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4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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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범죄가 개인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이방인처럼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P. 420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아니었다면 관심 없었을 파놉티콘을 꼼꼼하게 보고 싶었다. 마침 ‘책세상’에서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이 나왔기에 숨가쁘게 읽었다. 이 책은 영어판이 아니라 1791년에 출간된 프랑스어 판본을 대본으로 삼아 번역했다. ‘제러미 벤담이 프랑스 국민의회 의원 가랑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친구 뒤몽이 요약해서 ‘감시 시설, 특히 감옥에 대한 새로운 원리에 관한 논문’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내용이다. 벤담이 프랑스에 직접가지 않고도 쉽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요약한 논문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상세한 건축 시설에 대한 내용들은 전부 생략되어 있으며 파놉티콘의 체계와 운영방식, 특징과 장점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벤덤이 주장하는 공리주의와 초기 자본주의를 대표할 만한 건축 형태로서 ‘파놉티콘’을 내세운 푸코의 힘이 아니었다면 다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근대 이전에 재판과 형벌을 기다리는 장소에서 감금이라는 처벌보다 재사회화의 기능을 떠맡았던 감옥은 사회적 이익을 중시한 공리주의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스스로를 통제함으로써 규율화된 인간을 만들려는 전략은 근대의 작동원리로서 현재까지 유효하다.

  21세기의 정보 산업화 사회에서도 이 통제 시스템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으며 역사적 관점으로 살펴볼 때 이러한 시스템의 미래는 여전히 폭력적인 수준으로 발달할 것으로 보인다. 비판적 관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근대의 작동원리라는 측면에서 ‘파놉티콘’은 미래 사회를 비춰보는 탐조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조지오웰이 예견했던 사회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단순 비교하면서 부정적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개인과 인권이 중시되는 사회가 옳으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논쟁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 어떤 삶을 추구하느냐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넘어 개인의 선택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관은 마치 유령처럼 군림한다. 이 유령은 필요할 때는 곧바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드러낼 수 있다.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panoptique/panopticon)이라고 부를 것이다. - P. 23


  얼마나 많은 시선과 감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교통카드는 초단위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으며 길거리와 건물마다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거시적, 미시적 관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피할 수 없는 시선들에 둘러싸여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서로서로 감시의 눈길을 거두기 힘들만큼 익숙해지고 있다. 유령처럼 군림하고 있는 감독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공간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규율적 제도와 폭력적 시선들은 개인들에게 자기검열 기제로 작동한다. 스스로, 알아서 기어다닌다. 조심하고 방심하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익숙한 시선들 속에서 무덤하게 지내거나 무시해 버리기도 한다. 개인정보는 이미 공유되어 있으며 사생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정말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커다란 권력이나 힘있는 자의 특권이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혹은 기울이지 않아도 쉽게 알려지는 수단과 방법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벤담은 파놉티콘을 공리적 관점이나 초기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로 제시했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파놉티콘’이 기능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누구에 의한 어떠한 제안이든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합의없이 주장되고 실행되었다면 분명한 폭력이다. 그토록 갈망했던 감시체계의 감시자가 되지 못했지만 벤덤은 자신의 구상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전 재산과 인생을 걸고 올인했다. 이후에 비슷한 형태의 감옥이 지어지고 실행되었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파놉티콘 체제보다 월등한 감시체계와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다.

  불과 몇 백년 동안 사람들의 삶은 빠르게 변해왔으며 그 형태와 기능 면에서 비교를 불허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가 ‘빅브라더’가 되고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병영에 도착하는 순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모든 자유를 포기하고 벤덤이 그토록 갈망했던 일망 감시체계의 시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책의 말미에서 그가 주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기 전에 적절한 에피타이저로 이 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이 원리는 다행스럽게도 학교나 병영, 즉 한 사람이 다수를 감독하는 일을 맡는 경우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 파놉티콘 장치를 통해 단 한 사람에 의한 용의주도함의 이점은 다른 체계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성실함보다 더 나은 성공을 보장한다. - P. 70


07090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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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오늘에게 묻는다 - 청소년들이 만난 한국의 지성 12인, 푸른교양 001
논 편집부 엮음 / 초암네트웍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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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입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고교 교육은 정상화 될 수 없으며 초중등 교육도 마찬가지다. 대입제도는 대학의 서열화를 해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어 능력과 실력 위주의 사회 풍토를 정착시켜야 하며 신자유주의 질서에 편승한 경쟁적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들은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대입제도 변화의 핵으로 자리 잡으며 전 국민을 ‘논술’의 광풍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논술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 학생 선발을 위해 출제되는 논술시험과 통합적 사고가 요구되는 삶을 위한 논술은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가? 누구나 고민을 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해답은 찾기 어렵고 모두가 준비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논술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과 공포를 빌미로 학원은 돈을 벌기 시작했고 학교와 교사들은 굼뜬 동작으로 현실을 지켜본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작은 변화와 실천적 노력의 성과들을 묶어낸 책 <내일이 오늘에게 묻는다>는 책으로서 의미보다 방향과 설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청소년들이 직접 주체가 되어 사회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지식인들을 찾아 나섰다. 열두 명의 지식인을 찾아가 한 명 혹은 여러 명이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대담들을 묶은 책이다. 이 책은 내용보다 형식을, 구성보다 방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이 인터뷰 형식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심층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내용이나 형식들이 틀에 갇혀있고 답변의 내용이 전체를 조망하는 역할만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열린 지식인으로 선발됐을 법한 지성인들과의 만남이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현행과 같은 교육제도에서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기회를 가진 학생들의 생각과 의식이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에게 하나의 자극이 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권혁범, 임지현, 김상봉, 정희준, 강맑실, 백기완, 홍세화, 황대권, 정재환, 조희연, 이정우, 나희덕. 이상 열두 명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고등학생들에게 접해보지 못한 사회의 문제와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학생들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관심들이고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들이다. 교과서와 입시 위주의 현행 교육제도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짙어지게 하는 내용들이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월간 <논>이라고 하는 학생용 논술 잡지에서 기획했고 초암아카데미에서 발행한 대입 논술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데 있다. 목적과 방법이 왜곡될 여지가 남아 있어 조금 아쉽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관한 부록도 학생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피상적이고 수박 겉핥기식 대담으로 깊이가 없고 짧은 분량으로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약점은 책의 의도와 학생들과 지성인들과의 직접 대면이라는 형식에 가려질 만하다.

  그들은 우리의 내일이다. 책의 제목처럼 ‘내일’이 ‘오늘’에게, 미래가 현재에게 묻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나아갈 방향과 지표들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이라는 망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눈과 비판적 안목을 길러주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학생들의 자세가 절실한 현실에서 학생들이 한 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다.

  삶의 방향과 생의 목적을 묻는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기였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살아가야할 사회에 대하 보다 진지하고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청소년들에게 열린 공간과 기회를 주어야 하며 현재의 어른들이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과 그들이 고민해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의미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오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이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아닌가 싶다.


0708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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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6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한 리뷰, 추천입니다^^

sceptic 2007-08-1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게 너무 진지하다는 단점이 있죠...^^
 
여럿이 함께 -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
신영복 외 지음, 프레시안 엮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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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론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이 땅에 참언론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은 각기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피상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요구하는 독자들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찌 보면 모든 언론에서 ‘객관성’이 가능한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하나의 관점은 하나의 태도이다. 편향된 관점의 언론이 사람들의 눈과 입을 대변한다면 건전한 비판 기능과 다양한 시선들은 사라지게 된다.

  시장점유율과 언론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언론의 태도와 입장은 정치권력과 사회현상에 대해 일관성 있는 입장을 표명하지 못한다는데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 소수자가 아닌 소수 기득권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부끄럼 없이 자임하고 나선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언론을 통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계급과 입장과 상반된 태도와 의견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착각한다.

  우민화된 대중은 다중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사회를 보는 눈과 귀가 흐려진다. 사회 변혁의 힘과 추동력은 하나로 결집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가 반복된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의 힘에 기대어 한미FTA나 경제성장만이 나의 생활을 개선해 줄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품는다.

  인터넷은 탈근대를 향한 마지막 비상구가 될지도 모른다. 종이신문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정보의 제공과 분석 능력은 독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여론의 형성과 독자들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실천되고 끊임없이 고민되어야 마땅하다. 오마이뉴스나 프FP시안과 같은 매체의 등장은 새로운 대안 언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나가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며 우리가가 믿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시선을 교정해 줄 필요가 있다. 판단은 물론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한겨레는 출판을 겸하고 있다. 프러시안도 출판을 선언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출판된 <여럿이함께>는 창간 5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시대의 지식인 다섯 명의 특강을 정리했다.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이 그들이다. 이들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과 미래 삶의 지표들을 올바로 제시하고 있다는 믿음 또한 순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비판적 관점에서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나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들에 대한 성찰을 통해 독자들의 눈을 열어줄 수 있는 실마리는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매년 봄에 한겨레 창간 10주년을 기념하면서 매년 특강을 책으로 묶어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을 펴냈다. <여럿이 함께>도 프레시안의 창간 5주년과 함께 독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나섰다. 진보와 개혁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와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보다 큰 진폭을 가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녀야 한다.

  대립과 갈등의 시대에 진정한 ‘소통’에 방점을 찍은 신영복, 한미FTA의 대한 반론을 제기하며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김종철, 민주화 운동이 현실적인 ‘정치’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최장집, 시민운동을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하는 박원순, 한반도 통일의 해법을 제시하는 백낙청의 목소리는 저마다 큰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 낸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과 진실 사이를 가로지르는 눈과 귀를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섯 명의 대표적 지식인의 몫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 시대를 살아내는 힘은 우리에게서 나온다. 정치와 권력을 목적으로 자본의 힘과 본질을 호도하는 신문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전해줄 수 있는 언론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이 주는 힘은 1년치 신문에서 발견하지 못한 인식의 힘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대중의 눈과 귀를 씻어주고 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과 현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아니라 <여럿이함께> 나아갈 수 있는 여유과 자세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그것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방법이며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럿이함께> 걷다 보면 길은 그 뒤에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과거가 우리에게 제언한 유일한 교훈이다. 미래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시공간들이기 때문이다.


07080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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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의 지층들 - 현대사회론 강의
이진경 엮음 / 그린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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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더니티라는 개념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 궁금했다. 21세기의 관점에서 우리가 말하는 모더니티는 한 시대를 통어하는 개념일 수 있을까? 지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개념은 분명하게 달라질 것이고 미래의 관점에서 오늘은 또 어떤 이름으로 규정될 지 흥미롭다. 한 시대에 속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시대정신’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우리가 쉽게 선택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과거에서 그 의미와 해답을 찾는 것이다. 역사적 관점은 오늘의 현상들을 밝혀내고 미래를 예측하거나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중의 하나이다.

  이진경이 편저한 <모더니티의 지층들>은 ‘모더니티’라는 개념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이다. 제목에 드러나듯이 모더니티는 하나의 방법과 관점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개별 학문들 간의 통섭이 불가능하다면 연구자들의 결과물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밖에 없다. 이진경은 모더니티를 일단 이렇게 정의한다.

모더니티, 혹은 근대성이란 근대적 형태의 합리성을 뜻하고, 그것은 계산가능성을 그리고 계산에 따른 통제 가능성을 그 원리로 한다. - P. 38

  사회적 현상으로 이 개념을 이해할 때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적 삶과 생활 방식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그 본질과 근원을 파악하는 일이 이 개념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우리가 보통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근대 이후의 사고방식이며 그것은 계산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겠지만 계량화하거나 수치화된 숫자를 통해서 이해하고 인과성을 바탕으로 인식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은 물물교환의 대체 수단으로 인식되는 화폐가 등장한 이후의 삶의 양식을 돌아보게 한다. 중세적 삶의 양식에서 벗어나 인클로저 운동 이후의 근대적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지점을 근대의 출발로 보아야 한다. 편저자인 이진경은 근대성의 이론에서 이런 개념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다. 합리성이나 과학혁명 혹은 근대사회와 근대성의 개념을 공리주의와 연계시켜 ‘근대성’의 개념을 밝혀 놓았다.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의 공리계나 노동의 체계를 중심으로 화폐의 권력을 점검하고 계급이론을 설명한다. 이수영과 한경애, 조원광의 글들은 각각의 개념을 하나의 주제로 잡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 전체가 열 네 개의 강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더니티라는 개념을 중심축으로 정교하게 조합되어 있다. 같은 연구 공간의 연구자들이기 때문에 중복과 접근 방식의 한계는 일정부분 감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화폐나 노동의 체계, 계급이론이라는 작은 주제들이 근대성의 관점에서 다뤄지고 있지만 문화적 현상이나 역사적 관점들이 치밀하고 정교하지 못한 부분들이 보인다.

 하지만 일관성과 통일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여러 명의 연구자들에 의해 쓰여진 책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꼼꼼하고 폭넓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문장이나 내용도 잘 다듬어져 있어 산만한 느낌은 없다. 한경애가 쓴 ‘화폐의 권력, 반화폐의 정치학’ 일부이다.

기억하자. 시간은 금이라는 말은 시간에 대한 찬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것은 인간의 활동을 시간 단위로 구매해야 하는 자본의 조건이며, 그 시간을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기 위한 자본의 명령이고, 인간의 모든 활동을 노동으로 바꿔 가치를 생산하려는 자본의 욕망이다. 그러나 화폐가 삶의 목표가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활동을 노동으로 바꾸려 하고, 노동하지 않는 시간조차 스스로를 더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투자하며 시간은 금이라는 자본의 명령을 내면화한다. - P. 121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화페나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생활에 침투해왔는지 그것들의 기능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의 속성과 문제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절대적 영향력과 그 대안들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근대적 사회 체제와 현대 자본주의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어린이와 주거공간에 관한 문제는 흥미롭다. 근대 도시의 기원과 건축에 관한 논의도 재미있고 이동과 정착의 사회학도, 폴리스의 정치학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힌다. 눈에 띄는 몇 개의 문장이다.

우리는 17세기 이래로 거리에서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 안으로  쫓겨 들어가야 했던 역사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순수함을 만끽할 수 있다고 선전되는 놀이공간과 훈육만을 권장하는 학교공간의 분리, 그리고 이 양쪽을 동시에 손에 쥐고 아이들을 휘두르는 어머니의 가정. 이 안에서 움직이는 ‘어린이만을 위한 문화’란 과연 중세 유럽의 거리에서보다 더 많은 웃음과 행복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일까? - P. 200

노동자계급에게 ‘가족주의’란 19세기의 박애주의자들이 코뮨주의자들의 위협에 대항하면서 노동자들의 욕망을 포섭하고, 그들의 생활을 가족으로 영토화하기 위하여 고안한 계급적 전략의 이름이다. - P. 230

  제도화된 학교와 도시 소시민들의 기본적인 삶의 토대인 가족주의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혹은 그것들은 우리 삶을 어떤 형태로 바꿔 놓았는지 무수히 많은 반성과 대안의 모색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굳어졌다. 당연하게 믿어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지금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직결된다. 외부자의 시선과 내부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들의 한계와 모순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화두를 제공한다.

  문제는 결국 현재의 자본주의와 미래의 자본주의로 옮겨지고 생명 윤리와 경제학의 관계 그리고 소수자와 제국, 다중의 문제를 종착역으로 삼는다. 결국 모든 논의들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으로 요약된다. 그것들의 발원지를 확인하고 주변에서 흔히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원인과 결과들을 파악하고 미래의 문제들을 고민하는 긴 과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정치와 권력이 생겨나고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화폐가 등장하고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그밖의 모든 것들이 자본에 수렴되는 지난한 과정들이 인류의 역사에서 ‘근대’라고 명명되는 불과 몇 백년간의 과정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고 폭넓은 사색이 없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나와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삶은 계속되고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이라는 순진한 희망을 버리고 현실을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들을 계속해서 외면할 것인가? 끊임없이 분화되고 다양해지는 개인과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 자본주의로 질주하는 우리들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것이 설령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근대가 동일성으로 구축된 시공간이라면, 탈근대는 다양성을 지향한다. 탈근대 자본주의는 차이들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차이들을 긍정하고 그것을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배열한다. 자본의 세계화는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를 찬양한다. - P. 399


07080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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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0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보관함에 담아두어야겠군요ㅎㅎ
 
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
권인숙 지음, 유지연 그림 / 청년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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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녀평등’이란 용어 자체도 남성이 용어의 앞에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양성평등’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나이와 지역을 불문하고 여성에 대한 시각과 편견은 거의 유전형질처럼 변형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역사와 문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그것이 차별인줄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아이에게는 빨간색이나 분홍색 옷을, 남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옷을 사준다. 집에서부터 “아니, 여자애가~~”, “넌, 남자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잔소리나 훈계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도 남자 아이는 의사 역할을 여자 아이는 간호사 역할로 성역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각인하기 시작한다. 학교에 입학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여학생은 문과 남학생은 이과가 적성에 맞는다는 진로 지도에서부터 각종 생활지도나 암묵적인 시선과 제약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벽은 견고하고 두텁기만 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각종 고시에서 여성들의 우수성이 입증되지만 반대로 공정한 경쟁시험이 아닌 채용 경쟁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결혼이나 출산 등과 관련된 문제들은 개인의 문제를 벗어나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근본 원인이나 대책보다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심각한 출산율 저하에 대한 접근 방법과 시각 그리고 사회적 합의나 대책들이 오히려 더 심각해 보인다.

  권인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이제 나이가 제법 들어가는 세대일 것이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여성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세대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양성평등 이야기>는 시각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동일한 문제를 다르게 본다는 특징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왜 잘못 되었냐고 이야기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읽혀져야 한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사고방식과 보이지 않는 편견은 암보다 무섭다. 누가 가르치지 않았어도 부모의 역할과 관계를 학습했거나 학교나 사회에서 잠재적으로 습득한 방식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 딸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딸에게 이야기하듯이 편안한 설명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부모가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물론 필독서로 권장할 만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고치지 않은 생각과 행동들을 돌아보게 한다. 더구나 미래에 여성 문제는 단순히 차별과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 남성과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양성평등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이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 여동생, 딸에 대한 생각이나 시각과 다른 여성에 대한 그것이 다르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어머니의 희생, 외모지상주의, 남자와 여자의 성, 노동 현실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평등하거나 대등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곳이 대다수이다.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단순하게 여성을 ‘보호’하거나 ‘배려’하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수십 년 전에 비해서도 지금은 물론 여성들의 권익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의 차별과 편견들이 숨어 있다. 인간의 범주에서조차 제외되던 여성의 문제가 이제는 평등이라는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버려야할 많은 선입견과 뿌리 깊은 관습적 사고들이 아직도 많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내면화된 의식과 무관하지 않으며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수많은 기득권들도 이런 이유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뒤처진 공부를 보충하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번 방학에는 이 책 한권을 부모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일 것이다. 생활과 습관 속에서, 우리의 관념 속에서 얼마나 실천하느냐의 문제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예들이 책에 언급되어 있지만 그들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으로 만들어지기 위한 노력과 실천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교육의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나친 피해의식이나 대책없는 비난도 문제지만 관습적인 태도나 무의식적인 행동들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쯤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의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싶다.


070726-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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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2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내가 뭘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야..^^

sceptic 2007-08-01 11:13   좋아요 0 | URL
나이들어 가는 세대 맞잖아요...^^

비로그인 2007-07-27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내에서의 여성의 자리도 생각해야할게 많지요.

sceptic 2007-08-01 11:12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가정에서는 훨씬 더 심각하죠...모든 양성평등의 출발은 가정에서부터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