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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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는 감정,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깔려 있다. - 니체(Nietzshe)

물과 공기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띤 공공재다. 이렇게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이익을 앞세우는 자들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목도한다. 하물며 공공재가 아닌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관계 앞에서 인간은 민낯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도덕과 가치 혹은 이념과 윤리를 표방하는 자들이 자기 속내를 들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증오는 대개 착각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많으며 혐오에 동반된 감정적 사태다. 오스트리아의 법정신 의학자 라인하르트 할러는 감정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온 저명한 정신과 의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인간은 숨쉬고 먹고 마시고 잔다. 그 모든 과정에는 타인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불안, 우울, 나르시시즘, 망상, 중독 등이 벌어지는 원인은 대개 타인 혹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 발생한다. 그렇다면 증오는 감정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 문학, 철학을 넘나든다. 전공과 직업이 무엇이든 ‘인간’에 대한 탐구는 대단히 복합적인 인문학적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한다. 좁게는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고민에서 넓게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으며 대개 결론도 정답도 없다. 기존 이론과 주장에 대한 끊임없는 반박과 재규정을 통해 변증법적 통찰에 도달한 현재적 주장에 가까울 뿐이다. 논리적 증오와 이성적 분노,에 이르는 머나먼 길을 돌아 자기 말과 행동에 대한 합리적 판단에 이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건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보다 범죄자의 자기 혐오와 증오를 오랫동안 관찰한 저자의 이야기는 건강한 삶과 공동체의 질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법과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서 인간의 진화, 혐오, 분노, 파괴, 절멸 등에 관한 사적 고찰로 이어지는 과정이 넓고 깊다. 증오의 뿌리를 찾는 일은 직업인으로 저자의 몫이겠으나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일은 일상에서의 벌어지는 LGBTQ, 외노자, 중국인, 장애인, 노동자, 경제적 취약계층, 탈모인, 비만인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혐오에 대한 개별 독자의 편견과 차별이다. 김지혜가 지적한 ‘선량한 차별주의자’ 정도라면 그나마 양반이다. 보이지 않는 각자의 프레임을 생각보다 좁고 견고하다. 신념이 확고한 자를 믿지 않는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을 패러디하자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본능에 내재한 이디오진크라지idiosynkrasie에 불과하다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문명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를 갖추지 못한 인간을 현대사회 공동체는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혐오 혹은 증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일까. 물론 저자의 희망과 결론 혹은 대안과 달리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또다시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다. 직업적, 사회적, 개인적 패륜 행위를 공론화하며 규율과 질서를 마련하고 감시와 처벌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법률적 통제를 넘어 사회적, 관계적 대처는 매우 중요하다. ‘천성적 증오’가 아닌 ‘반사적 증오’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문명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공자님 가운데 토막도 아니고 생각하고 고뇌하며 살아가는 철학자가 되기도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염치’는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맹자는 이미 기원전에 염치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아니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모르는 자, 너무 뻔뻔해서 부끄러움이 오히려 나의 몫이어야 하는 자들을 향한 혐오와 증오는 괜찮아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에 저자는 무어라고 답할까. 물론 ‘범죄’ 영역에 국한된 성찰이겠으나 일상을 견디는 나, 아니 우리 모두는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서 문제가 다시 시작된다.

‘증오’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과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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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기타
브야사 지음 / 여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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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양으로 승부하던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인간의 고유한 창조성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 처리 능력이 아니라 정보 편집 능력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인문학적 소양과 내면의 가치를 강조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현실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목적과 가치가 단단한 사람은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으며 불안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으며 살 수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오래된 인도의 경전이다. 이 책은 힌두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리나 요가의 수련 방법이 아니라 삶의 지침서로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찬란하고 무용한 마음 공부의 한 방편으로 크리슈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새로운 눈으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앎의 궁극 목표인 ‘나’를 찾는 것이 참다운 지혜다. ‘나’ 아닌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은 무지다.”(제13장 11절) 이런 문장을 곱씹다 보면 홍자성의 『채근담』에서 삶의 지혜를 얻듯이 자기 수양과 마음 챙김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가 문자로 기록된 고전들이 대개 그러하듯 바가바드 기타는 정본에 대한 논쟁이 많고 전하는 사람마다 그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해석한다. 여기서는 최근에 출간된 책을 소개하지만 여러 판본을 살펴 마음에 드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바가바드 기타는 전체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르주나의 번민에서 시작해서 해탈에 이르는 과정으로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족과 지역에 따라 역사, 문화, 전통이 다르게 발전해 왔다. 시대와 상황을 고려하여 이질적인 요소를 걸러내고 인간의 삶과 세상 사는 이치에 대한 부분에 집중한다면 이 책에서 색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네트워크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고독과 마주하는 혼자만의 시간은 현대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때때로 돌아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한 대로 살기 위해서는 물질과 육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정신과 마음의 영역을 돌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공부에 집중한다면 중년 이후의 삶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서 주인으로 살려면 세상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세상일에 얽매여 분주한 사람은 결코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한다.(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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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
제나 히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에트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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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호기심과 질문의 동물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밤하늘의 빛나는 별빛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우리 삶에 의미가 있는지 등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 작은 호기심이 과학기술 발전의 바탕이며 철학적 탐구의 시작이었다. 인류가 찬란한 문명을 이뤄 현재에 이른 과정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앎을 향한 욕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본능은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지만 우리는 대체로 현실에 적응하며 하나둘씩 질문을 잃어버리고 산다.

주입식, 강의식 학교 교육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공부’는 인내와 고통에 가까웠다. 경쟁과 점수로 각인된 공부는 암기와 동의어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평생 배움의 연속이다.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부터 핸드폰의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일까지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은 나이와 무관하게 매우 소중한 기쁨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지겨운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재밌는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공부의 시작은 관심이다. 인생의 목적지와 방향에 맞춰 사람들의 관심사는 계속 변한다. 진학과 취업, 결혼과 자녀 교육, 부동산과 주식, 건강과 죽음 등 나이와 삶의 단계에 따라 현실적인 관심도 바뀐다. 생애 주기별 평생 교육은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에 의해 자기에게 맞는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업을 찾고, 학위를 받고, 승진을 위한 공부 등은 우리가 경험하는 매우 현실적인 공부다. 이런 종류의 공부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도유망한 철학자이자 교육자로 20년 넘게 대학교수로 일하던 제나 히츠는 순수한 지적 욕구가 넘쳤던 시절을 지나 어느새 위계와 경쟁에 익숙해져 ‘배움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학계를 떠나 캐나다 동부 외딴 숲속에서 노동과 봉사를 수행하며 ‘작고 평범한 인간의 삶’을 실천한다. 그리고 성공이나 생산성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자기 성찰과 진정한 가치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책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이해관계를 떠나 사람과 사물을 향한 관심이 인간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진짜 공부가 아니냐고 묻는 듯하다. 금전적 이익을 계산하지 않는 배움, 나를 돌아보며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태도야말로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가 아닐까. 중년을 넘어 은퇴한 이후에도 내면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았는지, 노후 준비를 위한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충고가 떠오르는 저자의 이야기가 새삼스레 삶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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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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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정보가 신이 된 세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호모 데우스』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연결’, 즉 상호 접속된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넥서스nexus』는 컴퓨터와 AI가 만나는 네트워크 세상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진실이 사라진 시대,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역사학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지식과 정보는 특정 계층이나 지식인, 전문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공공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에서 정보는 더 이상 지혜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한 경고와 우려를 담아 현실을 살피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역사, 즉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점을 살피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와 AI로 인해 달라질 세상에 대한 고민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쉽게 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좋은 책은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물음표를 남깁니다. 호기심과 질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지 않는다면 글쓴이의 생각에 쉽게 동의하며 누군가 정해준 길을 걷게 됩니다. 유발 하라리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현상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꼼꼼하게 살핍니다. 대안과 해결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입니다. 미래는 개별 독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논쟁과 토론이 가능한 책은 지식의 축적 수단이 아니라 현실 개선의 도구로 기능합니다.

과학기술의 미래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변화와 위협을 극복하며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한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정치인과 전문가에게만 맡길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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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교양 100그램 8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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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 블로어 (whistle blower). 진실을 밝힐 목적으로 자신이 속한 기업이나 조직의 불법 또는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동명의 책이 국내에 소개된 바 있으나 우리에겐 ‘내부 고발자’ 등의 명명법으로 더 익숙하다. 좌파 혹은 진보라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익숙한 개념이지만 모든 이념과 정파를 넘어 모든 인간과 모든 조직은 잠재적 기득권자, 권력자, 앙시앙 레짐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서 수없이 목격한 그들은 대체로 도덕과 가치를 명분으로 그럴듯한 포장지로 자신과 조직을 감싸며 태도를 바꾼다. 결국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며, 선택과 결정 뒤에서 웃는 자를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한참 후의 일이다. 고인 물은 썩고, 오래 머문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변화와 개혁을 부르지는 자들이 이러한데 자기 이익에 골몰하며 우리가 남이냐는 생각으로 거대한 이익 카르텔을 형성한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혹자는 인적 네트워크, 관리된 인간관계, 뛰어난 사회생활 능력이라고 평가하지만 유형, 무형의 편의를 봐주고 이익을 공유하는 건 어떤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을 비난하는 자들도 결국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고 그럴듯한 명분과 가치로 혹세무민하기 일쑤다. 대개 부패와 비리 사건이 보수 정권에서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과 태도로 인한 자연스런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길게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길고도 해묵은 뿌리를 들여다보기 전에 눈 앞에 펼쳐진 대환장 파티 같은 현실 때문이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어머니가 극우 유튜브에 빠진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해서 일반적 부모의 마음과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제목처럼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과 방법에는 조금 차이가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책장을 여는 정도면 충분하다. 2025년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 다음 날 SNS에 올린 ‘내 아들을 구출해 왔다’라는 글로 극단주의에 빠진 10대 아들 이야기를 공유한 저자의 목소리는 흥분과 분노와 거리가 멀다.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논리와 이성에 근거한 사유가 문제를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인류는 변연계가 아니라 신피질이 두터워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종교가 아니라 과학의 힘으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AI가 신의 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예측까지 나온 지 오래지만, 현재는 유튜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에코 쳄버나 필터 버블에 관한 숱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니 그 말조차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도 알고리즘이 창조한 세계 안에 갇혀 이미 100여 년 전에 알을 깨고 나오라고 외쳤던 헤르만 헤세의 조언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너는, 아니 우리는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평범한 엄마 권정민은 혐오와 극단주의를 몰아낼 건강한 대화법 7계명을 제시한다.

1. 일단 들어보자.

2. 이해와 공감을 말로 표현하자.

3.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연결해보자.

4. 새로운 정보는 서서히 소개하자.

5. ‘나도 모른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6. 상대의 관심사를 포착하자.

7. 생각을 되돌아볼 시간을 주자.

책갈피처럼 꽂혀 있는 종이 카드를 살피다 씁쓸해졌다. 극우 유튜브에 빠진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노하우가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대화의 예의가 아닌가. 그만큼 상식이고 일반적일 거라고 짐작하는 일들이 일상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대화와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유형을 몇 가지로 나눠보면, 첫째 내 생은 이런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묻고 상대방의 말을 들는 사람이 있다. 둘째 이 문제는, 이런 상황, 이 사건은 이런데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하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다. 셋째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거나 물어보지도 않고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추측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는 없다. 지구에 사는 80억 명, 아니 대한민국 5천만 명을 70:20:10 정도의 비율로 나눌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게 많아 지키고 싶을수록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있고, 세상은 어떤지 규정하며, 삶의 방법을 가르치려 한다. 단순히 ‘꼰대’라는 속어로 범주화할 수 없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계급을 배신하는 투표, 정치 유튜브에 쩐 뇌, 드라마와 영화조차 요약과 쇼츠로 소비하는 일상이 모이면 극우든 극좌든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도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태도가 본질이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비판적 사고력이 부족하고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과 사유의 시간을 갖지 못한 10대 아들이 단시간에 유사 알고리즘에 빠지는 현상은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그들을 구출해 낼 수 있는 특별한 노하우가 아니라 점점 좁아지는 우리들의 시야,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대화와 토론은 수업 시간에만 배우는 교육과정이 아니다. 특별한 스킬과 노하우를 습득할 필요도 없다. 타인을 향한 기본적인 예의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다. 다른 사람의 ‘진심’ 운운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감정을 추측하는 이 감별사들의 주관적 판단이 주는 해악은 이성적 토론을 무력화하는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디어는 언제든 다시 등장하고 새로 만들어진다. 사실과 의견(해석과 주장)은 다르다. 자기 생각을 말할 때, 주관적 감정이 섞어 사실 운운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수많은 유튜버들이 사용하는 프로파간다가 바로 그런 식이다. 기본적인 팩트체크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숨 쉬는 일만큼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하는 일만큼 극좌 유튜브에서 엄마를 구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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