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책을 어떻게 대하시나요? 알라딘에서는 이만한 우문도 없겠습니다만, 책을 귀하고 소중히 여기는 방법들이 요즘은 제각각일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흔히는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는 분이 많으시죠? 그런데 이 밑줄 긋는 도구도 제각각이더라구요. 저는 샤프를 줄곧 이용하는데요, 어떤 분들은 눈에 확 들어오게 색연필이나 형광펜을 이용하시기도 하고, 볼펜을 이용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더라구요.

예전에 저는 워낙에 책을 애지중지 귀하게 여긴 터라, 볼펜은 고사하고 샤프나 연필로도 책에 밑줄을 긋는 것까지 꺼렸더랬습니다.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한 번 읽고 난 후, 기억에 남는 대목을 찾아보려면 한참을 또 뒤적여야하는 어려움이 있더라구요. 요즘은 샤프를 이용해 약간씩 밑줄을 긋는 편이고, 포스트잇 같은 것을 이용해서 표시를 해놓은 방법을 사용한답니다.

어떤 분들은 중요한 대목 등에 책을 접어서 표시하거나 볼펜이나 형광펜 혹은 색연필로 찐하게 표시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기도 하는데, 간혹 좀 지저분하다 싶을 정도까지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런데요, 그런 것들을 보면 참 책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자기 책 표시하겠다고 책표지 등에 매직으로 대문짝 만하게 도배하시는 분들, 이건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심히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제발 그런 거는 좀 안해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이왕 표시를 하신다면 깔끔하게 쓰신다던지, 책도장 같은 걸 이용하신다면 보기 예쁘고 좋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저자들은 책머리말에 뜨거운 용기 받침으로라도 쓰인다면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게 반드시 진심을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나오는 하드커버 책들은 라면 끊여먹을때는 받침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지 싶기도 한데요, 여기 알라딘에는 그러실 분들은 거의 없으실 거라고 사료됩니다. 지나친 기대일까요?

책을 어떻게 대하건, 그건 읽는 분들의 자유시겠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책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공통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책을 귀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다음의 연암 박지원의 말을 보면 억소리가 나실 수도 있겠습니다.

   
 

對書勿欠(대서물흠), 對書勿伸(대서물신), 對書勿睡(대서물수),

若有嚏咳(약유체해), 回首避書(회수피서),

翻紙勿以涎(번지물이연), 標旨勿以爪(표지물이조).
                                                                                         -朴趾源(박지원)-

책을 대해서는 하품을 하지 말고
기지개를 켜지도 말며 졸지도 말아야 한다.
기침이 날 때는 머리를 돌려 책을 피하고
책장을 뒤집되 침을 묻혀서 하지 말고
표지를 할 때 손톱으로 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문장이 좀 기네요. 간단하게 한자 공부를 좀 해보시죠.

첫 3구절은 문형이 유사합니다. 對書, 곧 "책을 대하다"라는 뜻이죠. 對는 대답할 대, 혹은 대할 대입니다. 그리고 축구나 야구 경기에서 "한국 대 일본" 혹은 "현재 스코어 3 대 0" 할 때의 대도 이 對입니다. 勿은 "~지 말다"라는 뜻이고, 欠은 하품 흠입니다. 그러니까 "하품하지 말아라" 이런 뜻이죠. 합쳐보면, "책을 대할 때 하품 하지 말아라."가 됩니다.

伸은 펼 신인데요. 申도 펼 신입니다. 여기에 人(사람 인)이 붙었죠. 그래서 伸은 "몸을 펴다"란 뜻을 더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몸을 펼 때는 흔히 기지개를 펼 때가 되죠. 따라서 여기서는 "기지개를 펴다"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첫 구절과 같은 방식으로 "책을 대할 때는 기지개를 펴지 말아라"라는 뜻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睡는 잠 수, 혹은 잠 잘 수인데요, 여기서는 동사 잠잘 수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책을 대할 때는 잠자지 말아라" 즉 졸지 말라는 얘기죠. 여기까지는 쉽죠?

若은 흔히 같은 약으로 읽는데요, 여기서는 "만약 ~ 라면"으로 해석합니다. 有와 함께 해석하면 "만약 ~가 있다면"으로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다음 두 글자가 어려운 한자입니다. 嚏는 한자변환이 안되서 한자사전 검색을 통해 따올 만큼 흔한 한자는 아닌데요, 이 글자는 기침 체로 읽습니다. 咳도 기침을 뜻하는 기침 해인데요, 굳이 구분을 하자면 嚏는 기침 중에서도 재채기를 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냥 둘이 합쳐서 기침으로 해석하시면 되겠네요. 4번째 구절은 "만약 기침(재채기나 기침)이 날 때는"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자 "기침이 날 때는" 어떻게 하라는 걸까요? 回은 돌 회고, 首는 머리 수입니다. 합치면 "머리를 돌려라"로 해석할 수 있겠죠. 머리를 어디로 돌려야 할까요? 避는 피할 피입니다. 여름에 피서를 가죠? 이때의 피가 이 避입니다. 그러니까 기침이 날 때는 책에 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돌려서 책을 피해" 기침을 하라는 얘기가 되죠.

翻은 날 번인데요. 羽(깃 우)를 보면 뜻을 짐작할 수 있죠. 난다는 뜻에서 파생되어서 뒤집다는 뜻을 더하게 됩니다. 번역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고요, 羽 대시에 飛(날 비)를 붙여서 飜(뒤집을 번)으로 더 자주 씁니다. 간단히 여기서는 뒤집을 번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紙는 잘 아시다시피 종이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翻紙는 "종이를 뒤집다"는 뜻이겠죠? 以는 수단과 도구를 나타낼 때 쓰입니다. "~로써"로 해석하시면 되구요, 涎은 좀 지저분한 글자인데, 침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침 연으로 읽습니다. 합쳐보면, "종이를 뒤집을 때는 침으로써(침을 묻혀서) 하지 말아라"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標는 표시하다라는 뜻입니다. 旨는 뜻 지고요. 標旨는 "뜻을 표시하다"로 직역할 수 있겠는데, 흔히 합쳐서 표지로 자주 쓰입니다. 국어 시간에 표지에 대해서도 배우는데요, 표지판 할 때에 지는 識(기록할 지)를 씁니다. 뭐 대강 비슷한 뜻이라고 보시면 되겠어요. 標旨는 그러니까 어떤 것을 표시해 놓는다는 뜻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爪는 손톱 조를 뜻하죠. 앞 구절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표지를 할 때는 손톱으로써 하지 말아라"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첨언이 필요한 때요, 손톱으로 표지를 하지 말아라는 얘기는 무엇인고 하니, 옛날에는 종이질이 좋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중요한 곳을 표시할 때 종이를 접어 놓기도 했는데, 이렇게 종이를 접어 놓으면 종이가 금방 상해서 접힌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임시 방편으로다가 손톱으로 꾹 눌러서 표지를 해 놓기도 하는데요, 이 경우도 종이가 상하기는 별반 차이가 없겠습니다.

자, 어렵게 문장을 풀어봤는데요, 어지러우시죠? 그런데 어떻게 옛날 선비들이 책을 이렇게 대했을 거란 생각을 해보시니까, 더 어지럽지 않으세요? 뭐하지 말고 뭐하지 말라는 식의 예법들이 많았지만, 책에 대해서까지 이런 제약이 있을줄은 모르셨을 겁니다.

뭐, 예전에 그렇다는 거고, 요즘은 종이 질이 좋아져서 기침을 좀 해도되고, 접어 놓아도 별 탈은 없을 겁니다. 하품도 하고, 기지개도 책을 대놓고 하면 좀 어떻겠습니까마는, 이 구절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점도 책을 귀하게, 소중하게 여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구요? 제 선생님께서 이 구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더하셨는데요,

   
  박지원은 진리가 담긴 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책에 대한 사뭇 경건한 태도를 가졌다. 그래서 책을 베고 자거나, 책으로 그릇을 덮거나 책을 어지럽게 던져두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김영-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진리가 담긴 책"이란 말입니다. 여전에 책은 곧 경전이어서 더욱 그러했겠지만, 오늘날에도 우리가 읽는 책에는 어떤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고, 그런 책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책을 보다 소중히, 귀히 여긴다면, 어느 책에서도 보다 값지고 귀한 진리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책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은 또한 아름다운 세상의 또다른 얼굴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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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28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차마 책에 줄을 못긋겠고..한때는 공책에 책의 제목과 이름 그리고 페이지수를 적어놓고 꼼꼼하게 기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그냥 뭐 막가파식인거죠..

멜기세덱 2007-09-28 01:45   좋아요 0 | URL
어쨌거나, 어떤 식으로 읽건간에, 메피님이야 책을 참 효과적으로 읽으실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게 가장 책을 귀하게 대접하는 것이 아닐까요? ㅋㅋ
저는 워낙에 미련 곰탱이식으로 무식하게 읽어서리....나중에 활용을 제대로 못한다는....ㅋㅋㅋ

로쟈 2007-09-2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공부하는 책들의 경우엔 형광펜을 사용합니다(복사할 때 흔적이 남지 않아서). 그게 나름 책을 '대우'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그냥 꽂아두느니)...

멜기세덱 2007-09-28 01:49   좋아요 0 | URL
저는 '공부하는 책'은 자까지 동원해서 열심히 밑줄을 거요.(사실 공부를 거의 안 하지만....) 몇가지 색볼펜을 이용하기도 하고, 형광펜도 사용하고.
그런데 긋다보면 다 중요한 거 같고, 죄다 모르는 거고 그래서 거의 밑줄로 책을 도배해 버릴 지경까지 되기도 해요...그러면 좀 지저분해 지더라구요...
점점 내공이 쌓여서 로쟈님 반의반만 되도, 좀더 효과적이 될텐뎅....ㅋㅋㅋ
열심히 읽고, 열심히 공부하다보면....저도 언젠간 좋은 방법을 마련할 수 있겠죠? ㅎㅎㅎ(혹시나 좋은 노하우라도.....ㅋㅋ)

순오기 2007-09-28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 잘 새겨둡니다. 저는 밑줄치기 위해서 책을 사는데, 밑줄 쳐 놓으면 나중에 금방 찾을 수 있어서 좋아요. 내가 책을 사랑하는 방법은, 책 읽다가 덮을때는 반드시 책갈피를 이용하죠. 책갈피를 만들어서 책을 빌려줄때도 같이 끼워 줍니다. 절대 그냥 엎어놓거나 책날개로 끼우지 말라고...

멜기세덱 2007-09-29 02:23   좋아요 0 | URL
책 읽다가 잠깐 딴짓할때는 자주 엎어두는뎅....ㅋㅋ
앞으론 순오기님 말씀따라 책을 좀더 곱게 다뤄야 겠어요....ㅋㅋ

2007-09-29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9-29 02:24   좋아요 0 | URL
궁중연인식이라....궁중에서 연애하면 임금님 빼곤 능지처참 당하는거 아닌가요...?ㅋㅋㅋ
따지면 저도 약간 궁중식인뎅....ㅎㅎ

웽스북스 2007-09-2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멜기세덱님, 저는 한자 때문에 좌절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도 이제 책에 한자가 많다고 피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더듬더듬 옥편을 친구삼아 읽고 있답니다 ^^
전 주로 포스트잇 애용, 포스트잇 없음 책끝을 살짝 접고, 밑줄은 샤프보다는 사각사각 연필로 ^^ 없을 땐 볼펜도 쓰고 그래요- 결국 내가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니까요 제가 책을 사랑하는 방법은 많이 밑줄그어주기 ^^

멜기세덱 2007-09-29 02:27   좋아요 0 | URL
ㅎㅎ 멋지단말 감사합니다...ㅎㅎ
얼추 댓글단님들 말씀을 정리 쫙 해보면,
오늘날 책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 책 속에 담긴 소중한 의미(어쩌면 진리)들을 얼마나 잘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간직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하긴 옛날에는 오늘날보다는 현격히 적은 종류의 책 몇을 읽고 또 읽고, 외우고 읊어야 했으니, 계속해서 보아야 할 책을 보다 깨끗하고 온전하게 유지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던 거죠.
말씀대로 "내가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거죠....ㅎㅎ

Jade 2007-09-29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주로 하이테크로 과감하게 쫙쫙 그어버리는데....뜨끔한데요 ^^;;

프레이야 2007-09-29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으며 혹시 자까지 대고 샤프로 밑줄 좍~ 아니신가 했는데 로쟈님 댓글에 덧글 보니
정말 그러셨군요. ㅎㅎ 전 샤프 아니고 그냥 연필 뭉툭하게 깎아서 비뚤게 긋지요.
옆지긴 만년필로 긋더군요. 형광펜은 예전에 공부할 때 쓰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고 ㅋㅋ
그나저나 한자로 풀어주는 명언 시리즈, 좋습니다. 그래도 한자는 어려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