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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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안 기분이다. 마치 이 시처럼.


 

너의 마음을 읽었는데 / 그랬기 때문에 너와 멀어졌다. / 나의 잘못인가.”

(독심,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2018))  

그의 첫 시집부터 오래된 독자이자 팬으로서 나는 그를 유령 산책자로 분류하며 읽고 있었다.

 

 "살아 있는 듯하지도 않지만 죽어있는 것도 아닌 듯한, 이 고장의 살벌한 아늑함에 대해 나는 지치고 넌더리를(중략)산책할 때마다의 발병. 나는 센치해진다.” (구토」)

이곳에서 모든 것은 /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중략)전봇대 꼭대기에 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 희미한 풍경 같아서.” (객관적인 아침)

 

 내 잠 속의 모래산(2002)

갑자기 나타난 곳에서 / 갑자기 살아가는 것들이 있다 / 골목이 끝나면 펼쳐지는 / 오래된 신세계” (복화술사」)

나는 여행 중이고 자꾸 몸이 지워져” (여행자들」)

골목, 이라는 발음을 반복하자 서서히 골목이 사라진다”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

나는 내 바깥에서 태어났다. (실종 )

 

정오의 희망곡(2006)

조금 덜 존재하는 밤, / 안개 속에서 뼈들이 꿈틀거린다 / 처음 보는 얼굴이 떠오른다 (뼈가 있는 자화상」)

누군가 쎈터링한 공이 정점에 도달하는 일요일. /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 힘껏 발을 뻗어보기도 하는. / 달려간다는 것에는 수많은 허공이 필요하다. / 근육질의 허공이”(우연을 위한 장소)

 

생년월일(2011)

나는 잠처럼 완전히 흩어지지 못하고 / 목적지처럼 자꾸 멀어지지 못하고 / 그저 조금 기울어진 채 // 이상한 마음으로 생활을 했다.”(튀어나온 곳」)

나는 천천히 표백되었다. 조금씩 모든 것이 되었다.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표백 )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2016)

 

나는 더 너머를 봐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답은 간단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시에 왜 코끼리나 악어,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난무하고 왜 모든 게 무너지면서 되돌아오는지 나는 본능적으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세계를 보고 있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식물들은 대개 보이지 않는 통일된 전체를 환기하기 위해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들은 이에 반대한다. 동물들은 언제나 우리의 바깥에 있다. 동물들은 영원을 가르치지 않고 반대로 유한함과 필멸을 가르친다. 동물들은 개체성과 운동성과 생존 본능의 담지자들이다. 그들은 회귀하거나 반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멸한다. 그들은 일회적인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은 희로애락을, 오욕칠정을, 마침내 죽음의 불가피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듯하다. 개체성과 생존 본능에 압도된 동물들은 통일된 전체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본능과 육체성과 타자성을 가르치기 위해 동물들은 인간의 시야로 들어온다. (중략)그러니 시인의 시는 동물원의 시가 아닐 수 없으며 동물원의 시는 인간사의 시를 뒤집고 누비고 돌려 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에세이동물원의 시,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2018))

 

그는 이 에세이 말미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동물들 앞에서 영원회귀를 말하던 것을 언급한다. “만물은 흩어지고 만물은 다시 만난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그러므로 세계와 동물들은 영원회귀 속에서 모든 영원을 부수며 일회적으로 살아가고 일회적으로 죽는다고 밝힌다. 그들은 죽음을 제 안에 이미 지니고 있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세계관은 그 자신에게서 벌써 부조리하다. 인간과 동물을 끝없이 이종교배하며 상징과 비유의 시를 숱하게 써왔으면서 결론적으로 인간과 동물을 가른다. 동물들이 개체성과 생존 본능에 압도되어 있다는 그의 인식은 하이데거 사유-‘얼빠짐, 마비 상태 Benommenheit'-를 계승하고 있다. 동물성으로 긍정을 말하고 있지만 그 또한 니체의 사유 자장 안이다. 이렇게 사유를 습득하고 이어가면서 나 자신의 개체성을 얼마나 주장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은 동물들도 자살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동물들에게서 나는 모든 존재들의 비밀스러운 통일성이 보이는데? 동물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것들은 바깥이고 안이면서 연결된 채 가고 있는 거 같은데?

 

다시 한 번 몰랐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이건 다 내가 이 시집을 읽고 있는 꿈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우리 모두 산산조각 난 꿈에서 깨 다시 살고, 다시 시를 읽고 쓰는 시작인지도 모른다. 실패여도 뭐 어떤가. 어차피 우리가 혼자라면. 우리가 전체로 연결된 존재라면 누군가 대신 이 문제를 또 풀 테지. 그런데 이 모든 게 슬픈 건 어쩔 수 없군. 영원회귀와 시작이 이렇게 맞물려서. 

 

 

 

“끝나지 않는 것은 너무 쉬운 것이 아닌가?”(「종말론사무소의 일상 업무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죽음은 방어선의 국경일까, 버리기 위한 결말일까.

 

 

 

※ 이 시집에 대한 내 별점은 그의 세계관과 사유에 대한 동의가 아니다. 그로 인해 내가 하게 된 사유 기회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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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3-06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물은 비교적 운동량이 많은 대신 식물보다 생명력이 짧은 것 같습니다. 굵고 짧게 사는 것과 가늘고 길게 사는 것에 다름은 있을 수 있어도, 우열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AgalmA 2018-03-06 13:58   좋아요 1 | URL
이 시집에서 화자가 자신을 유물론자라고 하고 있는데요. 만물회귀를 말하고 다중우주 같은 시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쩐지 (당연히)제가 모르는 시인의 인식은 굉장히 유물론적인 게 아닐까... 말씀하신 대로 우열적인 그 가름도 좀 충격적이고 해서 .... 이 시집 읽고 굉장히 쓸쓸해졌어요 ...

겨울호랑이 2018-03-06 15:09   좋아요 1 | URL
흠.. 이제 드디어 AgalmA의 「1일 1그림 & 1시집」이 세상에 나올 때가 되었군요...

AgalmA 2018-03-07 06:12   좋아요 1 | URL
읭?...게...게을러서...^^; 나온다기 보다 제가 만들어야 가능할 거 같아서ㅎㅎ; 만들게 되면 겨울호랑이님은 5순위 안에 드는 분이죠^^ 물론 공짜로! ㅋㅋ

겨울호랑이 2018-03-07 08:22   좋아요 1 | URL
^^:) 4부 찍으실 계획이시군요 ㅋㅋ

2018-03-07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8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