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불꽃 - 개정판
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청춘의 영원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_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중에서

스무 살 언저리에 읽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여전히 그 무렵을 떠올리게 하는 마들렌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최승자의 『즐거운 일기』처럼 불안, 괴로움, 불안, 허무, 죽음 같은 단어의 멱살을 움켜쥐고 패대기 치고 싶던 시절이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서른일곱이 된 어느 날 문득, 와타나베가 생각났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이제 인생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과거지향형 인간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노래를 듣고 철 지난 영화를 다시 보곤 한다. 그건 아마도 그리움과 추억, 아쉬움이나 회한 따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기 삶을 투영한 해석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이거나.

아쿠타가와 수상작 역대 판매량 1위였던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제치고 300만부가 팔렸다는 이 소설의 제목도 몰랐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화두로 일본 소설과 잘 팔리는 소설에 대한 소감들이 오갔으나 300만 명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그것도 일본인의 감성과 취향을 추측하는 건 별 의미가 없기도 하다. 출판 문화 산업 진흥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으므로. 압도적 재미도, 정교한 구성도, 기막힌 반전도 없기 때문에 궁금했을 수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매료됐다는 저자는 코미디언이다. 방송에 출연할 만큼 유명했던 마타요시 나오키는 오랜 시간 독서와 글쓰기로 자기 삶을 채운 후에 데뷔작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했고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그가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었을 거라는 짐작은 하기 어렵다. 가미야처럼 그저 삶에 대한 열정과 흐름에 몸을 맡긴 게 아니었을까. 특이한 이력과 소설 외적 요소들로 시작된 이야기는 언제나 그러하듯 자기만의 해석과 타인들의 독법이 버무려진다. 주변의 숱한 가미야들, 순수한 열정이 전부였던 각자의 20대, 리얼리스트가 되버린 오늘의 나와 화해하는 법에 대하여 고민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사람들은 또 어떻게 오늘을 살아낼까.

1인칭 화자 도쿠나가는 스무 살에 네 살 많은 가미야를 만난다. 사제지간으로 관계를 규정한 그들은 20대를 고스란히 공유한다. 야마시타와 오바야시, 카미와 유키 등 주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소설은 오롯이 ‘나’, 그러니까 도쿠나가에 관한 이야기다. 혼란과 방황이 청춘의 전매특허라고 우겨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살 것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로 읽어도 좋다. 현대판 인격 실격의 주인공 같은 가미야든,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든 해석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지만 자기 삶의 ‘하나비’가 아니라 ‘히바나’가 언제였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으면 충분해 보입니다.

스파크가 일어났던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알아채는 일보다 중요한 건 그로 인한 변화와 전환이겠죠. 흐르는 대로 흐르는 무난한 삶을 지향하든, 가미야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든 선택의 결과가 모여 자기 삶이 됩니다. 타고난 재능과 천재성과 피땀 어린 노력과 열정의 비율을 따지기 힘들고 상황과 맥락과 환경과 우연의 요소들을 계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원인을 찾고 이유를 알고 싶어합니다. 심리학에서는 귀인이론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결과는 부분의 합보다 큽니다.

자기 말과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 삶은 어떤가요. 가미야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도쿠나가는 세상과 불화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 타인과 관계 맺기에 성공했을까요. 소설 속 주인공들의 후일담이 궁금한 게 아니라 읽는 행위 그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그걸 통해 변화와 성장의 기회가 되는 게 가당키나 한 건지 지적 유희와 합리화의 도구일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두렵습니다. 이제 책이 제게 건네는 말들이 때때로 지겹고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투덜거려도 말없이 그들은 쉼 없이 그래도 괜찮은 거냐고 묻습니다. 이제 빽빽한 책숲에서 벗어날 때가 된 건지 그 끝과 시작을 천천히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도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의점에서 잠깐 창비시선 52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면 사람들은 희망찬 새해를 설계하기 전에 뒤를 돌아본다. 좋은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개 아쉬운 일들을 성찰하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기억과 망각은 인간의 현존재를 지탱하는 철학적 기반이지만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정리의 방법이기도 하다.

올 한해는 어떻게 살았으며 내년에는 또 어떻게 살 것인가. 일 년을 단위로 시간을 구분하는 이유는 하루, 한 달을 조금 더 충실하게 채우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송구영신하는 마음을 다독여 보는 12월이다.

생각이 복잡하고 일상이 바쁠 때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잠깐씩 시간이 날 때마다 시 몇 편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시인의 눈을 빌어 사물을 관찰하고 익숙한 일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 새해를 맞는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


현실을 닮은 허구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소설을 읽는 재미라면 시는 개별 독자에게 그려지는 마음의 무늬다. 그 이미지를 따라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고 번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좋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인과관계를 따지고 합리적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대개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서 비롯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타인과 세상, 사랑과 이별, 하늘과 별에 관한 정호승의 시를 오랫동안 읽어 온 독자들은 편의점에서 잠깐 스치듯 읽어도 좋을만큼 따뜻한 시들이 반갑다. “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패배에 대하여」 중에서) 이 시집의 서시는 ‘패배’로 시작한다. 바라는 대로 세상이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일상으로 가득하다면 시인은 아마 시를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고독과 슬픔이 인생의 기본값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무렵인 사람들에게 정호승의 시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쓴 소주 한 잔만큼 진하게 가슴에 닿는다. ‘희노애락애오욕’을 거치며 한 생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적인 위로를 건네는 시인이 곁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나의 상처에서 흐르는 분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인가”(「당신이 아니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지나간 인연을 생각나게 하는 수많은 ‘당신’은 누구인가. 만해 한용운의 말대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마음속에 그리운 것 하나씩 품고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공감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고 착각하지만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다만 시인은 그 폭과 넓이를 세상 전체로 확장하려는 사람일 뿐이다. 기막힌 표현과 반짝이는 언어가 아니라도 좋다. 우리가 내뱉는 말들이 시가 될 수도 있으려면 타인을 헤아리는 배려, 이기적 욕망에 대한 성찰이 먼저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고 했던 정호승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물이 움직인다 창비시선 51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를 고독하게 날아온 돌이

지구를 파고들며 타오르듯이

갈 수 있을까 당신에게로

마주 보면 눈을 맞추는 글썽임

_「운석 찾는 사람」중에서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라던 김연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을 지났다. 익숙한 시인들도 이제는 그 그림자 안에서 유영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읽는 손택수의 시집에 담긴 사유의 흔적,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손짓,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동경, 만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뭉쳐버린 폐지처럼 나뒹굴어도 어쩔 수가 없다.

저녁을 짓다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

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

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

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

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

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

멸하는 것 가운데 뜨신 공깃밥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지상의 습관처럼 지극한 것도 없지

공깃밥이라는 말 좋지

무한을 식량으로

온 세상에 그득한 공기로 짓는 밥

저녁 짓는 일로 나는 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

짓는 걸 허물고 허물면서 짓는

저녁의 이름으로

빛이 고였다가 사라지는 시간, 매일 저녁이 지겨울 무렵에 문득,

혹시 내년 여름에도 수국을 볼 수 있을까.

수국

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피어나는 수국은

내 헛된 비유들에 대한 위로 같은 것,

꽃을 시늉하는

궁리에 궁리 끝의 작위여

작위의 찬란이여

헛것이라면 참으로

헛헛한 속을 달래는 헛제삿밥의

고봉 같은 것이 있어

수국은 피어난다

나의 삶도 가설

나의 말도 헛것만 같을 때

지는 것이 꽃이라고,

아닌

꽃으로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문학과지성 시인선 608
유선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연정은 “이 세상에 불행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천국에 있다고 믿게 될 것이라.”라는 시몬 베유의 문장을 신에 비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우월성이 바로 고통이라고 해석한다. 그런가. 슬픔이 인생의 디폴트 값이라는 걸 포장한다고 해서 견뎌지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아니 독자는 시 안에서 그걸 발견할 때마다, 아니 텍스트 안에 자기 고통과 슬픔을 언어의 감옥에 가둬버린다.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도 까마귀의 역설은 해결되지 않고 자기모순에 빠진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히 각자 해결할 문제다. 헛된 희망을 버려야 오솔길이라도 찾아 떠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나 시는 현실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을 위한 위로일 뿐이다. 시가 스스로 시가 되려면 사랑 대신 멸종으로 바꿔 읽어야 한다. 그러면 시시하지 않다.

까마귀의 역설*

인간 중에도 인류학자가 있듯 새들 사이에도 조류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어느 날 조류학 분야의 저명한 교수인 까마귀 R의 실종 소식이 보도되었다. 수색 결과 한 장의 편지가 발견되었으며 아래는 R이 남긴 편지의 전문이다.

친애하는 까마귀 여러분께

내가 오랫동안 주장해오고, 이 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주장입니다. 검은 깃털 색은 우리 까마귀종의 유구한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그것은 주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보편적인 진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내 날갯죽지 깊숙한 곳에서 흰 깃털 한 올을 발견한 것이지요.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의심했습니다. 내가 드디어 미친 것일까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 까마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입니다. 인간들은 그것을 미러 테스트라고 부른다지요. 흰색 깃털은 선명했습니다. 나는 초조함에 사로잡혀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날개를 확인했습니다. 날이 지날수록 흰 깃털은 늘어만 갔습니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문장은 ‘모든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라는 문장과 논리적으로 동일합니다. 흰 우유는 까마귀가 아니고, 흰 종이는 까마귀가 아니고, 흰 눈은 까마귀가 아니지요. 처음에는 깃털을 하나씩 뽑아보았습니다. 피부가 벌게지며 부어올랐죠. 고통스러웠습니다. 흰색 깃털은 주체할 수 없이 많아졌고 점점 나를 뒤덮는 흰 깃털들을 보며 고민했습니다. 흰색을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깃털들이 내 몸 전체를 덮게 되는 날이 온다면…… 누군가가 내 흰색 깃털을 발견해버린다면……

물론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이론을 수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론을 위해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바쳤습니다. 전 세계의 까마귀들을 보러 매일을 타지로 날아다녔고, 셀 수 없이 많은 동족의 시체를 해부해버렸죠. 그동안 저에게 지친 배우자와 자식들은 등을 돌렸고 나는 가정의 파탄을 명성과 맞바꾸었습니다. 유력한 정치가들도 나에게 자문을 구했죠. 이 이론을 포기하는 것은 나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것을 완전히 증명했다고 믿습니다. 그 이론은 제 인생 그 자체이며, 나는 흰 까마귀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벌써 내 몸의 반절을 흰색이 덮어버렸습니다. 이제 더이상 깃털을 뽑는 방식으로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습니다. 깃털을 뽑은 자리에서 난 피를 닦는 일에도 이젠 지쳤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까마귀가 아니다.

이제 나를 까마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나는 분류될 수 없는 하나의 이상한 생물입니다. 여러분도 흰 까마귀를 발견하고 상식을 수정하는 불쾌한 일을 겪기를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따라서 저는 눈이 가득한 북쪽으로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완전히 하얘진다면………… 그곳에서는 아무도 저를 찾을 수 없겠지요. 거울에 비친 나는 투명해질 것입니다. 미러 테스트도 소용이 없도록 말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저의 이론을 수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까마귀가 아니고 따라서 여전히 모든 까마귀는 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젠 정체를 알 수 없는 R이

* 이 시는 철학자 카를 구스타프 헴이 가설의 귀납적 입증에 관해 제시한 '까마귀 역설'과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남겼다고 알려진 "새에게 조류학이 유용한 만큼 과학자들에게 과학철학이 유용하다"라는 발언의 영향 아래에서 씌어졌다. 실제로 파인먼이 이러한 발언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철학적 좀비’는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가 1990년대에 제기했던 사고실험이다. 심리철학 분야에서 이론적 아이디어로 제시한 이 말은 외면적으로는 보통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지만 내면적인 경험이나 의식이 없는 인간이라는 설정. 현대인을 향한 조롱과 비난이 아니다. 물론 유선혜가 자기 시를 읽는 독자를 향해 날린 어퍼컷도 아니다. 그래도 두근대는 가슴팍, 조금 빠른 심박수, 조급한 박동이 없는 나와 너는?

빈맥

아이들은 놀이터가

철거될 예정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네를 탄다 숨이 찬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교복의 색이 다른 중학교로 흩어지면서

사인펜으로 쓴 롤링 페이퍼를 만지작거리고

동물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는 걸

자기 전마다 생각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아이들

두근대는 가슴팍을 식히며

이별이라는 단어를

이해해본 적이 없다는 듯이

끝을 상상하는 능력을 모두 잃은

사랑을 시작하는 심장은

조금 빠른 심박수를 가졌다

나쁘다는 것도 모르고 아름답다는 것도 모르고

그저 소방차가 줄지어 달린다는 사실에

신이 나는 것처럼

성당의 양초를 쓰러뜨리고 간 사람을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할아버지의 병실 의자에 앉아서

귤껍질을 까며 미래를 조잘거리는 아이는

어른이 된 자신을 보지 못하는 그의 병명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고

사랑을 시작하는 심장은

졸업식에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혈관이 튀어나온 손등을 제멋대로 상상한다

죄다 끝나버린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급한 박동으로 뛰어나가고

넘어지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 살 무렵,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다. 이후로 어떤 동물도 키워본 적이 없다. 202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15%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개, 고양이, 물고기, 거북이, 새…….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자기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들의 생존 전략을 소개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친화력과 협력을 기반으로 진화했다. 이 ‘친화력’은 생존에 필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특히 개의 경우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특화돼 있다. 노력보다 본능에 가까운, DNA에 새겨진 ‘다정함’은 무엇일까. 이해와 배려, 친절과 웃음을 넘어 희생과 이타적 태도까지 확장할 수 있는 우리 편을 향한 다정함은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성과 혐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나와 다름을 확인하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돌변하는 선택적 다정함도 본능일까.

그러나 인간과 달리 맹목적 다정함 덩어리처럼 보이는 강아지 앞에서 사람들은 무장 해제되곤 한다. 격일로 가는 헬스장에 소설의 주인공 비숑 프리제를 똑 닮은 강아지 한 마리가 회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적극적으로 손 내밀지 않고 멀리서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 눈인사만 하는 사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설 때 고개를 들어 눈길을 주는 그 강아지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은 헬스장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느낀다. 말없이 게으르게 엎드려 조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 이 소설을 읽은 후부터 그녀석을 속으로 이시봉이라 부른다. 일상에서 만나는 실제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으면 이 소설을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알바 공작부인》은 흑백으로 실려 있어 이시봉을 구체적 이미지로 떠올리기 쉽지 않다.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스페인 카를로스 4세와 왕비와 재상 마누엘 고도이 그리고 알바 공작 부인 등 실존 인물과 역사를 속에 스며든 이시봉의 족보 추적기 그리고 만 스무 살 알콜 중독자인 이시습과 정채민의 앙시앙 하우스 등 대한민국의 현재 이야기. 소설에 한 번 등장하는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G단조에 어울리는 소설 속의 소설을 읽는 액자 구성은 익숙하지만 또 하나의 재미다. 500쪽이 넘는 장편의 지루함을 덜고 색다른 서사에 힘을 보탠다. 어느 쪽이든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과 재미는 언제나 글 쓰는 이의 몫이 아닌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부터 『눈감지 마라』에 이르기까지 이기호가 보여준 재치 있는 문장과 대상을 향한 다정함이 곳곳에 묻어있어 평소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넉넉하고 흐믓하게 즐기기 충분하다.

스페인 왕가의 치정극, 비숑 프리제와 얽힌 비화는 고야와 알바 공작 부인의 실제 관계를 알지 못해도 정채민과 박유정과 김상민의 관계를 통해 반복 재생되는 일들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시봉의 주변 인물들인 이시습, 정용, 수아, 리다는 정채민과 앙시앙 하우스 사람들과 다르다. 한발 떨어져 나를, 아니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은 불가능할까.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이 언제나 상징과 알레고리로 작동하는 건 아니다.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면 충분하지만 긴 여운을 남기거나 현실 속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서 각각의 면면이 드러나며 다채롭게 반응하지만 소설에서 만나는 입체적 인물은 반갑지 않을 때도 많다. 소설에서는 일관된 캐릭터가 오히려 마음 편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리고 가수는 노래로, 배우는 연기로, 작가는 책으로 만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이기호가 키우는 이시봉을 확인하거나 다른 호기심을 충족한다고 해서 소설이 더 재밌거나 감동이 배가 되지는 않는다.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할 때,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상상력을 즐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으나 문학은, 아니 예술의 목적과 역할은…….

명랑한, 짧고 투쟁 없는 삶이라는 이시봉에 대한 규정이 반려견을 향한 일반적, 아니 ‘다정함’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지 싶었다. ‘개새끼’라는 욕설부터 ‘개 같은, 개만도 못한’ 혹은 접두사로 쓰이는 ‘개~~’ 등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개’는 반려견이나 강아지와 달리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시봉은 이씨 성을 가진 집안의 가족이다. 동물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소설을 인간 삶에 대한 깊이와 무게를 느끼거나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지 않는다. 각각의 소설은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분명해야 좋다. 이시봉이 사형집행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마치 점심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이제까지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급식실을 향해 돌진하는 고등학생처럼”이라고 묘사하는 이기호의 유머와 재치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1808년 스페인 민중봉기에 관심을 갖고 유럽 역사를 다시 들여다봐도 나쁘지 않다. 소설은, 아니 모든 책은 각각의 독자에게 전혀 다른 모습일 테니. 다만 나는 ‘그것’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이기호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성석제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