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런데...... 만일 어쩌면 우리에게 다시 그런 식의 결단의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불현듯 그런 불길한 생각을 해 본다. 상황을 조금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지금 우리에게 그런 암울한 결단을 강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암울한 먹구름이 끼어들고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북핵 위기'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전쟁 위기라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점차 눈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낙관적으로 본다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하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라크에처럼 미국이 정말 막무가내로 북한을 공격한다면? 그때 나는 어떤 입장에 서야 할 것이며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인가? 북미간의 축구경기도 아니고 대량 살상이 불 보듯 뻔한 전쟁이라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원하지 않더라도 그 참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설사 100만 분의 1의 가능성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며, 우리 마음속의 이 명백한 불안은 그 가능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쟁이 터지고, 한반도가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그저 내 한 몸, 내 가족만 살겠다고 산으로 숨어들어 갈 것인가? 아니면 그 부당하고 야만적인 전쟁에 대해 모든 것을 걸고 항거할 것인가? 차마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질문이지만, 나는 지금이 이 질문을 감당해 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공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마음속으로라도. 특히 이른바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더 그렇다. 그리고 그러한 비극적 결단의 순간을 맞지 않고 싶다면, 그런 순간이 오지 않도록 지금 당장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2003.02.17"
                                                      김명인,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6, p.28.

  북한이, 우리의 반쪽이, 그 '무서운' 핵을 실험하겠다고 공포하고나서, 그 살벌한 말한마디의 충격에 빠져 별다른 대응책도 제대로 간구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또 한 방의 커다란 사건이 터져버렸다. '그야말로' 핵 실험을 강행해버렸다는, 그 사실을 성대하게 만방에 널리 알린 것이다.

  오늘 한 후배와 저녁을 하면서 내가 물었다. "만약에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그대로 군대로 끌려갈 거냐?", "별 수 있어요. 가야죠, 군대로!", "야! 너는 앞으로 제대로 된 시인은 되기 글렀다. 젠장!"

  나는 오늘 낮, 김명인 선생님으로부터 "북한이 핵 실험 했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읽은 이 책의 위 구절이 떠올랐다. 2003년의 그 '결단'은 2006년 지금의 이 상황에서는 더욱 절실해진 것은 아닐까? 누군가 말했다. "교사는 지성인"이라고. 지성인은 지식인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시인이 되겠다는 그 후배녀석에게 시인이란 무엇일까? 시인이란 존재를 '알바트로스'에 비유했던 그 시인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진보적 지식인'의 최전선에 나는 과감히 시인이란 존재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되겠다는 그 녀석이 '가야죠, 군대로!"라고 말했을때 나는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아하 교사가 되겠다, 시인이 되겠다, 하는 이 못난 인간에게, '결단'은 애초에 불필요했던 것인가?

  북한이 핵 실험을 했다고 해서, 전쟁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2003년의 '백만분의 일'은 현 상황에서 그 '만'자가 떨어지고 남음이 있다. 오늘 일제히 9시 뉴스는 그 소식을 다루면서,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의 가능성을 낮지 않게 점치고 있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추측이다. 만약 미국이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사전에 노무현 정권에 '동의'(?)를 구할 것이다. 그 '동의'에는 'NO'라는 대답은 수반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끝끝내 "NO"를 말할 수 있을까?

  노무현이 노하지 못하고, 한나라가 당근이라 생각하고, 열우당이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땅의 지식인들은 지금 '김명인의 결단'을 자신의 것으로 감당해야할 것이다.

  나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결단'을 내리려고 한다. 이 결단이 공갈이 된다하더라도 이렇게 말하겟다. "나는 이 땅의 전쟁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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