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행복과 가치라는 단어는 붙어 다닌다. 불행과 무가치가 몰려다니는 것처럼. 행복과 가치의 선후관계를 생각해보면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기쁘고 행복하다. 가치 중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느낄 때가 가장 강렬할 것이다. 꿈을 이루고 상을 받을 때 기쁜 이유이다. 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7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과 타인 즉 인간의 가치 없음에 대해 고통스러움과 환멸을 호소하고 있었다.

 

수상작 황정은 <웃는 남자>d와 여소녀가 주인공이다. 가정에서부터 길에서 차가운 주검이 되기까지 ddd 외에 그 존재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dd의 죽음 이후 사물의 온도와 세상의 소음에 온통 불쾌감과 냉소를 보내던 d는 택배 기사로 다닐 뿐인 자신을 알아본 세운상가 음향기기 수리사 여소녀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듣고 보기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은 닮았다기보다 인간의 보편적 평등을 보여주는 쌍 같다. 평생 고장 난 기계 속을 들여다보던 여소녀는 무너져가는 시대의 건물 속에서 지옥과 같은 적막을 경험하고 있다. 평생의 가치라고 할 연인을 잃은 d는 자신처럼 가족을 상실했지만 시대의 혁명으로 싸워가는 사람들 함성 속에서도 죽음 같은 환멸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버려지기 직전의 빈티지 음향기기에서 어떤 것과도 다른 소리를 살려내는 여소녀를 통해 d는 지금까지와 다른 소릴 알게 되었고 진공관에서 예상치 못한 사물의 온도를 느낀다. 작가는 여기서 끝을 냈는데 그 온도, 소리, 관계, 가치의 이후는 우리의 몫이라는 뜻일까.

 

김숨 <이혼>은 제목 그대로 서로에게 가치가 되지 못한 이들의 파국이다. 작가는 단순히 부부 관계의 단절, 헤어짐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혼을 하지 않는 엄마에게 나도 더는 엄마를 도울 수 없다고 후회할 말을 하고 민정은 독립해 떠났다. 그녀는 아버지로 인해 세상에 닫힌 문을 갖게 되었다(“한때 그녀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이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 같은 망상에 시달렸다. 세상 모든 폭력의 근원이 아버지 같았다. 심지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폭탄 테러도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만 같았다”). 아내 민정의 병과 마음에는 무심했으면서 사회 약자들을 가까이하며 사진 작업을 했던 철식은 그동안 쫓아다녔던 비정규직 노동자 강인구와도 민정과도 어떤 소통도 하지 못한 결과를 맞닥뜨리게 됐다. 관계가 쉽사리 끊어지지 못하는 예도 작가는 안배했다. 스스로 이혼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지경까지 상대에게 깊이 예속되고 만 민정의 어머니, 이혼 후에도 결혼 생활에서의 의문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영미 선배,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맺어진 인연에 혼신의 힘을 다한 다리 없는 여자 같은 이들은 우리에게 텁텁한 뒷맛을 남긴다. 가치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상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걸 보여주는데, 무시 못 할 강력함이다.

 

김언수 <존엄의 탄생>은 떠돌이 개에게조차 무시를 당하는 것에 분개한 진수라는 인물의 비루한 일상을 담았고, 윤고은 <평범해진 처제>는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가장 깊이 알게 되는 사건인 첫사랑과 재회한 주인공이 자신이 그런 가치의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에피소드다. 그녀가 쓰려던 소설 천재평범해진 천재에서 평범해진 처제로 변형되어 완성되듯이. 윤성희 <여름방학>은 집안의 돌림자 때문에 이병자라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오십 넘는 생을 산 주인공이 그 이름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듯 세상에도 적당히 맞춰서 산 삶을 이야기한다. 새 삶과 새 이름을 가지는 것을 여름방학으로 표현하는 주인공과 작가에게 왜 하필 방학이냐고, 방학은 금방 끝나고 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려다가 삶의 환희가 그런 것이라 결국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에>는 자신의 소설이 평가 절하되어 중고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에 모욕을 느낀 작가가 판매자와 직거래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판매자의 내막을 알게 된 작가는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서글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짧고 재밌는 메타 소설인데 박형서 작가를 재밌게 이용(?)해서 더 재밌었다.

 

편혜영 소설은 늘 서늘함이 떠도는데 <개의 밤>도 역시 그러했다. 김은 처가의 도움으로 고급 전원주택을 얻게 됐고 장인의 도움으로 현장 사고 처리 일을 맡게 됐다. 그 가족에 융화될 수 없었고, 부대 폭행의 악질 가해자인 처남 문제에서 그들의 옹호에도 동조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사고를 당한 직원 장의 집에 합의를 요구하러 동료 안과 찾아간 김은 안에게 불가피한 처리를 교묘하게 떠넘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을 내동댕이쳐야만 빠져나올 수 있는 역할을. 그리고 처남 일의 탄원서를 내민다. 그가 처남의 탄원서 서명을 받아야 되는 수치와 굴욕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연대를 만드는 이 과정은 익히 보아온 일이지만 잔상으로 오래 남는다. 그가 살던 전원주택 단지 내에 노부부 살인 사건이 있었는데도 개가 짖지 않았던 것처럼 이 세상의 많은 밤과 불의에도 그런 파수견이 없다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다. 자기뿐만 아니라 모두를 죄인으로 만드는 세상에 대해.

 

김은 감은 눈을 떴다. 아내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나님은 아무도 벌하시지 않는다고, 우리를 벌하는 건 우리 자신일 뿐이라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선택해서 거기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대신 아내와 잡은 손에 힘을 주었고 그럼으로써 아내가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에는 침묵하고 잘못을 추상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처남의 죄를 하찮게 만들어버린 것을 모르는 척했다. 아내에 따르면 모두의 인생에 죄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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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1-24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소설의 리뷰는 이렇게 쓰는 것이군요. 좋은 format을 알고 갑니다.. 참, 더 좋은 내용도 배워가네요.^^!

AgalmA 2018-01-24 15:40   좋아요 1 | URL
많고 많은 리뷰 중 하나일 뿐이죠^^; 겨울호랑이님 뷔페 글만큼 영양가가 풍부했으면 좋겠다는 게 희망사항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1-24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가치 없음. 불행의 지속성,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안개의 풍경 ... 요즘 소설의 화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명랑하던 김애란도 우울한 풍경을 이야기하고는 했으니... 아마도 용산사태와 세월호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됩니다..

AgalmA 2018-01-24 16:54   좋아요 0 | URL
네, 황정은 <웃는 남자>에도 세월호 당시의 광화문 풍경이 가득 펼쳐지죠.
작가는 시대를 넘어 보기도 하지만 시대의 카나리아라고도 생각해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겠죠. 최근 한국문학 보면 너무 위축되어 있는 거 같아 안타까운데 좀 더 힘을 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