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런데...... 만일 어쩌면 우리에게 다시 그런 식의 결단의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불현듯 그런 불길한 생각을 해 본다. 상황을 조금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지금 우리에게 그런 암울한 결단을 강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암울한 먹구름이 끼어들고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북핵 위기'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전쟁 위기라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점차 눈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낙관적으로 본다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하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라크에처럼 미국이 정말 막무가내로 북한을 공격한다면? 그때 나는 어떤 입장에 서야 할 것이며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인가? 북미간의 축구경기도 아니고 대량 살상이 불 보듯 뻔한 전쟁이라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원하지 않더라도 그 참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설사 100만 분의 1의 가능성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며, 우리 마음속의 이 명백한 불안은 그 가능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쟁이 터지고, 한반도가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그저 내 한 몸, 내 가족만 살겠다고 산으로 숨어들어 갈 것인가? 아니면 그 부당하고 야만적인 전쟁에 대해 모든 것을 걸고 항거할 것인가? 차마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질문이지만, 나는 지금이 이 질문을 감당해 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공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마음속으로라도. 특히 이른바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더 그렇다. 그리고 그러한 비극적 결단의 순간을 맞지 않고 싶다면, 그런 순간이 오지 않도록 지금 당장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2003.02.17"
                                                      김명인,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6, p.28.

  북한이, 우리의 반쪽이, 그 '무서운' 핵을 실험하겠다고 공포하고나서, 그 살벌한 말한마디의 충격에 빠져 별다른 대응책도 제대로 간구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또 한 방의 커다란 사건이 터져버렸다. '그야말로' 핵 실험을 강행해버렸다는, 그 사실을 성대하게 만방에 널리 알린 것이다.

  오늘 한 후배와 저녁을 하면서 내가 물었다. "만약에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그대로 군대로 끌려갈 거냐?", "별 수 있어요. 가야죠, 군대로!", "야! 너는 앞으로 제대로 된 시인은 되기 글렀다. 젠장!"

  나는 오늘 낮, 김명인 선생님으로부터 "북한이 핵 실험 했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읽은 이 책의 위 구절이 떠올랐다. 2003년의 그 '결단'은 2006년 지금의 이 상황에서는 더욱 절실해진 것은 아닐까? 누군가 말했다. "교사는 지성인"이라고. 지성인은 지식인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시인이 되겠다는 그 후배녀석에게 시인이란 무엇일까? 시인이란 존재를 '알바트로스'에 비유했던 그 시인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진보적 지식인'의 최전선에 나는 과감히 시인이란 존재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되겠다는 그 녀석이 '가야죠, 군대로!"라고 말했을때 나는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아하 교사가 되겠다, 시인이 되겠다, 하는 이 못난 인간에게, '결단'은 애초에 불필요했던 것인가?

  북한이 핵 실험을 했다고 해서, 전쟁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2003년의 '백만분의 일'은 현 상황에서 그 '만'자가 떨어지고 남음이 있다. 오늘 일제히 9시 뉴스는 그 소식을 다루면서,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의 가능성을 낮지 않게 점치고 있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추측이다. 만약 미국이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사전에 노무현 정권에 '동의'(?)를 구할 것이다. 그 '동의'에는 'NO'라는 대답은 수반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끝끝내 "NO"를 말할 수 있을까?

  노무현이 노하지 못하고, 한나라가 당근이라 생각하고, 열우당이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땅의 지식인들은 지금 '김명인의 결단'을 자신의 것으로 감당해야할 것이다.

  나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결단'을 내리려고 한다. 이 결단이 공갈이 된다하더라도 이렇게 말하겟다. "나는 이 땅의 전쟁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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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가라타니 고진을 읽는 시간

경향신문의 고전읽기에서 일본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탐구>(새물결)가 다루어지고 있길래 옮겨놓는다. 지난주에 나는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민음사)을 도서관에서 대출하고 그 영역본을 타대학 도서관에 대출신청했다(내가 갖고 있는 국역본은 '고아원'에 가 있다). 올 문단의 큰 논쟁거리를 가져온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 그 '기원'에 관한 이야기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자연스레 생각했기 때문이다(고진 스스로가 문제삼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트랜스크리틱>에 대한 내용정리를 마저 끝내는 일도 아직 미뤄둔 숙제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가라타니 고진에 관한 페이퍼들을 자주 올렸다고 생각되는데, 내가 제일 처음 읽은 책도 <탐구1>이었다. 그의 '비평'은 '고진식 비평'이라고 따로 분류해도 좋을 만큼(적어도 국내에서는 그런 종류의 비평을 접하기 어려웠던 거 아닌가? 철학과 문학을 횡단하는 쪽으로는 김우창 교수의 비평 정도가 예외적이었을 뿐) 독특하고 흥미로웠는데, 게다가 '읽히는' 비평이었다(아래의 기사를 보니 <탐구>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고진급의 비평가가 흔한 건 아니라는 데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읽은 게 <은유로서의 건축>이었던 듯하며 나는 이 책을 영역본과 나란히 놓고 읽었다.

 

 

 

 

영역본을 위한 이 선집이 <탐구>에서 더 나아간 것처럼 여겨지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후에 나는 고진의 애독자가 되었다. 당연히 이후에 출간된 고진의 모든 책을 사들였으며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정도를 빼고는 다 읽어본 듯하다. 그리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몇몇 저작(가령 <의미라는 질병> 같은 비평집)을 은근히 고대하고 있다. 혹 당신이 아직 이 거물급 비평가를 만나본/읽어본 적이 없다면 (뚜쟁이로서 말하건대) 한번쯤 시간을 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대충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되면 당장 비평을 써보시라. '고진을 넘어선 비평'이 탄생하는 흔하지 않을 장면을 나는 목도하고 싶다...

경향신문(06. 09. 30) ‘타자’와 ‘윤리’에 대한 치열한 성찰

한 권의 책이 생각하는 감각을 바꾼다고 할 때, 이는 날카로운 칼에 베는 일과 같다. 한 번 벤 자리는 아물어도 예전 같지 않다. 벨 때의 고통은 떠나겠으나 몸은 이미 전과 다르며, 미열이 가시지 않는 혼미함 속에서도 정신은 각성되어 있다. ‘탐구’를 읽고 나서는 전처럼 생각하기 힘들다.

저자인 가라타니 고진(1941~) 자신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탐구’를 ‘전환’이라 일컫는다. ‘탐구’의 글들은 1985년에서 88년까지 잡지 ‘군조우(群像)’에 연재됐는데, 그 2년은 첨예한 논쟁의 연속이었다. 고진이 ‘기존 철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진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대결해야 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 이후 고진은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는 이 시기 자신의 사상적 고투를 ‘패배한 전쟁’이라 일컫는다. 그의 싸움은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나 자신을 ‘안’에 묶어 두려고 했다. …나는 바깥을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되지 않도록 하였는데, 바깥이란 일단 그렇게 파악되면 이미 안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내성과 소행’)

그는 형이상학과의 지난한 싸움에 나섰다. 경제학, 문학, 철학의 영역으로 전략적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형이상학과 맞섰다. 자리를 옮겼을지언정 고진은 한 번도 쉽사리 자신을 형이상학 밖에 있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형이상학의 내부로, 사유되지 않은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종국에는 형이상학을 안으로부터 무너뜨리기 위해 철저한 논리적 작업을 거쳤다. 그 결과가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1983)이다.

그러나 그는 패배했다. 초월적인 의미를 제거하기 위해 전투에 나섰으나, 그 전투가 자신에게 남긴 것은 메마른 감각과 갑갑한 논리였다. 거기에서 빠져 있는 것은 ‘타자’라는 생명력이었고, ‘윤리’로서의 소통이었다. 이제 고진은 형이상학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을 사유하기 시작한다. “내가 ‘탐구’를 연재하면서 계속 질문했던 것은 ‘사이’ 혹은 ‘외부’에서 살기 위한 조건과 근거였다고 할 것이다.”(‘탐구’ 후기)

‘탐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타자(他者)’이다. ‘타자’라는 말은 그 함의와는 달리 결코 낯설지 않다. 빈번히 사용되는 이 개념은 낯선 존재를 범박하게 처리하는 상투어가 되고 만다. 그 까닭은 타자라는 말이 자기 확장의 의미를 띠고 사용되기 때문이다. 고진은 이러한 용법을 가장 경계한다. 그에게 타자는 주체의 ‘바깥’이지만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바깥’이다. 만약 그 ‘알 수 없는 거리’가 빠져있다면 타자는 그저 주체 ‘안’의 존재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서 상정되는 신은 자기의 확장일 따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의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소리이다. 자신의 말을 마치 누군가의 말인 양 듣는다. 그때 타자와의 ‘거리’는 발생하지 않는다. 신이 전지전능하게 나를 꿰뚫고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내가 안다는 사실과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가장 잘 아시는 신의 상정, ‘기복 신앙’은 자기독백이다.

여기에서 빠져 있는 것은 ‘비대칭적 관계’이다. 타자는 내가 품는 의미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존재이다. 이쪽에서 자명하다고 저쪽에서도 자명하지는 않다. 이때 고진이 ‘타자’로 문제 삼으려는 것은 ‘독아론(獨我論)’이다. 독아론은 나에게 타당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타당하다는 사고방식이다. 독아론에서 남은 나와 동일한 주체로서, 동일한 규칙을 소유하는 사람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이들은 내면화된 존재일 따름이다.

고진은 플라톤 이래의 서구 형이상학은 바로 이러한 독아론의 소산이었다고 지적한다. 거기에서 배제된 존재들은, 광인(푸코, ‘광기의 역사’)처럼 규칙을 공유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실제의 삶이란 무수한 존재들간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들을 뛰어넘는 ‘가늠할 수 없는’ 도약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를 성찰하는 일은 ‘윤리’적이다. ‘윤리’란 타자와의 ‘비대칭성’을 품으면서도 관계를 실현하는 행위이다. ‘탐구’는 이렇듯 ‘타자’와 ‘윤리’에 관한 책이다.

일본의 사상지 ‘유레카’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탐구’를 선정했다. 80년대 후반의 저작이 90년대 최고의 책으로 꼽힌 것은 ‘탐구’가 90년대의 맥락에서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소위 동구권의 몰락 이후 ‘역사의 종언’이 고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서구이성 혹은 자본주의의 독백일 따름이다. 문제는 그에 맞서는 해체주의가 90년대에 이르러서 파괴력을 잃고, 지적 유희의 경향을 걸었다는 점이다. 그 때 빠져있는 것 역시 ‘타자’와 ‘윤리’였다. ‘탐구’는 역사에 대한 목적론을 부정하면서도 그 반편향으로 어려운 지적 수사에 이르지도 않았다. 다만 실제의 삶에 대해 말한다. 이제 고진이 ‘탐구’에서 자주 인용하는 비트겐슈타인의 한 구절을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안에 신비는 없다.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신비이다.”(윤여일|‘수유+너머’ 연구원)

06.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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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28일)이면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2006년 추계학술답사를 떠납니다. 대학생활의 백미라하면, 축제나 농활 등이 있겠지만은, 이 학술답사도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일 겁니다.

  그런데 나의 독고다이 생활방식과 귀차니즘의 여행기피증에 의해, 대학생활 내내 이 먼길 떠나는 답사를 경험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것이 대학을 졸업한 지금 저의 아쉬움으로 기억되는 것 중에 하나이지만, 그래서인지, 조교가 된 지금에야 답사를 떠나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아쉬움 하나 접을 수 있겠군요.ㅎㅎ

  물론 대학생의 신분으로 떠나는 학술답사의 추억을 만끽할 수는 없겠지만은, 조교라는 신분의 이질적이면서 양면적인 성격을 중용을 거부하고, 다분히 한쪽으로 기울이어 최대한 대학생답게 답사를 즐기고 싶습니다. 물론 조교로서 해야할 일들은 해놓고 말이죠.ㅎㅎ

  이번 학술답사는 그래서인지 많이 설레고 긴장됩니다. 아니, 그동안 나를 설레게하는 이 학술답사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해서였을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대강의 일정을 보면서 가장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안도현 시인과의 만남입니다. 얼마전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 선생님을 만났을 때보다 더 기대가 되는군요.

  올해 학술답사는 전라북도 일대의 군산, 익산, 김제, 만경 등지를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전라북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문인이 바로 안도현 시인이 아닐까해요. 그러면서도 안도현 시인의 이력이 우리과의 학생들에게 더욱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저에게는 시라는 매개가 하나 더 있어요.

  안도현 시인을 만난다기에 안도현 시인의 시집을 죄다 사 읽는 치밀함을 지니고 내일 떠납니다. ㅎㅎ 첫날 뵙게될텐데요. 최근 나온 2권의 시집을 짐꾸러미에 찔러두고 갑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이번 강연에 주가되는 시들을 담아 놓고 있어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시인의 대표적 시집이기 때문에, 이 둘을 골랐습니다. 두 권 모두 재판된 새책들이네요.ㅎㅎ 여기에다가 싸인을 모두 받을 욕심으로 지금 가득차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강연 외에, 또 저를 설레게 하는 것은 익숙한 곳이면서도(제 고향은 아닙니다만, 부모님이 익산에 사세요.)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아리랑>>의 주무대인 김제, 만경, 그리고 군산 일대를 돌아보는 것이지, 아직 그곳이 우리 민족의 애환과 아픔과 고통을 담아내고 있을테지요. 땅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아리랑'의 슬픈 곡조를 찾아내고 올랍니다.

  또한 전라도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하면 판소리를 빼놓을 수 없겠죠. 판소리를 집대성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신재효에 대해 세미나를 가지는 시간이 있답니다. 이참에 판소리 한 대목 배울 수 있으면 또한 좋겠네요. 아울러 채만식 기념관에도 가본다는 군요. 이래저래, 보람된 학술답사 되게끔, 대학생때 못한 것까지 모두 합쳐서 제대로 된 학술답사 만들어 가지고 오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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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희야양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하여간에 요즘 유행타는 뭔가 특이하거나 특별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프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늘 다시 보니 참, 놀랄만한 일임에 틀림은 없다. 가슴 뜨겁게하는 진한 감동임에는 또한 틀림없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이랄까, 그 감동만으로 기뻐할 수 만은 없는 내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희야양의 연주를 보면서, "어쩜 저럴 수가!"라는 감탄을 먼저하게 된다. '네손가락의 피아니스트'라는 별칭도 그런데서 연유할 것이다. 참 이것은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사실에 주목하고, 어떻게 그런 장애를 딛고 이렇게 아름답게 연주를 할 수 있었을까 하면, 그 사연들 속에서 감동을 받는다. 나도 마찬가지.

  우리는 또한 그녀의 피아노 치는 모습에 심금이 울린다. 한 손에 두 개의 손가락만으로 펼쳐내는 음율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고, 손이 찢어질 것 같아 보이는 모습, 가히 온 몸줄기에 소름이 돛이는 듯도 하고, 식은 땀이 나기도 하면서, 눈물을 머금게도 된다.

  분명 이런 것들로 자아내는 감동도 감동이다. 하지만 거기에 전제되는 것은 무엇보다 희야 양의 장애이다. 장애를 전제로한 감동일 뿐이다. 이런 감동으로만 보는 것은 희야 양에 대한 일종의 모독일 수도 있다.

  희야 양이 자신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사람들이 대단하게 보고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희야 양에게는 피아노 연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희야 양은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보다 진정으로 들어주길 바랄 것이다.

  나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2가지 생각을 하게된다. 우선은 장애인이라는 전제를 벗겼을 때 우리에게 희야양은 어떤 감동을 줄 것인가? 그런데, 또한 그런 감동을 우리에게 주어야만 하는가? 그런 싸구려 감동을 벗겨내야만이 희야 양이 이 사회에서 정상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동영상은 일본의 모 방송에 초대되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다. 여기서도 희야 양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동을 자아내고는 있지만, 희야 양도 기뻐하는 모습이지만, 일본이라는 사회에까지 가서, 희야 양이 사람들앞의 뭔가 신기한 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과 교차되면서, 예전의 모 프로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며 아파하고 힘들어 하던 희야양의 얼굴이 떠올른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런 나의 생각들이 다만 죄스럽기도 하다.

  또 하나의 생각은, 화면에서 보여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이다. 어머니의 눈물을 머금은, 두 눈을 감고 희야 양의 연주를 차마 보지 못하는, 희야 양이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지만, 그 시간 시간들이 매우 큰 고통의 시간들임을 어머니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어머니도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연습을 게을리하는 딸아이에게 핀잔을 주기도 하고, 연주해서 아픈 손가락을 장난을 하며 더 피로하게 만드는 딸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연주를 마치고 힘들어 하는 아이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어머니, 아이에게는 고통이 남지만, 또한 기쁨이기도 한 피아노 연주. 그 두 가지에서 어머니는 오히려 우리 누구보다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일본까지의 먼 길을 건너가면 방송에 출현을 택한 어머니의 마음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모르는 이들로부터 오해의 말들을 듣기도 할 것이다. 바로 어머니의 머금은 눈물 안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희야 양의 통해 얻은 감동이 다만 유쾌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그런 감동이다. 희야 양을 더이상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부르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희야 양은 피아니스트이지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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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006-09-1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지금은 나이가 어리니까 단지 네 손으로 친다는 것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한 실력과 예술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잊혀지고 말겠죠. 그나저나 예전에 작곡가 라벨은 한 손으로 칠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네 손가락으로 칠 수 있는 피아노곡을 써줄 작곡가는 없는지 모르겠네요.
 

  바람을 맞다(천양희, "너무 많은 입", 창비, 2005)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 「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오려나 거우누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 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천양희 시인의 시집 󰡔너무 많은 입󰡕(창비, 2005)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이 시는 먼저 《현대시학》1월호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2005년 초였으리라 생각된다.


천씨는 미당문학상 후보작 중 독자에게 소개하기로 결정한 ‘바람을 맞다’가 “마들 들판과 수락산의 바람을 맞아가며 틈틈이 구상해두었다가 지난해 11월 가다듬은 시”라고 소개했다. “마침 분위기가 새해와 어울리는 것 같아 시 전문지 ‘현대시학’ 1월호에 신년시로 주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년시로 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시에 담긴 시인의 의도를 따라 읽는 것은 시읽기의 기본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벽두에 잡지에 싣는 시에는 흔히들 아는 그런 것들이 담겨있겠다. 시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러한 제한을 먼저 내거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며칠 전 대학을 졸업한 후배에게 전화를 받았다. 물어볼 것이 있다며, 이 시가 있는데 몇 구절 해석이 안 되는 곳이 있단다. 그러면서 내가 좀 봐줬으면 한 것이다. 이렇게 물어온 그 후배가 나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는데, 참 부담스런 노릇이었다. 더욱이 이 시를 학교현장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에 내 멋대로의 해석은 다소 부적합하다는 사실이 이런 부담을 가중 시켰던 것이다.

 

  먼저 이 시를 한번 읽어낸 후의 인상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첫 구절은 보면 ‘바람이 일어’서고, ‘초록빛 생명’이 중첩되면서, 생동감을 일으킨다. 건너 뛰어 마지막 구절로 가보아도 “여장부처럼/바람이 일어선다”고 말하고 있어 ‘일어섬’의 의지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그 반대적 의미와 견주어 생각해볼 때, 거기에는 무엇에 대한 지향과 의지, 그리고 생동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우선은 전반부의 ‘초록빛 생명’, ‘영원한 초록빛 생명’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생명’에 대한 언급은 인간적 삶의 언급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중반부에서 보여지듯 “우리도 바람 속을 넘어왔다”는 것이다. 삶의 굽이굽이를 ‘넘어왔다’는 사실은 또한 앞으로도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삶에 대해 ‘여장부처럼’ 담대히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마무리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렇듯 이 시는 큰 어려움 없이 읽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시를 더욱 시적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바람’이 가지는 중충적, 다의적 의미이다. 다시 말해, 이 시에서 ‘바람’은 다양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고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선 1행에서 ‘바람’은 ‘일어선다’라는 서술어의 도움으로 생명을 동하게 하는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바람’은 바람[望]과 동의적으로 이해되어도 좋을 것이다. 3행에서 ‘바람’은 이와는 달리 다소 부정적 의미에서 이해된다. 슈베르트의 「마왕」이 비유적 의미로 동원되면서 ‘마왕’의 유혹과 현혹의 목소리가 아이를 죽게 한 것처럼 ‘초록빛 생명’의 ‘숲을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바람’의 부정적 의미는 7행에서 인간적 삶에 부는 ‘바람’으로서 고난과 시련의 부정적 의미로 기능한다고 하겠다. 10행에서 더욱 확실해지고, 마지막 행에서는 다시 첫 행의 ‘바람’과 같은 의미로 전환된다.

 

  이 시에서 ‘바람’이 가지는 의미는 크게 3가지로 나뉠 수 있겠다. 표면적인 의미의 ‘바람’[風]이 바람[望]이라는 긍정적 의미와 시련과 고난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나뉘어진다. 그러니까 ‘風/望/수난과 시련’이라는 중층으로 ‘바람’은 이해되어진다.

 

  이러한 시의 해석에서 다시 앞서 말한 신년시로 이 시가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새해 벽두 희망을 제시하는 신년시의 기능에 이 시는 충분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 이해는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 정도는 내게 물어온 후배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해석이 잘 되지 않는다는 그 몇 구절은 3행과 8행에서 10행의 “삶은 우리의 수난/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하는 구절이다.

 

  3행의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 「마왕」곡 같아”라는 구절은 몇 가지 사전지식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의 괴테의 말을 인용하고 있고, 이 「마왕」이라는 곡도 괴테의 이야기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위에서 ‘바람’의 중층적 의미를 밝힌 것을 참조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삶은 우리의 수난/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라는 구절은 3행에 걸쳐있다시피 3부분으로 나누어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8행에서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듯이 ‘삶’에도 ‘수난’이 있다는 이야기다. 앞서 ‘초록빛 생명’은 ‘삶’과 연결된다고 이야기했으니 이것도 어려울 것이다 없다. 이어서 행을 바꾸어 나오는 ‘목숨’은 ‘초록빛 생명’, ‘삶’과 이어지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의미의 다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삶’보다는 그 어감이 앞 행의 ‘수난’과 연결되면서 색다르게 다가온다. ‘반성문’은 삶에 대한 성찰이고 그러한 성찰이 없었던 삶에 대해 자성한다.

 

  이어서 10행에서는 보다 뚜렷이 그러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인다.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 행위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적으로 늘 반성하고 자성하며 자신의 삶이 보다 진실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반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어지는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버린” 행위는 삶에서 오는 시련과 고통을 담대히 맞서 이겨내지 못하고 타협하고 피해버리는 그러한 행위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지막 행에서 분명 잘못한 것이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9, 10행이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하나의 성찰이며 거기에 대한 반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바람이 일어선다”. ‘여장부처럼’ 담대히 삶을 살아가겠다는 그 바람을 담고 있는 신년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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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2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년이 다가오니 이 시가 더욱 와닿습니다. 제 서재로 가져가서 볼게요,
시에 대한 섬세한 고찰, 감사합니다.^^

멜기세덱 2007-01-02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는 배혜경님 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