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동시에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더욱 추상적이면서도 야심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실업, 저축과 투자, 금리와 해외 무역처럼 명백히 경제적인 주제들을 다루었다. 그들은 국가가 부유해지는 방법과 가격체계를 통해 삼겹살을 비롯한 다른 시장 재화의 공급과 수요를 예측하는 방법 등을 설명했다. (p.77)
역시나 샌델의 책은 재미있다. 이제 겨우 150쪽 남짓 읽었을 뿐인데 아주 재미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도 읽으면서 엄청나게 재미있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샌델은 어느쪽이 더 옳다고 확정지어 얘기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절대선이다, 하는것을 샌델의 책을 읽고 알 수 있는건 아니지만, 어쩌면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샌델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 절대적인 확신,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생각들중의 일부일 뿐이다. 이것말고 다른 생각이 혹은 다른 방법이 있다니, 정말 짜릿할 지경이다.
그런데 저 부분을 읽다가 나는 벙쪘다. 삼겹살....이라고? 나는 내가 혹시 보이는대로 읽은게 아니라 보고 싶은대로 읽은건가 싶어 다시 한 번 읽었다. 그래도 변함없이 책에는 삼 겹 살 이라고 써있었다. 삼겹살.......이라고 쓴거야, 지금? 대체 이 부분에서 왜 삼겹살이 나오는거지? 대체 왜? 샌델은 미국 교수잖아. 그러면 재화의 상징을 얘기하기 위해서 삼겹살 대신 스테이크나 베이컨을 말했어야 하는거 아니야? 왜..삼겹살이지? 미국에서 삼겹살 먹는거 아니잖아?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삼겹살이 왜 등장한건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1.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국을 좋아해서 자신의 단편 소설에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쓴 것처럼 샌델도 한국을 좋아해서 특별히 모든 재화의 대표로 삼겹살을 사용했다.
2. 샌델은 삼겹살 대신 다른 용어를 썼으나 번역자가 이 부분은 쉬운 이해를 위해 삼겹살로 대체하자, 라고 단어를 바꿨다.
3. 편집자가 편집도중 과로에 지친 나머지 삼겹살 먹고싶다....고 생각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만 삼겹살을 툭, 껴넣어 버렸다.
4. 샌델은 각 국가에 맞게 이 재화에 다른 단어를 대입해도 좋다며 아예 원고에 기재를 했다. 예를들면 일본에서라면 초밥을 쓰고 이탈리아라면 피자를 쓰고 포르투갈이라면 프란세시냐를 쓰세요, 라고.
5. 학술적으로 삼겹살은 경제학의 대표재화다. 이건 내가 미처 모르는 부분 어딘가에서 삼겹살이 상징적으로 재화를 뜻하는 어떠한 논문이나 이론이 생성되어 있는 것. 이를테면 '삼겹살의 경제학' 이 있는거다.
일단 이 다섯가지를 생각해보았는데, 5번에 대해서라면 검색하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삼겹살의 경제학 등으로 구글에 검색해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보이질 않았다. 5번히 심히 의심스러운데, 나는 대학시절 전공선택으로 경제학, 경영학, 회계학등을 들었으나 점수가 형편없었던 바, 놓치고만 어떤 경제의 대표적인 용어가 아닐까 싶은거다. 이럴경우 심히 쪽팔려진다. 무려 '전공'선택으로 들었는데....하아-
뒷장을 넘기니 삼겹살이 또 나온다!!
이러한 개념이 옳다면 무엇이든 가격을 매길 수 있다. 가격은 자동차나 토스터, 또는 삼겹살처럼 명확할 수 있다. 또는 섹스, 결혼, 자녀, 교육, 범죄행위, 인종차별, 정치참여, 환경보호 심지어 인간생명처럼 암시적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모든 재화의 조건을 결정한다. (p.78)
왜.............왜.......................왜 삼겸살일까, 대체 왜. 삼겹살은 자동차나 토스터와는 좀 다른거잖아....자동차와 토스터는 전 세계적으로 모두가 아는 재화이지만 삼겹살은..대한민국.....이잖아.............왜, 삼겹살인거야! ㅠㅠ
밤 열 시를 조금 넘긴 시간, 길동역에서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자 나는 내렸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벤치에 한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잠들어있었다. 아..위험한데.. 저러다 막차가 올때까지 깨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계단을 향해 걸으면서 생각했다. 저러다 퍽치기 당하면? 저러다 남자들한테 못된짓 당하면? 나는 다시 돌아가서 그녀를 깨우고 싶었다. 그런데 오지랖이 아닐까, 그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냥 가자. 그렇지만 저기에서 자는건 정말 위험하잖아, 여자가. 그래서 계단을 오르기 직전, 그래, 표를 끊을때 만날 수 있는 지하철역 직원에게 부탁하자, 라고 생각했다. 벤치에 여자가 잠들어있어요, 깨워서 집에 보내주세요, 라고.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바로 불안해졌다. 그 직원도..남자잖아? 깨워준다고 하고 안깨워줄수도 있잖아? 에잇, 오지랖.. 나는 뒤를 돌아 그 여자를 향해 걸었다. 사람들이 모두 계단으로 올라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대고 저기요, 하고 불렀다. 만약 그녀가 그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녀의 손에 꼭 쥐어져 있는 핸드폰을 빼내서 단축번호 1번으로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머뭇머뭇 깨더니 정신을 차리기까지 좀 시간이 걸린다. 나는 그녀가 나를 쳐다볼때까지 다음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느릿느릿, 그녀는 고개를 들고 서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야 내 말을 들을 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되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주무시는건 좀 위험한것 같아서요
라고. 그러자 그녀는 정말 고맙다는 눈빛으로 아, 감사합니다, 하고 내게 인사했다. 나는 네, 라고 대답하고는 다시 돌아 계단으로 향했다. 몇번이고 그녀가 다시 잠들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눈이 마주치면 무안할것 같아 꾹 참고 걷다가 계단을 오르기 직전 단 한번 돌아보았다. 그녀는 다시 잠들지 않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 나는 계단을 올랐고, 카드를 대고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오! 지하철역 바깥에는 이십대초반쯤 되어보이는 청년 둘이 잠들어 있었다. 뭐야, 다들 왜이래!
경찰에 신고할까 하다가 그냥 가던 길을 갔다. 날이 더우니 입이 돌아가진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날이 더워서 다들 그렇게 널브러진거야? 고작 열시를 조금 넘긴 그 시간에? 이봐, 나도 이렇게 꿋꿋하고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너무들하는거 아니야? 정신들 차리라고, 길바닥에 널브러지지 말란 말야!!
도니도니돈까스는 부드러웠지만 특별히 다른 돈까스보다 더 맛있지는 않았다.
나는 길바닥에 널브러지지 않았다. 슬픔속에 침잠해있어도, 나는 그러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내방 침대에 널브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