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앞으로 다니게 될 학교의 건강검진일 이었다.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인솔교사를 따라서 병원으로 가고 거기서 줄 서서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를 했다. 그 과정을 마쳐야 학생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우선, 내가 국제적 왕따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오지라퍼라는 사실을 오늘 깨달았다. 왕따가 될 수 없는 몸이랄까.
그러니까 오늘 가는 인원은 여자 네명에 남자 세명이었다. 이거 아마 교사당 몇 명으로 지정된 것 같았는데, 하여간 그래서 교사인지 직원인지 하여간 그분을 따라서 병원에 가서 시키는대로 진행하려는데, 그 병원은 건강검진 전문 병원인건지 진짜 사람이 무지하게 많은거다. 처음엔 다들 어색해하다가 일단 병원에서 줄 서서 기다리가다 가는 내 뒤에 서있는 여자에게 웨얼 아 유 프롬 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몽골리언 이라고 했다. 오! 내가 이 나이에 어학연수를 왔더니 몽골리언 여성과 대화를 한다! 그녀는 한국말도 잘했는데 드라마를 보고 배웠다고 했다. 이곳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대학을 바로 진학할것 같은데, 사실 자기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가 반대했단다. 영어가 더 많이 쓰이니 영어공부를 하라고.. 하여간 그러면서 엑스레이를 찍고 내가 제일 먼저 찍어서 그 다음 피 뽑는데 줄을 서있는데 아무래도 다른 학생들이 버벅댈 것 같은거다. 나야 간호사가 여기로 데려다줬지만 아무래도 저들이 어디일지 모를것 같아. 그러다 몽골리언 친구인 엥크리가 나와서 일루와 라고 말한 뒤에, 여기 있어 나 다른 애들 데려올게, 하고 탈의실로 갔다. 그래서 한 명 데려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나서는 다른 한 명이 안보여, 했더니 엥크리가 아마도 옷갈아입는 중일것 같아 해서 그렇지? 하고는 잠시 후에 다시 다녀올게, 하고 그녀도 결국 줄에 섰다. 세번째 줄 선 여성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그래서 엥크리 번호 따가지고 왓츠앱 친구했다.
그렇게 병원 일정이 끝난 뒤에 엥크리랑은 같은 지하철을 타고 얼마간 같이 왔는데 살짝 스몰톡 하면서 그녀가 내게 'your eccent is good' 이라고 했다. ㅋㅋㅋㅋㅋ 자기는 한국에 여행도 왔었고 몽골에도 한국 사람 많은데 다들 액센트가 별로 안좋다고. 근데 나는 좋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땡큐 베리 머치라고 했다. 엥크리야, 언니 .. 몇살인지 모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거 우리 묻지 말고 굳이 생각하지도 않기로 하자.
다음에 올 때는 사진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내가 사진을 한국에서 '가져가야지' 해놓고 안가지고 왔다. 내가 그렇게 결심하고 안가져온게 러닝할 때 쓰는 백이랑 모자.. ㅠㅠ 썬글라스도 안가져왔어. ㅠㅠ 하여간 그래서 사진을 찍자, 하고 셀프사진기 찍는 곳을 찾아가서 찍고, 배고파서 버거킹가서 햄버거 먹고 그리고 저어기 바다가 보이는것 같은데, 하고 걸어가보니 거기가 바로 마리나 베이여가지고 거기에 잠깐 앉아 멍을 때렸다.

그냥 이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내가 싱글인게 너무 좋았다.
야 싱글 진짜 개꿀이다. 싱글로 살았더니 이 나이에 여기 와서 이렇게 멍 때리기도 하고 싱글로 살았더니 앤드류도 만나고..(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학교 직원이 영어로 얘기하는데 내가 잘 못알아들어가지고 엥크리가 중간에 다시 알려주고 그랬는데, 내가 이렇게 학교 직원들이 얘기하는거 잘 못알아듣는데.. 어떻게 앤드류랑은 대화가 되지? 이게 너무 신기했다. 내가 호주 영어 알아듣나? 아무튼 어제도 저녁에 만나가지고 엄청 수다 떨었는데 하아. 어제 진짜 행복하고 즐거웠다. 한식당 가서 삼겹살 구워먹고 소주 마시고 반찬 하나씩 먹을 때마다 내가 설명해주고 두 손으로 따르면 두 손으로 받아야 돼, 그게 폴라이트야, 라고 했다. 한 손으로 따르면 한 손으로 받고 그런데 너보다 높은 사람하고 먹으면 그 때는 그 사람은 한 손으로 따라도 너는 두 손으로 받아야해, 라고 했는데 앤드류는 자신이 완벽히 이 룰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자기는 폴라이트한 사람이라서. 그래서 맞아, 너 진짜 폴라이트 퍼슨이야, 했더니 자신의 누나는 그래서 자기를 놀리기도 한다고 했다. 너무 폴라이트해서. 주로 '너는 저패니즈 같다'고 하는것 같았는데, 사실 맥락상 일본인처럼 예의차린다는 식으로 알아듣긴 했지만, 정확히는 못알아들었다. 그렇지만 하여간 폴라이트 퍼슨이기는 했다.
한식을 먹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정말 행복했다. 삼겹살 쌈 싸먹는거 가르치면서, 아 나는 내 진로를 잘못 선택한 것 같아, 외국인에게 한식 먹이는 그런 뭐 없나? 이런 생각이 들정도로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는 자신을 여기로 데려와서 너무 고맙다고 너무 맛있고 즐겁다고 했다. 그래서 니가 즐거워서 나는 너무 행복해! 했다. 그리고 삼겹살을 다 먹고도 계속 수다를 떨었는데,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좀비 얘기도 한것이다. 나는 일전에 페이퍼에 쓴 적 있었던 얘기를 했다. 나는 원래 좀비 안좋아했는데 코비드 후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28일 후> 얘기도 했다. 좀비가 있는 세상에서 좀비로부터 도망쳐서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도 강간을 하려는 남자가 있어서 등장인물들이 도망쳐야 했다. 좀비로부터 도망쳐 인간에게로 갔는데 다시 인간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고. 이게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고, 좀비 월드는 곧 휴먼 월드라고 했더니 앤드류는 자신도 그 영화를 봤다면서 얘기할 수 있었던거다. 아니 내 영어 무슨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먹고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면서 내가 클락키로 가자고 했다. 거기 바다 보면서 술 마실 수 있다고 해서 둘이 걷다가 자리잡고 앉아 맥주 마셨다. 앤드류는 일단 한 번 간곳은 다시 찾아갈 수 있고 방향도 어디인지 알아서 같이 걸으면 내가 지도를 안봐도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지도 보는 내내 핸드폰을 함께 보면서 다녀야 하는데 앤드류는 처음 가는 길도 지도 찾아서 딱 익히고 핸드폰 집어넣고 가는거다. 내게는 없는 장점이다. 나는 이런것에 좀 약한편. 아니 근데 이 클락키가, 내가 밤에 온 적이 없어가지고 이런 분위기인줄 몰랐는데 하아- 미쳐버려. 분위기 진짜 죽이는거다. 밤이지, 야경 난리났지, 바다 보며 술마시지... ㅋ ㅑ ~ 낭만 쩐다 진짜.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고. 진짜 너무 좋아서 나도 그렇고 앤드류도 그렇고 정말 좋다는 말을 천번쯤 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술 취하면 영어가 더 잘되나봐. 완전 입터져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중엔 나 페미니스트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너는 백인남자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자들은 여자들을 압박하고 막 이런 얘기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늘 생각해보니 갑자기 너무 웃겨서 혼자 개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내가 인생을 살면서 백인 남자 만나서 너는 백인남자야 이럴 줄은 몰랐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다시 생각해도 너무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는 내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리고 그는 내게 '오늘이 나의 베스트데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갑자기 이런 시간이 온다고?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하여간 진짜 낭만 터지는 밤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어쩌다가 내가 여기에 와있고 이런 기분을 느끼지? 그는 내가 Can I ? 라고 시작되는 말을 할 때마다 Yes 라고 해준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네가 굳이 영어를 공부하려는 이유가 뭐야? 라고. 영어를 공부해서 하고싶은게 있어? 라고. 그래서 나는 영어로 책을 쓰겠다는 얘기를 자세하게 했다. 그는 내 말을 곰곰 듣고 있다가 너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로 책 쓰면 앤드류에게도 보내줘야지 껄껄. 그렇게 우리는 그날밤, 좀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우리가 그 때 호텔 로비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어디서 만났을지 생각해봤어.' 라고 말했고,
'음 내가 어쩌면 호주 여행 가서 만났을 수 있겠지' 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한국 레스토랑에 가서 만났을 수도 있어.' 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다른 어딘가에서 만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만나지 못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거 맥주 때문이야. 내가 맥주 꺼냈더니 니가 굿 아이디어라고 했잖아."
"응 나는 생각도 못했거든."
"응 그래서 내가 같이 마시자고 했고 그래서 우리가 만났잖아. 나는 이게 다 맥주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빨래!"
"맞아, 너 빨래중이었지!"
"응 빨래가 되기를 기다리며 로비에 잇었잖아. 빨래를 안했으면 거기 없었을거야."
"맞아, 그러면 맥주랑 빨래 때문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와 헤어지는데 그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지금 안하고 내일 할게 '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 그에게 톡을 보내서 너가 어제 하고 싶은말 있는데 내일 하겠다고 했잖아. 기억해? 라고 물었다. 그는 I do remember 라고 했다. 말하기 민망하다고, 그리고 '네가 웃을거야' 라고 하더니, 결국 말했다. 그건 이런 문장으로 내게 왔다.
I don't have a wife or a girlfriend Or a family.
이게 니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었어?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했다. 비밀은 아니지만, 나는 와이프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어, 라고.
나는 '알아, 전에 니가 너 싱글이라고 말했잖아' 라고 답햇다.
나는 그의 말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냥 그랬다. 그런데 그는 내게 어제, 그걸 굳이 말하고 싶어했다.
내가 헤이팅 게임 읽으면서 진지한 남자에 대한 매력을 느낀다는 얘기를 그렇게나 써댔는데, 어디서 이렇게 로맨스 소설 속에서 걸어나온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났지?
그나저나 큰일이다.
하아-
앤드류가 내 블로그 글 보고 싶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어로 써있잖아. 안돼."
"내가 번역앱 써서 읽을게."
그래서 내가 말했다.
사실은... 나 네 얘기 썼어,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자 앤드류는 그러냐며, '그러면 나중에 알려줘' 라고 했단 말이야? 그러더니 헤어지면서는 "나 꼭 네 블로그 알려줘" 라고 했다.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글 다 지워야 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앤드류를 못만났다. 각자의 스케쥴이 있어서.
나는 오늘 저녁 내가 앞으로 살게될 집의 집주인을 만나 인사를 하고 왔다. 내일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는 새 집으로 들어간다.
본격 싱가폴 독립 라이프이다.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