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그의 이름은 꽤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 보면, 이 진중권이란 이름과 마주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책도 많이 내고, 글도 여기저기 자주 쓰고, 똑똑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 같았다. 다만 그 뿐이었다.

진중권을 나는 읽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만을 들어 알 뿐, 그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도 그에 대한 아는 것이 많지 않다.

100분 토론에서 그를 보았다. 말을 참 재밌게도 잘 한다고 느꼈다. <디 워>에 대해 이리저리 논쟁이라고 하기도 뭣 한 소리들로 뜨거웠던 차에, 백 분 토론에서 한 판 붙었던 것이다. 거기서 진중권의 얘기를 참 재밌게도 들었고, 이 놈의 <디 워>가 궁금해졌다. 진중권 책임이다.

<디 워>가 어쨌던 간에,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법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면" 나도 영화를 지금보다는 즐겼으리라. 헛튼 소리다.

<디 워> 논란이 한창 뜨거웠을 때 조차 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진중권의 말을 듣고, 이 <디 워>를 꼭 한 번 봐야겠다 싶던 차에, 오늘 술 한 잔 한김에 심심풀이로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래서 봤다. 아! 진중권이 옳았다.

<디 워>의 내용은 단 세 문장으로 충분히 정리할 수 있겠다.

1. 이무기와 부라퀴가 싸웠다.

2. 이무기가 얼떨결에 여의주를 낼름 주웠다.

3. 이무기가 용 됐다.

아무리 봐도, 이 이상의 줄거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심형래의 위대한 점은 CG 기술이 국산인 것이 아니고, 이 짧디 잛은 내용을 일약 1시간 30분 가량으로 늘렸다는 것이 아닐까? 이건 그야말로 대단한 기술이다. 우리나라 최고 구라로 소문난 황석영도, 여기에 둘째가라면 페미니스트 뺨따구 칠 이문열도, 이 심형래를 따라가기는 힘들지 싶다. 대단하다.

나는 <디 워>가 그래도 가치 있지 싶다. 800만이 넘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는데, 그래서 가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를 같은 극장에서 봤던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이 재밌어 했기 때문이다. 애들이 재밌다면 그만큼의 가치 있음이다. 우리나라 어디에 이만큼이라도 아이들을 재밌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찾아 보면 많지 않음을 절감한다.

<디 워>를 보면서 진중권의 말에 동감했던 것과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작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부라퀴다. 이무기 이놈은 완전 나쁜 놈이다. 용이 되기 위해 부라퀴는 사력을 다한다. 비록 그것이 악마적 행위였지만, 부라퀴는 처절한 정도로 여의주를 갖기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이 이무기란 놈을 보자. 대략 한 두어 번 나왔다. 시작해서 한 번, 끝에서 한 번. 첨 나와서는 인사 한 번 받고, 두번째 나와서 이놈은 용이 됐다. 마지막 등장에서는 어디 숨어 있다가 비겁하게도 부라퀴를 기습하더니, 이내 부라퀴에게 쪽도 못 쓰고 나동그라졌다.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다가 어디서 굴러온 여의주를 낼름 입 속에 넣더니, 용케도 용이 됐다. 이 놈이 용이 되기 위해 용 쓴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이 놈은 용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정작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처절한 투쟁으로 일관한 부라퀴는 여의주를 저 거렁뱅이 이무기한테 넘겨주고 만다.

내가 볼 때 용이 될 자격, 아니 능력면에서 보면 이무기보다는 부라퀴가 훨씬 적합했다. 그러나 결국 이무기가 용이 됐다. 왜냐? 얜 원래 이무기였으니깐.

이는 어찌보면, 오늘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는 아닐까? 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난 놈은 '응애~' 한 번 울고 도련님 대접 깎듯이 받다가 그대로 재벌되고, 못난 서민 자식들은, 아무리 용쓰고 악써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어쩌면 이땅의 가난한 우리들은 부라퀴 보다도 더 처절하게 모든 악을 동원해서라도 투철히 싸우고 기를 써도 재벌되기는 난공불락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디 워>는 '용 한 번 되보려는 태생적으로 못난 부라퀴의 애처로운 투쟁의 비극'으로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이 영화는 오늘날의 현실 인식이 투철한 철학이 담긴 위대한 영화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참고로, 마지막에 "용이 울더라"는 진중권의 말을 나는 확인 못 했지만, 함께 한 친구들이 울긴 울더라고 말해 주었다. 추측건대, 용이 운 것은, 이놈의 이무기가 한 것 없이 용 된 것이 애써 미안했기 때문이지 싶다. 아 가엾은 부라퀴~~ 언젠가는 너도 용 될 날 있을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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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25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 부라퀴가 주인공이다. 크크크크.

멜기세덱 2007-08-25 14:31   좋아요 0 | URL
크크. 부라퀴가 짱이에요. 크크크크.

라주미힌 2007-08-2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글 재밌어요.

멜기세덱 2007-08-25 14:31   좋아요 0 | URL
하하하.. 댓글 감사합니다.

Jade 2007-08-2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이 글 읽고 멜기님이 막 좋아졌어요 ^.^

멜기세덱 2007-08-25 14:33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 전엔 싫어하셨다는....ㅋㅋㅋ

순오기 2007-08-2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저도 진중권 때문에 지난 수요일 홈스테이하는 원어민강사와 같이 봤는데, 반응이 썰렁~ "어린이를 위한 여름방학 선물로 비주얼은 되는데 풀롯은 꽝!"
님의 글처럼 부라퀴가 주인공이라는 말 딱 맞습니다!

멜기세덱 2007-08-26 16:57   좋아요 0 | URL
홈스테이를 하시는 군요....ㅎㅎ 근데, '원어민'이라는 말이 썩 좋지 못하다고 그러더라구요.....ㅎㅎ
하여간에 부라퀴가 짱입니다.

프레이야 2007-08-26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해외비평가들의 비평이 매섭더군요.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할 건데.. 다들 왜그리 두루뭉술하게 몰려다니며 그러는지..
개도 소도 분명 눈물 흘리며 우는 동물들이니까, 용도 상상의 동물이긴 해도 동물이니
아마 눈물 흘릴 줄 알거에요^^

멜기세덱 2007-08-27 01:55   좋아요 0 | URL
해외의 평들이야 이미 예상했던거잖아요....ㅎㅎ
근데, 동물이 눈물을 흘리는 것과, 우는 것은 좀 다른 거 같아요...ㅎㅎ
우는 것은 다분히 인간적 산물이 아닐까해요. 동물과 인간을 눈물을 매개로 동질화하는 것은 동물에 대한 무례가 아닐까요? ㅎㅎ 헛소리였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