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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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기사를 읽던 중 중앙일보인가? 프레시안인가? 법정 스님이 FTA에 결사반대하며 일반인들에게 이 책을 필독서로 권한 것을 읽었던 적이 있다. 가트 체제하의 무역자유주의화의 흐름이 WTO체제의 성립으로 더욱 물리적인 힘을 얻어서 미국적 이익을 전세계적으로 관철시키려고 하는 가운데 칠레와의 협상과 더불어 미국과의 양자협상이 우리 사회의 도마 위에 오른 지도 이미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제조업과 공산품에 주로 부과되던 관세에 대한 이야기만을 주로 하던 각종 라운드와는 달리 FTA는 농업과 서비스업 지적 재산권 등 미국이 비교우위를 가지는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미국의 이익에 맞서 우리는 FTA협상이 가지는 의미와 그 영향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가지지 못하였고 나아가 다른 유럽 국가들이나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이를 어떤 관점과 철학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준비하는지에 대해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깜깜 무소식이다.

  그런 와중에서 KDI나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은 FTA 협상이 우리에게 불리한 점도 있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져 있는 기회의 공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80년대 밥솥시장을 일본에 개방하게 되면 우리 나라 밥솥공장은 망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더욱 좋은 밥맛을 가진 밥솥이 나와서 일본 제품들이 쫓겨 갔다는 사실과 세계 유통업계 1위 월마트가 결국 한국적 경영과 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퇴출되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FTA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장한다. 이에 반해 비판적인 관점에 서 있는 농민과 재야 운동 단체나 민노당 계열은 FTA 협상으로 우리의 농촌은 초토화될 것이고 공기업이나 알짜 기업들은 모두 미국의 거대자본의 수중에 떨어지고 내적으로는 광범위한 중산층의 몰락과 더불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FTA도 세계화와 자본자유화라고 하는 큰 물결 중의 하나로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우리는 FTA에 대해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나 정보를 가지기도 전에 우리들이 서있는 입장에서 또는 우리들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관점에서 아무런 검증없이 결론을 내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다. 한번쯤 FTA 현상에 대해 제대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이 사실이나 그 전에 어떤 판단을 요구받거나 이야기할 기회엔 어느 정도 부정적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GATT와 IBRD 체제와 미국의 세계 금융정책이 가진 본질적 성격을 나름대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르과이라운드와 동경라운드에서의 협상 내용과 자본의 자유화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세계적 활동의 흐름이 결국은 FTA라고 하는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냈고 그래서 그 현상도 기본적인 세계 경제의 흐름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객관적인 사실이나 정보없이 선험적으로나 맹목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문제다. 우리 나라의 경제 성장에 대한 관점은 달리 내릴 수 있으나 그 경제 성장의 덕을 계급 계층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어느 정도는 보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테니까. 또한 경쟁 시장이 보다 값싸고 질이 개선된 상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해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우리들이 자랄 때의 삶의 모습만 뒤돌아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만이 좋은 삶이라는 생각은 아니다. 이러한 객관적(물론 이 말도 문제거리가 될 수 있다)인 정보의 필요성으로 우선 비판적인 관점에 서 있는 이 책을 인연이 되어 먼저 들게 되었다. 이후에 반대 관점의 책까지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있으므로 어쩌면 지금은 반쪽을 결론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FTA에 대한 비판은 우선 정부가 우리 나라 내부경제와 미국 경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없이 너무 성급하게 진행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농업은 대체로 우리 나라의 농업이 일부분만 남고 거의 파괴되는 것에 대해 대세라고 수용하는 분위기이고, 중소 기업과 공기업 그리고 심지어는 대기업마저도 미국의 주주자본에 의해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정말 바보인 것이 아닌가? 다음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외교부가 그 어떤 정보에 대해서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상,하원 의회와 각 기업들이 모두 협상 내용을 검토하고 협상에 대응해서 대책을 수립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외교부를 제외하고 의회조차도 필요한 정보가 차단된 채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자국의 각 계급 계층과의 의사소통의 부재 속에 국민 전체의 운명을 담보하게 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협상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정부에 대한 극심한 불신은 이미 사회에서도 깊게 각 계급 계층 간의 갈등의 골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와 국가의 발전 방향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과 판단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떻든 경제규모만 부풀리면 만사해결이라는 식의 태도이다. 이런 철학의 빈곤은 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절벽을 향해 달리는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는 트럭을 향해 돌진하는지) 그저 속도를 더욱 올리라고 하는 식의 정책운용일 따름이다. 이런 면에서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와 안전과 복지 위주의 평화주의 모델이라든지 스웨덴의 공장 중심의 사회적 합의모델을 통한 사회복지제도의 정착 또는 일본형처럼 고질적 중앙집권형 시스템의 폐해를 극복한 기술국가형이라든지 심지어는 나프타 체결 후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과정을 거친 멕시코의 교훈도 빠뜨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너무 철학도 없이 주변을 둘러봄도 없이 그저 속도만을 내고 있는 맹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둘러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봉이 6000이 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조언대로 외국으로 이민을 가야 하는가?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버려둔채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외면하는 국가를 버리고 떠나가야 옳은 것인가? 그의 말대로라면 10-20%의 상류층만이 남아서 한국의 미래를 지켜봐야 하고 또 그 중의 양극화로 또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한 국민은 이민을 가야 하고 그렇게 나중에는 국토마저도 미국에게 내어주어야 하나? 그가 내거는 마지막 대안은 조약체결을 다음 대선 이후로 미루어 정치적인 변화를 통해 협상의 내용에 변화를 주는 것이나 스위스의 경우처럼 국민투표를 통해 협상을 전면 변화시키는 안전장치를 두는 것이다. 지금처럼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행정부의 독주에 의해 유린될 때 국민들이 직접 국가의 중대사에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적인 정착이 필요하다. 나아가 더욱 넓게는 국민 개개인의 욕망을 뿌리로 자라는 거대한 괴물인 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과 그것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삶으로 나아가는 철학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더욱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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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1-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생명산업의 기초인 농업의 몰락은 거대지질변동을 가져올 겁니다.
그 점 하나만 봐도 이번 협상은 바보짓이죠.
다 죽는건 아닐테지만 이번에도 그 해일의 공포는 역시나 민중에게 가해지겠지요
저는 미국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부터가 심란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새삼스럽지 않잖아요.
대통령이 한 말 중, 농민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면 될 것 아니냐는 말은
정책결정권자의 지도철학이 극명하게 나타난 예입니다.
무엇보다, 현실감각, 현장감각이 그에게 존재하는지 의문이구요.
기대했던(!!)대로 달팽이님의 FTA관점은 역시나 철학! 이군요^^

달팽이 2006-11-0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것 벌써 내 바닥이 드러나버렸나요?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를 통해서 본 여성성의 재발견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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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는 이제 여성의 권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과 기존의 지위에서의 이탈은 남성들에게는 이전에 여성이 부담했던 것을 더욱 많이 분담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주어진 일들을 나누어가질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한 남성들에게는 이제 사회적 질시와 가족관계로부터의 이탈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물론 외부의 억압요소가 두려워서 서로를 배려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외부적으로 강요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우러난 마음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누가 어떤 일을 나누어가지는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못된다.

  가부장제와 함께 시작된 남성중심의 사회는 여성들에게나 남성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억압구조를 가졌다. 부족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해져야만 하는 적자생존의 현실이 작용했음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인류는 외부적으로 주어진 강요를 스스로 내면화시키는 작업을 거쳐왔기에 그것이 우리의 마음으로 침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들에게 가지는 의미와는 별도로 남성들의 내면속에서 억압당해서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던 남성 속의 여성성(아니마)을 생각하니 분명 여러 명의 상처입은 아이들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결국 남성성과 여성성은 하나의 뿌리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성(우주본성)을 말한다. 이 성이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분화되고 남여로 분리된다. 따라서 남성성의 부족한 점을 여성성이 메꾸어주는 면과 여성성의 부족한 면을 메꾸어주는 남성성의 면을 넘어선 곳에 그 자체로 완전하고 모자람이 없는 성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모든 분리의 문제는 해결된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분리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 속에 동시에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서 파악했다는 점과 그 여성성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영원성의 공간으로의 향수와 회귀본능을 그려내었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메세지다. 그것이 옛 이야기 속에 어떻게 녹아들었으며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독창적인 사고를 드러낸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땅(형이하학적인 세계)에서 허덕인다. 우리의 욕망과 감각에 의한 삶이 중심이 되는 이 곳에서는 여성과 남성 간의 문제도 욕망으로 드러나고 리바이어던과도 같은 끝없는 욕망의 괴물은 서로 간의 갈등을 키워가다가 어느 순간 상대방을 삼켜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땅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그것은 하늘(형이상학적인 세계)이라는 공간이 된다. 우리의 영혼이 저절로 꿈꾸는 그 곳에서는 이미 우리들을 스치고 간 선녀가 늘 있던 그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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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6-11-01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왔는데, 역시 좋은 리뷰를 만나게 되는군요. :) 아니마 아니무스를 생각하면 결국 인간은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기보다 하나이면서도 둘인 완벽한 존재이길 바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어요. 아니, 하나인데 둘이라고 강요하는 사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 바람을 접었다고 해야하나... -_-; 정리가 안되지만서도.. 으흣

제 안에 아니무스를 발견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그 모습까지도 수용하게 되길. 그리고 제 곁에 있는 사람의 아니마를 발견할 때도 자연스럽게 그 모습까지도 수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나이가 많이 많이 들면... 다시 한번 이런 바람을 떠올리겠죠.

달팽이 2006-11-01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이 만나기 이전 이미 각자가 스스로 완전한 존재임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 감사해요.

글샘 2006-11-0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녀는 금성에서 온 존재라고 하지요. 나무꾼은 화성 남자고.
그럼 화성 남자가 금성으로 찾아가든가 하는 수밖엔 없겠지요.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개인차는 남성과 여성 사이를 무한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는 것. 잘 읽고 갑니다.

달팽이 2006-11-0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성과 화성으로 갈라지기 전의 우주공간으로 들어가야 하겠군요.
우주의 블랙홀으로요..
 
부모와 아이 사이 우리들사이 시리즈 1
하임 기너트 외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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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윤이의 이상행동

  현우가 태어난다고 엄마의 배에다 귀를 대고 박동소리를 들으며 좋아하던 시윤이, 하지만 그 때에는 동생의 탄생이 자신에게 있어 많은 것을 빼앗아가는 것임을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 등 시윤이가 맺고 있는 작은 인간관계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주었던 정이 어린 시선을 이제 현우에게도 나누어주기 시작했고, 예전에 그에게 독점적인 소유가 인정되었던 모든 장난감과 물건들은 이제 동생과 공유해야만 하는 현실이 전개되었다. 그의 상실감의 가장 큰 기점은 아무래도 우리집의 큰 방에 놓여 있던 침대였을 것이다. 시윤이가 생기면서부터 남편인 나는 침대로부터 쫓겨난 첫번째 희생자였다. 물론 그 때의 상실감이 아직도 나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때와 같이 동생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 옆에 붙어서 투정을 부리던 어느 날, 그는 앞으로 영원히 침대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추방될 사건을 맞아버렸다. 아무런 정신적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물론 가끔 엄마가 동생을 재우고 그의 투정을 받아주기는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시윤이의 머릿속에도 이젠 저 침대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다지 정이 없어보이던 아빠와의 동침이 시작되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가 쓰던 보행기도 이젠 동생이 사용할 때엔 순서를 기다려야 했고, 할머니의 등짝도 이젠 더 이상 그를 우선 순위로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현우에 대한 그의 시선이 예쁜 아기를 보는 신비로움과 자신의 유일한 형제가 생긴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기쁨이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돌아보니 상실감과 분노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의 원인을 동생 '현우'라고 결론내린 듯 했다. 그 때부터 현우의 괴로운 하루도 시작되었다. 현우의 다리와 손을 꼬집는다든지, 현우가 만지는 물건을 무조건 빼앗는다든지..현우를 업으려고 할머니가 등짝을 내밀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그는 현우에 대한 미움을 표현했다. 어느 날 주말 아침이었다. 시윤이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빠, 현우 만덕터널에 갖다 버려", 그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시윤이가 정말 현우를 미워하는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시윤이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는 꼭 투정을 하면서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자는 것을 거부했다. 엄마의 손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 하다가 엄마의 거부의 눈빛을 받으면 울면서 거실로 나가 투정을 부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엎드려 자는 경우가 허다했다.

  * 나의 마음 들여다보기

  시윤이의 변화된 행동을 보면서 마음으로는 수용하기 힘든 부분이 생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달래보고 조목조목 쉬운 언어로 현우와 시윤이와의 관계를 설명해보기도 하였지만 마음 속에 깊게 패인 감정을 달래줄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는 시윤이에게 상대적으로 애정표현을 더욱 많이 하게 되었지만 그것도 현우와의 관계를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하였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늦은 밤 겨우 재워놓은 현우를 시윤이가 침대에 올라가 해꼬지를 하고 잠을 깨우고 엄마에게 혼이 나고 때로는 나에게 손으로 엉덩이를 맞으면서 현우에게 반응하는 시윤이의 감정에 맞서는 나의 감정도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보행기를 탄 현우를 집안의 턱 아래로 밀어서 다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지금 현우의 손등은 시윤이가 꼬집은 자국들로 딱지투성이다. 눈 앞에서 아이들이 이런 행동들을 보일 때에는 그냥 외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섣불리 내 감정까지 섞어서 개입한다면 더욱 나쁜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사실을 몇 번의 화를 내면서 시윤이의 엉덩이를 두어차례 찰싹 하고 때리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 속에서는 여러 가지 마음이 복잡하게 섞이게 되었고 이렇게 불편해진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일게 되었다.

  * 외과의사는 마음만 가지고 환자를 수술할 수 없다.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하고 기르는 데에는 단순히 좋은 마음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의 축이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일상의 자잔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말리고나면 아무런 이정표도 없이 표류하는 통나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을 보다 잘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행동과 말의 요령도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예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행동을 보일 때 우리들의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미리 잡아주고 그 이상행동에 대한 대처요령에 대해 우리는 이전의 많은 선배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하루 하루의 생활을 행복하게 영위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임 기트너가 70년대 초반에 아이와 부모 사이의 의사소통의 미숙함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성들여 써낸 책이다. 이미 8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교과서적인 의미를 가졌던 이 책은 아직도 많은 국가의 부모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책이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어른들의 세계를 갖고 있는 우리들이 어떤 의사소통방법을 통해 그들의 세상과 잇는 다리를 놓을까 하는 고민에서 이 책은 만들어졌다. 지금도 이 시대의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세계와 소통하려 한다. 하지만 의욕만으로 그 아이들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그 멀고 먼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 두 세계의 거리가 아주 먼 만큼 그 긴 다리를 건설하는 기술도 뛰어나야 한다. 보다 정교하고 보다 멀리 보고 보다 튼튼한 다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대상을 깊이 관찰하고 그 본질에 깊이 다가가는 특별한 눈과 기법이 필요하다.

  * 기술을 다 배웠거든 버려라

  심리학적으로 생기는 인간관계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과 그 해결노력은 기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순간의 일에 교과서적으로만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둑에 보면 "정석을 다 배웠거든 정석을 버려라"는 말이 있다. 교과서적인 내용은 대부분 이상적이고 추상화된 형태가 많기 때문에 복잡다난하고 한번도 재생되지 않는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 할 경우에는 그 병폐가 많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기본적인 마인드만 배우면 현실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필요하다. 결국 마음의 기술은 먼저 그 마음을 갖추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인간관계의 기술은 우선 인격을 갖추는 것부터가 순서인 것이다.

  * 인간관계의 출발점과 귀착점은 마음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에도 이러한 태도는 빗나가지 않는다. 기법을 아무리 잘 익힌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화와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의 안정이다. 자신에게서 화가 만들어져 타인에게 옮겨지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아직 세상을 모르고 이제 조금씩 사람으로 성장하는 아이라고 할 때에는 더욱 중요하다.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일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흠뻑 흡수해버리는 고감도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현에 앞서 마음을 다스려야 하며 기술을 익히기에 앞서 인격을 바르게 세워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부모들에게서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어른들이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어른들의 잘못된 반응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문제는 아이들이 만드는가 우리들이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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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의 심리를 알아야 바르게 대화할 수 있다 "부모와 아이 사이"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0-26 13:16 
    부모와 아이 사이 - 하임 기너트 외 지음, 신홍민 옮김/양철북 총평 2007년 10월 24일 읽은 책이다. 내 아들 진강이 때문에 유아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관련 서적을 찾다가 고른 책이다. 임상 심리학자이자 어린이 심리 치료사인 저자의 직업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아이의 심리에 대해서 매우 깊은 고찰이 담겨져 있다. 마치 우리가 동물들에 대해서 하는 행위에 대해서 동물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는 언행에..
 
 
글샘 2006-10-2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육아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으시군요. ^^
인간에 대한 마음 씀씀이는 기술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상담 연수 때 배운 그대로 말을 했다가는 아이들하고 소통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는 것도 하나의 소통 방식 아닐까요?
요즘 길거리에서 무료로 안아 드리는 것이 한국식 소통 방식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달팽이 2006-10-2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순간 마음으로 아이와 소통한다면 문제가 따로 없겠지요..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는 것도...책에선 절대 안된다고 했지만...
제 생각도 글샘님과 같습니다.
경우에 따라 소통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우리 학생들을 대할 때에도요..
망치로 때려도 사랑일 수 있고, 꽃으로 때려도 폭력일 수 있다.
문제는 가슴과 가슴으로 소통하는 그 마음이겠지요..

비자림 2006-10-2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둘 키우느라 힘드시죠? 저희는 큰애가 순둥이라 좀 덜했는데 엄마를 갑자기 빼앗긴 그 애의 상실감을 저도 눈치채며 많이 미안했었답니다. 시윤이 더 많이 위해주고 안아주고 그러세요. 아빠가 오면 더 신나는 일이 생긴다는 느낌이 들게 작은 이벤트-동네 산책하기, 이불에서 뒹굴기, 안아서 빙그르르 돌려 주기, 작은 선물 주기 등-도 가끔 해 주세요. 특히 엄마가 일부러 더 안아주고 이뻐해 주는 시간 가져야 한답니다. 엄마들은 젖먹이에게 본능적으로 더 신경 쓰이기 마련이라 님이 말씀해 주세요. 시윤이 아기 때 앨범을 꺼내 보여 주고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구요. 시윤이가 놀이방이나 유치원 들어가면 신경이 분산되고 더 여물어 동생에게 덜 신경쓴답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둘이 신나게 놀기도 하지요.
우리집도 잘 하진 못했지만 지나온 시간들이라 님께 길게 말씀드리게 되네요.
달팽이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저는 시윤이 때리는 건 더 나중에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직 어릴 것 같아서..
잠깐 서 있으라고 하거나 꿇어 앉으라고 하는 방법은 어떠신지..

달팽이 2006-10-2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기억해 두었다가 써보겠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도움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 주기는 아직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곧 놀이방에 가는지라...시윤이의 관계의 폭이 좀 넓혀지면
또 어떤 변화가 올지 궁금합니다.
비자림님도 오늘 하루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달팽이 2006-10-26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바람구두님의 세대가 저와 비슷한 것으로 아는데...
이른 나이에 이 책을 읽었다는 얘기군요...아버지가 되기 전에...
아님 결혼을 일찍 하셨든지...

2006-10-26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10-2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의 형식은 거문고줄 꽂아놓고 서평을 둘러보다가 맘에 드는 서평자님의 형식을 빌어봤습니다.

공유와 공감의 추천에 귀기울입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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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친구'라는 영화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이후로 조폭 이야기와 드라마가 온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삶이 더욱 팍팍해질수록 어려울 때의 친구들을 기억한다. 삶의 바닥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망을 더욱 확고하게 하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세상에서 홀로 고립된 섬이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망으로 인해 버림받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지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현실이 더욱 이해타산적이 되고 조건이 변하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몸담은 곳이 달라서 어제의 한 패거리가 오늘은 다른 패거리가 되어갈수록 피하고 싶은 외로움과 고독의 덮침은 두렵다. 확실히 조폭 이야기는 현실적인 이해타산을 어느 정도 넘어서는 우정을 보여준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그 '우정'과 '신뢰'를 위해 희생한다. 이런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러한 조건을 뛰어넘는 우정과 인간적 신뢰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로맨스와 추억이라는 좋은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조폭의 우정은 그 그늘 속에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점인 고독을 회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정이란 성숙한 인격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들의 대화 또는 만남이라고 말한다. 즉 성숙한 인격은 고독을 감내하는 데서 빚어지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우정은 천지간에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성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추억을 간직한 친구와의 우정이 위태로운 것은, 그것이 자신의 고독과 대면해야 하는 것을 회피하게 만들고 그 빈 자리를 친구와의 조건없고 맹목적인 이해와 신뢰에 의지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친구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고 그 친구를 어떻게 사귈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고독을 함께 나누고 오랫동안 쌓였던 정으로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읽어서 배려와 신뢰를 주는 친구와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또한 그런 친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보물을 가진 듯하다. 책을 들고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들다가 문득 깨어 고개를 들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고, 깊은 밤 한적하고 조용한 호숫가에서 물안개가 끼어 첩첩이 쌓인 산들이 선경으로 눈앞에 나설 때 달빛은 그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 운치를 더할 때 술 한잔과 더불어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면...이 흥이 아쉬움없이 다하련만....소식을 나눈 지 오래되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하고 공부는 어떤 진척을 이루었는지 궁금해도 연락할 길 막막할 때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그 소식을 전해주면....하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향한 깊어진 마음을 발견한다.

  그런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탄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일...때로는 책에서도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온전히 싣어 글을 읽으면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이 되고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앞에 둔 듯이 느끼고 그 시대 속에 그 풍경 속에 나는 어느새 들어가 있다. 내 마음을 비우고 투명하게 하는 순간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을 비추고 나는 내 인격으로는 과분한 스승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직접적인 질책과 호통을 맞게 되고 때로는 친절하고 배려깊은 조언도 듣게 된다. 그 순간 이미 내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이 생겨나고 마음은 넉넉해진다.

  진정한 친구는 스승의 역할을 겸해야 한다고 했다. 벗에게서 스승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면 진정한 벗일 수 없고, 스승에게서 벗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면 참다운 스승이 아니라고 했다. 스승이 벗이 되고 벗이 스승이 되듯이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또한 내가 되는 마음의 공유와 교감이 없다면 그를 일러 어찌 벗이라 부르랴!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고 보다 연장자라고 해서 어려워만 하지 않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어야 비로소 참된 벗이라 이름할 수 있다. 나아가 서로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내지 못하고 마음을 자신에게로 돌려서 그 안에서 구하지 못하면 이를 두고 어찌 바른 우정이라고 하랴!

  우리는 여태껏 너무 나약한 자신을 외부와의 관계로서 보상받으려고만 살았다. 직시되어야 할 삶과 스스로 걸어가야만 할 고독의 길을 더이상 회피해서는 안된다. 내 삶에서 가장 부족한 것도 이것이다. 내 내부의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한 번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걸어서 깊은 숲 속 한가운데 자리한 영원한 생명의 나무를 만나야 한다. 그 생명의 나무 뿌리에서 다시 줄기로 가지로 나와 만난 뭇 생명들과의 나눔은 비로소 조건도 차이도 없게 될 것이다. 눈과 귀는 생김새와  그 기능이 다르지만 한 얼굴에 있다는 말이 있다. 나옹선사와 대유학자 이색과의 생사를 가른 만남에서 나는 이를 실감한다. 여기 이색을 모시고 와서 그의 시 한편을 들어보자.

스님께 없는 것은 나의 처자 족쇄요

나에게 없는 것은 금란가사 옷이라오

서로의 잃고 얻음 그 어디서 조절되나

봄바람 속 제비 춤 꾀꼬리 노래라네

 

  저자는 서두에서 "옛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느라 현실을 잊거나, 바람이 들려주는 공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걸음을 멈추어 설 때가 많다."고 했다. 아주 멋진 말이다. 그가 걸어놓은 줄없는 거문고를 들고서 시공을 거슬러 올라가 우주를 정신없게 만들었던 열 두 만남의 폭발적이고도 조용한 선율을 마음껏 음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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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9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10-1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바람구두님의 첫 댓글이군요..
짧지만 반가운 글입니다.

파란여우 2006-10-2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버려진(?) 책인데.
몰라요, 달팽이님의 지름때문에 보관함에(거의 파산지경인데..)

달팽이 2006-10-20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허, 여우님 책값 때문에 팔아야 하는 염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픈데요..

어둔이 2006-10-20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께 없는 것은 두발의 걸음걸이요
어둔이께 없는 것은 지고가는 와옥이라네
인생의 빠르고느림을 그 누가 판단하나
가을햇살 속 누렇게 고개숙인 벼이삭이라네
 
장자 이야기
모로하시 데쓰지 지음, 조성진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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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는 크게 내편과 외편 그리고 잡편의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곤과 붕의 이야기는 무척 잘 알려져 있다. 나도  상상력의 벽을 허물어주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자를 한 번쯤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호접몽은 인생을 빗댄 이야기로서 많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다. 화창한 봄날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책을 펴고 앉아 읽다가 슬그머니 꿈길로 들어선 장자는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날다가 문득 잠이 깨면서 생각한다. "내가 나비가 된 것일까? 나비가 내가 된 것일까?"하고.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일까,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꿈일까?"그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장자의 글을 쓰는 기법은 우언, 중언, 치언의 방법을 사용한다. 우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남의 입을 빌려서 하는 방법을 말한다. 중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위대한 옛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치언은 임기응변의 요령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원래 치는 술잔을 가리키는 글자인데 술잔이란 술을 부으면 기울어지게 마련이고, 비고 나면 다시 차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으나 시의 적절하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화법을 일컫는다.

  여기에서도 도덕경에서의 무위와 현묘지문 등과 같은 마음으로 경험해내어야 하는 말들이 많다. 곤과 붕부터 혼돈, 병아리 울음소리, 암컷, 물, 골짜기, 갓난애, 통나무, 고요함, 허, 섭생, 양생 등 모든 것이 말로써만 이해될 수 없다. 그의 글은 너무 시니컬하고 비유적이고 적나라하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깊은 진리의 말들이 거침없이 뿜어져나온다. 이러한 지극한 도를 겸비한 사람이 진인이라 했다. 삶과 죽음의 도가 한가닥으로 돌아가는 이, 그에게 있어 세상은 과연 어떠할까?

  그동안 책을 몸에 붙이지 못했다. 아니 책읽기가 인생의 중요한 가치라고 여겨져왔던 나에게 책없이 주어진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고 물어보는 기회가 되었다. 책없이 내 삶의 공부가 이루어질 수 없다면 책읽기란 나에게 그저 지식을 쌓는 공부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 책을 놓고 난 뒤에도 스스로의 마음을 밑천삼아 공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세속의 취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읽기가 자신의 마음으로 삶으로 녹아들지 못해서 단지 지식을 쌓고, 학위를 따고, 젠체하기 위한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아무 쓸모없는 '추구'가 되고 말 것이다.

  문자로 익힌 것을 암송하고 나아가 눈과 귀로 익혀서 알아야 하며, 이목지학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수역'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 뿐인가? 끝에 가서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오묘하고 불가사의한 경지에 들어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인생의 크나큰 의문에 부닥칠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참 앎이 된다고 말한다.

  이때까지의 나의 공부가 때로는 오감만을 불리는 공부가 되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참다운 공부는 눈과 귀를 잃는 공부라고 했는데 눈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세상 일에 더욱 귀기울이는 공부를 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나 하나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찌 가정의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세상을 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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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0-16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책이 오히려 눈에 누가 되는 경우도 흔한 듯 합니다.
공부가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옳은 공부가 아니겠지요.

달팽이 2006-10-16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엔 모처럼 구름이 끼었습니다.
하늘은 가을 하늘인데 햇살은 여름 햇살이더니...
이번주는 좀 어떨지 궁금하군요..

혜덕화 2006-10-16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진 만큼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을 행복하게 키울 수 있겠지요.
따가운 햇살도 고맙긴 한데, 해인사의 나뭇잎들이 단풍도 들기 전에 말라 있는 것이 보기 안타까웠습니다. 비님이 오셨으면......

달팽이 2006-10-16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마다 자신의 보물을 발견할 때에라야 비로소 우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
천지간에 홀로 설 수 있어야 비로소 벗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정이란 성숙한 인격과 영혼을 가진 독립적인 사람들의 만남이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고독의 길을 회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가을에 나뭇가지 가지마다 잎새들은 저만의 고독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란여우 2006-10-17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수 한대수씨가 '고독한 커피'라고 우깁니다.
저는 책을 읽는 행위를 '고독한 책읽기'라고 우기렵니다.
김현 선생은 '행복한 책읽기'라고 하셨지만
저는 활자가 주는 지식의 포만감과 지혜의 길을 따라
고독의 냄새를 한 마리 개처럼 킁킁 맡습니다.
행복은 어떻게 하냐구요? 먼저 고독해진 다음에!
낙엽이 아름다운 건 제 몸을 다 불살라 아무 욕망없이 돌아가기 때문 아닐까요?
아, 위에 혜덕화님 말씀을 들으니 해인사가 아니더라도
고즈넉한 산사 한 번 늦가을에 쓸쓸히 쓸쓸히 잔뜩 고독한 척 폼재고 가고 싶어요

달팽이 2006-10-17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의 고독은 개의 고독과 다르지 않고
그것은 또한 달팽이의 고독과도 다르지 않군요.
이름도 없는 작은 산사의 입구를 지키는 당주가 되어
파란 가을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싶습니다.
간혹 예쁘게 물든 낙엽이 내 손을 스치고 지날런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