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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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1년 선배 형은 신의 존재에 대해 괴로워했다. 신학 대학에 입학 한 후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 형의 고민의 일단에 ‘기아’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배불러 죽는 사람과 굶어죽는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 전 기억이지만, 신의 존재와 무관한 이야기지만, 21세기가 되어서도 세상에 태어나 굶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장 지글러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실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굶주림에 관한 보고서이다. 2005년 유엔식량농업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5초에 1명 꼴로 굶어죽고, 3분에 1명 꼴로 비타민A 부족으로 실명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8억 5천만 명이 극단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 보고서를 믿고 싶지 않았다. 한 해 음식 쓰레기 처리 비용이 얼만지 아느냐고 아우성 치는 이야기들은 머나먼 행성의 이야기로 들린다. 한 쪽에서는 영양의 과잉 공급으로 비만과 웰빙 바람이 불고,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상은 원래 그런거라고?

  저자인 지글러의 아들 카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J. 네루가 감옥에서 딸에게 <세계사 편력>을 썼듯이 친절하고 자상하게 자신의 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진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들이 녹아 있는 아버지의 설명은 아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기에 충분하다. 내 배가 부르니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기적인 태도나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에서 쓸데없는 분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도저히 외면하거나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게 된다.

  전 인류의 20배쯤 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지구의 농업 생산력을 가지고도 8억 5천만 명이 굶주리고 있다는 현실이 놀랍다기보다 황당하기까지하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현실의 원인이다. 장 지글러가 이 책을 쓴 목적도 여기에 있다. 이 원인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과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하지 못했지만 행동하는 지성으로 자신의 경험과 직접 체험을 통해 분명하게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남의 집 불구경하듯 했던 사람들은 할 말이 없어진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결합되어 80년대 이후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상들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선진국의 식민주의에 뿌리를 둔 역사적인 이유와 거대자본을 통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곡물 회사, 네슬레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의 횡포 등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원인들이 혼재하기 때문에 이것이다라고 콕 찝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순히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이타심의 부족이라는 감상적인 접근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의 동정심에 호소하고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부금을 통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시킬 위험이 있다.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책의 결정 과정과 농산물에 대한 견해 차이, 유엔이 가지고 있는 제3세계 ‘기아’에 대한 관심과 정책들에 따라 해결방법은 여러 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2000년과 2005년의 통계를 비교했을 때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비난과 원망에 가까운 이유뿐만 아니라 미흡한 대책 마련과 구조적인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이 그의 아들 ‘카림’에게 제대로 이해되었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울컥하고 목이 메여 한동안 하늘을 보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 P. 23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 P. 170

  저자가 이 글을 쓴 목적은 이 한 줄 때문이리라. 그러나 누군가에게 신이 있느냐고 묻기 전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 인간일까 하는 회의를 품게 된다. 그렇다는 믿음과 희망만이 전제되어야 우리에게 미래가 존재한다. 어떤 미래를 꿈꾸느냐 하는 것도 물론 바로 여기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우리의 태도와 의식의 변화에서 출발하겠지만. 이 따스한 햇볕 아래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07040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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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에떼 -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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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순한 진실은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진실은 드러난다고 하는데 이 말도 믿을 수 없다. 단정적인 어법이 가진 위험성을 감내하고서 이렇게 선언하는 사람들의 용기는 인정해야 한다. 그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한 노력과 시간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다. 특히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소시민들의 경우 스스로 고개를 들고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고정관념과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대화가 불가능한 사고 방식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화석처럼 굳어버린 생각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고종석의 새 책 <바리에떼>는 프랑스어로 다양하다는 말이다. 영어의 버라이어티가 주는 어감이나 이미지를 피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책의 구성에는 시비를 걸어야겠다. 한 개인이 발표하는 글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매체는 얼마든지 ‘바리에떼’할 수 있지만 책으로 묶이고 보면 난삽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마지막에 시집의 서평이나 소설가의 산문집 뒤의 발문까지도 함께 묶여있으니 난감하기까지 하다. 독자더러 어쩌란 말이냐?

  시사 평론과 문화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은 고종석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기자, 시인, 소설가, 평론가에 이르기까지 고종석을 수식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하지만 그가 엮어내는 글들이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더라도 뭐든 함께 묶일 수 있다는 생각에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1부와 2부와 3부의 글들은 커다란 의미 영역을 구분하거나 생각의 틀과 관점을 바꿔 놓는 구분이 아니라 억지로 한 권의 책을 묶어 놓기 위한 분량 채우기같은 느낌이다. 기이한 느낌의 이 책은 한 권으로 묶기기엔 아무리 후하게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모국어의 속살>에서 보여준 감수성과 문학적 언어에 대한 화려한 수사는 이번 책에서 제외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단상들이나 산문들이 내뿜는 향기와 탄탄한 문장들이 힘을 잃는 것은 아니다. 문학 계간지나 인물과 사상에 발표했던 글들이 묶여 제목처럼 다양성에서 우러나는 특별함을 독자에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글을 잘 쓰는 것과 책을 잘 쓰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여기 저기 발표했던 글들을 묶어 책을 낼 경우에는 특히 더 조심하고 편집에 유의하며 한 권의 책으로 빛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읽으라고 독자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특히 구체적인 정치 현안과 관련되 문제들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김빠지 맥주같은 느낌을 준다. 당시의 상황과 느낌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글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차분하고 이론적인 글보다는 시론에 맞춘 글들이 시간이 흐른 후에 묶였을 때는 읽는 독자 입장에서 감정 처리가 난감하다. 나만 그런가?

  한 시대의 진실과 한 세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책을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용과 형식이 따로 국밥으로 놀아 답답하기까지 하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책으로 기억될 것들이 단편적인 고종석의 ‘글’로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안타깝다.

진실은, 그것이 단순하든 복합적이든, 어딘가에 분명히 있겠지만, 사람들이 바로 그 속까지 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P. 55

  객쩍은 소리를 해봐야 그렇고 본문 내용 중에 ‘진실’에 관한 한 마디가 목에 걸려 적어 본다. 쉽지 않을 일을 쉽게 해 버리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진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단순하든 복합적이든 도달하는 것이 어렵다. 쉽게 결론 내리고 단정짓는 버릇은 건강에 해롭다. 거기 그 너머에 앉아 있는 너, 거울을 보라.


07040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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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4-0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훌륭한 서평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잘 읽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7-04-0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바리에떼식 편집인가 보군요. 추천합니다.

sceptic 2007-04-03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clausly님 매번 덕담만 남기고 가시네요...^^

배혜경님...추천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makee 2007-04-1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님의 불편한 편집에 대해 깊이 공감 했어요.
2부 정치의 둘레편은 논리적 비판이 개인적으로 돋보였어요.

sceptic 2007-04-1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습니다. 2부에서 얻은 공감들을 다른 곳에서 많이 잃었죠.
 
촘스키, 우리의 미래를 말하다
노암 촘스키 외 지음, 강주헌 옮김 / 황금나침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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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뉴스나 언론에서 비리를 고발할 때 사용하는 말이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말이다. 그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지도했으며 누가 지도층으로 인정했을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지식인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기준 없이 사용되는 이 사람들을 나는 개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존경하고 받을 만한 지도층도 없고, 지식인도 거의 없다. 지식인은 단순히 지식의 양적 측면만을 고려해서 평가하지 않는다. 촘스키는 지식인을 이렇게 비아냥 거린다.

존경받는 지식인이 되면 뭐가 유리한 줄 아십니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른바 지식인이 쓴 글을 면밀히 읽고나서, 결론을 뒷받침해줄 만한 증거를 찾아보십시오.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P - 75

 나의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 편견의 결과, 많이 배운 놈들은 대체적으로 훨씬 이기적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타인과 사회에 심각하고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언어학의 거목으로 일가를 이룬 학자 촘스키가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촘스키를 읽는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한 책 <촘스키, 우리의 미래를 말하다>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무엇을 꿈꾸는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경고와 현실로 나타난 전쟁과 살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대중의 생각을 조작하는 언론과 미디어의 프로파간다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자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자는 문제가 아니다.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하고 현실을 바꿔나가자는 말이다. 촘스키는 이런 역할들을 오히려 국민들을 속이고 대중을 기만하는 효과적인 수법으로서 프로파간다에 주목한다. 얼마 전 국정 홍보처는 되고 농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한 한미 FTA 반대 광고는 안된다는 규정도 우습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미 FTA는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촘스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우리는 소극적으로 순종적인 추종자가 되라고 배웠습니다. 이런 관습의 틀을 깨지 않는 한 우리는 프로파간다의 피해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관습의 틀을 깨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P - 43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소극적이고 순종적인 추종자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관습의 틀을 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늘상 프로파간다의 피해자로 살아간다. 우리 모두가 그 피해자고 알게 모르게 익숙해져 가고 골치 아픈 문제는 생각하기 싫어지고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나에게 미칠 결과만을 고려한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런 습성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주변을 생각하고 조금 넓고 깊게 그리고 멀리 생각해 보면 답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단순한 문제가 아닌데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바로 촘스키의 말처럼 프로파간다의 피해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지름길은 패권주의를 인정하고 기득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한 후에도 세계 경찰국가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들이 지목한 테러 지원 국가나 악의 축들은 정말 나쁜 나라들일까? 진정한 불량국가 미국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된다. 역사에서 망각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선의의 정책을 내세운 이라크 침공은 결국 베트남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손실과 단기간의 인명을 살상하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 순간도 여전히 진행형인 전쟁이며 우리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동생과 아들들을 지원군으로 파병했다. 그래도 여전히 국내에선 찬성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주의과 교육은 말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다. 생활 속에서 관습과 고정 관념의 틀을 깨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촘스키가 어렵지 않다고 얘기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에서 촘스키는 ‘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세계 사회 포럼의 슬로건에 박수를 보낸다. 당연하다. 이대로 지구를 폭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고 암울한 전망이 예상되더라도 우리는 밝은 세상을 갈망한다. 아니 습관적으로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산다. 희망은 누가 주는 것도 아니며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희망과 미래를 절대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현실에 비쳐진 미래는 비극적이며 인간을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미래는 결국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가는 미래,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거창한 말이 아니라 작은 생각의 변화와 행동의 시작이 미래를 만든다. 촘스키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의 말 속에도 진리는 담겨 있다. 다만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문제는 산을 옮기는 것보다 더 어려울 뿐이다.


07012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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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2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소극적이고 순종적인 추종자가 대개는 '가치중립적' '합리적' '불편부당한' 이런 단어들로 포장하지요.때로는 '관념'이나 '예술'에 의탁해서 자신을 세상과 분리하기도 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무능과 게으름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앎이 내것이 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sceptic 2007-01-2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능과 게으름보다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알고 실천하는 삶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어렵습니다. 조금씩, 한 걸음씩 내디뎌봐야지요.
 
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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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2만원이라는 가사를 듣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놀랄만큼 가까운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에 새삼 놀라게 된다. 남북이 갈라선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같이 살자는 노력은 부족했다. 통일의 당위성을 실감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분단은 고착화될 위험성도 높다. 사는데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남북 교류와 화해 협력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해답이 선행되어야 한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지구상에 이념의 대립으로 갈라진 유일한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특별한 상황과 시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 북핵 문제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 것처럼 비치는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욕심과 북한의 태도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가장 큰 희망이자 매력들은 사라져가고 굶주린 국민들은 체제가 전복될 만큼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탈북자 문제와 사회 변화 문제는 북한이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 중 하나일 뿐이다. 체제 우위의 입장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시혜적인 태도에서 남북문제를 접근하는 것도 위험하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남북 화해와 교류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 파견된 작가 오영진의 <평양프로젝트>는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만화가 주는 특별한 재미는 물론이고 짧은 주제를 통해 북한의 일상과 사람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오공식과 남북 교류 협력단 조동만, 김철수 그리고 파견 나온 리순옥 등이 보여주는 대화 내용과 일상의 모습들을 통해 북한을 보다 실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조선 중앙 방송을 통해 선전용으로 보도되는 화면과 다른 것은 남한 사람의 시각으로 북한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를 그려 낸다는 점이다. 우리와 다른 생활 방식과 생각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을 이해하고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가장 기본적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나. 이산가족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면 이질적인 문화가 극복되고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도 생길 것이다. 그렇게 쉼 없이 서두름 없이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십시일반>이나 <사이시옷> 등 만화를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인권 문제에 접근했듯이 <평양 프로젝트>를 통해 북의 실상을 이해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겠다. 재밌고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매체나 방법이 더 많이 요구된다. 얼렁뚱땅 오공식의 북한 기행은 민족이나 국가의 차원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의 개념으로 접근하게 된다.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의 장벽이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라면 적극적인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손 놓고 앉아 있으면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통일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민간 차원에서 노력하고 협력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이념의 골을 건너기가 쉽지 않다. 남한에서도 국가나 사회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고 다양한 이념이 존재한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북한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지만 한 번은 건너야 하는 강이라는 동의한다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한 때가 되었다.

 넓지도 않는 땅에서 갈라져 사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화해와 평화는 먼 나라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 현실의 문제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통일은 시기상의 문제일 뿐이다. 같이 살자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결 조건이나 상황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같이 살겠다는 마음과 의지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070118-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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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살림지식총서 248
박종성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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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서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지 않다. 아니,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도 한다.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간접적인 수단으로 책만 한 것은 없다. 하지만 책은 직접적인 분석과 접촉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 가상현실 속을 헤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하다. 그것은 물론 책의 분량과 내용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안개처럼 모호했던 개념들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전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책이 전해주는 지적 유희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정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맹렬한 속도와 분량으로 ‘살림지식총서’는 계속된다. 248권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은 작지만 커다란 의미를 지닌 책이다. 물론 나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등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에 대한 분석과 해설은 이 책의 압권이다. 짧고 간명하게 그리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핵심을 짚어내고 비교할 수 있는 내공은 하루 이틀 만에 쌓인 것이 아니다. 요약 정리식의 논의로 볼 수도 있으나 푸코, 파농, 사이드에 대한 견해와 비판은 핵심을 깊숙이 찌르고 있다. 바바와 스피박은 읽은 적이 없어 말할 수 없지만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박종성은 탈식민주의에 대한 개념과 독법들을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질은 양을 담보로 한다는 생각을 잠깐 잊게 해준다. 현재 우리의 상황에 적용 문제나 깊은 성찰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목적은 어차피 그런 쪽이 아니므로. 간단하고 명확한 이해와 전체적인 조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살림지식총서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식민주의는 열등감과 불평등 및 역사의 왜곡을 낳으며,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비극을 초래했다. 이런 식민주의를 비판적 시선으로 읽어내려는 ‘대응담론’이 바로 탈식민주의이다. - P. 4

탈식민화란 “모든 형태의 식민주의자의 권력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과정”이다. - P. 45


19세기 서구 열강에 의한 세계 식민지 쟁탈전은 올림픽을 연상시킨다. 근대화와 문명화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의 역사는 21세기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상처는 무수한 인류의 고통으로 남아 있다. 탈식민이든 신식민이든 용어의 개념도 중요하겠지만 신자유주의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제국주의 횡포는 여전히 계속된다. 그것이 우리들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문제다. 거시적인 담론들을 외면하면 내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쉽게 찾아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 청산은 요원하기만하다. 식민주의의 그늘은 아직도 검고 짙게 드리워져 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현실 속에서 우리끼리 부대낀다. 친일파 문제 하나만 놓고 생각해도 현실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아직도 식민주의자의 권력을 드러내고 해체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은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탈식민주의도 저자의 말대로 실천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제국주의의 눈치를 보며 이라크 파병했고, 한미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현실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역사가 말해준다고 하지만 결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움직여주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위해 저항할 것이며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인가?

탈식민주의는 저항담론이며 실천담론이다. …… 탈식민주의 이론이 세상 읽기의 유효한 방식이 되고, 현실 참여의 영역과 맞물려 있어야 의미가 있다. 반성과 토론만 하다가 투쟁이나 실천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면 진보는 위기에 처한다. - P. 86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진보의 위기에 대한 저자의 일침은 매섭다. 투쟁과 실천의 문제, 현실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진보는 미래가 없다. 답답한 현실은 계속되고 현실은 외면하고 싶지만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대로 희망은 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한방이냐 천천히 조금씩이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우리가 처한 신자유의와 신제국주의에 대한 상황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노력이 탈식민주의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주권과 자율성을 지키는데 꼭 필요한 실천담론으로서 탈식민주의는 미래 지향적 프로젝트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결코 좌파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해석이다.


0701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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