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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자본론 - 풍요의 이름으로 우리가 놓친 모든 것에 대하여
임승수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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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민주당 당원이다. 당비를 내는 정도가 의사 표시의 거의 전부지만 지향점에 대한 확인이자 공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멈춘 적이 없다. 매우 이기적이며 현실적이며 냉정하고 논리적인 판단 성향을 가진 인간의 지향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자연선택이 아니라 집단선택을 하는 유전자처럼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지속가능한, 보다 넓은 의미의 장기적 행복의 바탕은 ‘나만’이 아니라 ‘함께’에 수렴한다. 인류 역사가 증명한 태도이며 먼저 살다 간 현자들의 결론이다.

철 지난 이념 논쟁과 다른 경제 이야기다. 루카치의 ‘사물화’가 마르크스의 ‘인간 소외’로부터 영향을 받았듯 근대 이후 현생 인류의 거의 모든 학문과 삶에 영향을 드리운 진화론, 정신분석, 맑시즘은 ‘돈’과 직결된다. 부자가 되려면, 행복을 찾으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라면 사람들이 귀를 좀 기울일까. 『자본론』은 그런 책이다. 숱한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세월을 견디며 사회학적 상상력을 길어 올리는 샘물 같은 책이다.

이 자본론을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게 알려주겠다는 임승수의 일관된 노력과 사회주의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오랜 시간 책으로 지켜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의 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와인에 심취해 거품을 무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안도했다. 『오십에 읽는 자본론』을 보면서 이제 편안하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나를, 아니 저자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비록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 그들의 지향이나 노력에 관심을 가져볼 나이가 오십이 아닌가. 어차피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생긴 나이가 오십이 아닌가.

고3 수험생을 둔 부자 아버지와 저자의 대화 형식으로 써내려 간 자본론은 이 악물고 무언가를 관철시켜야 했던 순간들, 깨지고 부서져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던 시간들, 이상과 신념으로 가득했던 청춘의 한 시절을 넘어 선 느낌이다. 도를 터득한 노인 같은,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아재의 넉넉함과 여유가 보이는 자본론 이야기는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되는 자본론, 누구나 알아야 하는 자본론,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자본론, 생활밀착형 자본론, 실천적 자본론이라 할 만하다. 소설 형식으로 쓰여 등장인물과 상황이 주어지자 죽은 마르크스가 되살아나 현실의 문제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자본주의가 이대로 괜찮으냐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꼰대가 아니라 먹고 살기 바빠서 잘 몰랐지만 도대체 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왜 빨갛게 변해가는지 또 아직도 그러한 지 궁금해서라도 한번쯤 읽어보면 어떨까. 내 친구와 이웃을 위해서라도. 엄빠, 삼촌, 이모, 조카, 선후배가 모두 모여 자본론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이제 대한민국은 갖고 있지 않은가.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고전에게 기대고 이런 책들에게 신세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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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질서 - 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
클라라 E. 마테이 지음, 임경은 옮김, 홍기훈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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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우가 말했다.

“이리 와 나하고 놀자. 난 정말로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안했다.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여우가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까지 세상에 다른 수많은 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필요 없어. 너도 물론 내가 필요 없겠지.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될 거야.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테니. 나도 너한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구......”

너무 자주 보면 감동도 의미도 사라진다. 어린 왕자의 여우의 대화가 그렇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서로 길들이는 것일까. 누가 누구를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걸까. 현실에는 소혹성 B612호에 살던 어린 왕자 같은 사람이 거의 없다. 반복해서 말해도 듣지 않는 귀 없는 사람이나 상대방의 기준과 무관하게 선을 넘는 사람들은 대개 부모, 형제, 연인, 친구처럼 사랑과 우정과 친밀감을 내세운다. 그건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자발성이 아니라 강요와 순응이 아닐까.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어떤 제도와 규정도 다르지 않다. 시대와 상황과 선택의 결과일 뿐 언제든 고치고 바꿀 수 있다는 생각보다 적응과 생존에 초점이 맞춰진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그렇고 자유와 평등이 그러하며 공정과 정의가 그러하다.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은 피해를 보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 질서와 법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아니라 합의된 선택이라면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며 개선의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자본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 아니라 그 질서의 모순과 문제를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클라라 E. 마테이는 ‘긴축’이라는 프리즘으로 자본주의를 톺아본다.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해진 20세기 이후 경제의 흐름을 연구한 결과물로 그 깊이와 넓이가 충분하며 관점과 기분이 명확하다. 지나간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으나 원인을 진단하고 결과를 살피는 일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필수 코스다. 주로 유럽, 특히 영국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상황을 살피고 있으나 정부의 개입 여부, 재정 건전성, 경제 민주화 등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경제의 방향과 목표를 고민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저자의 고민과 연구가 자본 질서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과 의미를 찾을 수 있으려면 각국의 경제 상황과 정책에 대한 방향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안녕하신지, 그 목표와 지향점은 합의할 수 있는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동의할 수 있는지, 특히 ‘긴축 재정’에 대한 철학과 현실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다 같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의미 있는 논쟁을 촉발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두 기둥은 ‘사유재산’과 ‘임금 관계’다. 생산 수단과 노동력이라는 거대한 축을 이해하지 못하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고민의 원인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설명한다. 1부 전쟁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 후 1918~1920년 영국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대다수 노동자, 즉 국민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불평등이 어떻게 공고해졌는지, 전쟁 이후 새로운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2부에서는 긴축의 탄생과 배신을 설명한다. 경제 전문가들의 생각과 긴축 설계도가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었는지 설명한다. 긴축의 3가지 지표인 ‘노동 분배율, 착취율, 이윤율’을 통해 긴축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본다.

언제나 중요한 건 우리의 삶이다. 자본 질서는 다수의 권리를 박탈하는 경제이론이다. 왜 사람들은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인 경제 질서와 제도에 순응하는가. 다수는 소수의 이익에 복무하는가. 낙수 효과? 전문가의 지식과 정보? 경제 성장에 대한 신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긴축으로 이익을 보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묻는 저자의 서문에 답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답은 개별 독자의 몫은 아니지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경제의 비정치화’라는 긴축의 슬로건을 내면화하게 된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자본의 노예로부터 노동의 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난한 투쟁을 반복했다.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게 경제 논리 앞에선 모두가 냉정해지고 이해관계를 따지는 일은 본능에 가깝다. 그러나 목소리 높여 자기 이익에 반하는 이율배반적 생각과 태도를 주장하는 놀랍기만 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부동산 카페에, 다양한 경제학자들의 칼럼에 반영된 기준과 목표를 통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선택과 결정인지에 대해서는 ‘쿠이보노’를 살펴야하지 않을까.

계급 갈등과 경제 지배는 최상위층의 개인이 이윤 추구라는 더 큰 경제적 미덕을 발휘해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이른바 조화를 탈바꿈한다. 이런 식으로 경제이론은 수직적 생산관계를 비판할 여지를 허용하지 않고,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며, 대중에게 순응하라고 설득한다. -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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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 산업 불황의 원인과, 빈부격차에 대한 탐구와 해결책 현대지성 클래식 26
헨리 조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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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보다 앞선 다른 시대에 유토피아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인간은 아직도 동굴 속의 비참하고 벌거벗은 상태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_아나톨 프랑스

뉴기니에 사는 원주민의 질문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에게 『총, 균, 쇠』를 쓰게 했듯, 전신 뉴스 권리를 얻고자 뉴욕 출장을 갔던 언론인 헨리 조지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진보와 빈곤이 어깨동무를 하는 이유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치경제학이 답을 주지 못하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바로 위대한 저작 『진보와 빈곤』을 탄생시켰다. 학문적 호기심이나 학자적 양심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답답함과 가슴에서 우러나온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현대 고전 중 하나다.

제1권 2장에서 밝히고 있듯이 “나는 경제학 교과서를 쓰려는 게 아니고, 단지 어떤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내려고 한다.” 중대한 문제는 경제성장을 거듭하는 사회의 가난이고, 법칙은 가난을 물리치기 위한 해결책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저자는 자본주의 내부의 심각한 문제인 빈부 격차의 심화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경제학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향해 털어놓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그러한가.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 책은 그에 답한다.

임금은 자본이 아니라 상품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은 헨리 조지의 주장은 상식이다. 이 말이 상식이 되어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헌법에 기초한 정당한 권리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 스스로도 노조에 대하 부정적 시선을 거두지 않는 타당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할 일이다. 말썽부리는 자식을 죽이는 부모는 없다. 잘 가르쳐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온 사회가 돕는다. 그래서 한 아이는 온 마을이 기른다는 말이 있다. 절대 다수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제정한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노조 자체를 불순한 집단으로 매도하거나 그 활동을 제한하는 말과 행동이야말로 노동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 천박한 인식이다. 그들은, 아니 노동자인 우리는 자본가의 자본으로부터 나온 임금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힘써 만든 상품과 서비스에서 창출한 부의 일부에서 나온 당연한 권리를 갖는 것이다.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

직업과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모든 임금 노동자는 일에 대한 대가, 즉 월급이나 연봉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것이 합당한가를 살핀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겪는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엄청난 부를 거머쥔 사람들을 향한 태도와 생각은 어떤가. 선동적인 계급 투쟁의 시대를 거쳐 자본주의가 숨 쉬는 공기처럼 편안해지고 민주주의가 보편적 가치가 된 세상에서도 가난과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다. 식량과 물품이 부족해서 여전히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고 일가족이 투신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

헨리 조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 공유제를 주장한다. 세금 또한 토지세 하나면 충분한 이유를 설명한다. 사실 토지 공유제는 새로운 사상이 아니다. 멀리 플라톤의 『국가』에서 오비디우스의 황금시대를 거쳐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생각이다. “토지 사유제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으로서 왕권신수설만큼이나 인위적이고 근거 없는 사상이다.”(384쪽)라는 말은 “역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볼 때, 개인의 소유로 둔갑한 토지는 일종의 장물이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미 사적 소유가 허용된지 오래 된 토지를 공유지로 다시 환원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토지 단일세를 제안한다. 그러면 형식상 토지 소유권은 현재 그대로 유지되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땅 주인으로부터 소유권을 빼앗는 일도 없고,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땅의 한도에 제약을 가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국가가 세금의 명목으로 지대를 가져가기 때문에, 토지는 누구 명의로 되어 있든 어떤 방식으로 분할되어 있든 실제로는 공동 재산이 될 것이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그 소유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제안한다.

6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헨리 조지의 핵심 사상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과학기술과 문명발달이 계속되는 현대사회에서도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지, 빈곤은 역사의 진보에서 필연적인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 토지 공개념과 토지 단일세를 주장하며 개인의 좋은 삶과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종교적 관점에서 살피며 책을 맺는다. 이후 애덤 스미스-데이비드 리카도-토머스 맬서스-J.S. 밀 등으로 이어지는 고전경제학의 대가들에 맞선 마르크스의 등장으로 재야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는 외면받았지만 진보와 빈곤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세들에게 여전히 영감을 제공한다. 치열한 경쟁과 끝없는 욕망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비극이 인간사의 숙명일까. 여전히 가난하고 대책없는 삶은 오롯이 개인의 책임일까. 능력주의에 대한 반성, 자유와 평등에 대한 해석, 노동과 임금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때마다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비슷한 고민들의 흔적을 뒤적인다.

주기적으로 부동산 광풍이 불때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사람들은 삶의 목적과 방법을 바꾸고 아이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가르치지 못한다. 토지 공개념이 등장할 때마다 소환되는 헨리 조지는 공산주의자도, 빨갱이도 아닌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으나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장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 생겼을 뿐이다. 도시는 매일 발전하고 누군가는 아주 잘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렇게 가난할까. 뉴욕의 마천루와 할렘 가를 목격한 헨리 조지는 엄청난 빈부격차의 원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고전경제학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지대, 이자, 임금의 관계와 그 설명에 문제는 없을까. 현실은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이론이 등장하기 어려울 뿐이다.

미국의 인쇄소 식자공이었던 아일랜드 사람 헨리 조지의 최종 학력은 중학교 중퇴다. 가방끈이 한 인간의 면면을 말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출신학교와 학위, 직업과 이력으로 한 인간의 삶을 평가하기 일쑤다. 그가 걸어 온 길과 흔적을 무시할 수 없으나 대개 한 사람의 본질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학력이나 직업을 떠올리기 어려운 헨리 조지의 글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진보와 빈곤에 관한 열정적 탐구심, 학문적 호기심, 주제에 천착하는 끈기에 문학적 감수성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 보태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지 않게 설명하면서도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이론을 살피고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며 차근차근 설명하는 노력이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공부‘도’ 잘한 사람이 좋은 삶을 살 가능성이 높고, 그 다음은 공부‘는’ 못한 사람이다. 공부‘도’ 못한 사람이 세 번째라면, 최악은 공부‘만’ 잘한 사람이다. 공부도 못한 사람이 아니라 공부만 잘한 사람들이 대개 세상을 망치고 타인에게 더 큰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궁구하여 질문하고 탐구하는 사람의 자유로운 생각과 한계없는 상상력이 인류에게 더 큰 꿈과 희망을 준다고 믿는다. 사유재산 자체를 부정한 아나키스트 프루동의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이 내겐 더 매력적이지만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헨리 조지의 주장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년의 톨스토이의 삶을 생각하면 지식인의 태도와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여러 칼럼에서 톨스토이가 수없이 인용했던 『진보와 빈곤』은 그의 생을 마무리하는 데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대표작 『부활』에서도 네흘류도프의 입을 통해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며 개인 영지를 모두 농부들에게 나눠주며 자신의 삶을 부활하는 발판으로 삼는 장면이 나온다. 무언가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은 노동가치와 잉여가치, 차액지대와 절대지대의 차이를 몰라도 괜찮다는 점이다. 경제학 용어와 이론과 통계 수치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알기 쉽게 설명하며 보편적 상식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세상이 나아갈 방향은 정답이 없다. 어느 시대에나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아이디어와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여기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제도와 법률, 경제 체제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 바뀔 가능성을 내포한 미래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이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주어진 조건에 충실한 노예와 다름 없다. 생각은 다른 곳을 보게 한다. 질문에 답하는 대신 감정적 반응을 보이거나 침묵하고 외면하며 자신의 이익만 돌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켤코 옳지 않다는 것도, 고쳐 나가야 한다는 사실 또한 더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토지 공유제, 지대 수익의 국가 환수, 불로소득의 근절이 철지난 유토피아의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면 그것이 곧 진짜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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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자본주의
베르너 좀바르트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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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과 사치품을 구별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밴드왜건 효과의 극대화가 유행을 만들고 ‘인싸’와 ‘아싸’를 구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놉 효과를 노리는 사람들만 명품을 소비하는 건 아니다. 고가의 물건은 나름의 효용 때문에 그만한 값을 지불하고 구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그것이 타인의 부러움과 시샘이든 자기 만족과 인쟁 투쟁이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치’는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철지난 유행가 같은 소리에 한번쯤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떤가. 1913년, 베르너 좀바르트는 사치가 자본주의를 촉발했다는 신박한 주장을 내 놓는다. 인간의 허영심과 상위 계급에 대한 모방이 사치를 조장했고 그것이 서민들에게 유행하면서 자본주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주장은 초기 자본주의 모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만하다. 장에 가는 어머니의 에코백과 영부인의 명품백은 장소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때로는 마트에 들고가는 명품백과 대통령 전용기에 오르는 에코백이 자리를 바꾼다. 계급과 계층에 따른 소비와 자본주의적 욕망에 시비를 걸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는 이를 흠모하며 삶의 목적과 보람이 되기도 한다. 100년도 지난 베르너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가 새롭게 읽히는 건 숨쉬듯 편안한 자본주의의 출발과 중세 계급 사회의 사치가가 근대사회로 전환되면서 어떻게 일반적인 생활방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대의 강은 넓고도 깊다. 자본주의가 확고하게 자리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해왔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은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궁정에서 출발한 사치는 시민의 부와 새로운 귀족, 즉 신흥자본가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저자는 16~18세기를 집중적으로 조망한다. 대도시의 발생은 사랑을 세속화했고 고급 창녀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1~3장은 4~5장을 위한 사적 전개 과정이다. 사치가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으며 사치에서 자본주의가 배태된 배경을 추적한다. 그러면 이 책의 제목이 된 ‘사치’란 무엇일까.

“사치란 필요한 것을 넘어서는 모든 소비이다. 이것은 분명히 상대적인 정의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때에만 명료한 내용을 지닌다. 이것을 확실하게 하는 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선 그것을 주관적으로 어떤 가치판단(윤리적인 것이든, 심미적인 것이든, 또는 그 어떤 조류의 것이든지 간에)에 근거할 수 있다. 아니면 그 필요한 것을 잴 수 있는 어떤 객관적인 척도를 찾으려고 시도할 수 있다.” 좀 당황스런 기준이지만 주관적 가치판단과 객관적인 척도를 살피자는 주장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필요한 것을 넘어서는 모든 소비’라는 간단한 정의도 문제다. ‘필요’의 기준과 수준이 다르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상식’이 서로 다르듯, 필요는 ‘욕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베르너 좀바르트는 이 기준을 저 멀리 왕과 귀족에서, 가깝게는 도시생활에서 찾는다. 순수한 사치산업과 혼합산업, 사치소비의 혁명적인 힘으로 마무리되는 일련의 과정은 근대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힘으로서 사치의 역할과 힘을 보여준다.

1899년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 계급론』을 통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새로운 안목을 보탰다.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깊었던 관점 중의 하나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정치가 배제된 형태의 통계와 결과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벌어진 현상에 대한 해석은 현실을 이해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데 생각보다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만약 그랬다면 노벨 경제학상 수장자를 대통령이나 경제관료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경제학 전공자들이 실물 경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경우는 드물고 불황과 공황을 예측할 수도 없었다. 정치와 심리가 경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각종 지표들로 무장한 예측들이 난무하지만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생활밀착형 경제학을 들고 나온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르티아 센이 불평등과 빈곤에 대해 깊이 고민했으나 ‘자유로서의 발전’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제 다시, 아니 언제나 그러하듯 왜곡된 자본과 개인의 이기적 욕망은 비정상적인 괴물을 양산해왔다. 합리적 선택과 이성적 판단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제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난무한다. 오래 전 베르너 좀바르트도 자본주의의 ‘현재’를 고민하기 위해 통시적 관점으로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전망했으리라. 현재는 과거의 결과다.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시간의 연속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우리는 현재의 결과로서 미래를 맞이할 뿐이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어떤 선택과 행동으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개인의 노력과 한계라고 해도 흐름을 짚어내고 전체를 조망하는 안목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이 ―이미 우리가 본 바와 같이―비합법적인 사랑의 합법적인 자식인 사치가 자본주의를 낳은 것이다. -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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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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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지붕 혹은 텐트 천정에 쏟아지는 빗소리는 후라이팬 위에 기름이 튀는 소리를 닮았을까. 장마철 파전에 막걸리조차 건강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WHO가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을 발암가능 물질로 분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치킨에 맥주든, 와인에 치즈든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라는 원망과 분노가 전해지는 정호승의 시가 떠올랐다. 시인은 ‘술 한잔’은 사랑의 비유적 표현이라고 했으나 팍팍한 세상과 황당한 뉴스가 입맛을 쓰게 한다. 사는 일이 모두 먹고사니즘을 향한 맹렬한 전쟁이라면 음식 그 자체가 ‘경제’의 바탕일 것이다.

식탁 위의 세계사부터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까지 인간의 삶은 음식과 뗄 수 없는 활동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조건이며 생물학적 욕망의 근원인 식욕은 거의 모든 욕망의 근원이다. 가히 마늘의 민족이라 할만큼 전세계 어느 국가와도 비교불가인 한국인의 마늘 소비량. 그 알싸하고 냄새나는 마늘 이야기와 한국인의 식습관으로 시작하는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맛을 표현하기 어렵다. 달콤 쌉싸름하다가 쓰고 떫은 맛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요리에 진심인 경제학자의 18가지 재료와 요리 이야기는 읽을만하지만 그와 얽힌 지구 곳곳의 경제 이야기는 입맛을 돋우는데 실패한다. 재미와 의미를 함께 잡을 수 있는 독특한 책이지만 결국 문제는 경제다.

동종교배를 반복하면 환경 변화에 취약해진다. 미국 유학파 교수와 경제 관료들이 모여 신고전주의 경제학 이론으로만 대한민국을 요리하거나 자유 시장경제의 명암을 무시한 채 여전히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이 가득한 대한민국 사회는 성장, 발전 가능성이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와 그의 이야기가 대한민국 주류 경제학계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경제학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정치경제학으로 출발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경제는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경유착이 문제니 정치와 경제는 멀수록 좋다는 착각은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황당한 논리가 성립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계속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제 제도와 시스템을 들여다보고 정부 정책과 시장 개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한다. 결국 자기 이익에 충실한 개인들에게 경제를 안다는 것, 경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장하준은 경제학이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경제적 변수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다시 말해 우리 자신에 대한 규정 자체를 변화시킨다.”라고 말한다. 먹고 사는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경제다. 정답이 없다면 토론과 타협이 필요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지향점을 고민하는 데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보태야 한다. 노조를 해체하고, 실업급여를 폐지하면 경제가 살아날까. 낙수효과의 희망고문과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신화는 이루어졌는가. 선별복지와 보편복지의 논쟁의 전제 조건인 ‘복지의 필요성’은 어디까지 합의가 된 건가.

폴 크루그먼과 나심 탈레브, 토마 피케티와 장하준을 통해 거시적 관점에서 경제 문제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는 지혜를 가질 수는 없을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의 이야기든 유럽의 경제학자든 우리가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의견과 방법을 제시한다면 귀 기울여 들어봐야하지 않을까. 이 책은 편견 넘어서기, 생산성 높이기, 전 세계가 더 잘살기, 함께 살아가기,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로 나뉘어 경제학을 더 잘 먹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머리말에 놓인 마늘만큼 지독한 냄새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식탁에 모여 경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게 한다. 학문적 성과 뿐 아니라 대중적 글솜씨가 최고인 경제학자 장하준의 책은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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