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0
고미숙 지음 / 책세상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시대는 근대인가? 현대인가? 아직도 전근대와 근대적 특징들이 혼용된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대적 구분이나 특징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규정짓고 구별짓는 것은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며 미래를 꿈꾸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근대를 기점과 특징에 대한 허다한 논의들 중에서 고미숙의 책은 이채롭다. 먼저 접근 방법을 살펴보자. 당시의 문헌과 신문과 잡지를 뒤적인다. ‘대한매일신보’나 ‘독립신문’ 혹은 신채호의 <독사신론>을 꼼꼼히 짚어낸다. 그리고 미셸푸코의 <성의역사>나 <광기의 역사>, 가리타니 고진의 ‘병이라는 의미’,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 아노 카렌의 <전염병의 문화사>를 통해 현재적 의미를 분석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당시의 문화적 현상이나 시대적 특징을 찾아내는 혜안을 가지려면 일단 기준과 특징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과학적 접근 방법이 아니더라도 당대를 읽어나가기 위한 노력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저자 고미숙은 그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민족, 섹슈얼리티 그리고 병리학이다.

  먼저 민족이라는 원초적 개념과 민중들에게 파급되는 과정 그리고 교묘한 은유와 무의식적 믿음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민족담론은 여전히 굳건한 뿌리를 가지고 해체 되거나 변화의 조짐들이 일반화 되고 있지 않다. 여전히 한의 정서가 민족의 보편적 정서라는 사실이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거론되고 있으며 국가와 민족은 개인의 권익에 우선한다는 사실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기원과 뿌리를 확인하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대안은 자연스럽게 찾아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맹목적인 종교 수준의 믿음은 두렵기만 하다.

  두 번째로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단순하게 ‘근대’의 특징이라고만 규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근대로의 이행기에 보여지는 특징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의 현상에 주목한다. 근대계몽기의 성담론은 조선 후기에서 이어진다. 여성 자체를 국민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시대에서 섹슈얼리티에 주목하는 사회로의 변화는 급격한 변화를 야기한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여성이 분리되고 국가에 대한 충애를 바탕으로 국민이 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로 병리학과 기독교의 문제이다.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는 이 부분에 대한 좋은 참고 도서가 될 것이다. 고미숙은 목욕탕과 병원, 교회를 근대의 성소라고 표현하고 있다. 문명개화하기 위한 위생과 병원에서 벌어지는 분리와 배제, 격리과 수용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적 기독교의 수용이 결합된다.

  고미숙의 이 책은 재미있다. 주제를 다루는 방법과 문장을 이끌어 가는 힘이 남다르다. 딱딱하고 분석적인 어조로 지루하게 이끌어가면 대개 지치고 무료해지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짧은 분량에 대한, 가볍고 흥미있는 책이 되겠다는 사명감이 투철하다. 그렇다고 논의의  초점이 무디거나 건성건성 넘어가는 법은 없다. 특유의 사유 방식과 근대를 다루는 폭넓은 사고는 저자만의 고유한 특징이 된다.

  문명과 지식을 가로지르는 유목민의 모습을 고미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은 또 한 번 고미숙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근대’가 왜 중요한 것인지, 우리들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 연장 선상에 놓여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즐거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볍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민족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병리학이라는 주제와 별개로 맺음말에서 저자는 ‘기차와 인터넷’으로 분량에 대한 아쉬움과 다루지 못한 주제에 대해 미련을 말하고 있다. 근대의 상징으로 기차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맹목의 질주와 직선의 이동. 인터넷은 21세기의 기차이다. 그것이 또 다른 탈근대의 징후로서 현대를 특징짓는 기호가 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낯설고 이질적인 장 속에 능동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뿐이리라.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상과학영화 <공각기동대>가 바로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로 우리도 마무리를 하자.
  “네트는 광대해” - P. 172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 소녀는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나비효과>처럼 결국 수많은 네트들의 연결은 현실의 한 칸만을 되돌리거나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현재를 이루고 있는 모든 틀 전체가 흔들리고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광대한 네트에 대한 인간들의 도전과 모험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070724-09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26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없으면 불편한 존재로 자리잡았네요.
역사가 짧아서인지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그래서인지 배려가 부족하고 상처내는 일들이 많아서 불쾌할 때가 많아요.

sceptic 2010-01-3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 때문이 아니라 익명성때문이죠...관계 자체가 불연속이니까요...

반딧불이 2010-01-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내용을 잘 요약해주셔서 마치 책 한권을 다 본듯 합니다. 그래도 책은 읽어야겠지요? thanks to~ 수잔 손택 여사의 책은 <질병으로서의 은유>가 아니라 <은유로서의 질병>입니다.

sceptic 2010-01-31 21:03   좋아요 0 | URL
오타 수정 감사합니다. ^^
 
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를 쓰려고 제목을 치다가 오타가 났다. ‘대한민국 개좆론’이라고. 무의식적인 손가락의 실수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다 혼자 웃고 말았다. 우연한 오타가 그런대로 말이 된다. 육두문자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대다수의 정치인들을 혐오한다. 모두 꼴보기 싫다는 단무지형 정치 혐오증에 가까운 증상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병이 아닌가 싶다.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를 바탕으로 고도 압축 성장을 하느라 좌충우돌 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모습은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우수한 민족성 덕분인지 난파의 위기를 견뎌내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고 싶다. 아니 그렇다.

  이런 믿음조차 없다면 대한민국에 살 수 없다.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한 오호의 감정을 넘어 냉정한 판단력과 비판 능력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 이대로의 대한민국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만의 리그와 독주가 계속될 경우 과연 이대로 좋은가? 당신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1%쯤 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20% 되는 사람들일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은 정치인으로서 나름대로 힘겹게 또 갖은 방법으로 욕을 먹어가며 버텨내고 있는 유시민의 모습은 안쓰럽다.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서 신념과 지조라는 말을 꺼내기도 우습지만 그걸 지켜내려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신념에 대한 ‘진정성’이다. 정치인은 누구나 말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이 달라져서 정치적 행보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도 올바른 정신이 박힌 유권자라면 그의 진정성을 보고 판단한다. 수많은 변절자로 낙인찍힌 정치가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시민의 말과 행동들에 대한 지지 표현도 아니다. 다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적이 몇 번이나 있나 돌아보았다.

  그렇게 옳은 얘기를 저렇게 싸가지 없게 말할 수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던 동료 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시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싸가지 없어도 좋다. 나는 내 갈 길을 가자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태도와 방법을 수정해 보자고 생각했을까 궁금하다. 복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면서 그가 무슨 일을 저질렀고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 <대한민국 개조론>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의 비망록이며 대국민 보고서이며 참았던 억울함에 대한 변명이다.

  그의 말이 다 옳지는 않다.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먼저 그의 진정성이다. 언제든 정치를 그만 둘 각오를 하고 누구보다도 국민여러분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토해내는 그의 육성은 한 번쯤 귀기울여 들을만하다. 한나라당 지지자든 민노당 지지자든 노빠든 상관없다. 옳은 이야기에 대해서 냉정하게 들어보고 차갑게 비판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는 알아두고 들어보아야 할 만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올해는 대선 정국이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흥미롭게 혹은 잔혹하게 또는 가장 혐오스럽게 펼쳐질 예정이고 이미 서막이 올랐다. 절치부심 한나라당이나 길거리에서 지갑을 주었던 열린우리당이나 여전히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민노당이나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달리는 기호지세의 형국이다. 유시민이 어떤 역할을 하든 정치인으로서 어떤 행보를 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격으로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들어 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 유시민은 국민여러분을 왕으로 자신은 신하로 비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으로 당연한 주장이고 정치인들이 투표가 끝나기 전날까지만 내세우는 말이기도 하다. 임금이고 왕인 국민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아뢰는 말에 거짓이나 사심이 담겨 있다면 누가 그의 말을 듣겠는가. 자신을 과대 포장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선전물로 활용하기 위한 책이라면 독자들이 먼저 눈치 챌 것이다.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세계화 시대의 선진통상국가로 나간다.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기 위해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한다.” - P. 33

  이 한마디가  이 책 전체를 요약한다. 선진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라는 양 날개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대한민국을 상상하는 유시민을 상상한다. 나머지 각론에 대해서는 책의 내용에 관한 개인적인 판단과 객관적 자료와 검증이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보다 엄밀한 분석과 국민들의 동의와 정치권의 야합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서 뭔가 바뀌기를 바라지만 않는다면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도 있겠다. 사학법은 거꾸로 돌아가고 국보법은 여전히 존재하며 연금개혁은 서로 못 본체 한 지 너무도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국민들께도 말씀드립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왕이 왕 노릇을 못하고 누군가의 수렴청정을 받게 됩니다. - P. 122

  조중동의 기사가 자신의 생각이고 한겨레의 칼럼이 내 이야기가 되어 논쟁한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패배주의! 누구의 수렴청정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국민들에 대한 발칙한 경고와 불만이 은근히 드러나지만 사실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그것이 궁금해서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썼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는 수많은 노동 계급은 어찌하여 조선일보의 주장을 자신의 머리로 착각하는 것일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와 지도자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은 곧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씀입니다. 남명 조식 선생처럼, 저도 정치적 사망을 각오하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 P. 262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굴원의 <어부사>로 시작한 이 책은 남명 조식 선생의 ‘단성소’를 되새기며 끝맺는다. 너무 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문제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유시민의 이야기는 정치적 투정도 언론에 대한 불만도 국민에 대한 객기도 아니다. 그래서 참고 들을만했다.

070723-090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2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줄을 읽으며 웃다 셋째줄에서 단무지형을 '단순무지형'으로 읽었어요.
그런데 단무지형은 뭔가요?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집에 있지만 안 읽었는데
한번 실망하면 더이상 기회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겠지요.

sceptic 2007-07-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무지는...단순무식지랄..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는데...아닌가요?ㅋㅋ
그책도 읽을 만한데요...

kdh6390 2007-07-2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이글 제 블로그에 올리면 안될 지 문의 드립니다. 제 블로그는 아래랍니다.

http://www.mediamob.co.kr/BACH2138/blog.aspx

sceptic 2007-07-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관없는데요...^^...예전에 어떤 사람처럼 별것도 아닌걸 가져다 리포트 장사하는 사이트에서 파시지만 않는다면...ㅋㅋ...농담입니다...

kdh6390 2007-07-25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의힘님 고맙습니다. 저도 님과 같은 고민을 한 적이 많습니다. 님의 글은 pdf파일로 올려 보겠습니다. 블로그관리자에게 복사방지기능을 달아 돌라고 해도 반영이 안되어서 제 블로그에 실린 다른 분에 대해서도 미안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알라딘에 서평쓰시는 분들 글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재삼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BACH2138드림~~~~~~~~~~

sceptic 2007-07-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넘 신경쓰지 마세요...^^
 
혁명을 꿈꾼 시대 - 육성으로 듣는 열정의 20세기
장석준 지음 / 살림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혁명은 시대를 넘어 영원한 미래의 희망이 되어 버렸다. 혁명과 희망을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거나 지독한 불행이다.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경계선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보다 양 극단에 선 사람들이 훨씬 많다. 파시즘이 처음 등장했던 20세기 초반에도 그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경우를 생각해 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앞장 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바보였을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 국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2천 5백만이 희생됐고, 폴란드의 경우, 전체 인구 5분의 1일 죽었다. 그래서 20세기를 야만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일까?

  <혁명을 꿈꾼 시대>라는 장석준의 책은 20세기에 대한 회고록이다. ‘육성으로 듣는 열정의 20세기’라는 부제가 설명해 주듯이 헬렌 켈러에서부터 우고 차베스에 이르기까지 20세기를 뜨겁게, 온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의 신념과 열정을 담아냈던 연설들만을 모았다. 그 모든 순간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 책에 거론된 사람들의 삶은 책 제목처럼 일상에서 ‘혁명’을 꿈꾸었다. 꿈을 현실로 옮길 수 있다는 의지와 신념은 그 연설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숙연한 감동을 안겨주거나 거센 비난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책의 한계는 깊이의 문제다. 23명이 등장하는 책에서 각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책의 의도는 21세기의 관점에서 바라본 20세기이다. 책의 내용은 여섯 개의 주제로 20세기를 설명하고 있다. ‘전쟁, 자본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파시즘, 남성중심 사회, 자본의 세계화를 넘어서’가 그것이다. 각 장마다 대표적인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고 그들의 인상적인 연설을 옮겨 놓았다. 이런 구성은 산만해지거나 백화점식 나열에 불과할 위험을 내포한다. 편집 의도가 좋다고 해서 괜찮은 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책 한 권에 여러명을 소개하는 책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실망하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의심없이 선택할 만하다.

  책에서 기대하는 면이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준 부분이 각 장 앞부분에 덧붙혀 놓은 ‘20세기’와 ‘21세기’의 대화부분이다. ‘시간’은 쉽게 정의되지 않는다. 의인화한 두 명의 인물이 대화를 나눈다. 21세기가 선배인 20세기를 찾아가 세기가 바뀌면서 최근 7년간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을 전해주면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꼭 100년간의 시간인 20세기에 대해 선배에게 한 수 지도를 받는다.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과거를 반복한다는 묵시적 전언을 읽어낼 수 있다.

  특정한 인물의 사상과 생애를 탐구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사상사에 관한 책은 연구 목적이 아니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선뜻 손이 가지도 않고 읽으면서도 많은 부담을 느낀다. 단순한 호기심과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을 위해서 책장을 넘기다가 한 숨을 쉴 때가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만만치 않은 공력을 들여 한 세기를 정리하려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 장석준은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사회사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연설을 옮겨 놓으면서 적절하고도 설득력있게 사건과 시대를 분석하고 있다.

  ‘20세기’라고 하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스스로 정리하고 조망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알기 쉽게 접근하기 위해 21세기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1세기는 묻고 20세기는 답한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적절한 분량과 명쾌하고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 나간다. 지난 세기를 알고 싶다는 이 책 한 권을 조용히 권할 만하다.

  다만 앞서 지적한대로 깊이와 넓이는 독자가 이 책 이후에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다.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 호기심을 증폭시키거나 관련 분야에 대한 방향과 목적이 결정된다면 한 권의 책이 할 수 있는 역할로는 충분하고도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는 과연 혁명의 세기였을까?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두 세기에 걸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다. 저자는 그 길의 방향과 목적지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것을 책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지금, 여기의 문제가 과거의 연장이고 우리의 미래가 된다. 그것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인류가 발전시켜온 역사이며 그늘이고 희망이며 아쉬움이고 절망이며 그리움이다.

혁명이야말로 끊임없는 혁명이 필요하고, 혁신을 주장하는 세력이야말로 혁신되어야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이 오직 20세기 초의 사회주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불운이겠는가. - P. 79

  지나 간 시간에 대한 반성보다도 미래를 향한 희망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궁금증이 앞선다. 그 궁금증을 우리는 20세기에게 묻는다. 그 길에 대해 20세기의 토니 벤은 이렇게 말한다.

“다음 세기에 사람들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원할 것이다. 자립적인 경제 체제를 갖춘 세계 여러 나라들이 서로 협력할 것이다. 이번 세기에 우리가 항상 전쟁을 계획했던 것처럼 이제는 평화를 계획하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민주적으로 통제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세기가 다음 세기에 전해야 할 참된 교훈이다.” - P. 409


070615-0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은 우리들이 학교 밖에서 학습한 것이다. 학교 아동은 교사가 없더라도, 아니 오히려 때때로 교사가 있을 때라도 대부분의 학습을 자력으로 행하는 것이다. 대단히 비극적인 일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혀 학교에 다니지 않았는데도 결국 학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 이반 일리히, 학교없는 사회 : P.58

  근대적 의미의 학교는 제국주의의 근대 시민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국민학교는 일본 제국주의의 국가 이념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 국민을 교육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국가 이데올로기를 어린 시절부터 학습하고 질서와 규율을 명분으로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국민을 양성한다. 해방이후에도 교육의 근간과 뿌리는 여전하다. 군사 정권시절에는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심지어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국민윤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직도 중학생이 되면 ‘도덕’을 배운다.

"학교는 중요한 진실을 회피한다" - 노암 촘스키, 강주헌 옮김,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2001, P. 38) 학교는 국가가 승인하고 인정하는 것을 진리라고 주입한다. 김상봉, 도덕교육의 파시즘 :  P. 69

  아직도 학교에서는 두발을 단속한다. 제각각 다른 머리의 길이가 옷깃을 닿지 않아야 한다는 애매한 규정이나 여학생의 머리 길이 제한 등은 이미 2005년에 국가인권위원에서 학생들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하고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권고를 교육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아침마다 벌어지는 지각과 두발 단속의 학교 현장을 가만히 들여다 봐야 한다. 교육과정에도 없는 애국조회가 아직도 시행되는 수많은 학교를 보자. 그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교장과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들의 생각을 들어보자.

  올바른 가치관의 함양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질서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학교에서는 과연 주어지는가? 학교 교육은 이대로 좋은가? 대안 없는 비판이나 한숨 섞인 푸념이 아니다. 온몸으로 실천하며 공교육의 방법과 제도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아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작년에 나온 고미숙의 <나비와 전사>에서 나는 단 한 줄을 가슴에 새겼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이 한 마디를 부제로 달고 <호모 쿵푸스>가 나왔다. 공부하는 인간이란다. 많은 학생들이 가장 싫어할 만한 책의 제목을 달고 나왔으나 이 땅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강제로 읽히고 싶은 책이다.

  어떤 책이든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한 권의 책을 읽고 가슴으로 받아들이거나 머리로 생각하는 장면이 다 다를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가슴으로 읽었다. 무덥던 어느 날, 혼자 앉아 밥을 퍼먹으며 책장을 넘기다 울컥했다. 눈물이 날 뻔했다. 지금까지 무엇을 바라 살아왔던가하는 자책과 이 땅의 교육 현실을 꼬집는 고미숙의 이야기는 날선 칼날이 아니라 은근한 손길로 구석구석을 쓰다듬으며 아픈 곳을 콕콕 찔러댄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너 왜사니?

  ‘이념이란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표현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한 마디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숙제로 남아 있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무엇이 제대로 된 공부인가? 장정일의 ‘공부’를 비롯해서 최근에 불고 있는 ‘공부’ 열풍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자. 과연 왜 공부를 해야 하며, 무엇이 공부이며, 공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 책에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필요하고도 충분한 저자 나름의 진단과 해석과 대안들을 실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유동 시절의 ‘연구공간 너머’에서 지금의 남산 시절까지 그녀가 겪은 시간들과 공부 방법들을 단순하게 개인적 차원의 주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규 교육 과정이나 공교육의 제도권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공부에 대한 열망과 또 다른 방식의 삶이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의 말은 현실에서 비롯되었고 실천적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가치관의 혼란이나 사회의 지향점에 대한 반성적 성찰들은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과 시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고미숙은 이 책에서 ‘교육’ 그리고 ‘공부’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는 파괴적이고 반문명적인 선전선동이 아니다. 현재의 공교육이 보여주는 문제점들을 정확히 짚어내며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학교’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보여준다. 고미숙은 이 책을 인용하며 현실적 대안이 공교육의 폐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힘겹게 그녀가 살아내고 있는, 온몸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교육이나 삶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현실적 대안들을 구체화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현실과 부딪히는 많은 문제점들 그리고 교육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까지 이 책을 읽는 사람마다 수많은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삶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연계되어 있고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 하나의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콩도르세는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 P. 66

  우리가 제대로 교육받았다면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고미숙은 책을 말한다. 독서를 뛰어넘는 방법은 없다. 특히 ‘고전’을 암송하며 문리를 터득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공부방법에 대해 말한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책장을 덮었다.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인가?”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동안 누구에게나 한 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 책을 추천하겠다. 분량도 많지 않고 내용도 어렵지 않으니 누구에게나 가볍고 편안하게 읽힐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교육과 독서와 가장 많은 공감했던 이 책을 자신있게 권할 것이다. 삶은 끊임없는 혁명의 과정이며 우주와 생의 신비를 깨닫고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억압과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억압에 저항하고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 그것이 곧 혁명이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시작하는가? 공부로부터 시작한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공부. 이 공부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힘이 생길 때 비로소 존재의 근원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소외되지 않은 자만이 구조적 억압에 맞서 싸울 수 있다. - P. 199

070603-069


댓글(4) 먼댓글(1)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7:07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비로그인 2007-06-0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로부터 시작한다......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sceptic 2007-06-0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때는 그렇게도 지긋지긋하더니...이제 진짜 공부를 좀 해보려고 마음 먹어 봅니다...

2007-06-04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7-06-0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은글 읽으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저 범생이와 아주~~~~거리가 멉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1년 선배 형은 신의 존재에 대해 괴로워했다. 신학 대학에 입학 한 후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 형의 고민의 일단에 ‘기아’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배불러 죽는 사람과 굶어죽는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 전 기억이지만, 신의 존재와 무관한 이야기지만, 21세기가 되어서도 세상에 태어나 굶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장 지글러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실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굶주림에 관한 보고서이다. 2005년 유엔식량농업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5초에 1명 꼴로 굶어죽고, 3분에 1명 꼴로 비타민A 부족으로 실명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8억 5천만 명이 극단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 보고서를 믿고 싶지 않았다. 한 해 음식 쓰레기 처리 비용이 얼만지 아느냐고 아우성 치는 이야기들은 머나먼 행성의 이야기로 들린다. 한 쪽에서는 영양의 과잉 공급으로 비만과 웰빙 바람이 불고,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상은 원래 그런거라고?

  저자인 지글러의 아들 카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J. 네루가 감옥에서 딸에게 <세계사 편력>을 썼듯이 친절하고 자상하게 자신의 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진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들이 녹아 있는 아버지의 설명은 아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기에 충분하다. 내 배가 부르니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기적인 태도나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에서 쓸데없는 분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도저히 외면하거나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게 된다.

  전 인류의 20배쯤 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지구의 농업 생산력을 가지고도 8억 5천만 명이 굶주리고 있다는 현실이 놀랍다기보다 황당하기까지하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현실의 원인이다. 장 지글러가 이 책을 쓴 목적도 여기에 있다. 이 원인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과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하지 못했지만 행동하는 지성으로 자신의 경험과 직접 체험을 통해 분명하게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남의 집 불구경하듯 했던 사람들은 할 말이 없어진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결합되어 80년대 이후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상들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선진국의 식민주의에 뿌리를 둔 역사적인 이유와 거대자본을 통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곡물 회사, 네슬레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의 횡포 등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원인들이 혼재하기 때문에 이것이다라고 콕 찝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순히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이타심의 부족이라는 감상적인 접근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의 동정심에 호소하고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부금을 통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시킬 위험이 있다.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책의 결정 과정과 농산물에 대한 견해 차이, 유엔이 가지고 있는 제3세계 ‘기아’에 대한 관심과 정책들에 따라 해결방법은 여러 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2000년과 2005년의 통계를 비교했을 때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비난과 원망에 가까운 이유뿐만 아니라 미흡한 대책 마련과 구조적인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이 그의 아들 ‘카림’에게 제대로 이해되었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울컥하고 목이 메여 한동안 하늘을 보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 P. 23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 P. 170

  저자가 이 글을 쓴 목적은 이 한 줄 때문이리라. 그러나 누군가에게 신이 있느냐고 묻기 전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 인간일까 하는 회의를 품게 된다. 그렇다는 믿음과 희망만이 전제되어야 우리에게 미래가 존재한다. 어떤 미래를 꿈꾸느냐 하는 것도 물론 바로 여기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우리의 태도와 의식의 변화에서 출발하겠지만. 이 따스한 햇볕 아래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070404-044


댓글(0) 먼댓글(1)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06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