 '그냥 매일 다니는 걸로 바꿔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4회를 갈 수 있는데 이 4회를 꽉 채워 가는 날은 드물다. 그렇게 4회로 정해 놓으니 고민하게 된다며, 매일 가는걸로 바꾸면 그냥 매일 가게된다는 거였다. 그러고보니 내가 플랭크 한달 도전도 매일 하기 때문에 '오늘 할까말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해야한다'뿐이었지.. 아아, 그러나 나는 매일 요가를 가는 건.. 아직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다. 일주일에 네 번도 힘든데...



어제 아침도 요가복을 가방에 쑤셔넣고, 오늘은 갈등없이 퇴근 후 요가에 가리라 마음 먹었지만, 하하하하, 퇴근 무렵부터 갈등이 오기 시작했고, 그렇지만 나를 추스리며 간신히 간신히 센터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어라, 복도가 깜깜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요가 센터의 문은 왜 닫혀있지? 나는 내가 내린 층이 내가 내려야할 층이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맞았다. 요가센터의 문을 열어보니 온통 깜깜했고, 코로나 때문에 이번주 휴관이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아니, 그러면 진작 회원들에게 문자 메세지를 넣었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이건 보냈을것 같은데, 그런데 내가 못본 게 아닐까' 싶어서 내 핸드폰을 훑어보았다. 하아, 역시나 금요일 저녁에 휴관할거란 메세지가 도착해있었다. 나는 걍... 안봤어 문자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왜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왜냐하면, 그건 말이야, 내가 가기 싫어 안간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못간 거니까. 집에 돌아가니 엄마는 내 표정이 신나보인다 했고, 나는 엄마, 제부가 선물해준 와인 마시자~ 하면서 와인을 마셨... 요가 아니면 와인이라니, 이런 극단적인 삶이여...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 위로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아, 최근에 재등록을 앞두고 요가를 다시 등록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나는 반드시 다시 등록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지 않으면 진짜 꼼짝도 안하는 사람이겠어... 그나마 요가센터에 등록해뒀으니 억지로라도 몇 번 가서 몸을 움직여주는 게 가능했다. 쓰지 않았던 근육들에 힘을 주고 쫙쫙 펴주는 게, 그나마 센터에 가기 때문에 가능했어. 집에서 혼자서는 결코 하지 않고, 이것봐라, 매일 술이나 마실 것이여...




침대에 앉아서는 '백서현'의 [요가 좀 합니다]를 읽기 시작했다. 요가를 하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요가책은 읽어줘야 나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백서현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몸이 안좋아졌고 그래서 요가를 하게 되었다 했다. 3년쯤 하다가는 요가를 더 잘 하고 싶어져서, 아아, '미리 마음먹지 않으면 찾아가기 어려운 인도의 끝(p.161)' 인 인도의 케랄라에 가 요가를 하기로 결심하는 거다. 잘하고 싶은 마음, 좀 더 알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쏟고 싶은 마음을 나는 언제나 너무 응원하고 좋아해서, 그런 사람들만으로 내 주변을 채우고 싶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아아, 너무 좋다, 그래, 가라, 인도든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가 원하는 수련을 해라,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인도는 '더운' 나라고, 나는 더운 나라를 몹시 좋아하는 터라, 갑자기 얼른 베트남에 가고 싶어졌다. 인도에 갈 마음은 아직까지 잘 생기질 않아서 베트남에 가고 싶었어. 마침 호치민에 혼자 가려고 비행기표를 예매해둔 터라, 얼른 그 날이 오라고 바라면서 이 책을 읽었다. 나도 더운 나라 가요, 가서 땀흘릴거야. 그렇지만 요가는 안하지..



예전에 요가 수업 때 일주일에 한 번쯤 만나던 선생님은 내게 요가 지도자과정을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 했었다. 그때는 어쩐일인지 다른 회원들이 오지 않아 선생님과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1 수업을 하고난 다음이었다. 선생님,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저 이렇게나 못하는 게 많은데요.. 선생님은 '아사나는 계속 노력하다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때가 오는 거고, 그보다는 요가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 그 감각이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예전부터 한 번 권하려 했었다고.



선생님... (눈물이 그렁그렁)



그러나 나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기에서도 지도자과정(TTC)에 대해 나오는데, 지도자과정이라는 것은 내가 지금하는 것처럼 퇴근하고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 한시간 수업하는 걸로 되는 게 아니다. 정말 요가가 좋고 잘하고 싶다면, 그래, 인도에 가서 하는 것도 답일거야, 생각했지만, 그래서 '나도 언젠가 퇴사하면 요가에만 집중하는 TTC 과정을 밟아볼까' 하였지만, 하하하하. 나는 백서현이 이 책을 통해 알려준 인도의 요가 시간표를 보고서는 인도에 가지 않을 것이고 지도자과정도 밟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퇴사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아침 이른 기상인데, 뭣이여, 요가를 할 때도 이렇게나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퇴근 후 지친몸을 이끌고 가는 요가는 언제나 갈까말까 고민의 대상이 되지만, 하하하하, 저것은 무리입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요가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보다.


지도자과정은 수련을 많이 하고 이론도 공부하는 만큼 교육비가 많이 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 때 선생님이 내게 지도자교육을 권한 건, 내가 돈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응?)

농담입니다.




센터에 다니다보면 선생님들이 길게 휴가를 낼 때가 있다. 휴가후 돌아오면 다들 스페인에 가서 요가하고 왔다, 발리에 가서 요가하고 왔다고 말들을 하더라. 자신이 이미 잘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노력한다는 것은 역시나 짜릿한 일이다.



이 책속에서 백서현은 요가한지 3년이 되었는데도 안되는 자세들은 여전히 안된다고 말한다. 크-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백서현 역시 대부분의 요기니들처럼 머리서기를 하고 싶어하는데, 인도에서 한달간 집중 요가할 때도 되지 않았던 것이 돌아오고 나서 되었다고 한다. 그건 아마도 그 집중훈련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다. 나도 집중하면, 그러면 뭐든 될까. 지금은 다리찢기 하고 싶은데 연습 너무 안하나.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내가 요가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너무 적지 않은가.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걸까.



요가를 하면서 많은 동작들이 여전히 안되는데, 특히나 비틀기가 안될때면 '내가 너무 많이 먹나', '내가 너무 고기를 먹나'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꾸로 활자세가 되지 않을 때는 선생님께 '제가 뱃살이 너무 많아서 안되나요' 묻기도 했다. 선생님은 꼭 그런 건 아니라며(꼭 그런 건 아니면 그럴 수도 있긴 한거잖아요?), 손에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각을 찾기만 하면 금세 될거라고. 저..예전에 다른 선생님이 감각 있다 그랬는데.. 감각 없었나봐요.....역시 돈 때문이었나.. 킁.


요가를 시작하면서 다른 여러가지 상황들과 맞물려 '먹는 양을 줄이자', '가급적 고기를 먹지 말자', '하루에 두 끼만 먹자' 생각하였다. 몸이 가벼워지면 요가가 더 잘될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백서현도 요가를 할 때는 먹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하루 세 끼'가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정답은 아니다. 자신의 일과 생활에 어울리는 식이법은 스스로 찾으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아침을 잘 먹는 게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하는 데 중요한 일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1일1식이면 충분하게 느껴진다. 나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10시쯤 첫 끼를 먹고, 4시쯤 두 번째 끼니를 먹는다. 세끼를 먹을 때는 아침엔 간단한 주스를 마시고 점심은 골고루 배부르게 씹는 음식을 먹고 저녁은 건너 뛰거나 요거트를 먹는다. 물론 약속이 있다면 지키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이 정도가 몸의 바이오리듬이 가장 좋다고 느낀다. (p.124)



적게 먹는 것도, 두끼로 줄이는 것도, 고기를 안먹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매운 거 좋아하고 술과 커피를 즐겨 마시는데... 아아, 나는 요가 잘하긴 틀린거야.. 나는 다리찢기를, 까마귀자세를, 머리서기를, 거꾸로 활자세를... 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백서현의 [요가 좀 합니다]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요가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가를 하고 싶어서 인도까지 갈 열정 같은 게 내게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 그렇다면 잘 할 수도 없는 거 아닐까.

그렇지만 모두가 언제나 알고 있었던 진실,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새겼다.

그리고 지금보다 적게, 가볍게 먹어야 한다는 것도.


아사나(자세)를 하면서 드는 생각이랄까 나는 좀더 일상적인 것에 가까운 요가 에세이를 원했는데, 이 책은 요가일상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인도에서 좀 빡세게 요가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훨씬 더 적절할 것 같다. 인도에서 하는 요가에 매우 집중되어 있는 책이다. 인도에서 요가하고 싶은데 정보가 필요하다면 이 책은 매우 도움이 될것이다.






요가는 마음의 상태를 통제하는 것이라니.

난.... 요가를 잘 못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성장을 원하는 요가 선생님들은 다양한 곳에서 여러 번 TTC를 하거나 계속 새로원 워크숍에 참여하고 공부하면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 P48

2013년 취업을 하고 그해 요가를 시작해서 약 4년이 흘렀다. 중간중간 게을렀던 기간을 제외하면 3년간 반복해서 매트 위에 섰다. 덕분에 많은 동작의 구조나 의도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몇 동작들은 여전히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헤매고 있었다. 그 불균형을 깨기 위해서 뭔가 새로운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는 정말 달라지고 싶었다. 하루를 쪼개서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곳에 쓰고 남는 시간에 겨우 요가원에 들르는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살아 보고 싶었다. 아직 가 보지 못한 요가의 세계는 넓고 나는 작은 우물 안 올챙이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을 때 호기심은 갈급함으로 이어졌다. - P64

작은 매트 위에 쌓아 올린 완벽한 나의 세계에서 숨을 마쉬고 내쉬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면 고통의 감각도 정신의 산란함도 없다. 원하지 않는 일들로 가득찬 하루의 모든 시간 중 유일하게 복잡한 생각, 다른 사람의 시선, 앞으로 해야 할 일 같은 건 덜어내고 나를 위해 의식적으로 사는 잠깐의 시간. 아사나를 수련하기만 해도 삶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치유 효과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가장 단순한 것들로만 채워진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엔 순수한 평화가 깃든다. - P108

요가 호흡의 목표는 좋은 공기-산소를 더 많이 받아들이고 몸에 남은 찌꺼기-이산화탄소를 최대한 바깥으로 배출하는 것이다. 느리고 깊은 호흡은 우리가 정신적/감정적 안정 상태에 도달하도록 도와준다. - P117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하루 세 끼‘가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정답은 아니다. 자신의 일과 생활에 어울리는 식이법은 스스로 찾으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아침을 잘 먹는 게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하는 데 중요한 일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1일1식이면 충분하게 느껴진다. 나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10시쯤 첫 끼를 먹고, 4시쯤 두 번째 끼니를 먹는다. 세끼를 먹을 때는 아침엔 간단한 주스를 마시고 점심은 골고루 배부르게 씹는 음식을 먹고 저녁은 건너 뛰거나 요거트를 먹는다. 물론 약속이 있다면 지키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이 정도가 몸의 바이오리듬이 가장 좋다고 느낀다. - P124

요가는 살생을 금지하는 아힘사 정신을 기본적으로 따른다. 죽은 동물의 육체를 먹는 것이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연히 커피와 술도 금지다. 마음을 산란하게 해 요가 수행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맵고 짜고 달고 튀겨 부풀린 음식을 먹으면서 몸이 편안해지길 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 P126

하루 온종일 수련하는 삶을 몇 주간 계속하다 보면 그간 어려워했던 아사나를 갑자기 하게 되는 등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기도 한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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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2-1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를 왔는데 주변엔 요가를 할 곳이 없네요....물론 있을 때도 드문드문 다녔지만요☞☜

다락방 2020-02-11 15:18   좋아요 0 | URL
저도 일주일에 세 번 가면 많이 가는 겁니다...☞☜

han22598 2020-02-12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영 일주일에 2~3번하는데...물론 대부분 2번을 해요 ㅎㅎ
저도 갑자기 수영장 문 닫는 날이 가장 기쁘고 뿌듯합니다 ^^

다락방 2020-02-12 07: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치요? 뭔가 합법적으로(?) 안가는 거라서 마음이 편안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주아 2020-03-29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갖인상적이네요..일상생활에서 묻어나는 요가글을 보고싶었는데 열정가득한 사람이 봐야하는것같아서 구매고민중인데..잘하고싶은마음은커요 인도까지 가고싶진 않아서.,

다락방 2020-03-29 12:56   좋아요 0 | URL
저도 인도까지 가고 싶진 않아서 말입니다. ㅎㅎ
요즘은 텔레비젼에서 <요가소년> 보면서 가끔 따라하고 있어요. 어제는 수리야 a,b 세트 열번씩 따라하고 근육통 있습니다. ㅎㅎ
 
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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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을 들면 있었던 사실을 없는 것으로 만들게 되고 심한 것을 그렇게까지 심한 건 아닌 것으로 만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가해자의 편을 들까. 왜 가해자의 말을 피해자의 말보다 더 신뢰할까. 그건 아마도 가해자의 말을 신뢰하는 편이 방관자의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 책에서 배움에서 오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걸 느끼기도 했고.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던 타라 웨스트오버가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역사라는 것과 대면하고 빨려들어가 공부하는 것이라든가,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접목시키는 순간들은, 내가 바랐던 바로 그 이야기였다. 공부하면서 예전의 나와 달라지는 바로 그 지점들. 



타라 웨스트오버는 모르몬교의 절실한 신자인 부모님 덕에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면서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폐철처리장에서 일을 하면서 학대당하고 위험에 노출된다. 게다가 그녀의 오빠중 한 명은 자라는 내내,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마어마한 폭력을 휘두른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세계는 그녀에게 전부였으므로 세상에 나온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대학을 다니면서 자신이 그간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 놓였는지 인지하게 되고 모든 학문들로부터 자신의 삶을 돌이켜 자신이 당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걸 알게되는 것은 그녀에게 결코 기분 좋은 일도 아니었고 또 힘든 과정이었다. 그녀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자꾸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자기에게 폭력을 휘두른 오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어김없이 큰 실망만 안고 돌아와야 하고. 그녀는 아주 오래, 자신이 모든 걸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여전히 가족들을 사랑했고 또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당했던 학대와 폭력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 그랬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배움 덕이라고 타라 웨스트오버는 말하고 있다. 그 결론은 충분히 묵직했지만,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내가 기대한 배움의 짜릿함 보다는 폭력의 거대함에 무력해졌다. 그녀가 홀로 자신이 집이라 불렀던 곳으로 돌아가는 걸 볼 때마다 너무 힘들었고, 대체 왜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릴 때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예방 접종도 받아본 적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하버드와 케임브리지를 거쳐 박사학위를 받아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결코 오빠의 사과를 받지 못했고, 그 때의 기억은 그녀에게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의 일기장 속에도. 배움으로 인해 그녀는 예전에 보았던 세상과는 아주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무력함을 느낀다. 폭력의 힘이 너무 세서. 폭력의 힘이 너무 강해서. 그것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서 너무나 무력하고 기운 빠진다. 



폭력이 존재하면 그 폭력의 기억은 피해자에게 내내 따라다닌다. 피해자는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그 기억을 조작해보고 미화해본다. 어쩌면 자신이 잘못한걸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그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신의 탓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지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믿는 것도 어려워지는데, 이 모든 것들을 거쳐나가는 그 오랜 시간동안 가해자는 이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질 않는다. 



물론 타라 웨스트오버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 더 나쁜 환경속에서 더 나쁜 일들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그 과거의 폭력을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은 배움의 덕이다. 배웠기 때문에 그녀는 이만큼 올 수 있었다. 그것은 다행한 일이고. 그렇지만 독자인 나도 책장을 덮고나서도 그 폭력에 대해서 잊을 수가 없는데 그녀가 다른 사람앞에서 느꼈던 그 수치심과 고통, 살면서 겪었던 외로움과 고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괴롭다. 폭력 그 따위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괴롭다. 폭력의 기억이 나를 후려치지 않게 해야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괴롭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던 학대에 대해 알고 읽었지만 폭력 또한 그녀를 내리치고 있을지 몰라서 괴로웠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그리고 여자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롭다. 배움의 발견보다 폭력의 기억이 더 크게 다가와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괴로웠고 책장을 덮은 지금도 괴롭다. 




산파 일은 엄마를 변화시켰다. 엄마는 일곱 자녀를 가진 성인 여성 이었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의심이나 도전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책임자 역할을 수행한 적이 없었다. 가끔 분만을 한 후 며칠동안 엄마한테서 주디한테서 느꼈던 무거운 존재감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머리를 고집스럽게 돌린다든지, 도도하게 눈썹을 추겨세운다든지 할 때 말이다. 엄마는 화장하는 일을 그만뒀고, 화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는 일도 그만했다. - P41

나는 그날 제닛이 입은 남색 블라우스를 머리에 떠올렸다. 블라우스의 목선은 쇄골에서 2센티미터밖에 내려오지 않았지만, 헐렁했기 때문에 몸을 수그렸으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나는 초조해졌다. 블라우스가 더 딱 맞았으면 몸을 수그려도 속이 덜 보였겠지만, 딲 맞는 옷 자체가 덜 점잖아 보였을 것 아닌가. 의로운 여성은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여자들이나 하는짓이다.
내가 어느 정도 몸에 맞는 옷이 적당히 맞는 것일까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제닛은 내가 볼 때까지 기다려서 그 성가집을 주우려고 몸을 구부렸어. 내가 보길 원했던 거야." 엄마는 못마땅하다는 듯 <쯧>하고 한 번 혀를 찬 다음 감자를 네 조각으로 잘랐다.
- P185

아버지의 말은 그전에 수백 번 들었던 비슷한 내용의 설교와는 다른 형태로 내 뇌리에 박혔다. 그 후 몇 년동안 나는 무척 자주 그 말들을 머리에 떠올렸고, 그 의미를 곱씹을수록 내가 잘못된 부류의 여자로 변화해 가는 게 아닐까 걱정이 커졌다. 어떨 때는 <그들처럼>걷거나, 몸을 숙이거나, 쭈그리고 앉지 않는 데 너무 신경을 쓰다가 거의 방도 못 지나갈 지경이 됐다. 그러나 아무도 얌전하게 몸을 숙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몸을 숙이는 방법이 잘못된 방법일 거라고 짐작했다. - P185

내 몸을 마비시킨 것은 두려움뿐 아니라 연민이기도 했다. 그 숙난 나는 오빠를 증오하고 있었고, 오빠 얼굴에 대고 오빠가 증오스럽다고 외치고 싶었다. 내 말과 자기혐오의 무게에 눌려 구겨지고 부서져 버릴 오빠의 모습을 상상했다. 당시에도 나는 진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오빠를 아무리 증오해도 오빠 자신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혐오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진실 말이다. - P197

오빠는 나를 모욕하고, 과거로 시간을 돌이켜서 과거의 내 이미지로 나를 가두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단어는 내 주제를 깨닫게 하기는커녕, 나를 먼 곳으로 도망가게 만들었다. <야, 깜뚱이, 기중기 팔 좀 올려> 혹은 <수평자 좀 가져와, 깜둥아>할 때마다 나는 대학의 대강당으로, 인간의 역사가 내 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그 속에서 내 자리는 어디일까 생각했던 시간으로 돌아갔다. 에멧 틸, 로자 파크스,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이야기는 숀이 <깜둥아, 다음 줄로 옮겨>하고 소리칠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해 여름 숀 오빠가 용접으로 고정시킨 모든 도리들보 위에는 그들의 얼굴이 겹쳐서 떠올랐다. 그 일이 끝날 무렵에야 나는 처음부터 불 보듯 바로 알아차렸어야 할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평등을 향한 대장정에는 누군가 반대했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손에서 자유를 쟁취해야만 했던 것이다. - P286

내 계좌에는 1천 달러가 들어 있었다. 입에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1천 달러. 여윳돈. 내가 즉시 필요하지 않은 돈. 그 사실에 적응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내가 즉시 필요하지 않은 돈. 그 사실에 적응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그러나 적응을 하고 나니 돈이 갖는 엄청나게 강력한 장점을 경험하게 됐다. 바로 돈 말고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교수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학비 보조금을 받기 전까지는 마치 흐릿한 렌즈를 통해 그들을 본 느낌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꼭 필요한 것 이외의 참고 서적도 읽기 시작했다. - P327

나는 역사 기록학에 관한 이야기를 우물쭈물 꺼냈다. 역사 자체가 아니라 역사학자들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은 홀로코스트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해 배우면서 내게 근거나 기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고 절감했던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누군가가 과거에 대해 아는 바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부터 제한받게 될 거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바로잡히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잘못 알고 있던 규모가 너무도 커서 그것을 바로잡으면 세상 전체가 변할 정도 였다. 이제 역사를 이해하는 길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위대한 문지기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무지와 편견을 해결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 P373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애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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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2-02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던 어떤 무협소설 중에, 어릴적부터 엄마에게 학대받고 자란 멍청한 아이가 기연을 만나서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고 무림을 종횡무진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작품은 만화로도 나왔는데요, 원작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만화에서는 결말부분만 살짝 바꿔서 굉장한 충격을 줬어요.

그러니까, 그 아이가 이제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어서 당당하게 엄마를 찾아간 거에요. 엄마 나 좀 보라고, 근데 미친 엄마가 어린 시절에 학대했던 것처럼 채찍을 들고 주인공을 때리기 시작하니까, 주인공은 별안간 어릴적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서 아이때처럼 잘못했다고 빌고 빌면서, 그 천하제일의 무술을 하나도 발휘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엉엉 울면서 계속 맞고 바닥을 뒹굴어요. 맞아서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주인공을 기다리던 정혼녀가 그후 오랜 세월 계속 그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걸로 봐서 주인공은 아마 엄마한테 맞아 죽었나보더라구요.

그 만화는 진짜 충격이었어요. 잊히지가 않네요. 천하제일의 무술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어떤 폭력의 경험.....

캐모마일 2020-02-03 00:29   좋아요 0 | URL
혹시 고 김용 작가님의 협객행 아니었을까요. 아마 엄마가 개잡종이라면서 학대를 했던 거 같네요.

다락방 2020-02-03 08:01   좋아요 0 | URL
아이고 세상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까.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폭력의 경험은 그것을 경험이라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강하게 남는 것 같아요. 그것을 경험이라 말해도 되는걸까 싶을만큼요. 경험이란 단어를 거기에 써도 되는걸까.

[배움의 발견]에서 타라 웨스트오버는 집에 가면 그 무서운 오빠가 있는데도 자꾸 집에 가요. 그럴 때마다 미치겠더라고요.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또 잘못된 걸 바로 잡고 싶고..그 모든 마음이 뭔지 알겠으면서도 계속 집에 가고 그리고 또 폭력에 노출되고, 아무도 타라의 폭력피해를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타라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타라는 나중에 공황발작을 일으키고 공부도 손에서 놓게 되는데, 지금은 이렇게 책을 써서 어느정도 밖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일이 없던 것처럼 살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읽고 있는게 너무 고통이었어요.

어떡해야 어릴 적에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우리가 구해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거기에서 보호할 수 잇을까요? 너무 무력합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0-02-03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꾸 가정으로 돌아가는, 돌아가려는 타라의 모습이 제일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만이 그녀가 아는 익숙하고도 유일한 세상이니까요.
어쩌면 가족이, 가정이 가장 질긴 악연이 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슬픈 일이죠.
괴로웠다는 다락방님 감상에 동감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ㅠㅠ

다락방 2020-02-03 08:02   좋아요 0 | URL
저는 으앗, 역시 공부 좋아 공부 짜릿해!! 이걸 느끼고 싶어서 이 책을 읽은건데, 읽다보니 그 느낌 보다는 답답하고 두렵고 안타깝고 괴로운 마음이 몇 배 더 컸어요. 다 읽고나서도 그랬어요. 너무 괴로웠어요, 단발머리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