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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ㅣ 교양 100그램 8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휘슬 블로어 (whistle blower). 진실을 밝힐 목적으로 자신이 속한 기업이나 조직의 불법 또는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동명의 책이 국내에 소개된 바 있으나 우리에겐 ‘내부 고발자’ 등의 명명법으로 더 익숙하다. 좌파 혹은 진보라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익숙한 개념이지만 모든 이념과 정파를 넘어 모든 인간과 모든 조직은 잠재적 기득권자, 권력자, 앙시앙 레짐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서 수없이 목격한 그들은 대체로 도덕과 가치를 명분으로 그럴듯한 포장지로 자신과 조직을 감싸며 태도를 바꾼다. 결국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며, 선택과 결정 뒤에서 웃는 자를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한참 후의 일이다. 고인 물은 썩고, 오래 머문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변화와 개혁을 부르지는 자들이 이러한데 자기 이익에 골몰하며 우리가 남이냐는 생각으로 거대한 이익 카르텔을 형성한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혹자는 인적 네트워크, 관리된 인간관계, 뛰어난 사회생활 능력이라고 평가하지만 유형, 무형의 편의를 봐주고 이익을 공유하는 건 어떤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을 비난하는 자들도 결국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고 그럴듯한 명분과 가치로 혹세무민하기 일쑤다. 대개 부패와 비리 사건이 보수 정권에서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과 태도로 인한 자연스런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길게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길고도 해묵은 뿌리를 들여다보기 전에 눈 앞에 펼쳐진 대환장 파티 같은 현실 때문이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어머니가 극우 유튜브에 빠진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해서 일반적 부모의 마음과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제목처럼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과 방법에는 조금 차이가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책장을 여는 정도면 충분하다. 2025년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 다음 날 SNS에 올린 ‘내 아들을 구출해 왔다’라는 글로 극단주의에 빠진 10대 아들 이야기를 공유한 저자의 목소리는 흥분과 분노와 거리가 멀다.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논리와 이성에 근거한 사유가 문제를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인류는 변연계가 아니라 신피질이 두터워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종교가 아니라 과학의 힘으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AI가 신의 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예측까지 나온 지 오래지만, 현재는 유튜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에코 쳄버나 필터 버블에 관한 숱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니 그 말조차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도 알고리즘이 창조한 세계 안에 갇혀 이미 100여 년 전에 알을 깨고 나오라고 외쳤던 헤르만 헤세의 조언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너는, 아니 우리는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평범한 엄마 권정민은 혐오와 극단주의를 몰아낼 건강한 대화법 7계명을 제시한다.
1. 일단 들어보자.
2. 이해와 공감을 말로 표현하자.
3.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연결해보자.
4. 새로운 정보는 서서히 소개하자.
5. ‘나도 모른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6. 상대의 관심사를 포착하자.
7. 생각을 되돌아볼 시간을 주자.
책갈피처럼 꽂혀 있는 종이 카드를 살피다 씁쓸해졌다. 극우 유튜브에 빠진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노하우가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대화의 예의가 아닌가. 그만큼 상식이고 일반적일 거라고 짐작하는 일들이 일상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대화와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유형을 몇 가지로 나눠보면, 첫째 내 생은 이런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묻고 상대방의 말을 들는 사람이 있다. 둘째 이 문제는, 이런 상황, 이 사건은 이런데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하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다. 셋째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거나 물어보지도 않고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추측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는 없다. 지구에 사는 80억 명, 아니 대한민국 5천만 명을 70:20:10 정도의 비율로 나눌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게 많아 지키고 싶을수록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있고, 세상은 어떤지 규정하며, 삶의 방법을 가르치려 한다. 단순히 ‘꼰대’라는 속어로 범주화할 수 없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계급을 배신하는 투표, 정치 유튜브에 쩐 뇌, 드라마와 영화조차 요약과 쇼츠로 소비하는 일상이 모이면 극우든 극좌든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도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태도가 본질이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비판적 사고력이 부족하고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과 사유의 시간을 갖지 못한 10대 아들이 단시간에 유사 알고리즘에 빠지는 현상은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그들을 구출해 낼 수 있는 특별한 노하우가 아니라 점점 좁아지는 우리들의 시야,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대화와 토론은 수업 시간에만 배우는 교육과정이 아니다. 특별한 스킬과 노하우를 습득할 필요도 없다. 타인을 향한 기본적인 예의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다. 다른 사람의 ‘진심’ 운운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감정을 추측하는 이 감별사들의 주관적 판단이 주는 해악은 이성적 토론을 무력화하는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디어는 언제든 다시 등장하고 새로 만들어진다. 사실과 의견(해석과 주장)은 다르다. 자기 생각을 말할 때, 주관적 감정이 섞어 사실 운운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수많은 유튜버들이 사용하는 프로파간다가 바로 그런 식이다. 기본적인 팩트체크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숨 쉬는 일만큼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하는 일만큼 극좌 유튜브에서 엄마를 구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