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²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희봉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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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과 구토로 이틀을 앓았다. 2개의 모임과 캠핑 여행을 취소했다. 인간의 몸은 때때로 내, 외부적인 힘의 작용으로 에너지를 소진한다. 질량에 속도가 결합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E=mc²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 인생이다. 당황스러운 타인의 정신적, 신체적 가해, 예측하기 어려운 교통 사고, 미리 알 수 없는 건강 이슈, 뉴스 같은 지인들의 인생사가 직, 간접적으로 현재를 만들고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인간과 세상에 관한 이 불가해한 일들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이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선언하며 저항하고, 또 누군가는 저 머나먼 별빛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궁금해하고, 또 누군가는 휜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원자 폭탄 등에 관한 영화 『오펜하이머』, 다큐멘터리 영화 『아인슈타인과 원자 폭탄』등이 E=mc²에 대해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이론 물리학이 어떻게 현실을 지배하는지, 인간의 삶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될 뿐이다. E=mc²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숫자와 기호로 환원되어 자연의 질서가 밝혀지든, 원시 시대처럼 온갖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무지의 상태를 유지하든 사실 하루하루 우리가 사는 인생에 그 영향을 성찰하거나 삶의 태도에 영향을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짐작보다 무지하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론 물리학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전공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과학적 지식이나 특수 상대성 이론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서 재밌다. E=mc²그 자체의 자서전에 가깝다. E, =, m, c²각각이 탄생과 성장 그리고 이들의 결합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으며 또 때로는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는지 살피는 과정이 노잼일 리 없다. 스토리텔링은 식욕, 성욕 다음으로 강한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뒷담화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E=mc²에 관한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끈적한 후일담은 독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TMI(to much information) 본능을 충족시킨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김상욱의 『울림과 떨림』,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등 기억할만한 과학 서적들이 가진 각각의 특징과 개성만큼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글쓰기 방법은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으면서 얼마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리처드 파인만과 스티븐 핑거, 리처드 도킨스, 최재천, 장대익, 슈뢰딩거, 제임스 크릭 등 과학자들이 쏟아내는 팩트fact가 문학에 절여진 픽션fiction의 뇌를 깨웠다. 천상 대문자 F인줄 알았으나 누구보다 강렬한 T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게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변하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때, 누군가 과학의 재미를 알려줬더라면 아마 다른 길을 걸었을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자기 취향과 성향과 전공과 직업을 충분히 알아본 후에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대한민국에서 특권 계급으로 정부에서조차 인정을 준비 중인 의사나 판사 등 특정 직업의 선택에서부터 문, 이과 선택, 직종과 직업 선택의 순간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우리는 문과형 혹은 이과형 인간으로 불과 10대에 결정한 다음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는다. 마치 여자라는 이유로 리제 마이트너, 마리 퀴리 같은 여성 과학자들의 탁월한 성취가 묻힌 이야기들처럼. 아니 어떤 여성들은 과학에 접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초점과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주인공 아인슈타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권위에 의심을 품고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과학적 태도는 아인슈타인을 고립시킨다. 교수 자리를 얻고 안정적인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면 아인슈타인 뇌도 제도에 순응하며 기존 과학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을까.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현실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아인슈타인이 혼자 E=mc²를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올렸다는 신화 혹은 영웅담과 거리가 먼 책이지만 결국 이 간단한 여섯 개의 기호를 나열하는 데 관여했던 수많은 과학자들과 기나긴 과학의 역사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질문들이 이 책 곳곳에서 미로찾기처럼 연결되어 있다. 수천 피스의 퍼즐을 맞추듯, 그렇게 역사는 수천 조각들의 우연과 필연이 결합한 사건이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능력에 인물들의 후일담은 쿠키 영상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미에 재미를 더한다. 좋은 책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꽉찬 육각형 모양으로 채운 듯하다. 과학은 지루하지 않다. 다만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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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가짜 결핍 - 욕망의 뇌가 만들어 낸 여전히 부족하다는 착각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재경 옮김 / 부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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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고민할 예정이다. “을마믄 되겠니?” 원빈이나 송혜교에게 관심도 없고 그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는데 저 유명한 대사는 가끔 곱씹게 된다. 이수일이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넘어간 심순애에게 던졌을 법한 대사의 세기말 버전. 찾아보니 2000년 드라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변함없는 자본주의 작동 방식은 인간의 뇌 구조를 자주 리셋한다. 법정 스님도 떠나고 풀 소유 스님도 떴다 가라앉았다. 종교와 정치도 ‘조금만 더’를 외치다 망가진다. 일상을 사는 평범한 우리들도 ‘만족’은 불가능한 미션이다. 주머니에 얼마가 있든 아쉽고 부족한 게 ‘본능’이라는 마이클 이스터의 『Scarcity Brain』의 번역판 제목은 『가짜 결핍』이다. ‘배신’ 시리즈에 이어 ‘가짜’ 시리즈를 염두에 뒀을지 모르나 원제와는 거리가 먼 제목이다. 저자의 말대로 결핍에 집착하는 마음을 다시 설계하면 충분함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진화 심리학과 뇌 과학이 들여다보는 인간의 ‘본능’은 개인 차를 무시한 모든 인간의 교집합 부분일 것이다. 누구나 그러해야 한다. 아니 최소한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에게 적용돼야 설득력이 있다. 특히 ‘욕망’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분야의 핵심 주제다. 철학과 문학은 물론 경제학과 사회학, 과학과 예술 분야까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그들이 모여사는 세상 그리고 자연을 향한 호기심이 우리가 읽는 모든 책의 주제라면 마이클 이스터가 들여다보는 주제나 관심 분야는 너무 식상하거나 뻔하다. 특별한 결론이나 비법은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이런 종류의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을까. 세상에 수백만 가지의 종류의 사랑 이야기가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예정이지만 사랑 이야기를 외면하거나 재미 없을 가능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메타인지metacognition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모든 인간이 자기 객관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던 것처럼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왜 ‘결핍’을 기본값으로 세팅되어 태어났는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다. 부단한 노력과 인간으로 불가능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모든 걸 내려놓고 비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단순히 ‘생존과 번식’을 위해 DNA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유전 정보라고 결론 또한 너무 쉬어 보이니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과 주장이 난무하는 걸까.

우선,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 ‘당신의 진짜 결핍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최종 목적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과정일 수도 있다. 가짜 결핍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충분함, 즉 ‘만족’을 모르는 뇌의 착각 혹은 부족하지 않은데도 결핍을 느끼는 습관적 태도 등이 그렇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본능이라면 차라리 내가 특히 ‘결핍’을 느끼는 부분이 어디인지 살펴봐도 좋다. 콤플렉스 혹은 아킬레스 건에 해당하는 결정적 약점 혹은 결함? 아니면 낮은 자존감으로 아무도 모르지만 자기만 아는 열등감?

그것이 무엇이든 저자는 거꾸로 ‘중독’에서 출발한다. 카지노에서 그 해답을 찾아 나간다. 결핍의 고리는 ‘기회의 발견 + 예측 불가능한 보상 + 즉각적 반복 가능성’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 모든 중독이 가상의 세계에서 극단적 쾌락을 느끼는 웹툰과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 등이 모두 비슷한 구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핍의 고리 속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장기적인 보상, 성장, 의미를 대가로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결핍의 고리를 벗어나는 건 결코 쉬운 일 아니다. 어쩌면 마이클 이스터는 지치고 힘든 세상에서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즐거움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건강하게 살려면 술, 담배 끊고 고기 먹지 말고 채식 위주로…… 의사의 이야기를 듣던 환자가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를 수도 있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결론은 ‘행복’으로 모아진다. 당연히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행복’을 만난다. 조금 삐딱하게 이 책을 읽으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 그 숱한 ‘행복’에 관한 철학과 문학과 심리학과 뇌과학과 예술적 태도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이 책은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읽으면 좋다.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훌륭한 자기계발서지만 저자는 두 발로 글을 썼다. 그 진지함과 노력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실제 사례와 구체적 상황들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전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디에 갈 것인가 고민하는 일보다 ‘누구’와 문제가 관건이듯 어떤 책들은 주제와 키워드, 해법과 노하우 보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길 필요가 있다. 이 책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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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7주년 기념 개정판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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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가 인간에 대한 거부 반응을 갖게 되면 여러 가지 곤란한 사건들을 겪게 된다. 이를 테면 ‘고슴도치 딜레마’로 알려진 갈등 상황이 그것이다. 인간은 타인에게 전혀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상대와 너무 가까워지면 여러 가지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짜증이나 불만으로 시작하여 점차 비난, 공격, 험담, 고집, 괴롭힘, 말싸움, 폭력으로 번진다. 온갖 마찰과 충돌을 일으킨 결과 상대방과 자신 모두 상처를 입는다.

역세권, 초품아, 숲세권을 넘어 언제나 ‘책세권’을 강조해 왔다. 힘들지 않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도서관 재건축이라니. 밀리의 서재 요금제로 변경했지만 적응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 처음 만나면 사람이든 기계든 다 그렇다. 탐색과 관찰이 필요하고 거리 조절이 관건이다. 혼자 친해졌다는 착각이 관계를 망친다. ‘나’는 ‘너’와 다르다, 아니 너는 내가 아니다. 종이책의 손맛은 대체 불가능이다. 새책이 도착하면 표지를 쓰다듬고 휘리릭 넘기며 바람을 일으키면 옅은 잉크 냄새가 난다. 오감으로 즐기는 독서는 시작부터 두근거린다. 어떤 책은 서문이 너무 좋아 본문에 실망할까 싶어 책꽂이에 몇 주를 꽂아 둔 적도 있다. 어떤 시집은 뒤 표지부터 읽고 묵혀두기도 한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그렇게 세상 곳곳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을 온몸으로 즐긴다. 전자책에는 그게 없다. 버스와 지하철은 기다리면 온다. 물론, 막차를 놓칠 수도 있지만. 도서관도 기다리면 재건축을 끝내고 최신식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다 예전 살던 동네 재건축이 끝나면 다시 그리로 이사가야 하나. 대한민국은 이래저래 재건축의 나라다. 전자책을 넘어 오디오북까지 대세가 이동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2023 국민독서실태」) 그러나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습관은 무섭다. 그것이 생각이든 행동이든 감정이든.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바꾸려는 노력보다 뒤엎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다.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헤매다 비율과 방법을 적절하게 조절하겠지만 한동안 혼란은 피치 못할 사정이다. 어쩌다 오카다 다카시의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를 골랐는지 생각하다 기억이 나지 않아 여기 저기 뒤적거린 이야기를 하려다 그만...

‘인간 알레르기’라는 원제에 딸린 부제다. 부제가 더 자극적이고 직관적이다. 얄팍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처세술과 관계 기술 혹은 상황별 대처법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없다. 비법을 알려주겠다는 책을 믿지 않아야 하는 것은 ‘개별성 결여’ 때문이다. 80억 인구가 다 다르다. 인간의 일반적 속성과 공통점에 기반한다 해도 그렇다. ‘나’는 ‘너’와 다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해법을 고민하지 않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제안이 소용없다. 다만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보려는 태도를 가진 저자의 이야기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개 인간은 듣고 싶은 것만 들을 뿐 아니라,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독서라고 다를까. 읽고 싶은 것만 읽고, 읽고 싶은 대로 이해한다. 같은 책을 서로 다르게 읽는다는 의미와 다르다. 벽을 넘으려고 기어오르는 담쟁이처럼 책을 읽는 태도는 가르치거나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그 너머를 향한 안타까운 까치발을 나는 많이 본 적이 없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대개 ‘의견(해석과 주장)’을 확정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일상생활, 각종 매체의 뉴스, 한 다리 건너 들은 가십, 가족과 친구와 대화 혹은 업무 추진 과정에서도 빈번하다. 다른 생각, 다른 감정에 대한 수용 여부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몇몇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불편할 수도 있다. 대개 내향인과 외향인으로 구별하기도 하고 MBTI나 혈액형으로 가늠하기도 한다. ‘관계 지향형’도 스타일이 각자 다르지만 원하는 거리는 더더욱 천차만별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서로를 미워한다. - 순자(荀子)

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는 감정,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깔려 있다. - 니체(Nietzshe)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심리학이 ‘과학’이냐는 의심이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다. 실험심리학이 꽤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나 표본 수의 문제보다 실험 조건과 대상에 따라 매번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한계는 극복하기 어려우니 일반적 성향으로 이해하거나 정규분포곡선의 중앙값 80% 정도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철학을 전공한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뇌과학에도 관심이 많다.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접근이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과 감정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앞서 언급했듯 그렇다고 해서 정답을 제시하거나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원제 그대로 ‘인간 알레르기’ 증상 있다는 전제로 개별 독자는 ‘나’를 점검할 것이다. 이 책이 그걸 요구한다. 어제까지는 좋았는데 오늘은 싫어지는 이유, 인간 알레르기의 역사 등이 그렇다. 다만 마지막에 ‘이유를 아는 순간 인간관계의 봉인이 풀린다’라는 주장은 좀 의심스럽다. 5장 “나는 나를 조종할 수 있다!”라는 저자의 권유는 인류 역사에서 가능했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아 그렇다. 읽는 사람마다 속이 시원할 수도 있고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기도 하겠으나 답이 없다는 걸 전제로 한 번쯤 들여다보면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대인 관계의 어려움, 대인 기피증, 성격장애, 적응장애 같은 단어보다 ‘인간 알레르기’라는 메타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혹스럽겠지만, 자극적인 표현보다 이면에 숨은 저자의 의도와 개별 독자의 상황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앞부분의 잔인한 처형 묘사에 책장을 덮는 사람도 있고, 오징어를 씹으며 심드렁하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다르다. 인간은.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은 ‘악인’이 아니다. 괴벨스, 아이히만, 노덕술도 따뜻한 아버지였다.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상황이 인간을 지배한다. 개인적인 대인 관계도 그렇다. 상대방의 거친 말과 성난 얼굴은 때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사람이 ‘악인’이라서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만 악인일 수도 있다. 그 정도까지 생각이 열린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의미를 만들 것이다. 다만 부록으로 ‘싫어하는 사람 대응 매뉴얼’ 같은 걸 적어 놓은 건 ‘나’에게는 무의미한 “착하게 살자”는 선언처럼 들린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알아도 실천할 수 없는 게 있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일을 계기로 방금 전까지 친밀함과 애정을 느꼈던 존재에게 결코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분노를 느끼곤 한다. 일단 그 사람에 대한 거부 반응이 나오면 접촉할 때마다 경멸이 가득 차고 혐오감이 솟구쳐 올라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인내하면서 살거나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 이 두 가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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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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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형태로든 우울하다’라는 80년대식 감정의 과잉 토로가 아니라도 자기 안에 함몰되는 건 선택이 아닐 때가 많다. 세상에는 기이한 일들이 차고 넘쳐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하고, 합리적 이유로 포장된 주관적 판단과 고집으로 한여름의 열기를 삼키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소설은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한숨을 틔워준다. 쉬어가라고 다독이고, 잊으라고 토닥거린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위로와 기대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을 주는 소설은 언제나 반갑다.

내용과 방법에 따라 어떻게 분류하든 개별 독자도 취향이라는 게 있어 모든 소설에 몰입하기는 어렵다. SF가 집중하지 못하는 독자, 연애 소설에 하품하는 독자, 역사 소설에 열광하는 독자 등이 그렇다. 김기태의 소설은 ‘현실’을 담고 있다. 개연성 혹은 핍진성이 소설의 미덕 중 하나라면 유머 코드를 장착한 소설가는 군계일학일 터. 각자의 입맛에 따라 좋은, 아니 재밌는 소설의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고 하나의 단편 혹은 장편 소설에 모든 요소를 버무려 재미가 배가 될 리 없다. 방심하고 종이에 손을 베일 때가 있다. 그렇게 허를 찔러 독자의 폐부를 찌를 만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 또한 많지 않다.

김기태의 단편들을 읽으며 몇몇 소설가를 떠올렸으나 이름을 지웠다. 비교가 아니라 온전히 김기태가 창조한 소설의 세계를 그대로 음미하면 그뿐이다. 실감나게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굳이 ‘세태 소설’이라는 구분이 필요치 않다. 찰스 디킨스와 빅토르 위고, 발자크와 도스토옙스키 또한 당대의 현실을 묘사하고 재해석하며 풍자하고 패러디하는 즐거움으로 아주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기쁨과 슬픔, 감동과 위로를 건넸다. 그밖의 많은 작가들 또한 그러하다. 보편적 개인의 내면 심리를 깊이 들여다보거나 사회적 사건과 당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작업 또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곧 ‘나’이며 ‘너’이고 ‘우리’에 해당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다. ‘그들’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재미도 없지 않으나 대개 비참하고 신산스런 현실을 견디는 사람들, 구별 지어 금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평온한 일상에서 위기를 맞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모두 내 이야기고, 네 인생이며, 우리들의 삶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개 ‘역사’로 분류된다. 히스토리he-story.

기록은 재미와 교훈을 함께 전한다. 권진주와 김니콜라이, 표제작에서 두 사람을 인터내셔널로 그렸으나 오히려 매우 동일한 집단에서도 심리적 거리와 생각의 차이는 북극과 남극만큼 하나가 되기 어렵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통해 얻는 안도의 한숨 혹은 이 정도면 그래도 견딜만하다는 위로를 얻기도 한다. 무관심과 침묵은 ‘나타懶惰와 안정’을 선물한다. 굳이 김수영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 「세상 모든 바다」를 지나 「전조등」을 켜고, 「보편 교양」을 갖춰 「무겁고 높은」 곳에 도달하긴 어렵다.

BTS 응원하려고 군대(ARMY)에 가는 사람, 《나는 솔로》에 출연 신청을 하는 사람, 네이버에서 최저가로 구입할 물건을 검색하는 사람……. ‘내 얘긴가, 친구 닮았네’ 친근한 주인공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들게 한다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그 평범함이 무려 소설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는가. 아니 각자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화려한 학벌, 선망하는 직업, 높은 연봉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소설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건 매번 삶의 가치 혹은 진정성 같은 것들이다.

사실 “너 뭐 돼?”라는 질문 앞에서 쭈뼛거리지 않기 힘들다. 뭐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들을 떠올려 보면 정말 그것이 뭐가 되는 이유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아무도 몰라도 스스로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위선이든, 허위든, 가식이든, 거짓이든 세상과의 불화보다 무서운 건 자신과의 불화다. 온전히 ‘나’로 살지 못하는 마음은 신발 속에 든 돌을 빼내지 않고 걷는 것처럼 불편하다.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 사람들은 귀신같이 포장지와 알맹이를 구별한다. 인생이 그리 쉽고 세상이 만만하면 누가 소설을 읽고 쓰겠는가.

김기태의 응원과 위로를 보내는 방식은 독특하다. 아니 그가 독자를 쓰다듬기 위해 소설을 썼을 리 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그렇게 읽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김기태의 소설은 「깊이에의 강요」로 괴로워하는 독자는 없을 터.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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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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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이 멈추면 빛과 멜로디가 사라지고 눈도 그치겠죠”

이미지image는 사진처럼 정지화면에 가까워 시詩에 어울린다면, 영화movie는 움짤이나 쇼츠처럼 어떤 순간을 포착하지 않고 앞뒤 상황까지 담아내는 소설을 닮았다. 추억이 빛바랜 흑백 사진을 닮은 레트로 감성이라면,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동적 움직임에 가깝다. 어떤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는 조해진의 말대로 빛이 피사체를 감싸는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에 담긴 기억 속의 서사를 풀어놓아야 한다. 현대 소설은 일시 정지와 되감기 혹은 재생을 반복하는 비디오 테이프처럼 때때로 과거를 소환하고 잊고 있던 순간을 포착하며 기억의 파편들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고전과 달리 ‘오늘’을 사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로기완을 만났다』, 『빛의 호위』 이후 다시 『빛과 멜로디』를 읽으면서 소설가만큼 나도 변했음을 감지했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와 경향을 분석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않았으니 조해진과 그의 소설에 논할 일은 아니지만, 나름의 빛과 색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들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빛의 호위에서 한발 나아간 이야기는 조금 더 깊고 섬세하다. 다른 작품에서와 같이 현재는 과거와 조응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는다.

누구나 내일을 꿈꾼다.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설을 읽지 않을 지도 모른다. 현재와 나른 시간과 공간을 꿈꾸거나,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이 궁금해질 무렵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조해진은 빛을 사용하고 먼지 묻은 사진을 꺼내든다. 독자는 기꺼이 희뿌윰한 희미한 기억 속으로 자신을 투영한다. 각자의 기억 혹은 추억을 들추는 일이 모두 즐거울리 없다. 타자를 향한 분노, 내면에 생채기로 남은 상처, 잊고 싶은 순간일수록 선명한 과거에게 등을 떠밀려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승준과 권은이 아니라 살마와 나스차, 리디아……. 우크라이나와 영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든 유목민으로 살아야 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모든 독자 자신이다.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는 사람들 혹은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삶은 특별한 경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낯선 감각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면 소설보다 재밌는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이다. 책장을 넘기며 기대한 게 무엇이든 함부로 추측하고, 타인을 규정해서 스스로 무너지지는 말자. 소설은 소설일 뿐! 그래도 서사는 본능이니 굳이 숨기고 살 필요는 없으나 현실과 착각하지 않으면 그 뿐!

거울 속 세상과 그녀를 위해,

영원에서 와서 영원으로 가는 그 무한한 여행의 한가운데서,

멜로디와 함께……

빛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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