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과학이 필요하다 - 거짓과 미신에 휘둘리지 않고 과학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힘
플로리안 아이그너 지음, 유영미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요즘처럼 헷갈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과학의 세계를 여행하며 마주치는 중요한 생각들은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보도록, 세상에 쉽사리 속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 14쪽

‘불신과 혐오를 넘어설 지적 모험을 시작하며’라는 제목을 단 프롤로그 첫 문장이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우리 편은 선이고 저쪽 편은 악이라는 이분법이 판친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정치,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 직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 생각의 논리와 패턴, 오류와 허점을 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인적 이해득실, 정파적 세력 다툼으로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한다. 그 공고한 현실 앞에서 과학은 과연 증오와 갈등, 불신과 혐오를 넘어설 도구를 제공할 수 있을까.

과학저널리스트이자 물리학자인 플로리안 아이그너는 “과학은 우리가 모두 함께 신뢰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가는 활동”이라고 선언한다. 서로 다른 상식, 각자의 기준, 높낮이가 다른 관점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작동한다. 누구나 신뢰할 만한 진리, 모두가 합의한 질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원칙이 존재한다면 인류사회의 갈등과 전쟁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도덕의 최소한이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정교한 논리와 내적 정합성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법을 이용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이다.

과학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수학에 기초한 명징한 과학의 세계가 그 어느 분야보다 확실하고 분명한 정답을 제시할 것 같지만 과학자의 태도와 방법에 따라 숱한 오해와 착각만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플로리안 아이그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과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과학 대신 직감을 믿을 수는 없다. 라마누잔의 직관이 수학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활용한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지만 대개 과학은 인간의 삶을 여기까지 이끌어 온 가장 정교한 사고체계에 해당한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 세상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관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기 위한 과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과학에 대한 사랑 고백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과학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가 곳곳에 묻어난다. 그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글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관심을 유도한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설명도 중요하지만 이성과 논리, 합리적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오히려 애정과 관심도 필요하다. 힐베르트, 버트런드 러셀, 헴펠, 러커토시 임레, 토머스 쿤,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학자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과학적 태도와 방법이 세상을 어떻게 조금씩 바꿔왔는지 설명하는 부분들이 인상 깊다. 인류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원대한 꿈을 안고 과학자가 되는 이는 드물다. 정교하고 명징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로 시작해서 맹목적 믿음과 애매한 추측을 걷어내는 과정에 매혹된 사람들이 과학자다. 나름의 이유로 과학에 입문하고 자신의 연구에 몰두한 결과물이 세상을 조금 나은 곳으로 만들어왔다. 다만 저자가 주목한 것은 위대한 성과물이나 천재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 과정에 필요한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이다.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열린 자세, 반증 가능성을 동반한 과학 이론,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은 인간과 세상의 숨은 비밀들이 주된 관심사다.

학창시절, 겨우 세상에 눈뜰 무렵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다시는 그 벽을 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교육제도 탓은 아니겠으나 합리적 사고, 과학적 태도가 익숙하지 못한 문과형 인간들이 세상을 주도하는 난장판에 이성에 바탕을 둔 논쟁이 오가고 논리적 근거를 앞세운 대안들이 제시될 수는 없을까. 저자가 말하는 우리에겐 과학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론과 지식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판단하는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돌아보라는 충고다.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자기 생각과 행동이 변할 수도 있다는 여지가 남아 있다면 우리 앞에 생이, 저기 저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을 바꾸라는 충고는 이기적 기회주의자로 살라는 조언과는 결이 다르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에 그들보다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거인의 어깨 비유는 과학의 발전을 설명할 때 애용되는 비유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발을 디딘 거인이 그리도 커보이는 것은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거인은 없고, 서로 키가 다른 난쟁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피라미드만 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 290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4-2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읽기 좋게 정갈하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sceptic 2022-04-23 09:06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