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
권인숙 지음, 유지연 그림 / 청년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남녀평등’이란 용어 자체도 남성이 용어의 앞에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양성평등’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나이와 지역을 불문하고 여성에 대한 시각과 편견은 거의 유전형질처럼 변형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역사와 문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그것이 차별인줄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아이에게는 빨간색이나 분홍색 옷을, 남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옷을 사준다. 집에서부터 “아니, 여자애가~~”, “넌, 남자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잔소리나 훈계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도 남자 아이는 의사 역할을 여자 아이는 간호사 역할로 성역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각인하기 시작한다. 학교에 입학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여학생은 문과 남학생은 이과가 적성에 맞는다는 진로 지도에서부터 각종 생활지도나 암묵적인 시선과 제약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벽은 견고하고 두텁기만 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각종 고시에서 여성들의 우수성이 입증되지만 반대로 공정한 경쟁시험이 아닌 채용 경쟁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결혼이나 출산 등과 관련된 문제들은 개인의 문제를 벗어나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근본 원인이나 대책보다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심각한 출산율 저하에 대한 접근 방법과 시각 그리고 사회적 합의나 대책들이 오히려 더 심각해 보인다.

  권인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이제 나이가 제법 들어가는 세대일 것이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여성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세대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양성평등 이야기>는 시각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동일한 문제를 다르게 본다는 특징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왜 잘못 되었냐고 이야기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읽혀져야 한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사고방식과 보이지 않는 편견은 암보다 무섭다. 누가 가르치지 않았어도 부모의 역할과 관계를 학습했거나 학교나 사회에서 잠재적으로 습득한 방식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 딸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딸에게 이야기하듯이 편안한 설명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부모가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물론 필독서로 권장할 만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고치지 않은 생각과 행동들을 돌아보게 한다. 더구나 미래에 여성 문제는 단순히 차별과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 남성과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양성평등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이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 여동생, 딸에 대한 생각이나 시각과 다른 여성에 대한 그것이 다르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어머니의 희생, 외모지상주의, 남자와 여자의 성, 노동 현실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평등하거나 대등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곳이 대다수이다.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단순하게 여성을 ‘보호’하거나 ‘배려’하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수십 년 전에 비해서도 지금은 물론 여성들의 권익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의 차별과 편견들이 숨어 있다. 인간의 범주에서조차 제외되던 여성의 문제가 이제는 평등이라는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버려야할 많은 선입견과 뿌리 깊은 관습적 사고들이 아직도 많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내면화된 의식과 무관하지 않으며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수많은 기득권들도 이런 이유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뒤처진 공부를 보충하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번 방학에는 이 책 한권을 부모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일 것이다. 생활과 습관 속에서, 우리의 관념 속에서 얼마나 실천하느냐의 문제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예들이 책에 언급되어 있지만 그들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으로 만들어지기 위한 노력과 실천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교육의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나친 피해의식이나 대책없는 비난도 문제지만 관습적인 태도나 무의식적인 행동들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쯤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의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싶다.


070726-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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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2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내가 뭘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야..^^

sceptic 2007-08-01 11:13   좋아요 0 | URL
나이들어 가는 세대 맞잖아요...^^

비로그인 2007-07-27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내에서의 여성의 자리도 생각해야할게 많지요.

sceptic 2007-08-01 11:12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가정에서는 훨씬 더 심각하죠...모든 양성평등의 출발은 가정에서부터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