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하늘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당도하기 전의 ‘푸른 시간’은 산책과 명상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나를 돌아보며 내 삶을 성찰하기 좋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면서 상당한 즐거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삶은 고통이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거나 어리석은 자들만이 반대로 상상한다. - 조지 오웰 본질적으로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해질까? 조지 오웰의 말에 공감한다고 해서 경험이 풍부하고 똑똑하다는 말은 아니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거나 오로지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면 인생은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고통은 객관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통에 대해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이를 악물고 참아내기도 하지만 ‘우울증’이라고 하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똑같은 불행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동일한 삶의 무게를 느낀다면 세상 사람들은 불행지수도 같겠지만 행복만큼이나 불행의 모습과 형태는 제각각이다. 그것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우울증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다리가 부러지고 피부에 상처가 난 것처럼 마음이 다치고 죽음만큼의 고통을 느끼는데도 사람들은 ‘우울증’에 대해 간과하기 쉽다. 정신병에 대해 사회적 시선과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한 번씩 지독하게 우울한 시간과 대면하게 된다. 실제 우울증에 걸려 오랫동안 고통 받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의사나 상담가의 조언과 충고보다 실질적이고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수 앳킨슨은 자신이 겪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털어놓는다. 『우울의 심리학』은 바로 이러한 우울증 치료에 관한 치료과정을 밝힌 보고서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벗어버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심각한 질병으로서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슬픔과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바로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것이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저자의 이야기는 매일매일 우리 주변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불행에 관한 보고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속 시간과 깊이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불행과 행복 사이를 오고간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스트레스나 불안 그리고 우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일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런 질병인지 최근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박용하, 최진실, 이은주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살은 가장 확실하게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가장 어리석은 해결방법이기도 하다.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암벽등반’에 비유한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만하다. 우울증의 원인은 각종 스트레스가 아닐까? 프로이트의 말대로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사이의 간극 때문이거나 욕망의 좌절, 극단적 슬픔 등 다양한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울증의 원인을 알고 잘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고 현실생활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들에게만 유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의외로 많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거나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의외로 흔한 질병에 속하는 것이 우울증이다. 감기를 치료하듯이 약 몇 번 먹고 낫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굳은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완쾌될 수 있는 질병이다. 저자는 바로 이 ‘방법론’에 집중하고 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매우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행동 처방을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다. 이론적 접근이나 추상적인 개념 설명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다. 환자는 물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벌컥벌컥 화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누구나 벌컥벌컥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화를 낼 만한 사람에게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목적을 가지고 적절한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 책에는 우울증과 무관하게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장면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말들이 각 장마다 제시되어 있고 본문에도 인용되어 있다. 특히, ‘화’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화병이 나기도 하고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슬픔과 또 다른 ‘화’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왜 우리는 조그만 일에만 화를 내냐고 물었던 김수영 시인의 말이 떠오른 이유도 개인적 ‘화’가 아니라 사회적 ‘화’를 잘 다스릴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화든 ‘적절한’ 대상과 목적과 방법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단순히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울화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이 말은 우울증과 화병이 겹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심각한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사람은 외로워서 죽을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이다. 심약한 상태에 빠지는 것은 순간이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소리 없이 찾아 올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자각증상이 있지만 심각성을 알기 어렵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정말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타의에 의해 병원에 가는 병이 우울증이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이 병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암벽등반에 비유했듯이 힘겹고 두렵지만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는 약물치료보다 우선시된다. 화학 성분의 약품이나 지극한 정성과 사랑만으로 부족하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이라도 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 『우울의 심리학』은 한번 쯤 자기 점검을 위한 책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슬플 때,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 눈물을 보일 뿐이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에는 뭔가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 말콤 엑스 우울증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도 좋지 않다. 적절한 화는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인종차별에 맞서 흑인들의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말콤 엑스의 말대로 뭔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화를 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화는 가난하고 슬프고 나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화를 내고 산다. 그 화를 겉으로 드러내는지 안으로 삼키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참는다고 착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표현과 생활의 변화가 우울증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제시하는 암벽등반의 비법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우울증 환자뿐만 아니라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다. 그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며 때때로 생명을 건 힘겨운 싸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암벽 등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상에는 행복하고 부유한 범죄자와 슬프고 가난한데 정직한 사람들이 있다. 선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신이 이러한 것을 허락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수 앳킨슨, <우울의 심리학>, 289쪽 100712-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