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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결혼 16년이 지나 심리 상담사를 찾았을 때에야 커스틴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돌연한 가출로 인한) 회피 애착, 라비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유년기에 잃은 어머니로 인한) 불안정 애착에 평생 얽매여왔고 그 때문에 자신과 상대를 괴롭게 했음을 인정한다. 소설은 그것을 낳게 된 더 큰 배경의 문제점도 계속 거론한다. “사랑은 조사를 거부하는 본능이자 감정이라는 개념에 취해버린 세계”, “결혼생활을 감정(애정, 욕구, 열정, 갈망 등)에 대한 축성(祝聖)”이자 완성처럼 포장한 세계, 금전을 따지기보다 영혼의 짝을 만났다는 믿음을 추구하고 연인은 완벽하게 우리를 사랑할 것이라는 환상을 끊임없이 만들어낸 ‘낭만주의 사상’의 영향은 이들 부부뿐 아니라 부모 세대에도 작용했고, 그들의 자녀 세대에도 여전히 큰 장애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도.
소설은 커스틴과 라비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 생활에서 온갖 환상의 무너짐을 겪으며 아이를 키우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자신의 꿈을 잃어가면서(“그래, 실패란 이런 것이다. 주요 특징이라면 침묵이다. 전화기는 울리지 않고, 불러내는 사람도 없고, 새로운 일도 없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실패를 엄청난 재난 같은 모습으로 상상해왔으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실패는 사실 겁먹은 무위를 통해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찾아왔음을 깨닫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성공을 향한 집요한 꿈을 심어놓았다. 인류에게 그런 분발심이 내장된 데에는 분명 진화상의 이점”이 있었지만) 외도에도 빠지는 많은 과정과 심리들을 냉소하지 않으면서(“냉소는 너무 쉽고, 그래서 얻는 것이 없다”) 주목하며 그리고 있다. 어쩌면 낭만주의의 발전된 형태일 수도 있을 작가의 이런 휴머니즘 자세가 쉽게 깎아내릴 건 아니다. 온갖 막장과 외설이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양, 인간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괴물처럼 그려내는 요즘 소설의 지나친 과잉과 광기가 진실(“진실이 거짓보다 그들의 관계를 훨씬 더 왜곡할 수 있다”)을 드러내는 탁월한 기술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연인/배우자가 우리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라고 의도적으로 착각한다. 사실상 결혼은 인간 본성, 인간의 약점과 아픔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고된 길이다.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고,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완벽한 삶을 꿈꾸는 일이 아니라 그러한 추구의 욕망을 덜어내는 일이고,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는 최고 수료 단계이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삶의 속성”에서 파생된 결혼이란 제도의 문제점을 봐야지 각 개인의 문제(“모든 게 네 탓”)로만 보는 것도 옳지 않다. 외도와 배신 문제는 여전히 낭만적 성채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데 사랑과 섹스(욕망)를 동일시하고 도덕적 잣대로만 평가하는 태도는 깊이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이 모든 고민의 시점을 지나는 결혼 16년 차에 라비는 이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미래의 불확실성도 깊이 깨닫고 있다.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 부를 권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단지 잠깐 동안 만족을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인간일 뿐”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 깊었던 것은 그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인간과 사회, 사랑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 인간 사회에는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인생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해줄 게 결국 그리 많지 않다는 측은한 믿음이 존속한다.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사랑이란 말은 갈수록 부정적 의미들을 내포하게 되었다. 개인주의와 자기 충족에 빠진 문화는 만족과 타인의 부름에 응하는 행동을 쉽게 등치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매혹하고 위로해주는 능력에 대한 보답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데에 익숙하다. 그러나 아기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더 자란 아이들이 가끔 큰 불안을 느끼며 판단을 내리듯이, 아이들은 아무 ‘요점’이 없고, 이것이 아이들의 요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ㅡ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위치에 있기 때문에ㅡ어떤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장점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약점에 대한 동정, 즉 인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고 한때 나 자신의 것이었고 결국 나 자신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그 취약성을 동정하는 사랑으로 인도된다. 자율과 독립성을 늘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어 하는 와중에 이 무기력한 피조물은 아무도 결국은 ‘자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인생은ㅡ문자 그대로ㅡ사랑하는 능력에 의지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 이 소설을 읽으면 자신을 대입해보게 될 것이다. 내 결핍들, 부모가 결혼생활에서 겪었을 어려움들, 부모와 내가 같이 머물 수 없는 평행선들, 내가 만난 모두가 가졌을 문제들, 서로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대립했던 각종 사건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이 인류 삶의 가장 근본적인 끈이라는 것을 말하며, 그 노력을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평범한 말이지만 사람 삶이 그 평범 속에 있는 것과 같이. 낭만적 연애 이후는 더 많은 일상이 채우는 것과 같이.
“부모의 다정함만으로 충분하다면 인류는 활기를 잃고 머지않아 사멸할 것이다. 인류의 생존은 마침내 넌더리를 내고 사랑과 흥분을 선사할 더 만족스러운 원천을 찾겠다는 희망을 품은 채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이 세상에 항상 나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스스로도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적절한 대응은 냉소나 공격이 아니라, 드문 순간이나마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사랑해주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