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 살림지식총서 293
백승욱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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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현실 정치나 사회구조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의 이론이나 이데올로기의 전파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행동으로 결집시켜 응집력있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져야만 가능하다. 지속적인 노력과 각성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진보는 개혁과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과거의 어느 시점보다 나아졌다고 단언하기 어려워 보인다. 군사 독재 시절의 비민주적 압살에 비하면 행복하다고 자위할 수 있지만 삶의 질에 대한 문제와 아비투스의 대물림으로 세습적 계층 구조가 고착되고 현상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의 사회주의는 소련을 모방한 부분이 있지만 색깔이 많이 다르다. 문화적 토대가 다르고 혁명의 과정이 달라서이기도 하겠다.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혁명 정신도 빛이 바래고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관심과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 속에서 그들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백승욱의 <문화대혁명>은 이런 고민들과 함께 아직도 혁명으로부터의 거리 때문에 명확한 원인과 결과를 말하기 어려운 일들을 소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1966년 8월 8일 통과된 「문혁 16조」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문건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새로운 단계로서 “현재 우리의 목적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와 싸워 이를 물리치고, 부르주아 계급의 반동 학술 ‘권위’를 비판하고, 부르주아 계급과 모든 착취계급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교육을 개혁하고, 문예를 개혁하고, 사회주의 경제 토대와 맞지 않는 모든 상부구조를 개혁하여, 사회주의 제도의 공고화 발전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매우 복잡한 역사적 경험이기 때문에 그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해석 또한 다양하다. 크게 대별하면 권력 투쟁설과 마오쩌둥의 고결한 이상과 대안적 모델을 향한 유토피아적 전망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다. 시대적 맥락 속에서 검토하면 사회주의와 당의 관계,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당의 지도를 둘러싼 갈등의 증폭이 갈등이 표출되는 방식의 핵심 쟁점이었다. 다양한 접근 방식과 해석으로 그 의미를 펼쳐 보이고 있지만 저자의 말대로 아직도 진행형의 사건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40년이 지났지만 문화대혁명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커다란 변혁 운동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로 혹은 변화의 계기로 기억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문화대혁명 그 후의 문제일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수많은 대립 구도와 무장 충돌이 벌어졌으면서도 제도적으로 무엇을 남겼는지 불명확하다는 것은 상징성 이상의 현실성을 갖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의 제도적 틀 속으로 다시 포섭되었다는 것은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1989년의 6.4 천안문 사건은 그것이 문화대혁명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는 이유 때문에 더 이상 운동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억압되어 끝나버렸다. 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복기를 거쳐 결실을 맺기도 하고 불씨가 사그라지기도 한다.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와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은 단순화 시킬 수 없다.

  개혁 개방 정책으로 중요한 변곡점 위에 서 있는 중국에는 벌써 빈부격차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심각한 사회 문제들이 하나 둘씩 터져 나오고 있다. 자급자족의 국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화 개방화 시기에 적응할 수 있는 사회주의와 혁명의 계속성 사이에서 중국의 고민은 깊어갈 것이다. 종류가 다르지만 우리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변화와 개혁의 시기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라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변화 시켜야 하며, 우리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짚어나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사회의 제도적 형태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지금-여기에서 출발한다면 그 고민의 폭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내다본다면 문제가 조금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나라에 적용하거나 대안을 모색하기는 힘들겠지만 문화대혁명이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변혁의 시점에 서 있다고 믿는 우리 사회를 점검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모든 반역은 정당하다(造反有理)’는 구호들이 살아 숨쉬는 혁명의 언어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071107-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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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후 직업의 미래 살림지식총서 288
김준성(김농주) 지음 / 살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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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는 알 수 없다. 다만, 예측이 가능할 뿐이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에서 국회의 동의 절차가 남아 있다. 어떤 형태로든 체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 힐러리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으며 한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어느 쪽도 쉬워보이지 않지만 국익을 빙자한 가진자들의 협상은 힘겨루기 양상을 띤 후 현실로 나타날 전망이다.

  그 빛과 그림자는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아야 할 미래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논의도 토론도 전망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직업’과 직결된다. 어떻게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막막하다. 다른 측면에서 밥도 안 됐는데 숟가락 놓는 격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한미 FTA 이후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김준성의 <한미 FTA 후 직업의 미래>는 이런 불안에 대한 작은 고민이다. 고통스러운 미래가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현실은 요지부동이고 바꾸고 움직여야 하는 우리는 여전히 어찌할 바 모르고 비관적 전망만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미 FTA는 취약한 산업의 생산력 약화, 구조조정 심화, 소득 불균형 심화, 자원 배분의 효율성, 무역과 투자 촉진, 직업인의 국경 이동 등이 전망되며 직업 환경에도 양극화가 불어 닥칠 것으로 저자는 진단한다.

  법률, 의료, 금용, 언론과 광고, 문화산업, 디자인, 컴퓨터 게임, 부동산, 제조업으로 나누어 스치듯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살림 총서 ‘답게’ 깊이 없이 생각의 단초만을 제시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가볍지만 무거운 고민거리들을 던져준다. 어느 분야든 거대 자본과 경쟁력이 시장을 잠식할 것이며 우리는 그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뒤 멕시코의 일자리는 21% 가량 감소했고 농촌의 일자리는 130만개 사라졌다. 일시적으로 호황을 맞았으며 일부 수출업자들은 거대한 수익을 얻었고 할 일도 많아졌다. 그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미래의 우리의 삶은 평화롭지 못하다. 끊임없는 경쟁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수출은 늘어나지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상황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오히려 감소할 위험도 크다.

  특히, 앞서 나열한 부문들에 대한 저자의 걱정은 취약한 기반과 온실에서 자란 화초 같은 부분들에 집중되어 있다. 컴퓨터 게임이나 문화산업, 디자인 등에서 희비가 엇갈릴 수 있고 법률과 의료, 금융, 부동산 등은 시장 개방과 동시에 거대한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국민 각자가 맡은 영역이 무풍지대가 될 순 없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머리카락만 날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한미 FTA 이후 10대 유망 직업이라고 제시한 것은 외국 투자은행의 준법 감시인, 성우, 컴퓨터 게임 기획가, 기업 인수 합병 전문가, 스포츠 패션 머천다이저, 선박 펀드 전문가, 싱어송라이터, 여객기 조종사, 국제 축구 저널리스트, 인력 자원 전문가이다. 이 밖에도 새로운 직업이 다수 등장할 것이고 기존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준비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삶의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또한 저자는 한미 FTA 시대에 유망한 미국 자격증도 제시한다. 미국 가족 및 결혼 상담사 자격증, 미국 화재 조사관 자격증, 미국 변호사 자격증, 미국 항공정비사 자격증, 미국 한의사 자격증, 미국 퍼스널트레이너 자격증, 미국 파이낸셜리스크(FRM) 자격증, 미국 의사 자격증,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그것이다.

  한미 FTA 이후 한국의 직업 시장은 크게 변할 것이다. 직업이 서로 결합하고, 지구 환경을 다루는 새로운 형태의 직업이 생길 것이며, 지식을 다루는 직업이 각광받고, 대중예술과 관련된 직업이 주목받으며 브랜드 관련 직업이 호황을 누릴 것이라는 저자의 전망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글퍼지는 것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글로벌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 가치를 극대해야 하는 시대를 숙명처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일이 어디 쉬울까마는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행복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 삶은 계속될 것이고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시장 분석을 철저히 해서 유망한 직업을 미래 준비해야 하는 세대보다 생존이 달려있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준비와 고민을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국가와 정부는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 대통령 선거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살피고 준비해야 할 미래를 고민하는 놈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선택할 것이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며 시지프스의 신화를 기억해야 한다.


07101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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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7-10-3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주의 리뷰 당선되셨어요~ 축하드려요 ^^

sceptic 2007-11-01 22:42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순오기 2007-11-02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고나니 고3,중2,초6 삼남매의 불투명한 미래가 마구 걱정되어서...이 책 한번 봐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희망'이란 이름에 기대고 열심히 물주며 키우렵니다!!
이주의 리뷰 축하합니다!

sceptic 2007-11-04 19:32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답을 제시해주지 못할 테지만, 고민의 한 자락은 제공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희 아이들에게 '희망'을 버릴 수는 없지요. 유일한 우리들의 미래이니까요.

비로그인 2007-11-0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에 당선되셨에요? ㅎㅎ ^^
FTA에 대해 수업시간에 배운적은 있지만 법률적 문제밖엔 다루지 않기 때문에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무지했어요.
글을 읽고 나니 막막해지네요. 내 자신의 가치를 점수로 매겨보면 몇점이나 될까.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sceptic 2007-11-04 19:33   좋아요 0 | URL
이주의 리뷰...잊을만하면 한번씩..ㅋㅋ..감사하죠...책 몇 권이 또 생겼으니...

자신의 가치는 기준과 잣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수량화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죠...우리는 서로 너무 소중하지 않나요? 그냥 '나'이니까요...
 
촘스키의 아나키즘
노암 촘스키 지음, 이정아 옮김 / 해토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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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상해봐, 천국이 없다고
노력하면 너무 쉬워
우리 밑에 지옥도 없다고
우리 위에는 하늘뿐이라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산다고 

상상해봐, 어떤 국가도 없다고
그건 어렵지 않아
누구도 그 때문에 죽이거나 죽지 않고
또 어떤 종교도 없다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고
넌 날 꿈꾸는 사람이라고 할지 몰라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나는 언젠가 네가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
그러면 세계는 하나가 되겠지

상상해봐, 어떤 사유私有도 없다고
넌 상상할 수 있을 거야
탐욕도 굶주림도 없다고
모두가 형제라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세계를 공유한다고

넌 날 꿈꾸는 사람이라고 할지 몰라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나는 언젠가 네가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
그러면 세계는 하나가 되겠지

  존 레논의 ‘Imagine’이다. 반자본, 반국가, 반종교를 외치는 이 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광고음악으로 자주 사용되곤 했다. 한참 동안 핸드폰 컬러링으로 사용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팝송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박홍규의 <아나키즘 이야기>에서 첫 페이지를 여는 노래이기도 하다.  

  아나키즘은 자유이다.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 인간이 꿈꾸는 완전한 세상이다. 이념적 성향으로 분류하면 아나키즘도 다양한 방식을 추구한다. 사회주의와 모호한 경계를 드러낼 때도 있고 개인주의나 자유주의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정교한 이념적 틀이 중요하지는 않다.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 그리고 최초의 <최초의 아나키스트>의 주인공 윌리엄 고드윈의 생각도 아나키즘을 대표할 수는 없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고 세상은 변하고 있다. 아나키즘은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쉽게 규정되거나 함부로 단정짓기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지닌 채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형생성문법’으로 구조주의 언어학의 기틀을 마련한 촘스키는 늘 사회를 향해 발언한다.  

  <촘스키의 아나키즘>은 그래서 새롭게 보이지는 않는다.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지금까지 촘스키가 보여주었던 사유의 진폭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냉엄한 비판과 소수의 자본가와 권력자들을 향한 비판의 칼날은 세월이 흘러도 무뎌지지 않는다. 그를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언어에 대한 분석과 학문적 바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청년정신으로 살아가는 그의 생각이나 글들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풍향계의 역할을 해준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분히 미국적 현실에서 미국의 지성인으로 미국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국내용으로 그를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다. 자본주의의 절정에 선 나라에서 국가를 넘어 제국으로 치닫는 미국에 대한 그의 생각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판단으로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열 살 때부터 그를 매료시켰다는 아나키즘은 도대체 어떤 사상인가? 단순하게 정부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오해의 소지가 있고 편견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으니 그냥 아나키즘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무정부주의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분명 반자본주의다. 그러나 무정부주의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도 반대한다. - P. 59

  어쨌든 이 책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촘스키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명확한 개념을 밝히거나 아나키즘의 구체적 아젠다를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각종 강연회나 인터뷰를 통해 철저하게 현실 사회의 모순에 대한 촘스키의 눈과 입을 빌려 아나키즘에 대한 이야기를 적용해 나간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읽을 만하다. 

  억압과 구속이 무엇인지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촘스키의 메시지는 오히려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말하는 방식이나 그의 눈에 비친 모습들을 이해조차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족쇄와 견딜 수 없는 모순들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겠다. 공무원과 국가를 상전처럼 모시고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한 번쯤 불합리하다고 느껴 본 사람이라면 함께 공감할 수 있다.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자유’나 ‘혁명’ ‘피’의 이미지로 대변되지 않는 아나키즘을 생각하며 엉뚱한 시가 떠오른 이유를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오늘은 머리가 엉켜버렸으므로.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07100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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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10-05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만 할 수 있으면 즐겁지요.아나키즘처럼 이상적이며 낭만적인 것이 어디있겠습니까...인류가 사라지지 않는하 규제적 이념정도로만 '이매진'될 것입니다.그것도 의미없는 일은 아니지만...보이지않는 모순들을 보더라도 아나키즘적 방법이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읽던 테리이글턴의 <성스러운 테러>의 한대목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형식에 대한 집착이나 형식을 부인하는 니힐리즘,독재와 아나키가 실상 한 동전의 이면임을 알아야한다." 독재와 아나키를 같은 선상에 놓은 것은 동의할 수 없지만 어떤 맥락에서 이 논의가 나왔는지는 알기때문 뉘앙스는 이해합니다.멀리 거슬러올라가면 마르크스와 바쿠닌 논쟁(고진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맑스가 바쿠닌편에 가까왔다고 말하지만) 식민지시대 아나볼 논쟁과 비슷한 맥락이겠지요.아나키즘의 풍부한 상상력은 여러가지로 응용가능하고 보완적 성격을 가질 수 있지만...거대담론으로는 규제적일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sceptic 2007-10-05 18:17   좋아요 0 | URL
아나키즘은 이상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고, 존 레논의 노래가 낭만적이죠...^^

맑스와 바쿠닌은 갈등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제 생각엔 사상적으로 가장 근접한 동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고진에 말에 공감하는데요, 독재와 아나키를 같은 맥락에 놓은 것도 이해는 갑니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다양한 방법론과 현실에 대한 접근 방법이 파격적이라는...

어쨌든 꿈이나 꿀수 있는 현실 저편의 이상이 아니라, 정교화한다면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한 방법들도 찾아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매진'을 한 번씩 들으면 마약처럼 노곤해집니다.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신서 377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윤형숙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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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워보았다. 첫 번째 문장을 자신있게 외웠고 뒤에 문장은 더듬더듬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에 뜻도 모르고 열심히 암기했던 문장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1968년 12월 5일에 박정희가 반포한 ‘국민교육헌장’은 취지와 의도와 무관하게, 앞부분에 ‘민족’을 내세우고 있다. 민족을 중흥하겠다는 국민교육의 목표는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내세우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민족주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책의 개정증보판을 원제대로 나남출판에서 2002년에 출판했다. 월드컵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였기 때문에 ‘민족주의’에 담론들이 넘쳐났고 보이지 않는 열기로 가득했던 한반도의 상황들을 돌아보는 데 유효한 저작이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의심해 본적이 없다면 베네딕트 앤더슨의 이야기는 놀라움으로 가득해 보일 것이다. 종교적 공동체와 언어 공동체로 양분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근대화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묶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근대적 의미의 ‘국가’의 성립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을 토대로 국가와 민족은 하나가 되었으며 단일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문화적, 언어적 공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애국심과 인종주의는 ‘문화적 조형물’로 이루어진 역사적 공동체일 뿐이다.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이다.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communion)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 P. 25

민족은 제한된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10억의 인구를 가진 가장 큰 민족도 비록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한정된 경계를 가지고 있어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 P. 26


  문화적 기원을 통해 ‘민족’의 의미와 기원을 살펴보는 작업은 보이지 않는 인종간의 결속력의 근원을 살펴보는 일이다. 과연 민족의식의 기원은 무엇인가?  식민지와 제국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크리올이라 불리우는 식민지 이민자들의 의식을 통해, 혹은 식민지의 원주민들의 의식을 통해 저자는 민족주의의 한계와 계급성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기원과 함께 민족주의의 개념이 기원이 밝혀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민족주의가 안고 있는 파시즘의 성격을 말한다. 생각해보면 파시즘적 민족주의가 내포하는 있는 불온한 의도는 다중의 의도와 신념을 빌미로 숨겨진 의도에 복무하고 있다. 숨겨진 의도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소수 기득권층과 배타적 이기주의자들의 검은 속내에 감추어져 있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민족주의가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는 지금 우리들이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국가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다국적 자본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과연 ‘상상의 공동체’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논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전개된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민족은 언어와 종족을 넘어선 위치에 자리 매김하고 있으며 공고한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확고부동하게 자리잡고 앉아있다. 쉽사리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이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한 지난한 싸움들이 힘겹게만 느껴진다. 싸워 무너뜨려야 할 대상으로 파악해서도 안되겠지만 그 기원과 역할을 알지 못한 채 맹목적인 믿음을 고수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서장에서 밝히고 있는 민족에 대한 정의는 이 책 전체에서 저자의 주장을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다.

민족은 제한된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10억의 인구를 가진 가장 큰 민족도 비록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한정된 경계를 가지고 있어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 P. 26

민족은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계몽사상과 혁명이 신이 정한 계층적 왕국의 합법성을 무너뜨리던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 P. 26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 P. 27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의해 미혹된 채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나에겐 너무나 많은 들보들이 눈을 가리고 있다. 걷어내고 부러뜨려도 누군가 색안경을 씌우고 안개를 뿌린다. 청명하게 맑은 시선으로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그것이 현실을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준비라고 믿는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상상된 공동체’이든 ‘문화적 조형물’이든 ‘역사적 실체’이든 상관없이 현실 속에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편견과 왜곡된 의식은 쉽게 바로잡히지 않는다.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노력들을 시작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07100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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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2 2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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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2 2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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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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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는 것은 불온하다. 세상을 긍정적, 낙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행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인식의 폭을 넓혀 주지만 현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회를 보는 관점이 래디컬하다. 강유원은 이 말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현실 인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대응 방식도 다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세상과 현실에 대해 혹은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지와 편견이다.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집과 독선이 문제이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 둘째는 자신의 계급과 이익에 반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빌헬름 라이히의 표현한 대로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조선일보를 자신의 생각이라고 굳게 믿는 노동자의 경우를 일컫는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왜,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 모르지만, 이라크에 파병하면 어떻게 이익이 되는지 모르지만 ‘국익’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국익’과 ‘10% 부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대다수 국민들을 위한 세상 바로알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박노자, 홍세화, 김규항, 한홍구, 심상정, 진중권, 손석춘 - 심상정을 제외하고는 여러권의 책을 통해 끊임없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이번에‘도’ 이들을 선택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 파시즘에 맞선’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 말마따나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책을 읽고 이들의 인터뷰집을 읽는다. 매년 봄 한겨레 특강을 통해서나 프레시안 특강을 묶은 <여럿이함께>라는 책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은 왼쪽에 가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그들의 말에 공감하거나 들어볼 마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사실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제 지승호의 책은 살펴보지 않고 사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신뢰가 간다. 한 인터뷰어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은 그간 그가 보여준 성실함과 끈기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 때문이다.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묶어낸 그의 책은 일곱 명의 시각으로 바라본 21세기를 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는 현실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별개일 수밖에 없다. 가진 것이 다르고 지켜야 할 것이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삶에 대처하고 있으며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현실인식은 지극히 암울해진다. 시니컬하고 래디컬한 성향을 벗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됨’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내겐 ‘사람됨’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고 믿는다. 홍세화가 인터뷰 중에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한다.

생존 수단이 존재 이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 P. 77

  한 참 동안이나 이 말을 들여다보았다. 고아처럼 자라며 오늘 저녁 한 끼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아이들이 있다. 먹고 사는 일 자체가 생존의 목적인 사람들이 있다. 자본의 힘은 블랙홀처럼 인간의 존재 이유를 빨아들인다. 망각의 힘은 생존 수단으로부터 시작된다. 주변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지만, 그들만의 리그는 오늘도 계속된다.

  미국의 ‘자발적 식민지’가 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공화국’의 가치를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자본 파시즘’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머리 까만 미국인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한국 사람인지 머리 까만 미국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삼성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머리 까만 미국인과 함께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비참하기만 하다.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

  생각해 보자. 브라질의 룰라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대해서, 그들의 선택에 대해서. 김규항은 인터뷰 도중에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되어 있어요. - P. 300

  어떤 식으로든 대중이 움직여야 현실이 달라진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우선이겠고 그 다음은 움직여야 한다. 이기적 욕망과 무임승차에 대한 간사함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은 시민 사회 단체의 몫이나 활동가들이 책임져야할 일이 아니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공상이 되지만, 다함께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0709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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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영길 후보와 함께 하는 블로거 간담회에 초대합니다.
    from 태터앤미디어 공식블로그 : 블로그 미디어 & 마케팅 2007-10-08 17:13 
    안녕하세요. 태터앤미디어팀 정윤호입니다. 17대 대선을 맞아 블로고스피어에서도 대선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태터앤미디어에서는 대선후보들과 블로거들이 한자리에 모여 평소 후보에게 궁금했던 점이나 대선공약 등에 대해 직접 질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사상 그리고 언론사상 초유의 실험이라고 평해주셔서 더욱 열심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 오는 10월 15일 월요일에는 대선 후보 릴레이 간담회 두번째로 민주..
 
 
2007-09-27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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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8 1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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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9-28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을 그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에게 공을 다 넘기는 것은 아닐까요?

sceptic 2007-09-28 14:36   좋아요 0 | URL
원인을 하나로 집어낼 순 없지 않을까요? 어떤 노력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늘 면죄부만 주는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의 몫으로, 혹은 타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책임 회피는 온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거 아닌가요?

2007-09-28 14: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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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8 1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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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8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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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8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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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9-28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의 자발적 동의 내지는 그 수준을 이야기하려면 이를 강제하고 조정해내는 또다른 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하지 않을까요..그게 없는 '수준론'은 '거대한 또다른 축'에 대한 면죄부와 '허무주의'의 블랜딩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혁명(가능이나 한지 모르겠습니다만)이 단순히 '의식혁명'을 뜻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sceptic 2007-09-28 20:51   좋아요 0 | URL
'수준론'이 단순히 '대중'을 비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드팀전이 모르실리 없지요? 김규항의 말이 현실에 대한 '허무주의'나 '면죄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찾거나 해야겠는데 자발적으로 혹은 선동적으로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의 답답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책의 내용과 생각의 표현이 적절하게 나타나지 않았나 봅니다.

혁명...불가능하기 때문에 꿈꾸어야 한다는 말은 말장난일까요? 의식혁명도 행동의 변화가 없이는 헛된 공상에 불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가끔 달아주시는 댓글로 또 다른 생각을 이어갑니다. 댓글 봉사 감사드립니다.

드팀전 2007-09-28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규항도 그런 뜻이었겠지요..그러니까 잘해보자고.
최근에 제가 들었던 '패배주의적 수준론'때문에 자꾸 그렇게 보이나봅니다.

sceptic 2007-10-02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배주의적 수준론'은 당연히 경계해야 겠지만 대책없는 희망도 이젠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정선을 찾기 힘들지만...다들 잘해보자는 얘기지만 방법들이 워낙 많이 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