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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바티칸의 금서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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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져도 군주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 군주라는 지위는 군주국의 형태로 남아 있는 나라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공화국에도 군주의 지위를 가진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들의 지위와 역할이 많이 달라졌으나 변하지 않는 치세의 전략은 현재도 유효하다. 500여년 동안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만큼 군주와 백성 사이의 관계, 군주와 신하들 사이의 관계, 군주와 다른 군주와의 관계 등을 가장 현실적인 관점에서 논하고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지역의 패권을 잡기 위해 군주가 지녀야 할 덕목은 물론이고 외교 문제와 신하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고전은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문제만으로도 그 역할은 충분하다. <군주론>의 상세한 내용은 당시의 이탈리아의 정치, 역사, 외교, 문화 등 폭넓은 시각과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고 분석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배경지식의 역할 이외에는 다른 의미는 없다.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의 로렌초에게 이 논문형태의 책을 헌사한 이유는 당시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아들이었던 체사레 보르자를 이상적인 군주로 설정하여 피렌체의 굳건한 기반을 다지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음은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현실 군주의 실전 지침서이면서 자신의 능력과 안목을 보여주기 위한 처절한 목적이 숨어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공화국 형태의 나라에서 군주는 대통령에 해당한다. 물론 그들이 가진 권리와 의무, 국민들과의 관계가 군주국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실 정치의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군주론>의 이야기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 흔히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잘못된 용어로 군주의 냉혹함과 인색함, 잔혹함과 두려움의 덕목들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군주론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고 당시의 사회사적 관점에서 그 의미를 짚어보고 고민해본다면 도대체 마키아벨리의 의도가 무엇이었으며 군주론에서 이야기하는 군주가 지켜야할 덕목들에 대한 세인들의 오해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된다.

  말하자면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의 혼탁한 소용돌이 속에서 강력한 군주국으로 나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갖추어야할 군주의 덕목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인간관계와는 달라야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군주라는 특별한 자리에 오르기 위한, 혹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군주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은 혼란한 국제관계에서, 그 힘의 논리에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나름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시대와 상황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본다면 마키아벨리의 주장과 견해는 충분히 의미있고 수용될 수 있는 정도의 견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책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설정하고 집필된 것으로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에스퍄냐,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나폴리, 밀라노, 베네치아 등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힘의 부침에 따라 몰락과 부활을 반복하는 군주들의 모습을 지켜본 외교관 마키아벨리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의 과정과 군주의 몰락 과정 그리고 굳건한 기반을 다져가는 군주의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16세기 중반의 이상적 군주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달라진다. 정치 형태도 달라지고 국제 관계도 변화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군주의 지위에 버금가는 지위에 오른 자와 국민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측근들을 다루는 인간 관계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충고들은 여전하다고 본다. 왜곡된 형태로 역사속의 인물이 잘못 이해되거나 한 권의 책이 지니는 의미를 과대 포장하거나 축소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있는 그대로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시 한번 미래를 위한 역사의 교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와 로마의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사회문화적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이 책은 훨씬 더 많은 논의와 해석이 가능한 책이라고 본다. <군주론>은 군주국의 종류와 성립에서 시작해서 야만족으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간곡한 권유에 이르기까지 전체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제 18장은 <군주론>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인용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은 군주가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덕목들이다.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군주들은 약속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으며 기만을 통해 사람들의 혼을 빼놓?데 능숙한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신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제압했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수단이 있음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법률에 따르는 痼見?다른 한 가지는 힘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군주는 짐승과 인간의 성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 그러므로 군주는 짐승의 성품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짐승 들 중에서도 여우와 사자의 성품을 선택해야 합니다. …… 현명한 통치자라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해지거나 약속하도록 만들었던 이유가 사라지게 되면 약속을 지킬 수도 없을뿐더러 지켜서도 안됩니다. ……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군주는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어겨야하며, 자비심도 베풀지 말아야 하며 종교도 무시해야만 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 군주는 운명의 방향과 자신에게 닥쳐오는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 군주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자비롭고 신의 있으며 정직하고 인간적이며 신앙심 깊은 사람으로 보여야만 합니다. (본문 146~150페이지)

  전체 문맥 속에서 그리고 당시의 사회역사적 관점으로 외교 관계까지 들여다 보고 마키아벨리가 열망했던 강력한 군주를 통한 조국 이탈리아의 대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또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관계의 덕목과 민주사회에서 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님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 권력과 강력한 왕권을 위한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으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군주로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논쟁속에 휩싸여 있고 오해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혹은 정치와 권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거나 반대하는 지침서로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0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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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인터뷰 특강 시리즈 2
한겨레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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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흔히 예술가들의 전유물로 오해하기 쉽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없는 기능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능이 상상력이다. 나는 늘 꿈꾼다. 몇 천억쯤 되는 돈이 있다면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하는 상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굶주린 아이로 살아있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마당을 쓸고 있는 상상에 이르기까지 공상에 가까운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상상은 대부분 공상으로 마무리 되지만 ‘꿈’의 의미와 범위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을 것이다. 앞서 열거한 개인적 공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생산적 상상력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겨레의 인터뷰 특강은 작년의 <21세를 바꾸는 교양>에 이어 올해는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계속됐다.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한 권의 책으로 현장을 떠올리며 읽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교양’에 이어 ‘상상력’이라는 다소 모호할 수 있는 주제와 특강에 참여한 강사들의 강의 내용이 직접 관련을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모든 문제는 개인에게 돌릴 수 밖에 없다. 타인에 의해 상상력이 자극될 수는 있겠지만 대신 생각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통을 나누는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한비야, ‘신화의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이윤기, ‘자아실현의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홍세화,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드는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박노자, ‘과거를 푸는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한홍구, ‘문명에서 배우는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오귀환의 인터뷰 특강이 이어졌다. 6명의 제각각 다른 색깔들로 채워진 이번 특강은 6인 6색이었다. 김갑수의 사회로 진행되어 앞부분의 짤막한 강의 내용에 대한 청중들의 질의 응답 형식으로 이어져 일방적인 강의와는 달리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각기 다른 주제가 무지개처럼 뒤섞이진 않았으나 거부감이 들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주제가 다르고 강사들의 공통점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상상력’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너무나 익숙한 6명의 이야기가 식상할 수도 있으나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할 내용들이다.

  21세기는 불연속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간 구분에 속한다. 시간을 1년 단위로 끊어서 연말연시다 세기말이다 하는 것은 나름대로 정리와 반성의 의미를 지니겠지만 쉼없이 흘러온 시간과 역사 속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전체 강의 주제에서도 나타나듯이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개인주의와 가족주의를 넘어서 거시적인 안목에서 사회를 조망해보는 고민이 모든 사람들에게 상시적일 수는 없어도 한번쯤 짚어봐야 할 당연한 문제이기도 하다. 큰 틀과 전망 속에 개인이나 가족의 모습도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의의 주제나 내용이 비현실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이지는 않다. 우리들 생활속에서 미쳐 깨닫지 못했거나 생각하지 못할 수 있는 부분들을 함께 고민해보고 개개인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는지 그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 고민해보기도 한다. 그것이 21세기든 22세기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개개인의 노력과 사회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평생 고민하며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개인을 위해서든, 사회를 위해서든,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한 점으로도 찍힐 수 없는 역사속의 개인의 의미를 묻기 전에 사는 이유에 대한 소박한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불편부당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관점이 잘못되었거나 사회가 변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시선과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리 분석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본다.

  세상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과 개인적 관심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 무한한 상상력과 에너지가 하나로 모아지고 개인과 사회가 어깨 겯고 나갈 수 있는 힘은 우리 모두에게 충분하다. 힘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다. 공간과 시간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미래의 모습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지 을까? 참 별 쓸데없는 걱정도 다 했던 과거가 있어다는 미래의 어느 순간을 상상해본다.


200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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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상식론 - 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하여
박호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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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날 이른바 ‘좌파’의 자세를 아우르며, 과격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 ‘래디컬(radical)’의 어원은, ‘뿌리째 파고든다’는 의미를 가진, ‘라딕스’라는 라틴어다. 말하자면 뿌리까지 파고들어 속속들이 따지고드는, 단호한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 P. 197

  강유원이 자신을 표현할 때 래디컬하다고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색깔이다. 분명하고 군더더기 없이 그 사람을 알려줄 것 같은 매력이 있다. 한 인간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래디컬한 인간이라는 일종의 편견을 가지면 사상의 단면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잘못 표현되거나 독선에 빠질 수도 있으나 그것은 개인적 차원의 수준 문제다. 자신의 사상과 색깔을 분명히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색깔만 논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늘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실천의 문제로 귀결된다. 수많은 탁상공론은 의미없다. 다소 과격하더라도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육화된 이야기에 감동을 담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호성의 논의와 코드(?)에 일단 동의하지만 강력하고 진심어린 주장은 공허함 울림으로 끝나버린다.

  박호성의 ‘우리시대의 상식론common sense for korean’은 일종의 편견이다. 수구꼴통 우파에서 본다면 좌파의 상식은 상식이 아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겠지만. 건전한 상식을 가진 - 여기서 말하는 ‘건전’의 기준은 뭘까? - 사람들이라면 동의할만한 상식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것이다 말하기는 참 어렵다. 우리 시대의 상식이라니, 너희들 시대의 상식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박호성은 좌파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다. 그래서 그는 ‘진보進步는 진보眞寶다.’라고 말한다. 進步가 眞寶라니, 우파의 반응이 궁금하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기준은 상이하다. 다만 일종의 편견이라고 전제할 때 몇가지 성향과 방향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그 단순한 논리가 오른쪽과 왼쪽이다. 물론 가운데도 있지만 그 가운데가 얼마나 위험하고 더러운 처세술인지 박호성의 말을 들어보자.

  지옥에서 가장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장소가 하나 있는데, 그곳은 이승에서 위기의 순간에 중립만을 지켜온 죄인들을 마지막으로 처절하게 단근질하는 곳이라고 불교 경전은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도 역시 힘든 문제가 발생하는 위험한 순간에 항상 중립을 지키며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하는 사람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아무런 위험도 따르지 않는 평화로운 순간에 과격한 말과 행동으로 일관하는 사람 역시 믿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기회주의적 정의감과 무책임한 과격성을 가능한 멀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P. 279

  이 책에서 내가 읽어낸 화두는 이렇게 단순하다. 좌파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갈등하는 사회는 나쁘지 않다. 건전(?)한 우파와 참신한(?) 좌파의 갈등은 차라리 축복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직 멀었다는 비관론 대신 비참한 심정까지 든다. 아직도 이념공방과 과거사 문제, 국가보안법, 사학법 문제에 대한 해법과 시각이 제각각이다. 많은 사람들의 많은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발전적인 갈등과 충돌은 요원해 보인다. 정치인들만의 싸움질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답답하다. 내가, 아니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을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인가. 박호성이 이야기하는 ‘상식’이 진짜 ‘상식’이 되는 날은 올 것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인의 생활 철학과 해방과 통일, 한국 사회의 현주소, 이데올로기와 개혁, 전통과 진보, 자연정치론과 원시인 정치론을 거쳐 새로운 휴머니즘을 주창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 신제국주의와 한반도 민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신휴머니즘’은 저자가 꿈꾸는 유토피아다. 나도 그곳에 가 살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말하던 시인의 말은 부정되어야 할까?

  시간이 흐르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기적이며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유의 평등은 영원한 인간의 꿈일 뿐이다. 자유와 평등이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이상주의를 포기할 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긴다고 믿는다. 성난 얼굴로 달려드는 기득권 세력의 얼굴을 웃는 얼굴로, 상생과 타협과 대화를 요구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의문부호 남는 문제가 아니다. 기다는 지차제 선거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투표 방식을 들여다 보라. 그리고 정치인을 욕하지 말라. 네 이웃을 조심하고 내 입을 단속하라. 지독한 역설과 모순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박호성이 말하?우리의 사회의 문제와 상식의 의미는 깊은 성찰의 시간을 요구한다. 하지만 전방위적으로 덤벼든 이 수많은 논점에 대한 해답은 멀기만 하다. 이론적 담론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대안의 유무만으로 비판을 비난으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지만 이상적 논의와 상식 수준의 이야기들보다, 미래를 위한 큰 그림보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치열함을 배웠으면 좋겠다. 단적으로,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이 쏟아지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무뇌아적 발상과 대책들을 살펴보라. 개혁과 진보의 이름으로 혁명이 이루져야 한다. 아니, 이름이야 어찌됐든 꿈을 꾸고 달려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0602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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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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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들’과 ‘당신들’은 나의 포함 여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금을 그어 놓은 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당신들’이라는 말에는 소외된 ‘나’와 ‘우리들’이 존재한다.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말하는 방식인 ‘당신들’이라는 호칭은 그래서 객관성을 전제로 한다. 소설과 다른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냉정하고 분별있는 시선으로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이거나 공정한 시선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지니고 있다. 귀화한 러시아인 박노자는 외국인은 아니지만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전통과 문화적 관점에서 혹은 유전적 관점에서 완전한 한국 사람으로 볼 수 없다. 내게는 그가 또 다른 유형의 주변인이자 경계인으로 비친다. 그래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소속된 집단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일정부분 한계가 있음을 전제로 할 때, 박노자의 견해에 대해 많은 오류와 문제점도 지적당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논의에 대해 기본적인 시각차를 인정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2006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에 대한 문제점과 미래에 대한 전망은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우리의 모습을 조망해 보는 모습은 항상 필요하다. 쓴소리와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박노자가 우리 사회를 보는 관점은 긍정 속에 부정이다. 경제와 문화 측면에서 괄목한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주)대한민국은 이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2001년에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반응은 다양했다. 5년 후 속편 격인 ‘당신들의 대한민국 02’가 나왔다. 참여정부가 들어섰고 박노자는 이제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을 떠났다고 해서 그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조심스러웠던 표현과 비판을 넘어서 때로는 과격하고 감정적인 발언도 불사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은 알면서 고쳐지지 않는 것들도 많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늘 궁금하다. 그의 말과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과 영향 때문이 아니라 벽안의 귀화 한국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상 속의 권위주의와 숭미주의, 박제가 된 학문의 자유와 합리화된 폭력들, 민족주의와 북한의 문제 그리고 보수를 넘어 진보를 주장하는 그의 이야기들은 미온적 ‘개혁’의 흉내가 아니라 근본적인 ‘혁명’을 꿈꾸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행간에 묻어 있는 그의 생각들은 ‘이상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모두가 꿈을 꾸면 이루어 낼 수 있는 대단히 현실적인 이상들이다. 실현 불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된 미래의 모습, 현실속의 가능태로 나타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간에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방향의 문제를 점검하는 데 일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겨레에 여전히 칼럼을 쓰며 변함없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있는 그의 쓴소리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다. 특정한 목적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목소리도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적당한 거리에서 비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이, 박노자의 눈이 갖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노동자, 농민이라는 대다수 대한민국 사람들의 모습과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소수의 모습까지 두루 점검하고 손길을 내밀어 더불어 함께 걸어가야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다만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분열되고 이기적인 모습들, 우리 안에 내재된 또 다른 우리의 모습들을 점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차별과 폭력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위정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 대타협의 서구 유럽의 모델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벗어던져야 할 편견과 익숙해져버린 이기심이다. 쉬운 길을 걸어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욕하기는 쉬워도 스스로 길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길이 아니라고 우기지 말고 또 다른 길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박노자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 교수의 직함을 가진 어느새 우리 사회의 주류 資鍍퓸?버린 신분과 다르게 그는 영원히 비판적 시선으로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이야기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근본 체제가 되어 버린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고 반성할 때 ‘당신들’이 아닌 ‘우리들’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큰 틀과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더욱 어렵다. 갑론을박하는 현 정치권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기본적인 인식의 틀을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 미래는 ‘당신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050208-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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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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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단일어가 있고, 서로 기대어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복합어가 있는데 이것은 다시 합성어와 파생어로 나뉜다. 의미가 분명한 어근과 어근이 합쳐지는 단어 형성 방법을 합성어라고 한다. ‘사이시옷’은 이렇게 자기 색깔과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단어의 합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운현상이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독립적 개체다. 서로 기대지 않고 홀로 서는 것도 가능하지만 기대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이시옷’은 무엇일까? ‘사이시옷’의 역할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인가.

  또한 ‘사이시옷’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한자인 사람 ‘人’자와 닮았다. 상형문자인 한자의 의미는 뚜렷하다. 홀로 설 수 없는 두 사람이 기대 선 모습이라고 한다. 다정하고 행복해 보일수도, 불행의 근원이자 비참한 한계를 드러내 보이는 모습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인간은 홀로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는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2003년에 나온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만화책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나도 수십년만에 만화책을 사 보았다. 만화라는 형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은 다른 장르나 매체보다 강렬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든 만화책이라는 선입견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극명하게 보여 준 수작으로 기억한다. 후속편 격인 ‘사이시옷’도 역시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만화가들 8명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제 지나가던 강아지도 ‘사회 양극화’ 문제를 이야기하는 시점이다. 그만큼 심각하다. 참여정부의 남은 기간을 ‘양극화 해소’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인터뷰 기사는 오히려 현실을 비참하게 한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무심코 책장을 넘기면 눈물을 한 방울 흘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실화를 소재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손문상의 만화가 인상적이다. 장애인과 사교육 문제 등 심각한 현안들을 다루고 있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하면 곤란하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날개를 잘라버린 아이들의 이야기나 마법학교 ‘호구왔다’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해결해야할 문제라기보다 인식과 태도의 문제라고 보아야한다. 나홀로 꿈꾸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되는 세상을 사람들은 꿈꾼다. 하지만 절대로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이기적 경쟁심, 시장과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자유 경쟁의 원칙을 고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은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힘이 없거나 결속이 약하다. 목숨을 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극복할 만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가고 느리고 더딘 형태의 노력들은 지속되고 있으나 현실은 그에 상응하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성을 전제로 한 정부의 정책은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은 한 ‘언발에 오줌누기’식 정책에 그칠 우려가 있다. 개별적 상황과 구체적 사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전국민이 토론에 나서 몇 만년 걸려도 답이 안나오겠지만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과 정책 목표가 확실하다면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각론은 다를 수 있고 논쟁도 가능하다. 사회적 합의와 타협은 요원해 보인다. 스웨덴식 사회적 대타협 이야기는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장하준 이야기에 과민 반응하는 정부 경제 부처 각료들의 이상주의로 비쳐지기도 한다. 철학적 이념적 틀이 공고하지 않은 정부 여당의 일관성 없는 태도와 미온적인 정책들이 답답해 보이는 것은 개인적이 과격성 때문인가. 혼자 흥분해서 별 쓸데없는 이야기로 와전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두 번째 만화책 ‘사이시옷’은 ‘십시일반’만큼 의미 있는 작업이다. 지하철에 비치해서 온 국민이 멀뚱히 보낼 시간을 때워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옴니버스식 영화 ‘여섯 개의 시선’을 설특집 영화로 방영되어 온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보는 상상을 해 본다. 작은 차이와 조그만 노력들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말해야 아는가. 개별적인 시각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마지막 만화 ‘창窓’은 군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등병과 병장의 시선은 다르다. 수십억, 수백억을 가진 사람들과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야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다르다. 개인적 노력과 경쟁의 논리를 넘어선자리에 합의점이 있지 않을까? 없으면 말고……


060216-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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