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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 사이 ㅣ 우리들사이 시리즈 1
하임 기너트 외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3년 8월
평점 :
*시윤이의 이상행동
현우가 태어난다고 엄마의 배에다 귀를 대고 박동소리를 들으며 좋아하던 시윤이, 하지만 그 때에는 동생의 탄생이 자신에게 있어 많은 것을 빼앗아가는 것임을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 등 시윤이가 맺고 있는 작은 인간관계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주었던 정이 어린 시선을 이제 현우에게도 나누어주기 시작했고, 예전에 그에게 독점적인 소유가 인정되었던 모든 장난감과 물건들은 이제 동생과 공유해야만 하는 현실이 전개되었다. 그의 상실감의 가장 큰 기점은 아무래도 우리집의 큰 방에 놓여 있던 침대였을 것이다. 시윤이가 생기면서부터 남편인 나는 침대로부터 쫓겨난 첫번째 희생자였다. 물론 그 때의 상실감이 아직도 나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때와 같이 동생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 옆에 붙어서 투정을 부리던 어느 날, 그는 앞으로 영원히 침대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추방될 사건을 맞아버렸다. 아무런 정신적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물론 가끔 엄마가 동생을 재우고 그의 투정을 받아주기는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시윤이의 머릿속에도 이젠 저 침대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다지 정이 없어보이던 아빠와의 동침이 시작되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가 쓰던 보행기도 이젠 동생이 사용할 때엔 순서를 기다려야 했고, 할머니의 등짝도 이젠 더 이상 그를 우선 순위로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현우에 대한 그의 시선이 예쁜 아기를 보는 신비로움과 자신의 유일한 형제가 생긴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기쁨이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돌아보니 상실감과 분노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의 원인을 동생 '현우'라고 결론내린 듯 했다. 그 때부터 현우의 괴로운 하루도 시작되었다. 현우의 다리와 손을 꼬집는다든지, 현우가 만지는 물건을 무조건 빼앗는다든지..현우를 업으려고 할머니가 등짝을 내밀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그는 현우에 대한 미움을 표현했다. 어느 날 주말 아침이었다. 시윤이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빠, 현우 만덕터널에 갖다 버려", 그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시윤이가 정말 현우를 미워하는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시윤이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는 꼭 투정을 하면서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자는 것을 거부했다. 엄마의 손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 하다가 엄마의 거부의 눈빛을 받으면 울면서 거실로 나가 투정을 부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엎드려 자는 경우가 허다했다.
* 나의 마음 들여다보기
시윤이의 변화된 행동을 보면서 마음으로는 수용하기 힘든 부분이 생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달래보고 조목조목 쉬운 언어로 현우와 시윤이와의 관계를 설명해보기도 하였지만 마음 속에 깊게 패인 감정을 달래줄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는 시윤이에게 상대적으로 애정표현을 더욱 많이 하게 되었지만 그것도 현우와의 관계를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하였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늦은 밤 겨우 재워놓은 현우를 시윤이가 침대에 올라가 해꼬지를 하고 잠을 깨우고 엄마에게 혼이 나고 때로는 나에게 손으로 엉덩이를 맞으면서 현우에게 반응하는 시윤이의 감정에 맞서는 나의 감정도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보행기를 탄 현우를 집안의 턱 아래로 밀어서 다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지금 현우의 손등은 시윤이가 꼬집은 자국들로 딱지투성이다. 눈 앞에서 아이들이 이런 행동들을 보일 때에는 그냥 외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섣불리 내 감정까지 섞어서 개입한다면 더욱 나쁜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사실을 몇 번의 화를 내면서 시윤이의 엉덩이를 두어차례 찰싹 하고 때리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 속에서는 여러 가지 마음이 복잡하게 섞이게 되었고 이렇게 불편해진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일게 되었다.
* 외과의사는 마음만 가지고 환자를 수술할 수 없다.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하고 기르는 데에는 단순히 좋은 마음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의 축이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일상의 자잔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말리고나면 아무런 이정표도 없이 표류하는 통나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을 보다 잘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행동과 말의 요령도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예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행동을 보일 때 우리들의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미리 잡아주고 그 이상행동에 대한 대처요령에 대해 우리는 이전의 많은 선배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하루 하루의 생활을 행복하게 영위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임 기트너가 70년대 초반에 아이와 부모 사이의 의사소통의 미숙함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성들여 써낸 책이다. 이미 8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교과서적인 의미를 가졌던 이 책은 아직도 많은 국가의 부모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책이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어른들의 세계를 갖고 있는 우리들이 어떤 의사소통방법을 통해 그들의 세상과 잇는 다리를 놓을까 하는 고민에서 이 책은 만들어졌다. 지금도 이 시대의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세계와 소통하려 한다. 하지만 의욕만으로 그 아이들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그 멀고 먼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 두 세계의 거리가 아주 먼 만큼 그 긴 다리를 건설하는 기술도 뛰어나야 한다. 보다 정교하고 보다 멀리 보고 보다 튼튼한 다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대상을 깊이 관찰하고 그 본질에 깊이 다가가는 특별한 눈과 기법이 필요하다.
* 기술을 다 배웠거든 버려라
심리학적으로 생기는 인간관계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과 그 해결노력은 기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순간의 일에 교과서적으로만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둑에 보면 "정석을 다 배웠거든 정석을 버려라"는 말이 있다. 교과서적인 내용은 대부분 이상적이고 추상화된 형태가 많기 때문에 복잡다난하고 한번도 재생되지 않는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 할 경우에는 그 병폐가 많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기본적인 마인드만 배우면 현실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필요하다. 결국 마음의 기술은 먼저 그 마음을 갖추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인간관계의 기술은 우선 인격을 갖추는 것부터가 순서인 것이다.
* 인간관계의 출발점과 귀착점은 마음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에도 이러한 태도는 빗나가지 않는다. 기법을 아무리 잘 익힌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화와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의 안정이다. 자신에게서 화가 만들어져 타인에게 옮겨지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아직 세상을 모르고 이제 조금씩 사람으로 성장하는 아이라고 할 때에는 더욱 중요하다.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일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흠뻑 흡수해버리는 고감도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현에 앞서 마음을 다스려야 하며 기술을 익히기에 앞서 인격을 바르게 세워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부모들에게서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어른들이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어른들의 잘못된 반응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문제는 아이들이 만드는가 우리들이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