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한정판 더블 커버 에디션)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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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개월 전에 jtbc 뉴스에서 알랭 드 보통의 인터뷰를 보았다. 앞으로 어떤 책을 쓸거냐는 질문이었나, 보통은 사랑의 시작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 써보고 싶다고 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이야기를 관심있어 하고 쓰거나 읽는데, 그 이후에 그들이 어떻게 그 사랑을 지속시켜 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며,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한거다. 나는 보통의 작품을 몇 권 읽었지만 그에게 매력을 느끼진 못했었는데, 이 대답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어? 그건 너무나 좋겠는데? 마침 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열정이 아니라, 낭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노력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막 알게됐던 것이다. 그렇게 보통이 쓰고자 했던 그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책이었다. 내가 기다리던 책이 나온 것이 기뻤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라고 말하고선 그런 이야기를 써낸 작가라는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무엇을 하겠다고 말하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경우에 하겠다고 말해놓고 하지 못하니까. 내 경우엔 다이어트...(응?)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어러 편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접한 후에야 라비는 몇몇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p.16)



몇 해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랑이 노력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죽기보다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건 내가 가진 사랑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졌다. 왜 사랑이, 우리의 열정과 설레임으로 시작된 사랑이, 노력으로 유지되어야 한단 말인가. 노력이라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인데, 내가 정말 못하는 것인데, 그걸로 유지된다고 하면 대체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아니, 사랑은, 설레임이고 열정이고 긴장이다. 그것이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애를 쓰고 노력해야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는거야, 의리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레임과 낭만과 흥분과 성적 긴장감으로 시작된 남자와 나 사이에 단지 그것들만이 전부인채로 존재한다면, 그 관계가 오래 유지될 리는 없었고, 나는 그걸 몰랐다. 나의 연애는 그래서 늘 짧았다. 나는 노력하지 않았고, 뭐든 시들해지면, 이건 사랑이 식은거지, 하고는 뒤돌아섰다. 돌아섬에 있어서 나는 거침이 없었다. 이별은 물론 아프지만, 그것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왜냐하면, 설레임도 긴장도 사라졌는데, 그걸 뭣하러 유지해? 나는 만남의 기쁨과 달콤함만을 취하고, 그것을 유지해야 하는 데 드는 많은 것들은 취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나름대로 충만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했다.



그러나 늘상 내가 먼저 손을 놓다가, 손을 놓고 싶지 않은 상대가 생겼다. 그러자 모든게 달라졌다. 나는 혹여라도 상대가 내게서 -그동안의 내가 그래왔듯이-거침없이 달아날까 두려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로부터 이별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헤어지는 걸 도무지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 평소에 내가 하지 않겠다고 했던 많은 것들을 나는 하고 있었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상대에게 쏟고 있었다. 좋아한다고 자주 속삭이고, 어딘가로 이동할 때마다 얘기했으며, 잠들기 전에는 시시콜콜 오늘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얘기했다. 상대는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됐다. 내 일상은 별로 대단할 게 없는데도, 상대와 통화할 때면 할 말이 넘쳐났다. 매일 얘기하는데도 매일 그렇게나 할 말이 많았다. 하루 중에 내가 상대를 생각하고, 상대에게 말을 걸고, 상대가 하는 말을 듣고 하는 시간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늘어났다. 그런데 그것이 내 시간을 빼앗는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충족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는 상대가 내게 자랑스러운 사람인만큼, 상대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고 싶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사람의 손을 놓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동안의 나와는 달라질 수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기쁘고 행복했다. 상대를 오랜 시간 좋아했는데, 그게 충족됨으로 채워졌으니까.




라비는 느린 걸음으로 토요일의 인파를 헤치며 쿼터마일의 집으로 향한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행운을 나눠주고 싶을 지경이다. 여하튼 그는 사랑에 관한 낭만적인 관념을 지탱하는 핵심 과제 세 가지를 족히 통과했다. 사람을 제대로 만났고,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녀가 받아들여주었다. (p.27)




나는 상대의 매력을 알고 있었다. 나는 상대와 대화가 끝난 후에는 그 대화를 곱씹으며 상대의 일상과, 성격과, 성향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곰곰 상대를 분석하고는, 당신은 이런 점이 있네, 라고 말해주는 게 좋았다. 가끔은 그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어떤 삶을 가져다줄까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루의 일상에서 우리가 눈을 뜨고 각자의 일을 하고 그러다 어느 한 때에 만나게 되고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함께 잠드는 것은, 내게 어떤 느낌을 줄까. 그것은 지금처럼 큰 만족인걸까, 아니면 우리는 점차로 서로에게 지치게 될까?



그녀가 대구 살과 시금치로 파이를 만들 때 열심히 집중하는 표정, 더플코트의 단추를 목까지 채울 때의 귀여움, 둘이 함께 아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할 때 드러나는 꾀바른 지성에 그는 그녀와 꼭 결혼해야겠다는 느낌이 든다. (p.56)



내가 대구 살과 시금치로 파이를 만들어본적이 없어서인지, 더플코트의 단추가 목까지 채워지지 않아서인지, 꾀바른 지성을 갖추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에게 꼭 결혼해야겠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고, 그래서 나는 그와 더이상의 긴 이야기를 써낼 수가 없었다. 애를 쓰고 노력을 하면 관계가 얼마만큼 유지되는지, 나는 더이상을 알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인지, 긴 시간을 한결같이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큰 존경심이 든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걸, 당신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오래 함께한 사람들이 매일매일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보다는 지리한 일상으로 한숨을 내쉬며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도 안다. 사소한 걸로 크게 싸우게 된다는 것도 안다. 라비는 그토록 매력적인 커스틴과 결혼했건만, 꼭 결혼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결혼했건만, 식탁에 놓을 컵에 대한 의견이 달라 서로 냉전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진중한 사람들이다. 커스틴은 현재 '지자체 사업의 조달 방법'이란 제목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고 다음 달에 던디에 가 그곳 공무원들 앞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라비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공간 구축'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럼에도 별것 아닌 일들이 두 사람 사이에 계속해서 놀랍도록 자주 끼어든다. 예를 들어, 잠잘 때 가장 적합한 온도는 몇 도인가? 커스틴은 다음 날 머리를 맑게 유지하고 활동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밤에 맑은 공기를 많이 마셔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침실 공기가 탁하고 답답한 것보다는 차라리 다소 추운 쪽을(그래서 필요하다면 점퍼를 껴입거나 보온 잠옷을 입는 쪽을)더 좋아한다. 창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하지만 라비가 어린 시절 베이루트에서 겪은 겨울은 혹독했고, 기습저인 돌풍은 언제나 큰 문제였다(전시에도 그의 가족은 여전히 외풍에 유난스러웠다). 그는 블라인드를 치고 커튼을 빈틈없이 여미고 유리창 안쪽에 습기가 차야 왠지 안전하고 포근하고 호사스럽다고 느낀다. (p.74)




사소한 일로 결혼을 후회하기도 하다가 다시 좋은 사이가 되기도 하다가 그들은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는 것은 무한한 사랑을 베풀기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 일을 같이하면서 그들에겐 또다른 기류가 형성된다. 함께 아이를 돌보고 기쁜 시간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들은 성욕에서 좀 멀어진다. 함께 누워도 섹스하기엔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외도가 찾아온다. 출장지에서의 하룻밤. 


라비는 외도를 아내에게 끝까지 고백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 사이에 더 낫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낭만을 선택하면 가정생활이 끝난다는 것도 안다. 가정생활을 선택하면 낭만을 인생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도. 그는 그동안 커스틴과 함께 지내온 시간과, 함께 만들어낸 가정을 선택한다. 어차피 새로운 낭만을 선택해도, 그것이 지루함이 될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최선인지 그는 이제 더 성숙한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와 깨닫게 되었듯이, 그런 희망은 허튼 감상에 불과했고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패배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잔인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희생되지 않는 깔끔한 해결 방안은 어디에도 없다. 모험과 안전은 양립할 수 없다는 걸 그는 알았다. 사랑이 넘치는 결혼 생활과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성욕을 죽이고, 외도는 결혼 생활을 죽인다. 두 패러다임이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자유사상가인 동시에 결혼한 낭만주의자가 될 순 없다. 그는 어느 쪽의 손실도 가볍게 보지 않는다. 로런에게 작별을 고한다면 결혼 생활은 지키겠지만 그 자신의 애정과 원기의 중요한 원천을 포기하게 된다. 바람둥이도 성실한 배우자도 일을 바로잡는 게 아니다. 이 문제엔 방도가 없다. 그는 주방에서 눈물을 흘리며 오랜만에 흐느껴 운다. 그가 잃어버린 것, 그가 위험에 빠뜨린 것, 그의 선택들이 얼마나 큰 고통으로 돌아왔는지를 생각하면서. (p.239)



모두에게 행운을 나누어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흥분됐던 둘의 관계가. 어쩌다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며 울게 만들게 된걸까. 왜 이런 과정과 이런 시간이 함께 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게 되는걸까. 이것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요한 일인 걸까.



그가 이 일이 더 발전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일면 그녀를 많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불행하게 할지 알 정도로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그 자신과 사랑의 여정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비추어 볼 때,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떤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친절은 신속히 그 길을 빠져나오는 것임을 그는 안다. (p.237)





위의 문장들을 읽다가, 나는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친절속에서 길을 잃었구나, 생각했다. 친절 속에서 손을 놓아버렸고, 친절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나는 더 불행해질지도 모를 어떤 기회를 갖지 못했구나. 불행해질 기회를 갖지 못해서, 나는 행복한걸까? 그래서 내 앞으로의 삶은, 그 불행속에서 빠져나와, 행복으로 향하게 된걸까?




십칠년을 살았던 그들은 그들 관계가 너무나 삐걱거린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동의해서 상담치료를 받는다. 이 역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였다. 그리고 이것 역시 그들 역사의 한 부분이 된다. 어떤 부분은 포기했다 느껴졌고, 어떤 부분은 지루하다 생각했고, 어떤 부분은 기대와 달랐고, 어떤 부분은 화를 냈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 순간, 상대가 내게 있음에, 내가 상대 옆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둘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들이 하나의 역사를 그렇게 오래 써왔다는 것은, 실로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함께 이뤄온 것에 황홀한 충성심을 느낀다. 다투게 되고 화나고 웃음 나고 어리석고 아름다운 그들의 결혼 생활은 틀림없이 그들만의 것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여기까지 온 것,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광기를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노력하고 그때마다 새로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결혼 생활을 지켜온 것에 자부심을 느긴다. 여기까지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많기도 많았을 텐데, 이별이 자연스럽고 거의 불가피한 일이었을텐데 말이다. 결혼 생활에 머무른 것은 기이하고도 신기한 업적이며 두 사람은 그들만의 전투로 단련된 상흔 입은 사랑에 충성심을 느낀다. (p.290)



나는 내내 누구와도 함께 오랜 시간을 사랑하며 살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역시 그렇다. 그런 일은 사실상 불가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함께 만들어가는 긴 역사가 몹시 근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역사가 아름다움과 황홀함만으로 채워진 게 아닐지라도, 함께 만들어온 것이니까.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 있었기에 기쁨이 크겨 느껴졌던 것처럼, 부정적이라 생각되는 질투와 분노와 흥분이 그 역사의 틈틈이에 스며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역사를 이루는 축이 되었다.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한 발 한 발 용기를 내어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 조국에 봉사하거나 적과 싸우라고 부름을 받을 리는 없지만,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 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이 늦은 오후 여름 햇살 아래 스코틀랜드의 산비탈에서 경험한 짧은 순간-그리고 그 이후에도 때때로-라비 칸은 커스틴이 곁에 있으면 인생이 무엇을 요구하든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겠다고 느낀다. (p.293)




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이 낭만으로 시작해서 용기로 유지하게 되는 이야기를 읽노라니, 함께 산다는 것이 굉장히 우아하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나는 언제나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 대해서 존경을 표했었는데, 라비와 커스틴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며 관계를 유지해나가고자 할 때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프로포즈 할 때 상대에게 건네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살면 지금처럼 흥분되고 좋기만 한 게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함께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 거야, 하고. 이 책과 함께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셋트로 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보통은 사랑의 시작과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반스는 그리하여 헤어지고 난 후, 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아, 이것은 얼마나 멋진 한쌍인가!



이 책의 제 2부 제목은 <그 후로 오래오래> 이다. 이 제목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그 후로 오래오래, 라는 문장이, 그 자체만으로 크게 울린다. 



그 후로 오래오래

당신과 내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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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9-27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띠지색깔이 곱네요!!별 다섯개라~
사랑의 파도가 잔잔해진 이후의 현실에 대해 보통옹이 어케 풀어나갈지 기대되요ㅎ저 또한 사랑에 대해 늘 냉소적이니까요ㅎㅎ
엠마 이후로 회복되셨으리라^^;

다락방 2016-09-28 08:04   좋아요 1 | URL
새롭게 알게 됐다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걸 차곡차곡 정리해준 글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만 그걸 읽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었어요.
엠마 보다는 보통이네요. 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9-27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은 한물갔다, 고 생각했는데 별 다섯이라니 읽어봐야 겠네요 ^^

다락방 2016-09-28 08:05   좋아요 1 | URL
저는 한 번도 보통의 책을 만족하며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읽은 보통의 책 중에서는 이 책이 가장 좋았습니다. 하핫.

나뭇잎처럼 2016-09-27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통 읽고 아 써야지,했는데 이리 주단을 펼쳐놓으시니 감히 노트북 펼칠 생각이 들질 않네요 ㅋㅋㅋ 안그래도 가까운 생일자에게 벌써 기프티북 하나 날렸지요. 제 안에서 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펼쳐볼 집 안의 바이블로 삼을까 하옵니다 ㅎㅎ

다락방 2016-09-28 08:06   좋아요 1 | URL
이미 누군가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것 같아요. 아니면 함께 살고 있는 중이거나요.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둘까 합니다. 훗.

[그장소] 2016-09-2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못볼것 같아요 ..보면 너무 가슴아플것 같아서..

다락방 2016-09-28 08:08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분명 가슴 아픈 장면들이 있더라고요. 함께 십칠년을 살고서도 상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 상담치료가 필요해지는 과정도 슬펐고,
성욕이 사라지는 것도 슬펐고,
가정을 지켜야 하므로 낭만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걸 보는 것도 슬펐어요.
분명 많은 기쁜 일들과 행복한 사건들이 틈틈이 끼어들지만, 이렇게 슬픈 순간들도 끼어드는 것 같아요.

[그장소] 2016-09-28 15:44   좋아요 0 | URL
음 , 다른 어떤 것보다 제가 그 누구와도 그런 십칠년산이 되지못한다는게 가장 서글픈데요!^^;;

치니 2016-09-28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언젠가부터 보통은 안 읽기로 스르르 맘 먹게 되었는데, 이 리뷰를 보니 또 읽고 싶어지네요? 믿고 묻는 다락방 님의 개인 별 추천, 저에겐 어떻겠습니까? ㅎ

다락방 2016-09-28 08:58   좋아요 1 | URL
치니님, 저는 이 책을 매우 좋게 읽었지만, 치니님은 굳이 읽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치니님께는 딱히 새로울 게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ㅎㅎㅎㅎㅎ 읽으시면 나쁘다곤 안하시겠지만 별다섯!! 이러진 않으실듯요 ㅋㅋㅋㅋㅋ

웽스북스 2016-09-28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 때 <우리도 사랑일까>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최근 보통을 안읽었음에도 이 책을 샀어요 ㅎㅎ
별다섯이라 좀 놀래긴 했지만 즐겁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ㅎㅎ

다락방 2016-09-28 14:28   좋아요 1 | URL
저는 [우리도 사랑일까]도 별로 였거든요. ㅎㅎ 보통 꺼는 이상하게 좋은 게 없었는데 이 책은 좋아요. 이 책도 막 별 다섯!! 이건 아니고 4.5쯤인데, 5로 확 줘버림요. ㅎㅎ 전 좋았는데, 웽님이 다섯개 줄 정도로 좋아할지는 모르겠어요. 전 특히 좋았던 부분들이 있어서 마음이 많이 움직였어요.

2017-01-07 0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7 0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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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동과 맥도날드로 시작하는 처음의 단편은 진부하고, 두번째 단편은 <필경사 바틀비>를 생각나게 한다.

표제와 표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단편까지 다 읽어도 특별한 건 없었다.



작년에, 회식하다가 한 남직원이 내 애인과 내가 함께 있는 걸 봤다고 해서, 아 볼 줄 몰랐네, 했었는데, 그 직원이 

"너무 낮에 다니시던데요" 했더랬다. 



그 생각이 너무 나는 제목이다. ㅎㅎ

But it's over now.




십육 년전, 연애는 아니더라도 연애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던 사람과 재회해서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앞으로 어쩌냐는 말이지, 아내에게는 큰 불만이 없는데 아들은 소중한데. 그러니까 안 되었다.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너무 한낮의 연애,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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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8-2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칭찬 일색이라 샀는데 저도 생각보다 별로였어요. 다락방님 의견 반가워요. 호호^^

다락방 2016-08-23 09:38   좋아요 0 | URL
끝까지 다 읽고서도 뭔가 확 오는 게 없더라고요...

시이소오 2016-08-2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ㅋ 별루셨군요.

다락방 2016-08-23 09:38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별로더라고요. 쇼코의 미소 안읽어보셨다면 추천합니다! ㅎㅎ

시이소오 2016-08-23 09:46   좋아요 0 | URL
쇼코의 미소 읽어야겠어요 ^^

다락방 2016-08-23 09:48   좋아요 0 | URL
네, 읽으신 후 리뷰 부탁드립니다!!

아애 2016-08-22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읽은 한국 소설집들이 너무나도 좋아서 읽으려 했는데 읽기는 하겠지만 다락방님과 크게 다르지 않을 예감이 드네요.

다락방 2016-08-23 09:39   좋아요 0 | URL
네,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제 주변엔 이 책 별로라고 한 분들 좀 계시거든요. [안녕, 주정뱅이]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사지도 않았지만...곧 사서 읽어보려고요.

잠자냥 2016-08-2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는데... 그토록 크게 상찬받을 작품인지는... 고개가 갸우뚱...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ㅎ

다락방 2016-08-23 09:39   좋아요 0 | URL
제목은 정말 근사하죠? 저도 제목에 완전 마음을 빼앗겼더랬어요. ㅎㅎ

루쉰P 2016-08-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애인하고 대놓고 다녀야죠 ㅋ 연예인도 아닌데 ㅋㅋㅋ

다락방 2016-08-23 09:40   좋아요 0 | URL
네, 그래봤자 이젠 대놓고 데리고다닐 남자가 없네요. 남자란 무릇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법.. 인생...

루쉰P 2016-08-23 09:4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런 ㅋㅋㅋ 아 갑자기 눈에서 땀이 나네 ㅠ
다락방님은 예쁘시니 곧 생기실(?)거라고 믿어요....
두 주먹 불끈쥐고 화이팅!!! 오늘도 몹시 더워요 점심 시원한 거 드세요 ^_^

다락방 2016-08-23 09:45   좋아요 0 | URL
노노 당분간은 연애 금지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스스로 연애 금지 정해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위먹지말고 잘 지내요, 루쉰님!

루쉰P 2016-08-23 09:47   좋아요 0 | URL
그게 사람 맘처럼 쉽게 되나요 ㅋㅋㅋㅋㅋㅋㅋ
전 항상 연애금지라고 정하고 있지만 여자분이 말만 걸어줘도 사랑에 빠져요 ㅋㅋㅋㅋ
다락방님도 더위 조심 ㅋ
 
요주의 인물
수잔 최 지음, 박현주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이제는 예순이 넘은 수학교수 '리'가 '폭탄 테러범'으로 의심 받는다. 자신의 옆방 교수가 우편 테러로 큰 부상을 입었을 때 옆에 있었고, 그 일이 있고나자 그런 테러를 가한 놈은 벌을 받아야 한다며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옆 방에 있었던 그를 위로하고 그런 인터뷰를 멋지게 해낸 그를 응원했었는데, 어느틈에 그는 '요주의 인물'이 된다. 폭탄 테러범과 그가 '아는 사이' 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 자신이 '폭탄 테러범'일 수도 있다는 것을 주변인들과 FBI 는 의심한다. 그가 요주의인물임이 매스컴에 드러나자, 그의 직장인 학교와 그가 사는 동네의 사람들은 그를 따돌린다. 애초에 사람들과 많이 대화 하지 않았고 딸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그였지만, 이 따돌림을 견디는 게 몹시 힘들다. 이 과정에서 그가 범인이 아님을, 그가 생각하는 범인이 정말 범인인지 드러내면서 그의 과거와 지금까지의 시간이 교차한다. 기억은 왜곡됐을 수 있고, 오래전에 느끼거나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그게 그게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것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리 교수는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툭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누군가가 '너는 툭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잖아' 하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다시 버럭 성질을 내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의 그 신경질이, 소리지르는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그렇지만 그가 테러범으로 의심받고 모두로부터 따돌림당하는 걸 보는 것도 싫었다. 딸을 사랑하지만, 그런 딸을 기억하려고 하면 딸리 어릴 때 뿐이었던 것을 깨닫는 것도 싫었다. 아내의 평생 소원을 입밖으로 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싫었다. 그가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이 아주 길었음에도 아이사인이라는 편견에 갇혀 수사를 받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 그가 의지할 데라곤 정말 하나도 없는걸까, 하는 초조한 마음이 되어, 그렇다면 이 사람이 세상으로부터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단 말인가, 내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다. 집 밖에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는 테러범이 아니란 말이야!'라고 인터뷰를 하자고 해야할까, 그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게 아닐까, 아니면 방송국에 전화해 내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해야할까, 그것 역시 사람들이 믿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했다. 그렇기에 그가 수사 요원들을 도와 테러범을 직접 맞닥뜨리고자 했을 때, 그 마음을 이해했다. 봐, 진짜 테러범은 이 사람이었고, 나는 이 사람을 잡는 데 도움을 줬잖아, 나는 그가 그렇게 항변하길 바랐지만, 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 이름이 이 사건에 연루되는 것 자체를 원치 않소." 자기 접시를 또한 말끔히 끝낸 리는 모리슨의 말을 끊었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무척 허기가 졌다.

"이 사건에서 내 이름을 다시 언급하지 마시오, 짐.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 왔다는 말조차 하지 마요."

모리슨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리가 지성 폭탄 테러범 체포를 도왔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요?"

리는 헨들리가 폭탄을 받았던 그날 병원 보도에서 자신이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연설을 기억했다.

"텔레비전이나 그런 것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교훈을 얻었소. 정말로 흥미가 없어요. 난 여전히 작다리 양귀비로 남고 싶소. 당신이 내 말뜻을 알진 모르겠으나." (p.571)



결국 이 힘없고 약하고 외로운 노인은, 자신이 직접,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문제 해결하는 데 뛰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아니, 세상의 전부가 여전히 그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거기엔 이십년간 연락이 끊겼지만 자신을 믿어주었던 친구가 와있었고, 오랜 시간 소원한 딸로부터 아빠를 만나러 가겠다는 엽서가 도착해 있었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빠에 대한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래서 언제 도착할건지 적어놓은 빼곡한 엽서에, 사랑한다는 말을 적어 놓았다.



이 신경질적인 교수의 이야기를 내내 초조하게 읽으면서, 이 사람이 이렇게 외롭게 지내는데다 심지어 조용하기까지 한 성격이라면, 이 사람의 억울함이 어디가서 풀어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사랑해요, 라는 말에 무장해제되는 기분이었다. 아, 사랑은 뭘까, 사랑이 뭐길래, 내내 초조하고 불안하고 답답해하던 나를 이렇게 만들까. 이 말을 직접 들은 리 는 어떨까. 자신이 평생 살아온 것보다 더 긴 것 같은 시간을 최근 며칠 사이에 보냈는데, 자신의 모든 체력이 마치 여기에 쓰여져야 했다는 듯 이제 지쳐버렸는데, 집에 돌아와 마주친 '사랑해요'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어쩌면 사랑은, 정말 진부하지만, 사람이 무너지기 직전에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밧줄 같은 것은 아닐까. 그것만 있으면 사실 낭떠러지로 떨어지려다가도 온 몸의 힘을 내어 자꾸 위로 위로 올라가게 할 수 있는, 그런 밧줄이 아닐까. 



긴 독서였다. 여행 후에 좀처럼 책이 읽히지 않았고, 게다가 책이 너무 무거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고, 들고 다니면서 읽기가 힘에 겨웠다. 이제 이러고 싶지 않다,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에, 어느 날엔 들고 다니지도 않았고 읽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주아주 긴 독서가 되었다. 띄엄띄엄 리 교수를 만났는데, 그렇게 띄엄띄엄 만났음에도, 사랑해요, 앞에서 무장해제 되어버리다니, 사랑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아니라, 어쩌면 단 하나의, 소수의 사랑이기만 해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이 걸려서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되었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나게 되었다. 


"전 제가 뭘 잃어버렸는지도 몰랐어요." 마크는 흐느꼈다. (p.596)


뭘 잃어버렸는지 몰랐던 마크, 리가 그토록 부정하고 잊고 싶었던 존재가, 자신이 잃어버린 걸 찾았다. 너무 늦었을 수도 있지만, 이만큼의 시간이 있었기에 리와 함께 공항에 나갈 수도 있게 되었을 것이다. 각자의 외로움이 길었지만, 이제부터는 좀 괜찮아질 것 같다. '내'가 무얼 잘못했고, 무얼 보지 못했었는지를 깨달은 뒤의 일이었다. 




"이 나라에서 살아서 가장 멋진 점 중 하나는," 그는 조심스레 말을 시작했다. "자네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겠지. 내가 온 나라에서는 그런 말을 했다간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
아이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지만 리는 모욕당한 기분은 아니었다.
"아, 농담이 아니네." 그는 온화하게 반박하고 다시 모두들 미적분학 수업으로 돌아갔다. (p.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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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6-08-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이.. 마음에 와닿다니... 이 죽일 무더위보다 더 지치게 되네요...

다락방 2016-08-17 14:43   좋아요 0 | URL
네, 리 교수가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이란 설정이거든요. `내가 온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clavis 2016-08-2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 몸의 힘을 내어 자꾸 위로 위로..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 수있는게 사람인 것 같아요^^♥

다락방 2016-08-22 13:22   좋아요 0 | URL
네,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죠. 그렇지만 한 명은 부족해요. 조금 더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클래비스님.

2016-08-22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하고 있어, 사만다 - 파리에서 온 러브레터
사만다 베랑 지음, 엄연수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핸드폰이 생기고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면서 사랑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바꿔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언제고 내가 원하는 당사자에게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고, 아주 먼 데 있는 사람과도 언제든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확실히 오래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랑을 지금은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에미와 레오는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메일로 사랑을 나눴는데, 이 책, 《사랑하고 있어, 사만다》에서는, 20년전에 24시간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을 그리워하다 다시 만나 사랑하는 게 가능해졌다. 게다가 한 명은 미국에 있고 한 명은 프랑스에 있는데도 말이다. 구글로 검색해서 상대의 이메일 주소를 알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알 수 있게 되어 이메일을 보냈더니 다음날 딩동- 답장이 오는 세상이라니. 사랑이야 워낙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이 얼마나 독특한가 말이다.




사만다는 서른 아홉살이며 이혼을 앞두고 있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그녀는 많이도 울었다. 게다가 직장도 읽고 카드빚에 허덕이고 있다. 그녀의 삶은 우울 그 자체이다. 그녀의 우울함을 달래주던 친구 '트레이시'는 그녀에게 20년전의 파리 여행에서 만났던 남자를 언급한다. 사만다는 트레이시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을 뒤져서 이십년전에 받았던 편지를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열정과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를 다시 읽고 사만다는 그 편지를 보낸 남자에게 연락해보기로 한다.

이십년전, 사만다가 열아홉 살일 때, 사만다는 트레이시와 파리에 갔다. 그때 까페에서 장 뤽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 사만다와 장 뤽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 그렇게 24시간을 보내고, 가지말라는 장 뤽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사만다는 그 뒤의 계획대로 여행을 계속한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장뤽으로부터 편지가 와있다. 너와의 만남이 정말 특별했다, 너가 너무 좋다, 는 그 절절한 편지에 사만다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대학생활을 비롯한 삶을 살아야 했고, 게다가 그는 프랑스에 있었으며, 어릴 적 아버지에게 버림 받았던 기억으로 딱히 남자를 믿지도 않았으므로. 그녀는 학교를 다니고, 전공을 바꾸고,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고, 백수가 되었고, 이혼을 앞두고 있게 되었다. 그러다 이십년전, 그 불꽃 같았던 시간을 떠올리고 편지를 다시 읽고, 검색창에 그의 이름과 직업을 넣고 그를 찾아낸다. 그리고 블로그에 그 때 당시의 일과 감정을 적어서는 장 뤽에게 링크를 보낸다. 오, 인터넷이란 놀라워서, 다음날 장 뤽은 사만다에게 답장을 보낸다. 이십년만에 장 뤽과 사만다는 '다시' 연락하게 되었다.

장 뤽도 자신의 삶을 살았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둘 낳았으며 사별을 했고, 다시 결혼을 했고 지금은 이혼 과정중에 있다.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이제는 여러명의 과학자를 이끄는 팀장이 되었다. 이 둘의 '이십년만의' 연락은 마치 그들이 떨어져지낸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자주 이루어졌으며 어느틈에 하루에 두 번이상 이메일을 주고받고 두시간씩 통화를 하는 일상이 만들어졌다.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이십년만에 재회한다. 사만다는 이십시간을 날아 장 뤽에게로 간다. 그렇게 그들은 이십년만에 만나서 '다시' 사랑하게 되는데, 크- 좋구먼...



이 남자가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래서 죽도록 겁이 났다.
물론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도 장 뤽에게 아주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저 말만 나눈 남자였다면, 지금 그는 정말이지 진국에 똑똑하고 섹시하며 재미있는 데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주 훨씬 나았다. (p.179)


이십년전에 단 하루만 만났던 남자. 그리고 이십년이 지나서는 이메일과 전화로 대화만 나눴던 남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지만, 실제로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내고나니 어쩌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 좋은 남자. 크- 소주 생각 나는구먼. 정말 좋지 않은가! 살다보면 진짜 이런 날이 오는데, 이런 날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또 모두에게 꼭 오는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주 많이, 내가 사랑했던 남자를 떠올렸다. 내가 딱 이랬었으니까. 아주 오래 좋아했던 남자랑 연인이 되었는데, 되기 전에도 좋아했지만 되고 나니까 완전 더 좋은 거다. 게다가 그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그의 성격들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는데, 그 모든 게 너무 좋았다. 이 책에서 사만다도 장 뤽이 불편한 것들을 해결하고 넘어가게 하려는 그 성격을 매우 높이 사며, 그래서 자기도 이제는 불편하다고 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 역시도 내가 사랑한 남자로부터 그런 면을 보고 깜짝 놀라 되게 좋아했던 거였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맞겠지만, 틀릴 리가 없지), 내가 그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당신에겐 이런 면이 있네요' 하고 짚어준 장점 중에 첫번째가 그것이었을 거다. 피하지 않는다는 것, 정면으로 부딪혀서 풀고 가려 한다는 것. 나는 그를 만나면서 '당신을 이만큼 알기 전에도 당신을 좋아했지만, 당신을 알고 나니 더 좋아진다'는 말을 수없이 많이 했었다. 정말이지 좋아 죽을 뻔했다.


장 뤽은 자신이 노력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이십년전, 너무나 강렬한 열정을 품게 했던 사만다에게 썼던 편지에서, '나는 파리에 있고 너는 미국에 있지만', 어떻게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누구에게 마음을 연 건 처음이야. 너와 함께했을 때 내 마음의 문은 천 개의 조각으로 무너져 내렸어.
샘, 우리가 진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어려울 거라는 건 알아.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을 믿어 보려고. 너는 참 다정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줘. (1989년 7월 28일에 보낸 편지, p.16)


그러 당시의 사만다는 장 뤽에게 답장을 한 통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어차피 사랑이란 뻔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20년 전 그때, 나는 장 뤽이 아름다운 파리지앵과 바람이 나서 내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기 전에 다시 미국의 일상으로 돌아왔으며, 그 후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나는 장 뤽을 좋아했기 때문에 답장을 쓰지 않았다. 이것으로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상처 입을 일도 없다. 가슴 아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그 어떤 관계도 깊게 맺으려 하지 않았다. 

벌써 20년이나 흘렀다. (p.26)




이십년이 지나 여자는 곧 마흔을 앞두고 있고 남자는 마흔 일곱인 지금, 그 둘은 재회하고 다시 사랑한다. 이 사람을 절대 놓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함께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사만다가 열흘간 파리에 가서 장 뤽과 함께하고, 몇 달 뒤 장 뤽이 미국으로 와서 사만다와 며칠을 함께 하고, 또 몇 달 뒤 사만다가 파리로 가 한 달을 함께 한다. 그 때 장 뤽은 사만다에게 청혼하고, 사만다는 예스를 말하고, 장 뤽의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외국인과 결혼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프랑스의 숱한 서류를 준비하고, 장 뤽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소개받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한편 자신의 재정상태에 대해 파산을 신청하고, 전남편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고, 건강검진을 받고,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니고, 그리고 그들은




결혼한다.




장 뤽이 내 목덜미에 키스하며 말했다.

"내 인생을 너와 함께하게 돼서 정말 행복해. 우린 함께 잘 헤쳐 나갈 거야." (p.269)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라 해도 외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을 것이다. 걱정과 두려움을 가졌지만, 신뢰하고 사랑하는 남자가 함께 잘 해나갈 수 있다고 하니,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서서히 프랑스에서의 결혼 생활에 적응해간다.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너는 10대였고, 나는 어린 남자였어. 그러나 그때 우리는 이미 사랑의 한 페이지를 완성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만의 역사책은 펼치자마자 닫혀버렸어.

그렇게 20년이 흐른 어느 날, 그 책은 다시 펼쳐졌고, 우리는 사랑의 언어로 빈 페이지들을 채우고, 또 채우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매 분, 매 시간, 매일 내가 쓰고, 네가 쓰고, 우리가 함께 쓰고 있지. (p.293)



이 책에는 사랑의 언어가 가득하다. 장 뤽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전혀 인색한 남자가 아니다.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이 내 옆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당신과 내가 함께 하기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를 계속 계속 말해준다. 사랑과 관계가 두려웠지만 사만다는, 사랑을 받는다는 걸 알면서 장 뤽과 함께 미래를 설계해간다.


운명적 상대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말은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사만다의 이 사랑이야기는 사만다에게 실제 있었던 이야기이며, 그래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이다. 에필로그는 두번째 결혼기념일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로 채워졌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는 그 운명적인 사람이 어느날 기적처럼 딱- 하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일단 맛보기로 보여주기도 한다는 생각. 왜 신이 그런 장난을 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은 사만다와 장 뤽에게 그랬다. 한창 젊은 시절에 그들을 딱 한 번 만나게 한다. 신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 잘들 보라고. 지금 이 사람이 이십년 후에 너희들의 반려자가 된다고. 후훗.



사만다와 장 뤽은 그런 운명의 흐름을 모른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지속해간다. 어떤 순간에는 기뻤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했으며 어떤 순간에는 비참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이십년이 지난 후의 어느날, 지금의 내 모습이 상대에게 여전히 괜찮은걸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 마흔살과 마흔일곱살이, 이십년전에 하지 못했던 사랑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엄청엄청 뜨겁게 사랑하고. 장 뤽과 보낸 열흘간 사만다는, 전남편과 일 년 동안 했던 섹스보다 더 많은 섹스를 한다. 어쩌면 신은 장 뤽이 사만다에게 정말 용기와 사랑을 보내줄 사람이라, 사만다가 가장 힘이 든 시기에 자, 이때야, 하고 밀어보내준 걸지도 모르겠다. 



사만다가 파산신고를 하고 직업도 없는 상태에서 다이아반지를 사주고 이미 집을 가지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는 장 뤽을 만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해도 사만다가 장 뤽을 '백마 탄 왕자'라고 표현한 건 몹시 마음에 들질 않는다. 사만다는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고, 어떻게든 미래를 위해 계획을 짜는 사람인데, 굳이 장 뤽을 백마 탄 왕자로 표현해야 했을까. 소녀만 왕자가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여자들이 왕자가 필요한 게 아닌데. 생활의 터전을 미국에서 파리로 옮긴 것만으로도 사만다는 큰 결심을 한 셈인데, 물론 자신을 많이 사랑해주는 고마운 사람이지만, 백마 탄 왕자여야 했을까... 좀 찜찜하지만, 또 생각해보니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자신의 남자를 '나의 왕자님'이라 부른다한들 또 뭐가 문제인가 싶다. 당신은 나의 왕자님, 나는 당신의 공주님... 뭐 이러면 되는거니까. 





사만다와 장 뤽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지 어떨지는 알 수가 없다. 미래는 예측불허니까. 장 뤽이 처음 결혼했을 때 그리고 두 번째 결혼했을 때, 또 사만다가 크리스와 결혼했을 때, 그들 모두 '우리는 불행해질거야'라고 생각하며 결혼하게 된 게 아니니까. 모두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를 생각하며 결혼했겠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나니 여러가지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 둘인 것 보다는 혼자인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 또 어쩔 수 없이 다시 혼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렇게 뜨거운 사랑으로, 이십년의 시간을 지나, 스무 시간의 거리를 지나 다시 만난 이 두사람도, 몇 년 후에는 '우리가 그렇게나 뜨거웠었지' 생각하며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 할지도 모른다. 이십년 과 먼 거리, 그 특별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고 단조로운 여느 이별과 같은 이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시작의 특별함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사만다와 장 뤽의 사랑이 특별한 것이 나는 무척 좋다. 그들 사이에 이십년이란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애틋하다. 그 후에 그들이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이르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그 먼 데에 가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생활해야 하는 것만도 어려운데, 사실 장 뤽의 친구와 가족들이 너무 많아서 어쩐지 벌써부터 좀 벅차기도 하지만, 그건 사만다가 느끼는 게 아니라 사만다의 이야기를 읽는 내가 느끼는 거다. 사실 나는 '아아, 가족이 너무 많다, 사귀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결혼하지 말고 그냥 왔다리갔다리 롱디 연애나 하지..' 하는 생각을 좀 했다. 장 뤽에게 프로포즈 받는 건 너무 좋았고, 장 뤽이 사만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함께 살기를 원하는 건 좋았지만, 아아, 결혼은 너 나 사랑해 나너 사랑해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으므로 그래서 서로 너무도 다른 세계에 차츰 적응해나가는 일이 아닌가. 아, 어쩐지 생활이 빡셀 것 같아.... 




사만다와 장 뤽의 특별한 사랑의 시작이 좋아서, 특별한 사랑의 진행과 만남이 좋아서,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그들의 결혼이 너무 좋아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내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으윽- 하면서 자꾸만 과거로 빨려들어가는 일이 수차례 일어났던 터라, 이 책은 진짜 내가 좋아하며 내 인생의 책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내용을 갖고 있는데, 뭐랄까... 음, 흡족하질 않아. 만족스럽지가 않다. 좀 더 차분하고 좀 더 깊게 .. 아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걸 이렇게 한순간 보고나와 잊혀지는 가벼운 영화처럼 쓰지말고.. 아, 표현이 안되네. 그러니까 에미와 레오의 이야기가 훨씬 더 좋은데, 그거랑 이 책의 차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너무나 안타깝다. 완전 내 이야기랑 비슷한 이야기인데 뭐랄까, 내게 쑤욱- 스며들지를 못하는 거다. 이것은 문장이 해야하는 역할인 것 같은데... 아쉽다.



그래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언제나 좋다. 그리워하고 원하고 기다리다 결국은 두 눈을 마주보게 되는 일은, 언제나 짜릿한 일이다. 사랑하고 있어, 사만다, 가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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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6-07-22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하는 말 보니 완전 허구소설은 아닌듯. 프랑스 남자애들 입에 발린말 너무 잘함 ㅋㅋㅋㅋ 그게 진실이든 뭐든 암튼 대단한 화술을 가졌어요 여자꼬실땐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나도 태어나서 스윗한 말은 프렌치한테 다 들은듯. ㅠㅠ

다락방 2016-07-22 15:54   좋아요 0 | URL
이거 실화에요. 등장 인물 이름만 바꿨대요. ㅋㅋㅋㅋㅋㅋ 실화야 실화 ㅋㅋㅋㅋㅋ 저런 스윗스윗한 말을 계속 내뱉는 사람이 진짜로 있다!!!! 아 진짜 스윗한 말 들어본 지 너무 오만년되어서 들으면 어떤 기분일지 다 잊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졸 슬프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프렌치 나이스 가이 인가요... 크- 어쩐지 눈물 흘리며 건배 해야할 것 같아요. ㅜㅡ

비연 2016-07-2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화라니!

다락방 2016-07-22 17:40   좋아요 0 | URL
소설이 아닙니다!!!!! ㅎㅎ

transient-guest 2016-07-27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efore Sunrise에서 Before Sunset으로 이어진 듯한 느낌이...ㅎㅎ 어릴 때와는 달리 이젠 Before Sunset에 더 공감하게 되네요.ㅎㅎ `사랑하고 있어, 사만다`도 읽고 싶은데 왠지 부럽거나 너무 달달할까봐....지금은 좀 기다려야겠습니다.ㅎ

다락방 2016-07-27 08:06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비포선셋을 안봤는데, 이번 휴가때 비포 선셋을 봐야겠네요.
프랑스 남자인 남주가 자신의 사랑과 열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전혀 망설임이 없더라고요. 재거나 밀당을 한다거나 이런 게 전혀 없어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전부인 사람이라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듯이, 이렇게 계속 사랑한다고 말해주니 안정감을 갖게 되고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달콤한 남자라니, 먼 얘기네요. ㅋㅋㅋㅋㅋ
 
I Want My Hat Back (Paperback) - 느리게 100권 읽기_2021년 3학기 대상도서 느리게100권읽기_2021년 3학기
존 클라센 지음 / Walker / 201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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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그나마 짧은 영어문장들이 나와서 읽기에 흡족하다. 그래도 약간 더 수준 있는 걸로 골라도 되겠다 싶다. 이정도 까지는 백프로 이해가 가능한데, 약간만, 약간만 수준을 높여서 읽고 싶다. 그렇지만... 대체 그런 작품은 뭐가 있을지... 샬롯의 거미줄 원서 읽는데 오만년 걸렸던 거 생각하면, 이 책과 샬롯의 거미줄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작품이어야 할텐데..


게다가 이 그림책은 재미있다. 마지막에 번쩍, 하고 자신의 모자가 어디있는지, 어디서 모자를 봤는지 생각해내는 장면도 좋았고. 다만... 반전이랄까, 마지막에 이 곰(곰..맞지?)이, 


I haven't seen any rabbits anywhere.

I would not eat a rabbit.

Don't ask me any more questions.



라고 했을 때 좀 충격...이었다. 


Don't ask me any more questions.


라고 답했던 토끼가 모자를 가지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저 곰이 하는 말은 그러니까.... 히융


그렇지만 어제도 보쌈을 먹고, 그제는 갈비를 먹은 내가 할 말이 아니지.


어쨌든 그림도 좋고 재미도 있고 읽을 수 있는 문장들로 가득차서 좋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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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7-14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실 수도 있겠지만... <Sarah, plain and tall>을 살포시 추천해봅니다. 분량도 적당하고, 비교적 쉬운 내용인데도 제목처럼 수수한 사라씨의 매력이 대단합니다.ㅎㅎ

다락방 2016-07-14 10:39   좋아요 0 | URL
오옷 처음 들어봤어요. 얼른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가격도 저렴해서 아주 좋네요. 다음번 지름에(아마도 내일이 될듯 ㅠㅠ) 넣어야겠어요. 히힛 추천 감사합니다. 제가 사라.. 다 읽고나면 리뷰 쓸테니까, 제가 그걸 잘 이해했다고 생각하시면 비슷한 수준으로 또 추천해주세요. 일단은..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아하하

단발머리 2016-07-14 10:45   좋아요 0 | URL
ㅎㅎ 매우 기쁩니다^^

psyche 2016-07-15 0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알러지 있던 저는 어쩌다 미국에 살게되서 영어책을 읽게 되었답니다. 흑.어린이책,청소년책 겨우 읽는 수준이지만요. 단발머리님께서 책 추천하신거보니 저도 한권 추천드리고싶어서요. 영어가 쉬운면서 어른이 읽을만한책으로 Love That Dog by Sharon Creech 추천드려요. 좋은 어린이책들이 무지 많으니 읽어보시고 맘에 드신다면 또 추천드릴게요.

다락방 2016-07-15 10:18   좋아요 1 | URL
오, 추천 감사드려요. 읽고 어땠는지 말씀드릴게요. 그렇지만 시간이 좀 많이 걸릴거에요. ㅎㅎ 오늘도 또 책을 한 박스를 사느라고... 언제 읽을지 원...
어쩌다 미국에서 살게 되신거에요? 궁금해요. 저도 늘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에는 `사는 것` 보다는 `다녀가는 것`이 제게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단발머리 2016-07-16 18:07   좋아요 0 | URL
psyche님~~ 안녕하세요~
미국에 살고 싶은 단발머리입니다^^ Love that dog, 모르는 책이라 저도 읽어보려고요. 앞으로도 좋은 책 추천 부탁드려요~
이 방에서 다락방님께 추천하시면 제가 자동으로~~~ ㅎㅎ

psyche 2016-07-16 23:2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반갑습니다. 다락방님 댁에서 이렇게 인사를...ㅎㅎ 제가 좋아하는 책이라 다들 맘에 드시면 좋겠네요.책 읽어보시고 맘에 드신다면 제가 또 추천드릴게요.

단발머리 2016-07-16 23:27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해요^^
제가 다락방님 댁에서 (댁에서 ㅋㅎㅎㅎ) 좋은 분 많이 만났어요.
좋은 책 추천 부탁드려요~~

다락방 2016-07-17 01:03   좋아요 0 | URL
아이고 훈훈해라 ㅋㅋㅋ 사랑합니다!! (술취한 락방 ㅋㅋ)

psyche 2016-07-17 01:08   좋아요 0 | URL
ㅋㅋ 다락방님 덕분에 좋은분 만나서 감사합니다. 저도 술 무척 좋아하는데 아쉬워요. 한국에 있었으면 같이 만나서 한잔했을것을. (다락방님은 밤중이지만 저는 아침부터 술타령이라니. ㅋ)

psyche 2016-07-15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남편직장때문에 그렇게 된거죠. 외국에 산다는건 어디에도 발 붙이지 않고 붕 떠있는 삶 같아요. 여기는 캘리포니아라 동양인도 많고 영어 안써도 살수있는곳이긴하지만 그래도 내땅이 아니고, 이제는 한국에 가도 내나라같지 않은 그런거요.

다락방 2016-07-18 07:58   좋아요 0 | URL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몇 개월이 됐든 몇 년이 됐든 살아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외국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싶어요. 영어 공부하려고 책도 샀는데...그냥 사놨네요. ㅠㅠ
저는 가서 아주 살기 보다는 지금처럼 갔다 돌아오고 갔다 돌아오고..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아요. 하핫.

psyche 2016-07-18 12:48   좋아요 0 | URL
몇개월,몇년 이렇게 살아보는거 좋은거 같아요. 그냥 휙 여행하고 지나가는기 아니라 거기서 생활을 해본다는거 색다른 경험이니까요. 여기에서 내가 꼭 적응하고 살아남아야한다라는 부담감없이 이방인으로 살아보는거 생각만해도 설레네요.
외국어는 못해도 다 살수았더라구요. 저를 보면 압니다. ㅎㅎ 수다떠는거 좋아하는 제가 외국인들한테는 본의아니게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 되버렸지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