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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 ㅣ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2
이유명호 외 지음 / 궁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사춘기와 인문학
개별 생명체는 모두 아름답다. 눈부신 태양아래 태어난 생명은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다. 이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이라는 관점의 차이를 넘어선 명제다. 물론 그 생명 탄생의 신비는 죽음과 소멸이라는 결과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생명 자체의 신비를 넘어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사춘기를 겪는다. 통과의례나 단순한 성장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춘기는 ‘나’에 대한 의식이 생기면서 시작한다. 우리가 아닌 개별적 존재에 대한 인식이라니.
그러나 이 충만한 생명감과 성인의 단계를 도와줄 만한 사람도 공간도 책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은 모두 학생은 아니다. 학교에서는 ‘삶’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원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대안학교가 생기고 공동체들이 만들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의 목표가 이름난 대학 진학, 돈 잘 버는 학과 합격은 아니라고 믿는다. 어른들이 심어준 잘못된 믿음과 거짓 신화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삶의 목표와 방식의 차이일 뿐 거짓이나 신화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고민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인류가 걸어온 길은 멀고도 험했지만 인간의 지혜는 고스란히 축적되었다. 그러나 실용적 지식에 목매는 우리에게 인문학은 먼지 묻은, 냄새나는, 고리타분한, 쓸모없는, 골치 아픈, 추상적인, 어려운 대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더구나 공부할 시간도 없는 학생들에게 말해 무엇 하랴. 하지만 사춘기의 고민은 인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모든 고민의 흔적들이 녹아 있고 근본적인 답을 찾고 싶다면 인문학에 길을 물어야 한다.
이제 인생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나는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등 마치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듯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을 권하고 읽히고 고민하게 할 의무가 있다. 쉽고 단순한 답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그만큼 깊고 넓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몸, 가장 인간적인 이모티콘
감정(emotion)과 상징(icon)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이모티콘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경계를 허문다. 어색한 상황이나 할 말이 없을 때도 사용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모티콘은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대면 상황이라면 이모티콘이 필요 없다. 우리들 몸짓이 고스란히 이모티콘이 되기 때문이다.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당황스럽고 어색한 모든 감정들이 몸으로 표현된다. 비언적적 표현이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몸은 가장 인간적인 이모티콘이다.
이 ‘몸’을 주제로 길담서원에서 청소년인문학교실을 열고 강연과 질의응답 내용을 책으로 묶어낸 『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을 펴냈다. 한의사 이유명호부터 철학자, 물리학자, 연극인 등 7명의 ‘몸’ 전문가의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생명의 근본적 문제까지 인문학적 성찰을 시도한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서 강사의 책을 미리 읽고 강연을 듣고 질문과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길, 일, 돈, 밥, 집 등 주제별로 인문학교실을 진행해온 길담서원의 두 번째 책은 서울 통인동 인왕산자락의 이야기다. 우리에게 진짜 공부는 무엇인가,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하고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인문학은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고민할 시간이다. 장회익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온생명 차원에서 40억 년간 지속되어 왔다. 릴레이 주자와 불과하지만 앞선 주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왜 달리고 있는지 알고 뛰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문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경쟁과 승리만을 위해 무한 질주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화두는 던져주고 있다.
수학문제가 아닌데 인생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인문학은 거창하고 어려운 분야가 아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매일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들이다. 좀 더 쉽게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이런 모임과 책읽기와 강연들이 이어지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문학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색에 잠기기 좋은 깊은 겨울밤, ‘삶’에 대한 고민을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떤가.
결국 몸 철학이라는 것은 몸에 관해서 철학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 핵심은 ‘행동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생각과 행동은 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철학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 조광제, 290쪽
20111213-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