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홉스봄은 19세기 3부작 마지막인 『제국의 시대』에서 20세기의 출발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규정한다. 그러니까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이 유럽을 팽창시켜 세계를 연결했으며, 산업자본주의가 유럽을 본격적인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탐욕스런 제국주의의 확산은 자연스럽게 ‘벨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의 종말을 예고했다.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19세기를 마감한 인류는 이제 근대의 문을 닫고 현대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때 그 시절, ‘리즈 유나이티드 FC’의 전성기,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우디 앨런은 《미드나잇 인 블루》(2012)으로 이 시대를 추억했고, 넷플릭스는 《트랜스아틀란틱》에서 발터 벤야민의 자살 등으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슬픔을 담담하게 묘사했다. 플로리안 일리스의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은 10년 만에 내놓은 『1913년 세기의 여름』의 속편 혹은 후일담처럼 읽힌다. ‘감정의 연대기 1929~1939’라는 부제처럼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니, 이 암흑의 시대, 증오의 시대를 건너는 법으로 그들은 ‘광기의 사랑’을 선택했을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와 하이데거 뿐만 아니라 숱한 작가, 화가, 배우들이 등장하는 이 거대한 사랑의 연대기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핵인싸’들의 사랑을 꼴라주한다.
전작 『1913년 세기의 여름』는 신선함을 넘어 충격이라고 할 만큼 독특한 책이다. 현재형으로 장면을 포착하고 묘사하는 카메라 앵글처럼 저자는 한 편의 영화를 텍스트로 보여주는 듯하다. 장면 전환은 자연스럽고 수많은 등장인물이 각 쇼트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느낌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실제 인물들의 일기, 편지, 잡지, 신문, 사진 등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를 재현했으니 마치 리얼리티 예능 혹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 플로리안 일리스가 선택한 구성과 문체의 힘은 강렬하다. 예술가, 철학자, 영화인, 정치인, 과학자 등 유명 인사들의 사랑은 특별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정열적이지만 치졸하고 무책임하며, 때로는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은 누구에게나 다를 바 없는 감정이다.
양다리와 불륜은 기본이고 약물 복용, 스와핑, 근친상간에 이르기까지 지고지순한 사랑에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가학적 섹스에 이르기까지 100년 전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오늘보다 치열하고도 과격하다. 그야말로 ‘광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랑들, 시대를 핑계 삼은 일화들의 병렬적 배열과 교차 편집은 다시 한번 독자들을 매혹한다. 한 가지 함정은 등장인물들의 면면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전혀 없거나 그들의 글과 그림과 영화와 사상에 무관심하다면 이 책은 따분하고 지루한 역사극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올가 코사키에비치, 비앙카 비넨펠트, 마샤 칼레코, 헤미요 비나베르, 마를레네 디트리히, 메르세데스 드 아코스타, 그레타 가르보, 클라우스 만, 루트비히 마르쿠제, 토마스 퀸 커티스,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 클로드 클라라크, 토마스 만, 파블로 피카소, 도라 마르, 마리테레즈 발테르, 고트프리트 벤, 헤르타 폰 베데마이어, 엘리노어 뷜러, 프리드리히 빌헬름 욀체, 케테 폰 포라다, 틸리 베데킨트, 테오도어 아도르노, 그레텔 카르플루스, 막스 호르크하이머, 디트리히 본회퍼, 에버하르트 베트게, 베르톨트 브레히트, 헬레네 바이겔, 마르가레테 슈테핀, 엘리자베트 하우프트만, 루트 베를라우, 발터 벤야민, 안나 마리아 블라우포트 텐 카테, 올가 파렘,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하인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빌리 와일더, 쿠르트 투홀스키, 엘제 바일, 리자 마티아스, 헤트비히 뮐러, 마리 게롤트투홀스키, 에리히 뮈잠, 첸츨,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리나 과나디니, 조세핀 베이커, 주세페 페피토, 아나이스 닌, 곤살로 모레, 위고 귀에, 헨리 밀러, 준 밀러, 루트 란츠호프, 알마 말러, 후고 폰 호프만스탈, 타마라 드 렘피카, 라울 쿠프너, 에리카 만, 마틴 굼퍼트, 구스타프 그륀트겐스, 막스 리버만, 알프레트 케어, 프란체스코 폰 멘델스존, 에리히 캐스트너, 헤르타 키르히너, 마르고트 슌랑크, 리 밀러, 맨 레이, 키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아우구스트 잔더, 프란츠 헤셀, 폴 엘뤼아르, 마리아 벤츠, 갈라,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루이스 부뉴엘, 군타 슈퇼츨, F. 스콧 피츠제럴드, 젤다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콘라트 아데나워, 니나 폰 레르헨펠트, 한나 아렌트, 하인리히 블뤼허, 귄터 슈테른, 마르틴 하이데거, 리자 폰 도베네크, 트루데 헤스터베르크, 하인리히 만, 넬리 크뢰거, 루디 카리우스, 알프레드 되블린, 욜라 니클라스, 볼프강 쾨펜, 쥐빌레 슐로스, 테아 슈테른하임, 몹사, 카를 슈테른하임, 파멜라 베데킨트, 르코르뷔지에, 에른스트 윙거, 루디 슐리흐터, 카를 슈미트, 프리드리히 홀랜더, 헤디 숍, 고트프리트 폰 크람, 바버라 허튼, 발터 그로피우스, 이제 그로피우스, 헤르베르트 바이어, 레니 리펜슈탈, 아네타 에버스베르크, 빌헬름 2세 황제, 헤르미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마르고트 폰 오펠, 유타 잠보나, 루트 알부, 프란츠 마르크, 오토 딕스, 케테 쾨니히, 요제프 폰 슈테른베르크, 마르가레테 카르플루스, 테오도어 비젠그룬트 아도르노, 자크앙리 라르티그, 르네 페를, 빅토르 클렘퍼러,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프랜시스 스키너, 마르그리트 레스핑거, 탈레 셰그렌, 헤르만 헤세, 니논 돌빈, 프로이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로테 레냐, 폴 그린, 틸리 로쉬, 오토 폰 파세티, 쿠르트 바일, 에리카 네어, 샤를로테 볼프, 카테리네, 알마 말러베르펠, 구스타프 말러, 오스카 코코슈카, 발터 그로피우스, 프란츠 베르펠, 요하네스 홀른슈타이너, 하리 그라프 케슬러, 아르놀트 브로넨, 힐데가르트 폰 로소, 요제프 괴벨스, 마그다 크반트, 올가 푀르스터, 엘리자베트 폰 헤닝스, 쿠르트 폰 슐라이허, 쿠르초 말라파르테, 마그누스 히르쉬펠트, 리 시우 탕, 카를 기제, 쿠르트 볼프, 헬렌 볼프, 헬레네 모젤, 마농 네벨 두몽, 찰리 채플린, 폴레트 고다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니메트 엘루이 베이, 리처드 오즈번, 리온 포이흐트방거, 에바 헤르만, 롤라 제르나우, 마르타, 이오시프 스탈린, 나데즈, 몰로토프, 갈리아 예고로바, 셀린(루이페르디낭 데투슈), 실리 팜, 셀린, 로베르트 무질, 마르타, 아돌프 히틀러,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마르가레테 그룬, 게오르게 그로스, 에바, 요제프 로트, 안드레아, 알프레트 케어, 유디트, 엘제 라스커슐러, 카를 폰 오시에츠키, 구스티 헤히트, 비키 바움, 파울 클레, 막스 베크만, 릴리 폰 슈니츨러, 케테 폰 포라다, 헬데가르트 멜름스, 콰피, 라울 하우스만, 헤트비히 만키에비츠, 베라 브로이도, 빌리 브란트, 게르트루데 마이어, 아르놀트 쇤베르크, 마르크 샤갈, 맥스 베어, 막스 슈멜링, 아니 온드라, 올더스 헉슬리, 쥐빌레 베드포드, 빅토르 알로조로프, 지마, 메레트 오펜하임, 알베르토 자코메티, 쿨라우스 솅크 폰 슈타우펜베르크, 낸시 큐너드, 헨리 크라우더, 슈테판 게오르게, 아비 바르부르크, 브루노 발츠, 젤마 페트, 바실리 칸딘스키, 구르트 폰 슐라이허, 리베르타스, 귄터 바이젠보른, 리하르트 폰 라파이, 하로 슐체보이젠, 프리츠 란츠호프, 브리기테 헬름, 후고 에두아르트 쿤하임, 알렉산터 클루게, 오스발트 슈펭글러, 아나톨 도브리안스키, 빌리 칠케, 요제프 로트, 이름가르트 코인, 슈테판 츠바이크, 헤르만 괴링,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에르나 실링, 에른스트 톨러, 크리스티아네 그라우토프, 미클로시 젠쿠트헤, 두르스 그륀바인, 조피 숄, 프리츠 하르트나겔, 엘리자베트,
10년간 벌어진 당대의 문화사를 오로지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며 등장시킨 주요 인물들이다.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연애사가 계속 다른 인물들과 연결되어 중복을 피해 적다 보니 리스트가 이렇게 길어졌다. 아나이스 닌이 일기에 적은 것처럼 이들은 “죄가 아니다. 동정도 없다. 죄책감도 없다. 오직 사랑뿐.”(439쪽)라고 생각했을까. 희망 없는 시대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었을까. 저자는 “1929년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과거를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두들 그토록 정신없이 현재에 몰두하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빛과 어둠, 선과 악,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 겨를 없이 오로지 현재에 매몰된 채 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