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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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일생을 의사와 의학자로서 호스피스 운동과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왔던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 그가 자신의 마지막 삶을 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남은 생의 에너지를 모았다. 그 결과 이 책이 탄생했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그가 평생동안 죽음을 통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생의 가장 값진 보물이 무엇인지를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삶의 가장 중요한 보물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세지이다. 그가 평생을 걸쳐서 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가 이 책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그 성공을 통해 자신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많은 시간을 직장을 위해 보내고, 자신의 일에 보내고, 자기개발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자기압박에 시달린다. 지식과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위한 이 모든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삶은 저기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삶의 진정한 행복이란 자기 자신이 처음부터 부족함이 없이 온전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동생이 작년부터 한 사고를 당하고부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산재에 올려진 순간부터 병원의 수술과 치료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을 두고 동생은 불편한 몸과 함께 늘 한숨을 쉬는 습관이 생겼다. 아마 결혼 전 집에서 더욱 가까이 그를 지켜보았다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나서서 동생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예전같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동생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다만 나는 동생이 일을 스스로 잘 처리하고 또 그렇게 해도 안되는 일을 수용하고 잘 살게 되라고 바라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동생의 불만을 들을 때마다 나에게서는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그 관계를 통해서 나를 살펴보면 그 곳에 내 자아가 관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냥 동생의 불편한 마음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만이 내가 할 몫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렇게 대처하고 그리고 생활은 편안한 마음으로 하라는 나의 충고 속에는 동생의 괴로운 마음이 내게 전달되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마음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동생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형이 필요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데...집에서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려는 생각 뿐인 것을...내 마음이 쓸데없는 생각을 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관계는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의 스스로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관계는 자신을 이해하는 창이 된다. 내가 인생을 통해서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나는 그 사람과의 만남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일생을 통해 우리가 맺게 되는 관계에서 우리는 자신을 알기 위한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바로 볼 때에야 비로소 관계에 그리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걸려서 넘어지는 일이 없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자꾸만 넘어지고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넘어질 때 넘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넘어짐의 사건을 통해 자신을 반추해보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 된다. 왜 인생이 수업이 되는 것인가? 우리가 마주치는 일에서 감정에 자신이 휘둘리지 않고, 대상에 자신의 영혼을 빼서 갖다바치지 않고 그것을 관조하는 내면의 '눈'을 가질 때 비로소 그것이 가능해진다.

  왜 우리는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이런 일들을 생각하게 될까?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본래모습에 대해 그리고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묻지 않는 것일까? 학교에서의 수업을 생각해볼 때 그것은 단순히 주입식으로 주어진 결과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수업을 통해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의미를 스스로가 묻고 그 답을 찾아가는 내면적 과정의 치열함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 수업의 값진 열매를 우리가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퀴블로 로스 박사가 이야기하는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우리의 본래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우리 스스로가 찾아낼 때에야 비로소 인생은 우리에게 허물없이 즐기는 놀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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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초이 2006-07-02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때마다 다 그들만의 이유가 있겠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결국 그들은 이기적인 존재구나하며 쓴 웃음을 짓는 저에게 님의 글은 새로운 각도로 저를 보게하네요.. 저또한 장단점이 있듯이 그들 또한 장단점이 있는 평범한 존재이건만 관계속에서 부딪칠때마다 한걸음씩 뒷걸음질 하게 됩니다... 허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들을 배척하기보단 수용하고 이해할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생기네요..관계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며 자신을 이해하는 창이라는 말씀 가슴에 와 닿네요...

달팽이 2006-07-06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초이님.
퀴블로 로스는 사람들이 감정으로 자신만을 내세우며 우리들과 대립할 때 우리는 그가 지금 보이는 모습보다는 훨씬 훌륭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 감정에 반응하며 자아가 우리의 내면에서 올라와 같은 감정으로 부딪힐 때에도 우리는 이렇게 반응하는 우리가 존재의 아주 일부분일뿐,
우리는 더욱 좋은 면을 많이 가진 존재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나라초이님도 저도 이렇게 만남을 통해, 책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들이 가진 최고의 면들을 계발하게 된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혜덕화 2006-07-0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요일 삼천배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동생이 받는 고통은 스스로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서 이 고통이 내게 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기가 너무 어려울 것이라고. 원해서 하는 고행도 어느 순간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데, 갑자기 닥친 병으로 치료 받는라 서울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동생은 정말로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마음으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르로스 박사의 이 좋은 말도,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겐 배부른 철학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동생도 동생이지만, 부모님이 너무 걱정하고 근심하셔서 예전엔 좋은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음 그냥 시간 날때마다 친정에 가서 함께 있어줍니다.
함께 있어주고 들어주기만 해도, 부모님의 얼굴이 두분만 계실때보다 밝아지는 게 보여서.......
나름대로 받아야 할 업이겠지만, 억지 소리라도 그냥 가만히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 그게 우리가 줄 수 있는 최대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_()_

달팽이 2006-07-0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보다 훨씬 힘든 상황에 계신 혜덕화님도 그리고 부모님들도 ...있는데..

그냥 이기적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인데...
시간이 갈수록 왠지 부모님이나 동생이 받아들이는 것은 또 그들의 몫이고
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더욱 마음이 쓰이게 됩니다.
그만큼 제 앞가림을 잘 못한다는 얘기겠지요..

어둔이 2006-07-0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난지도모르고
태어나살아가는데
언제닥칠지모르는
죽음을두려워하며
인생을수업하란다
 
인류의 미래사 -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
W. 워런 와거 지음, 이순호 옮김 / 교양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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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인류의 미래가 공동체와 개인이라는 두 극점 사이를 흔들리는 추와 같다고 한다. 인류의 진보가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과 굴레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자유와 정신적 진보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인류절멸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도기적인 정치형태로서의 세계연방이라는 특별한 정치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삶은 현실을 헤쳐나가는 코드이다. 그 코드는 현실과 현실인식이라고 하는 조건으로부터 생긴다. 인간 역사의 추는 현실과 현실 인식 사이에서도 오가고 있다. 인류 시계의 추는 또 인간 존재의 극과 극 사이에서도 오가고 있다. 와거교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 삶의 목표와 의미에 대해서도 시간의 추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역사적인 기술은 단지 미래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다양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와거 교수는 복잡하고 불규칙적으로 나열된 것 같은 인간의 미래적인 삶에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일반화를 시도한다. 그것을 통해 역사는 불규칙적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에 의해 흘러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자칫 구조적이고 딱딱해지기 쉬운 역사이해를 보충하기 위한 그의 책 서술은 단원 말미 부분에 들어간 편지형식의 글을 통해 개인적이고 사생활의 삶을 통해서 미래를 살아가는 인간의 의식을 세밀하고 자세하게 보여준다.

  인구의 폭발과 자원부족, 생태계의 파괴와  빈부격차의 문제, 계급갈등과 남북의 격차 등의 첨예화는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총체적인 해결을 요구하였고, 그것은 세계 3차 대전으로 현실화된다. 세계 대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의 땅 위에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물질적인 새로운 문명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성도 만들어진다. 인류를 공멸로 유도했던 과거의 인간은 인류 전체의 진화와 창조를 위한 새로운 인간형으로 변화될 것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 개인적인 삶은 모조리 반납하고 공동체와 세계 연방을 위한 새로운 삶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조지 오웰이 말한 '1984년'과도 같은 전체주의 국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체주의는 인간 진화의 과도기적 단계에 놓여져 있을 뿐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이 질식당할 것 같은 세계국가적 공동체의 삶은 내부적인 모순의 씨앗을 키워가고 있었다. 아니 인류의 공멸을 뛰어넘기 위해 필요악으로 존재했던 세계 연방 체제는 이제 진정한 인류의 진보를 위한 텃밭에 거름이 되어야 할 운명이 되었다. 민주주의적 선거에 의해 연방 체제는 와해되고 작은당은 집권하자마자 자신의 모든 권력을 내던진다. 결국 텅빈 자리를 차지한 것은 자치와 자율, 소규모의 지역주의였다. 그것이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기 위한 삶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수명도 유전자조작과 의료기술을 발달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인간의 신체를 모두 바꾸어도 인간 의식을 보존하는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과연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철학적 물음을 물어야 하게 되었다. 그가 대단한 점은 예측할 수 없는 인류의 미래사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과 답 속에 인류의 미래가 갖고 있는 진보의 형태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인간다운 정치체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가장 인간의 본성을 발현시키는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인간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인간 영혼의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삶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 얼마나 가까이 도달하느냐가 인간다운 삶의 기준이 될 것이다. 200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할까? 인생의 목적없이 부초처럼 떠내려가는 삶이 무엇이 아름답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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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7-05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의미인가요?
그나저나 땡스투를 누른다는게 추천단추를 눌렀으니 어쩜 좋아요!

달팽이 2006-07-0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때로는 의지를 벗어난 손처럼
궤도를 벗어난 발도 때론 필요한데..
그나저나 여우님 오랫만에 발걸음이군요.,
 
맑고 향기롭게 - 법정 대표산문선집
법정(法頂)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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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법정 스님의 오래된 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문득 길을 가다가 옆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신비로움이 그러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만난 느낌은 그렇듯 늘 내게 있었던 것을 문득 내가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이제 스님의 나이도 70대의 중반이다. 그의 글들이 이젠 익을 대로 익어서 열매로 맺히는 것일까? 최근의 글들은 또 조금은 새로운 맛으로 읽힌다. 차분하고 조용한 스님의 글들이 어느듯 대나무 숲의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어 뜰을 빗질해내듯이 나의 마음을 빗질한다. 번거로운 일상생활의 잡다한 생각들을 빗질하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 어디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신이 수행자임을 먼저 밝힌다. 혜가 스님이 달마 대사를 만난 이야기 속에 당신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과연 무엇인가? 하고 우리에게 묻는다. 물질적인 욕망이 중심이 된 거꾸로 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스님은 거꾸로 볼 것을 우선 권한다.우리의 일상에서 습관처럼 만들어내는 망상들을 버리고 새롭게 보기를 권한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르게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세상은 더 이상 이러저러할 일이 없게 되겠지...

  이렇게 시작된 스님의 말씀은 이제 아주 평범한 자신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산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하루 속에서 자신의 수행은 말없이 빛난다. 화분을 기른다는 것, 새들의 소리를 듣는 것, 자신이 기거할 집을 짓는 것, 자연 속에서 해가 뜨고 지는 일을 맞는 것, 계절의 변화와 옷을 갈아입는 나무와 숲의 모습을 보는 것...이 모든 것이 스님에겐 공부가 되고 있다. 마음에서 펼쳐진 세상은 다시 마음으로 갈무리된다. 진정으로 우리의 본성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스님이 우리에게 묻는다.  

  세상의 만남이란 모든 것이 자신의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혹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만나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돌아보인다. 정말 귀중한 인연을 우리는 마음의 망상으로 헛되이 만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나의 길을 가는데 정말 부족한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보는 세상의 시작과 저녁에 마음 속으로 사라져가는 이 절실한 세상을 우리는 어쩌면 너무 쉽게 흘려보내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모든 만남이 가는 길이 스님에게는 수행의 길이다. 자신을 바로 보기 위해서 가는 길 속에 모든 것이 담겨진다.

  더운 여름 날,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책을 들고 있는 것인가? 하고 묻는다. 나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음악을 들을 때 내 가슴에서 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또 묻는다.

하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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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6-2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엇 때문에 책을 잡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가득한 오후입니다.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비자림 2006-06-2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산에는 꽃이 피네' 를 읽고 정말 좋아 마음이 꽉 채워지는 듯도 하고 또 한순간은 마음이 싹 비워지는 듯도 하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법정 스님은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세요.

달팽이 2006-06-2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요즘 공부하시는군요..
네, 비자림님 저도 요즈음엔 마음비우는 공부의 비중이 커집니다.
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수 있으니까요.

파란여우 2006-06-21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반동적 물질이기도 하고, 희망적 메시지이기도 해요
책 속의 길을 터 주는 스승이 있지만
책 속의 단말마같은 유흥가도 있지요
여우가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요?
길상사에라도 함 찾아뵙고 여쭤봐야 할까 봅니다.

달팽이 2006-06-22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책은 처음에 내 인생의 방향을 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이 때로는 언어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삶이 힘들고 고될 때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중심을 만들게 해주는
특별한 책들이 있습니다.
나의 책읽기는 그런 책을 통해 삶이 지향하는 목표로 나아가게 해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은 눈이 더 밝아져야겠습니다만..
 
극한의 고통이 피워 낸 생명의 꽃
호시노 토미히로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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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거의 그 : 중학교 초임 교사, 24살, 호시노 토히미노, 기계체조를 잘 함.

  현재의 그 : 목 아래의 전신마비 장애인, 어머니의 간호아래 생명을 유지함, 입으로 그림을 잘 그림.

과거의 그는 건강이라면 부러워할 것이 없는 젊음과 힘과 근육질의 몸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리고 이제 갓 발령받아 교육의 꿈을 키워가는 교사였으며, 농촌에 계신 가난한 부모아래 여러 형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농촌이 싫어 빨리 도시에서 자립하는 꿈을 꾸었고 이제 그 꿈을 이루었다. 산악동아리에 가입하여 등산을 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기계체조를 가르친다.

현재의 그는 교사 생활 2개월째 되던 어느날 체조 시범을 보이다 경추골절로 목 아래 전신마비 상태에서 숨쉬는 것, 먹는 것, 배설하는 것 등 모든 것을 어머니와 간호사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점차 호전되었으나 목 아래의 근육은 영원히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절망의 깊은 늪으로부터 희망과 용기 그리고 사랑을 사람들과 나누며 살게 되었으며 특히 장애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시작한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문학인으로 살게 되었다.

  목이 부러져서 병원으로 가던 날 그는 자신의 몸의 감각을 잃어버린 절망감에서 삶의 모든 희망을 송두리채 빼앗겨버렸다. "내 손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이제 난 끝장이야. 이런 상태로는 살 수 없어!" 자신의 몸을 잃고나서부터 그에게 온 상실감과 좌절은 영혼속으로 스며들어 새 생명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다. 그 생명의 벌거벗은 알몸에서부터 그는 어머니의 따뜻하고도 조건없는 사랑에 눈물을 흘렸으며, 세상의 모든 장애인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며 살고 있는지, 하지만 그것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면서 살고 있는지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자신의 밑바닥의 치부를 드러내고 의존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부끄러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밑바닥은 생명의 바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그 더 깊은 생명의 심연으로부터 삶의 희망은 올라왔다. 그가 건강한 체육인으로 살았다면 얼마나 이기적이고 몸의 욕망을 위해서 살았을 것인가? 부모님의 사랑도 알지 못하고 철없이 늙어갔을 것인가?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참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참된 삶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삶이란 나누는 것임을...

  이제까지 그의 생존을 위해서 자신에게 도움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제는 내가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그는 새롭게 태어났다. 몸과 물질적 삶 너머에 영적인 삶이 존재함을 받아들이고 영혼이 몸의 삶을 이끌어갈 때 비로소 그는 조건에 관계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그는 붓을 입에 물었다. 희망을 그려나갔다. 사랑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입에서 시작된 사랑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참된 삶이 무엇인지 묻게 하고 있다.

  그의 삶이 예술적인 승화를 거쳐 더욱 성숙한 종교적 삶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그의 영적 성숙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입이 없어도 붓으로 희망을 말하지 않고서도 존재 그 자체로 행복한 날들을 그가 진심으로 맞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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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6-05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내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 하는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 무딘 손보다 낫더군요. 섬세한 그림이...

달팽이 2006-06-0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토미히로의 그림과 설명이 있는 책이지요.
저도 한 번 보아야겠습니다.

어둔이 2006-06-0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이없으면어떠랴
사지잘리면어떠랴
내몸아니데뭐어때
근데내게힘이된다
생명딛고핀그의꽃
 
조용헌의 고수기행
조용헌 지음, 양현모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러셀 셔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피아노를 마스터하기 위해선 우주를 마스터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 고수가 된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적 기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분야를 통해서 삶의 중심을 관통하는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인생도 담아내고 이 세상도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이다. 이런 고수는 생각과 분별을 쉰 사람이다. 그래서 소유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주어진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그의 눈으로 찾은 10명의 고수들은 살아가는 모습은 세속인에서부터 무술인과 역술인, 승려, 동양학자, 작가, 사주풀이가, 족보학자, 신선가, 명상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그것을 위해 자신의 인생과 자아를 바치고 진정한 자신의 본래 모습에 가까워져 간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래서 완전히 자신을 비우게 되면 그 때는 서로간의 구별이 없어지는 진리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서로간의 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리라.

  최근 들어서 나에게는 듣는 행위가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고 나아가 공부가 되고 있다. 잘 듣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비워내고 선율과 하나된다는 것이고 그럴 때 참된 자아에 대한 탐구도 시작된다고 한다. 일명 스님은 참소리를 통해서 깨달음의 길을 걷고 있는 수도자이다. 그 소리에도 첫째의 음의 시작이 있고, 그것이 변화되어 높낮이를 만들어내고 장단을 만들어내고 선율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범종 소리 하나로 집중된다. 구분이 없는 뎅~ 하는 그 한 소리에 마음을 집중하고 그 소리마저도 넘어 절대적인 소리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한 손에서 나는 소리'이기도 하고 '모든 소리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그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을 듣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화두와도 같다. 사실 이렇게 마음쓰다보면 공부 아닌 것이 없다. 차를 마시는 것도 구도의 행위가 된다. 걷는 것, 책 보는 것, 밥 먹는 것, 잠자는 것까지...마음에 맞는 기분좋은 선율 하나가 하루의 분위기를 바꾸어놓기도 하지만... 그 선율의 비밀 속에 세상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는 의문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음을 통해서 선율을 통해서 우리가 닿으려고 하는 곳이다.

  결국 모든 형이하학적인 것은 형이상학적인 것과 만나야 하고 서로 간에 벽이 없이 소통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삶의 고수들끼리의 만남과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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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6-06-04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님의 서재를 방문했답니다.
여전히 좋은 글을 써주시네요?

그 선율의 비밀 속에 세상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는 의문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음을 통해서 선율을 통해서 우리가 닿으려고 하는 곳이다.

음.. 갑자기 님의 글에서 선율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밤 입니다. :)

달팽이 2006-06-0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랫만입니다. 가시장미님..
맞죠? '붉은'은 새로 붙인거죠?
님의 코멘트의 습관(말을 인용하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

글샘 2006-06-0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승들의 선문답을 보면 참 고수들은 말 없이도 통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말을 하지만, 그 말들은 차라리 말없음의 경지를 잘 드러내 주지요.
일상적으로 지시적이고 외연적인 말들만 내뿜는 내 입이, 내 손이 되돌아 봐 지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겠는데요.

달팽이 2006-06-0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없음의 경지가 말함의 경지가 되기도 하지요.
그것이 활활자재하고 자유로운 경지겠지요.
마음을 돌이키면 이제 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지구가 더욱 데워지는 날들입니다. 몸마음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