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물리학 - 아침노을과 저녁노을이 다른 이유에 관한 물리학적 탐구
황춘성 지음 / 에이도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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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저녁놀, 일몰, 낙조, 노을, 석양...푸른 시간, 매직 타임, 개와 늑대의 시간은 모두 동일한 시간을 가리킨다.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또한 이 시간을 배경으로 삼았다. 낮이 저물고 밤이 시작될 무렵,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올 즈음에 하늘빛은 형언하기 어렵다. 기묘한 아름다움과 슬픔, 아쉬움과 기대가 교차하기 때문일까. 붉게 물든 하늘의 장엄한 모습이 치열했던 일상과 존재론적 허무를 위로하기도 한다. 인간은 본래 하잖은 존재라며 겸손을 가르치고, 덧없는 시간 앞에서 무엇을 망설이느냐며 용기를 내라고 속삭인다.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보았어!”


몹시 슬플 때는 해지는 모습이 좋다는 어린 왕자의 말 때문이었을까. 아주 가끔,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지평선에서 춤을 추는 상상을 한다. 얼마나 슬펐으면 하루에 마흔세 번이나 해가 지는 게 보고 싶었을지 궁금한 게 아니라 그렇게 마음대로 석양을 볼 수 있는 권력과 자유가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억압된 욕망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소혹성 B-612를 소유한 자의 슬픔은 지구별에서 오늘을 사는 70억 분의 1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어린 왕자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주정뱅이, 자기가 소유한 별을 세는 사업가,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막의 여우를 만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뀐다. 자신을 객관화하기는 어려우나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너무 쉽다. 어린 왕자의 슬픔은 우리가 잃어버린 동심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현실에서 의자를 옮겨 앉으며 언제든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현실적으로 지구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노을은 너무 빨리 지기 때문이다. 지구의 둘레는 대략 40,000km이다. 지구의 하루에 해당하는 24시간으로 나누면 1666.666km이다. 평균 1,667km/h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의 자전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지구는 1초에 463미터를 달린다! 극지방의 자전 속도는 0km/h이지만 우리나라의 자전 속도는 1,337km/h이다. 고속도로를 시속 130km로 달리는 자동차는 속도위반인데 우리는 그보다 100배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 지구별에서 불편 없이 살아간다. 때때로 자명한 과학적 진실이 비현실적이어서 사람들은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는 걸까.


황춘성은 ‘왜 아침노을과 저녁노을이 다르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 한 권의 책을 썼다. 질문과 호기심은 관심의 다른 이름이다. 관심이 사랑의 시작인 것처럼. 알고 싶은 마음이 열정을 만들고 행복을 부른다. 아주 가끔, 알면 다치기도 하고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으나 대체로 무지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악’으로 판가름 난다. 지난 역사와 오늘의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해와 달이 가하는 조석력은 비슷하므로, 달이 해라면, 지구가 자전할 때 해로부터 멀어지는 쪽의 지구를 비추는 햇빛은 가까워지는 쪽의 지구를 비추는 햇빛보다 늘 더 많은 공기분자와 만나야 했다.”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저녁노을이 아침노을보다 붉은 이유를 깨닫게 된다. 눈에 보이는 사물과 현상 이면에는 늘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물리학은 이성의 영역으로 붉은 저녁노을을 설명한다. 이문세는 “붉게 물든 노을 바라보면 슬픈 그대 얼굴 생각이나 고개 숙이네 눈물 흘러 아무 말 할 수가 없지만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붉은 노을」)라고 노래했으나 황춘성은 흡수와 편광, 파동과 도플러 효과, 중력과 조석력의 세계를 보여준다. 가히 감성 파괴자라 할만하다. 아니, 오히려 모르고 싶은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마치 다섯 살짜리 조카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거짓말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얄미운 삼촌 같다. 그러나 산타 할아버지와 달리 붉은 노을의 비밀을 저절로 알게 되는 사람은 없다.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도 의식적 노력과 적극적 성찰과 비판적 안목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는 대로 생각하고 보이는 대로 믿는다. 그래서 노을의 물리학은 인생의 물리학, 세상을 위한 물리학으로 고쳐 읽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왜 그런지, 세상은 왜 이런지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누구도 그럴듯한 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저마다 흥분된 목소리만 높이는 걸까. 오늘 저녁에는 조금 더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고 싶다. 아니 매일매일 그렇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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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bug 2022-11-09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얄미운 삼촌입니다.
리뷰를 아름답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

sceptic 2023-12-26 15: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