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런데 창비시선 409
한인준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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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곳/것이 아닌 게 있을 때 우리는 더 유심히 본다(비문인 '유심해진다'라고 무척 쓰고 싶었다). 한인준 시인은 그걸 시어로 쓰고 함께 산다고 봐야 하겠다.
내가 가족이다/나는 그러므로와 화목하다. 어디서든 자세하게 앉는다. 하지만”(종언_이 문장들을 나는 외톨이로 잘 지낸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되나. ‘그러므로가 명사로 거기 있어 존재로서 강력해졌고 자세하게 앉는다는 표현 때문에 화자가 보통 사람과 다른 존재로 느껴진다. “주문진과 바다 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몰래는 왜 자꾸와 함께 닫혀야 했나에서도 지명과 부사가 행위를 하는 낯섦이 이어진다. 이렇듯 우리가 사고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인은 말한다. 샤피어 워프 가설에 따라 사람의 언어의 문법적 체계가 그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을 지배한다고 할 때 우리는 아주 판이한 삶을 살고 있는 게 된다.

 

저기. 저기로 가도 저기를 여기라고 부르고 말 거야. 우리는 자주 여기에 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할까.”
(중략)
우리는 확신하기 위해 서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모두들 어디서 내렸을까. 움직이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위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올려다본다. 어제도 오늘도 구름은 구름이라고 불렸다. 구름을 구름같다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확신하면서 당신에게 문자를 보낸다. 언제쯤 도착할 거 같아?
(중략)
비가 그친 줄도 모르고 우산을 펼쳐 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비가 내린다”(확신)
 
언제부터 별은 달이 아니고 별과 달이었는지// 나는 빛과 빛나는 것을 구분하는지//지하철 출입구를 왜 자주 출구라고만 부르나//어디로든 어디서든 나가야만 했던 것인지//이곳은 아직도 생각 속이구나//이곳에서 별은 달이 되어가는데”(기대)
 
아니야 이 길이 맞아. 생각이 드는 것과 생각이 나는 것을 어떻게 구별했을까”(이륙)

   
우리는 사실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적하는 틀림과 다름은 과연 어느 정도로 명확한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는 쉽다. 비가 내린 뒤 한참 비를 생각하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여전히 비가 내린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비를 계속 경험한다면? 미친 게 아니라면 철학 아니면 예술이다. 어렵다는 건 시인도 안다. “식탁 위에 놓인 빨간색은 내가 먹을 수 있는//하지만인가//느낌은 한입으로 쪼개질 수도 있는데/어렵다/어렵다를 뱉는다”(종언_) 알면서도 한인준 시인은 굳이 어렵게 뒤꿈치처럼 생각”(윤곽) 해보기도 하고, 천천히 제발과 부탁을 더해버리지 않는 방법에 대해”, “불어오지 않는 바람도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힘에 대해”(종언_하늘 위에 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몰하고 말한다. “육하원칙을 내 인기척으로 두 손을 꼭 쥐고 악다구니로/내 살을 내가 씹을 때마다/상처는 여기구나, 하고 나를 가만히 눌러”(퍼포먼스) 주면서. 시인은 이 모든 게 결국 아무것도 아닌 연극이 아닌가 생각하는 듯도 하다(끝날 때까지 기다려, 연출 연습), 데자뷔). “혼자 많은 생각으로 얼마나를 하고”(종언_) 있어 다른 이의 얼마나도 생각하는 건 수순일까. “목숨은 왜 혼자 배우는 거요//당신 혼자 알았다고 전부가 아니야. 우리 모두 배울 때까지 기다려주자”(게스트하우스) 절대로와 함께라면 모든 것은 이곳으로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절대로와 함께라도 모든 것이 이곳으로 도착할 것이다”(종언_할 말 잃어버리기」)라고 말하는 건 바람일까 의지일까
    
한인준의 이 고집스러운 실험은 자신의 고립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김나영 평론가의 표현처럼 우리의 합의와 확신에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이 화자의 말은 그 자체의 속성 상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설명하지 못할뿐더러, 지시하고 설명하는 말이 생겨나는 순간에 그 대상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것으로 편갈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다. 그뿐 아니라 그는 말의 그 역설적인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화자의 의심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나와 너의 입장과 관점의 차이는 애초부터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말의 대상에 대한 지시와 설명과 부연 같은 말의 발생 이후에 나타나서 거꾸로 말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지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중략) 이 시집 속에서라면 생각하는 일은 예를 들어 이별의 경우, 그것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상투적인 경험으로 통칭하기를 거부하고, 그러한 통칭에 깃들어 있는 오해를 해소해서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스스로가 만들어 갖는 과정이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사전적인 정의로 포괄되어 의미를 벗어나는, 관념으로서 취득해야만 하는 고정적인 이해에 저항하는, 이를테면 자신을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순수한 생각을 얻는 일이다.”(p106)
    
언어의 힘을 얻기 위해 고투하기보다 거기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시집이다. 한인준 시인은 이미 그러고 있다. 이 시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해도 당신 잘못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전혀 이해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좋다고 생각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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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2-02 17:26   좋아요 2 | URL
요즘은 아는 사람만 아는 마술이 돼가고 있어서^^;;

cyrus 2017-12-02 16: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아재 개그 : 시집 제목을 보자마자 ‘아리아나 그란데’가 생각났습니다. 저만 그런 건가요? ^^;;

AgalmA 2017-12-02 17:26   좋아요 0 | URL
ㅎㅎ 경상도 식으로 ˝그란데 와 그라노?˝ 는 안 떠오르시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