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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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을 들면 있었던 사실을 없는 것으로 만들게 되고 심한 것을 그렇게까지 심한 건 아닌 것으로 만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가해자의 편을 들까. 왜 가해자의 말을 피해자의 말보다 더 신뢰할까. 그건 아마도 가해자의 말을 신뢰하는 편이 방관자의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 책에서 배움에서 오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걸 느끼기도 했고.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던 타라 웨스트오버가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역사라는 것과 대면하고 빨려들어가 공부하는 것이라든가,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접목시키는 순간들은, 내가 바랐던 바로 그 이야기였다. 공부하면서 예전의 나와 달라지는 바로 그 지점들. 



타라 웨스트오버는 모르몬교의 절실한 신자인 부모님 덕에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면서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폐철처리장에서 일을 하면서 학대당하고 위험에 노출된다. 게다가 그녀의 오빠중 한 명은 자라는 내내,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마어마한 폭력을 휘두른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세계는 그녀에게 전부였으므로 세상에 나온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대학을 다니면서 자신이 그간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 놓였는지 인지하게 되고 모든 학문들로부터 자신의 삶을 돌이켜 자신이 당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걸 알게되는 것은 그녀에게 결코 기분 좋은 일도 아니었고 또 힘든 과정이었다. 그녀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자꾸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자기에게 폭력을 휘두른 오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어김없이 큰 실망만 안고 돌아와야 하고. 그녀는 아주 오래, 자신이 모든 걸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여전히 가족들을 사랑했고 또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당했던 학대와 폭력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 그랬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배움 덕이라고 타라 웨스트오버는 말하고 있다. 그 결론은 충분히 묵직했지만,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내가 기대한 배움의 짜릿함 보다는 폭력의 거대함에 무력해졌다. 그녀가 홀로 자신이 집이라 불렀던 곳으로 돌아가는 걸 볼 때마다 너무 힘들었고, 대체 왜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릴 때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예방 접종도 받아본 적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하버드와 케임브리지를 거쳐 박사학위를 받아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결코 오빠의 사과를 받지 못했고, 그 때의 기억은 그녀에게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의 일기장 속에도. 배움으로 인해 그녀는 예전에 보았던 세상과는 아주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무력함을 느낀다. 폭력의 힘이 너무 세서. 폭력의 힘이 너무 강해서. 그것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서 너무나 무력하고 기운 빠진다. 



폭력이 존재하면 그 폭력의 기억은 피해자에게 내내 따라다닌다. 피해자는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그 기억을 조작해보고 미화해본다. 어쩌면 자신이 잘못한걸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그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신의 탓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지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믿는 것도 어려워지는데, 이 모든 것들을 거쳐나가는 그 오랜 시간동안 가해자는 이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질 않는다. 



물론 타라 웨스트오버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 더 나쁜 환경속에서 더 나쁜 일들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그 과거의 폭력을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은 배움의 덕이다. 배웠기 때문에 그녀는 이만큼 올 수 있었다. 그것은 다행한 일이고. 그렇지만 독자인 나도 책장을 덮고나서도 그 폭력에 대해서 잊을 수가 없는데 그녀가 다른 사람앞에서 느꼈던 그 수치심과 고통, 살면서 겪었던 외로움과 고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괴롭다. 폭력 그 따위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괴롭다. 폭력의 기억이 나를 후려치지 않게 해야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괴롭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던 학대에 대해 알고 읽었지만 폭력 또한 그녀를 내리치고 있을지 몰라서 괴로웠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그리고 여자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롭다. 배움의 발견보다 폭력의 기억이 더 크게 다가와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괴로웠고 책장을 덮은 지금도 괴롭다. 




산파 일은 엄마를 변화시켰다. 엄마는 일곱 자녀를 가진 성인 여성 이었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의심이나 도전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책임자 역할을 수행한 적이 없었다. 가끔 분만을 한 후 며칠동안 엄마한테서 주디한테서 느꼈던 무거운 존재감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머리를 고집스럽게 돌린다든지, 도도하게 눈썹을 추겨세운다든지 할 때 말이다. 엄마는 화장하는 일을 그만뒀고, 화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는 일도 그만했다. - P41

나는 그날 제닛이 입은 남색 블라우스를 머리에 떠올렸다. 블라우스의 목선은 쇄골에서 2센티미터밖에 내려오지 않았지만, 헐렁했기 때문에 몸을 수그렸으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나는 초조해졌다. 블라우스가 더 딱 맞았으면 몸을 수그려도 속이 덜 보였겠지만, 딲 맞는 옷 자체가 덜 점잖아 보였을 것 아닌가. 의로운 여성은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여자들이나 하는짓이다.
내가 어느 정도 몸에 맞는 옷이 적당히 맞는 것일까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제닛은 내가 볼 때까지 기다려서 그 성가집을 주우려고 몸을 구부렸어. 내가 보길 원했던 거야." 엄마는 못마땅하다는 듯 <쯧>하고 한 번 혀를 찬 다음 감자를 네 조각으로 잘랐다.
- P185

아버지의 말은 그전에 수백 번 들었던 비슷한 내용의 설교와는 다른 형태로 내 뇌리에 박혔다. 그 후 몇 년동안 나는 무척 자주 그 말들을 머리에 떠올렸고, 그 의미를 곱씹을수록 내가 잘못된 부류의 여자로 변화해 가는 게 아닐까 걱정이 커졌다. 어떨 때는 <그들처럼>걷거나, 몸을 숙이거나, 쭈그리고 앉지 않는 데 너무 신경을 쓰다가 거의 방도 못 지나갈 지경이 됐다. 그러나 아무도 얌전하게 몸을 숙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몸을 숙이는 방법이 잘못된 방법일 거라고 짐작했다. - P185

내 몸을 마비시킨 것은 두려움뿐 아니라 연민이기도 했다. 그 숙난 나는 오빠를 증오하고 있었고, 오빠 얼굴에 대고 오빠가 증오스럽다고 외치고 싶었다. 내 말과 자기혐오의 무게에 눌려 구겨지고 부서져 버릴 오빠의 모습을 상상했다. 당시에도 나는 진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오빠를 아무리 증오해도 오빠 자신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혐오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진실 말이다. - P197

오빠는 나를 모욕하고, 과거로 시간을 돌이켜서 과거의 내 이미지로 나를 가두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단어는 내 주제를 깨닫게 하기는커녕, 나를 먼 곳으로 도망가게 만들었다. <야, 깜뚱이, 기중기 팔 좀 올려> 혹은 <수평자 좀 가져와, 깜둥아>할 때마다 나는 대학의 대강당으로, 인간의 역사가 내 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그 속에서 내 자리는 어디일까 생각했던 시간으로 돌아갔다. 에멧 틸, 로자 파크스,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이야기는 숀이 <깜둥아, 다음 줄로 옮겨>하고 소리칠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해 여름 숀 오빠가 용접으로 고정시킨 모든 도리들보 위에는 그들의 얼굴이 겹쳐서 떠올랐다. 그 일이 끝날 무렵에야 나는 처음부터 불 보듯 바로 알아차렸어야 할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평등을 향한 대장정에는 누군가 반대했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손에서 자유를 쟁취해야만 했던 것이다. - P286

내 계좌에는 1천 달러가 들어 있었다. 입에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1천 달러. 여윳돈. 내가 즉시 필요하지 않은 돈. 그 사실에 적응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내가 즉시 필요하지 않은 돈. 그 사실에 적응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그러나 적응을 하고 나니 돈이 갖는 엄청나게 강력한 장점을 경험하게 됐다. 바로 돈 말고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교수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학비 보조금을 받기 전까지는 마치 흐릿한 렌즈를 통해 그들을 본 느낌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꼭 필요한 것 이외의 참고 서적도 읽기 시작했다. - P327

나는 역사 기록학에 관한 이야기를 우물쭈물 꺼냈다. 역사 자체가 아니라 역사학자들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은 홀로코스트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해 배우면서 내게 근거나 기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고 절감했던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누군가가 과거에 대해 아는 바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부터 제한받게 될 거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바로잡히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잘못 알고 있던 규모가 너무도 커서 그것을 바로잡으면 세상 전체가 변할 정도 였다. 이제 역사를 이해하는 길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위대한 문지기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무지와 편견을 해결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 P373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애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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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2-02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던 어떤 무협소설 중에, 어릴적부터 엄마에게 학대받고 자란 멍청한 아이가 기연을 만나서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고 무림을 종횡무진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작품은 만화로도 나왔는데요, 원작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만화에서는 결말부분만 살짝 바꿔서 굉장한 충격을 줬어요.

그러니까, 그 아이가 이제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어서 당당하게 엄마를 찾아간 거에요. 엄마 나 좀 보라고, 근데 미친 엄마가 어린 시절에 학대했던 것처럼 채찍을 들고 주인공을 때리기 시작하니까, 주인공은 별안간 어릴적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서 아이때처럼 잘못했다고 빌고 빌면서, 그 천하제일의 무술을 하나도 발휘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엉엉 울면서 계속 맞고 바닥을 뒹굴어요. 맞아서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주인공을 기다리던 정혼녀가 그후 오랜 세월 계속 그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걸로 봐서 주인공은 아마 엄마한테 맞아 죽었나보더라구요.

그 만화는 진짜 충격이었어요. 잊히지가 않네요. 천하제일의 무술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어떤 폭력의 경험.....

캐모마일 2020-02-03 00:29   좋아요 0 | URL
혹시 고 김용 작가님의 협객행 아니었을까요. 아마 엄마가 개잡종이라면서 학대를 했던 거 같네요.

다락방 2020-02-03 08:01   좋아요 0 | URL
아이고 세상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까.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폭력의 경험은 그것을 경험이라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강하게 남는 것 같아요. 그것을 경험이라 말해도 되는걸까 싶을만큼요. 경험이란 단어를 거기에 써도 되는걸까.

[배움의 발견]에서 타라 웨스트오버는 집에 가면 그 무서운 오빠가 있는데도 자꾸 집에 가요. 그럴 때마다 미치겠더라고요.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또 잘못된 걸 바로 잡고 싶고..그 모든 마음이 뭔지 알겠으면서도 계속 집에 가고 그리고 또 폭력에 노출되고, 아무도 타라의 폭력피해를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타라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타라는 나중에 공황발작을 일으키고 공부도 손에서 놓게 되는데, 지금은 이렇게 책을 써서 어느정도 밖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일이 없던 것처럼 살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읽고 있는게 너무 고통이었어요.

어떡해야 어릴 적에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우리가 구해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거기에서 보호할 수 잇을까요? 너무 무력합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0-02-03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꾸 가정으로 돌아가는, 돌아가려는 타라의 모습이 제일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만이 그녀가 아는 익숙하고도 유일한 세상이니까요.
어쩌면 가족이, 가정이 가장 질긴 악연이 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슬픈 일이죠.
괴로웠다는 다락방님 감상에 동감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ㅠㅠ

다락방 2020-02-03 08:02   좋아요 0 | URL
저는 으앗, 역시 공부 좋아 공부 짜릿해!! 이걸 느끼고 싶어서 이 책을 읽은건데, 읽다보니 그 느낌 보다는 답답하고 두렵고 안타깝고 괴로운 마음이 몇 배 더 컸어요. 다 읽고나서도 그랬어요. 너무 괴로웠어요, 단발머리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