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
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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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환원주의적 방식 중 하나가 ‘유전자’에 대한 관심이다. 삼십 대에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때문이든, 『종의 기원』이 정유정의 장편 소설로 아는 사람이든 존재론적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만한 나이가 됐으나 포기하지 않고 집착에 가까운 몰입에 성공한 사람들은 정답이 아니라도 자기만의 생각과 주체적 삶의 태도를 갖추게 된다. 모든 게 호르몬 때문이라는 책도, 생존 기계에 불과한 인간의 삶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주장도, 결국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랑을 나누는 게 행복의 전부라는 진화심리학자의 말도 읽고 듣는 사람의 ‘태도’와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임승수와 정우현 덕분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에 위로가 된다. 임승수는 빨갱이고 정우현은 과학자다.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설명한다. ‘나’를 분석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해서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덜 중요할 수는 없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권의 책은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추천하고 싶다. 과학에 관한 기초 이론과 지식을 전하는 책은 이제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가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알고 싶다면 정우현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으나 인문학이 바탕이 된 과학자들의 책은 연구 결과나 새로운 이론과 주장을 정갈하게 담은 책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다. 논문이나 학술서가 아니라면 독자의 입장에서 과학이 ‘삶’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나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변화 가능성은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에 어떻게 선택이 달라지는지 말이다. 그 현실적 유용성이 이제 ‘책’을 선택하는 실제 기준이 되지 않을까. 소설의 재미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가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진 않다. 나름의 이유로 선택된 매체의 차이일 테니까. 하지만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분야의 논픽션은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의 합종연횡, 통섭과 상상력이 없는 텍스트는 나무에 대한 예의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우현은 예의 바른 저자다.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익숙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소재들이다. 어쩌면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다만 유전자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 본성과 양육과 환경에 대한 논쟁이나 인종과 동성애에 관한 편견,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오해 등 과학은 현실이며 삶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철학, 역사, 문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인간과 세상에 관한 다양한 교양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연결하는 지점이 매력적이다. 뷔페를 싫어하는 사람의 취향도 존중해야 하지만 ‘읽는 인간’들의 욕구와 취향을 저격하는 이런 맛있는 책을 거부하긴 쉽지 않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고 읽기와 쓰기의 시간도 독자와 글쓴이가 갈아 넣는 생의 일부다. 서로 씁쓸하지 않도록, 새해에도 계속 그렇게, 남은 시간을 즐기고 싶은 나뿐이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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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
옌스 포엘 지음, 이덕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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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낭만적 착각이다. ‘사실은 없다. 다만, 해석이 있을 뿐.’이라는 니체의 말 한마디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단순히 맥락에 따른 상황 논리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수학적 공리와 자연 현상처럼 명백해 보이는 사실fact에 대한 의심은 가능한가. 하물며 진리truth 탐구에 도전이라니. 인류의 역사는 허망한 기대와 실현 불가능한 꿈에 도전했던 지난한 고통의 기록이 아닐까.

일상생활에서 사실과 의견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표명되며 현실에 영향을 줄까. 레거시 미디어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뉴미디어 시대의 명암은 진영 논리에 따라 달라질까. 가짜 뉴스를 ‘대안적 사실’이라 명명한 트럼프 진영의 신박한 작명법에 진심으로 감탄한 적이 있다. 어차피 인간은 상상의 질서가 창조한 세계를 살아간다는 유발 하라리의 통찰이 아니라도 매일매일 벌어지는 숱한 개인적, 사회적 프로파간다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린다. 때로는 부모와 연인의 가스라이팅, 사회 경제적 전망에 대한 신뢰, 통계와 자료 분석에 기반한 확신, 정치 종교적 도그마로 인한 믿음 등 한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소음들.

사실이 의견일 리 없고, 의견이 사실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독일의 신경심리학자 옌스 포엘이 ‘과학적으로 합의된 사실’과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의견’를 구별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혹은 그러한 판단력을 갖추기 위한 비법 16가지를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 텍스트 너머의 진실, ‘행간을 건너뛰는 두 개의 콤마’에 방점을 둔 읽기 단계로 진입한 자들을 위한 전복적 제목이 오히려 사실과 진실에 대한 냉소적 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가짜와 진짜는 누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그 모호한 경계를 이용하며 끊임없이 이익을 챙기는 자들은 누구일까.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사회는 끊임없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지식과 정보 과잉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가짜와 진짜, 아니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경계를 지우고 전복을 시도한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 하는 놈은 절대 깨우지 못한다.

살펴보고(1부) 검증하고(2부) 해석한(3부) 다음 친구에게 말을 걸면(4부) 우리는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사실은 의견일 뿐이라는 말의 역설적 진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문장은 사실일까, 의견일까. 오해가 디폴트 값이라면 인간 언어의 한계가 전제 조건이라면 이해와 공감, 소통과 협력에 관한 내포된 위험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까. ‘앎이 곧 삶’이 되던 시대의 낭만은 모두 사라졌다. 오래 전부터 예언해 왔던 ‘인간 운전 금지 법안’은 시행까지 얼마나 걸릴까. 운전대에 손댈 수 없는 시대는 ‘소유의 종말’을 예고했던 제러미 리프킨의 말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탄생의 이유이자 번식 기계로서 소명을 다해야 했던 ‘인간의 종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오늘도 무얼 보고 듣고 살피며 하루를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걸었을까. 물신 시대의 꿈이 사라지고 허무의 시대가 찾아온다면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대해 또 어떤 의견을 내놓으며 목소리를 높일까. 그 또한 알 수 없으니 계속 책장이나 넘길 수밖에 없을까.

많은 사람은 자기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걸 싫어해. 그건 본인이 과거에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는 걸 받아들이는 꼴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생각의 변화는 ‘틀림에서 옳음으로의 과정’이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언제나 ‘틀린’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어.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 영화 《사회학자와 곰돌이》에서 사회학자 이렌 테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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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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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나면 코끼를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개념의 창시자쯤 된다. 심리학자 최인철의 『프레임』은 인간의 인지적 무의식에 관한 탁월한 대중서다. 제임스 서로위키가 말한 『대중의 지혜』에 설득당한 사람들은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 앞에서 주춤거린다. 우리는, 아니 나는 합리적인가.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하자면 지혜로운 성자는 못 돼도 어리석은 군중은 되지 않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고 우리는 대체로 필터 버블에 갇혀 착각 속에 살아간다.

겸상도 힘들다는 정치적 좌파와 우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돈에 울고 사랑에 속는 게 아니라 무의식에 속고 의식에 또 속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 종의 한계다. 문화인류학자, 인지심리학자, 진화생물학자들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으나 이제 뇌과학자들이 전면에 나섰다. 다 시끄럽고 내가 ‘과학’으로 증명해 줄게!

2011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이글먼의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들은 건 믿지 말고 본 것도 절반만 믿으라는 애드거 앨런 포의 충고가 뇌과학에 기반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감각을 인지하는 뇌의 착각과 한계는 여러 분야에서 검증이 끝났다. 독자들에게 남는 의문은 “그래서?” 세 글자다. 뇌과학은 어떻게 나를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린 지 오래지만 개별 독자의 생각과 현실 변화 가능성 앞에서 매번 냉소를 날릴 수는 없다. 알지 못하면 문제를 인식할 수 없고 해결책은 더더욱 난망하다. 사는 대로 생각하며 세상은 다 그런 거라고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위로를 주고받다 죽는다.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고 비 오는 토요일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게 아닐까.(물잔과 콜라잔도!)

그것이 숭고한 대의나 거창한 이타심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삶의 변화와 타인과 세상에 관한 통찰을 얻기 위한 이기적 목적일지라도 확증편향을 의심하는 눈빛,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는 태도, 어차피 죽을 거지만 피자에 꿀을 찍어 먹어도 무알콜 음료는 마시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모였던 기억이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과학이 곧 사실일 수도 없고 실험 결과나 통계 분석도 주관이 개입된다는 이야기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저자들에게 경의를! 허나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넘나들며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 탄생과 소멸에 대해, 아니 각자의 삶에 자유 의지와 의식이 미치는 영향의 한계를 점검하는 정도면 넉넉하다. 보니 엠이 다들이불개고밥먹으라던By the rivers of Babylon 노래 소리가 아련한 일요일 아침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기쁨과 슬픔을 감당하며 인지적 무의식에 속지 않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산다고 믿는다. 그 선택과 방향이 비록 원하지 않는 길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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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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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딥블루에게 체스의 제왕 자리를 내준 게리 카스파로프는 대국 결과에 대해 ‘인류의 종말’이라 평했다. 10년 후인 2016년 체스가 아니라 바둑판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빈 서판은 2002년,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상용화될 무렵 네트워크 세상에서 인공지능이 몸을 풀던 시절의 생각들이다. 물론,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짐작할 뿐이다. 타인에 대한 오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작은 변화가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인류가 느린 걸음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븐 핑커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계속해서 바뀔 예정이다.

20세기 경제 공황을 파고를 넘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넘친다.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으로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렸지만 메카시즘의 광풍 등 사회적 혼란과 ‘인간’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계속됐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로 촉발된 논쟁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로 극한 대립이 펼쳐진다. 사회생물학 인권과 평등, 사회 변혁을 향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오해한 마르크스주의자들, 페미니시트의 태동, PC주의자들의 등장으로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아니 어쩌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 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쌍욕을 먹던 진화심리학과 사회생물학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으며 뇌과학의 발달로 그 진정성에 대한 오해는 조금 풀린듯 싶다. 리처드 도킨스도 『이기적 유전자』를 들고 참전했으나 ‘인간 본성’에 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육 가설에 대한 대담한 도전으로 비치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은 그가 아무리 멋진 파마머리를 휘날려도 계속될 예정이다. 자유의지와 운명론을 뒷받침하려는 목적도 없고,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만 과학적 논의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허수아비 오류 공격은 일상에서도 반복되는 가장 무지한 태도 가운데 하나다. 다양한 종교적 교리, 이상적 사회주의, 인간에 대한 희망적 뇌피셜로 가득한 사람에겐 800쪽이 넘는 하드 커버 책은 대형 벽돌에 불과할 것이다.

로크의 인간 오성론,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관에는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빈 서판 이론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인간은 고쳐 쓸 수 있는가. 교육과 문화, 전통과 사회화를 통해 전혀 다른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병원에서 애가 바뀌어 전혀 유전자와 무관하게 부모의 교육과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가. 이런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게 논쟁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다수의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스티븐 핑커는 긴 머리 휘날리며 친절하고도 꼼꼼하게 투머치 토킹을 이어간다. 선명한 주제, 확고한 신념, 틀림없는 이론과 무관한 심리학과 인류학, 진화의 증거들로 빈 서판으로 무장한 적들을 깨부술 수 있을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저자의 애처로운 호소와 설득을 구경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궁금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로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사람은 책을 만들지만, 책은 과연 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본성이든 양육이든 변증법적 변화를 체험한 이들의 간증조차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주장할 것이 뻔하다. 따로 또 같이 사는 세상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 도그마에 갇혀 나름의 합리성과 안정을 찾은 사람들에게 진화 심리학과 행동 유전학을 옹호하는 인지 과학자스티븐 핑커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비칠까.

“나는 여전히 인간의 전망은 유토피아보다는 비극 쪽을 향하고, 인간성이라는 비뚤어진 재목으로 똑바른 물건을 만들 수 없고, 우리는 티 없이 맑지 않거나 황금처럼 빛나지 않으며, 낙원으로 돌아갈 길은 어디에도 없다고 믿는다.”(2016년판 발문, 「인간 본성은 문제이기도 하고 답이기도 하다」) - 791쪽

결국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진짜 인간의 목소리, 즉 이성, 감정, 본능이 조화된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개 거의 모든 학문은 인간의 추체험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해석하는 일과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을 살아야 하고 내일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날이 얼마든 각성과 성찰을 통해 성숙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나이가 몇이든 곧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 본성과 양육과 교육과 문화가 어떻게 지금 현재의 ‘나’를 만들었을까. 아니 그걸 안 연후에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안물안궁이라면 할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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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²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희봉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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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과 구토로 이틀을 앓았다. 2개의 모임과 캠핑 여행을 취소했다. 인간의 몸은 때때로 내, 외부적인 힘의 작용으로 에너지를 소진한다. 질량에 속도가 결합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E=mc²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 인생이다. 당황스러운 타인의 정신적, 신체적 가해, 예측하기 어려운 교통 사고, 미리 알 수 없는 건강 이슈, 뉴스 같은 지인들의 인생사가 직, 간접적으로 현재를 만들고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인간과 세상에 관한 이 불가해한 일들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이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선언하며 저항하고, 또 누군가는 저 머나먼 별빛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궁금해하고, 또 누군가는 휜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원자 폭탄 등에 관한 영화 『오펜하이머』, 다큐멘터리 영화 『아인슈타인과 원자 폭탄』등이 E=mc²에 대해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이론 물리학이 어떻게 현실을 지배하는지, 인간의 삶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될 뿐이다. E=mc²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숫자와 기호로 환원되어 자연의 질서가 밝혀지든, 원시 시대처럼 온갖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무지의 상태를 유지하든 사실 하루하루 우리가 사는 인생에 그 영향을 성찰하거나 삶의 태도에 영향을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짐작보다 무지하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론 물리학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전공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과학적 지식이나 특수 상대성 이론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서 재밌다. E=mc²그 자체의 자서전에 가깝다. E, =, m, c²각각이 탄생과 성장 그리고 이들의 결합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으며 또 때로는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는지 살피는 과정이 노잼일 리 없다. 스토리텔링은 식욕, 성욕 다음으로 강한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뒷담화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E=mc²에 관한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끈적한 후일담은 독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TMI(to much information) 본능을 충족시킨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김상욱의 『울림과 떨림』,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등 기억할만한 과학 서적들이 가진 각각의 특징과 개성만큼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글쓰기 방법은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으면서 얼마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리처드 파인만과 스티븐 핑거, 리처드 도킨스, 최재천, 장대익, 슈뢰딩거, 제임스 크릭 등 과학자들이 쏟아내는 팩트fact가 문학에 절여진 픽션fiction의 뇌를 깨웠다. 천상 대문자 F인줄 알았으나 누구보다 강렬한 T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게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변하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때, 누군가 과학의 재미를 알려줬더라면 아마 다른 길을 걸었을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자기 취향과 성향과 전공과 직업을 충분히 알아본 후에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대한민국에서 특권 계급으로 정부에서조차 인정을 준비 중인 의사나 판사 등 특정 직업의 선택에서부터 문, 이과 선택, 직종과 직업 선택의 순간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우리는 문과형 혹은 이과형 인간으로 불과 10대에 결정한 다음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는다. 마치 여자라는 이유로 리제 마이트너, 마리 퀴리 같은 여성 과학자들의 탁월한 성취가 묻힌 이야기들처럼. 아니 어떤 여성들은 과학에 접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초점과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주인공 아인슈타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권위에 의심을 품고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과학적 태도는 아인슈타인을 고립시킨다. 교수 자리를 얻고 안정적인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면 아인슈타인 뇌도 제도에 순응하며 기존 과학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을까.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현실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아인슈타인이 혼자 E=mc²를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올렸다는 신화 혹은 영웅담과 거리가 먼 책이지만 결국 이 간단한 여섯 개의 기호를 나열하는 데 관여했던 수많은 과학자들과 기나긴 과학의 역사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질문들이 이 책 곳곳에서 미로찾기처럼 연결되어 있다. 수천 피스의 퍼즐을 맞추듯, 그렇게 역사는 수천 조각들의 우연과 필연이 결합한 사건이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능력에 인물들의 후일담은 쿠키 영상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미에 재미를 더한다. 좋은 책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꽉찬 육각형 모양으로 채운 듯하다. 과학은 지루하지 않다. 다만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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