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유혹 - 고전시리즈 19 은성에서 만드는 고전시리즈 9
존 오웬 지음, 엄성옥 옮김 / 은성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청교도 존 오웬이 쓴 본서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죄의 본질과 속성을 논하고, 2부는 시험의 본질과 속성을 논한다. 이러한 시험은 범죄로 이끄는 통로를 말한다. 3부는 죄를 죽이는 것의 필요와 실천을 논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고통은 자신에게 처음부터 거했던 죄의 갈망과 범죄함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망하게 하였고 또한, 갈팡질팡하게 만들며 영적인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거하는 죄의 본질은 우리의 몸이 부활하는 그 순간까지도 조금도 축소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며, 가장 슬픈 사실이다.

 존 오웬 목사님은 매우 심오하고 분석적인 묵상과 필체로써 죄와 시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설교이기보다 연구논문에 가까운 느낌이다. 물론, 청교도의 문체가 이러한 경향성을 많이 띄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토마스 굳윈과 더불어 오웬 목사님의 접근방법과 표현은 특히 두드러진다.

 사실 단락들이 나름대로 이해되고 납득이 되면서도 워낙에 심도 있고 세밀하게 죄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론 판단하기가 모호하다. 다시 말하자면 통상적인 범주의 통찰력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더욱 높은 수준에 있다.

 오웬 목사님은 죄에 대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리이고 내면의 습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죄는 우리 마음의 추측할 수 없는 미로 그 어딘가에 거처를 두고 언제든지 우리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죄는 정신을 미혹함으로 영의 눈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판단과 합당한 영의 인도하심에서 떨어지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로써 죄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을 공격하는지 상세히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시험에 대해 말하기를 시험을 받는 것과 드는 것의 차이를 명백히 구별한다. 누구나 시험을 받지만 시험에 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에게 시험에 든다는 것의 의미는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하는 단계에 나아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험을 받는다는 것을 말할 때는 유혹을 당하지는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주기도문의 기도를 언급하기도 한다. 시험에 드는 것은 곧 죄의 유혹에 빠져 범죄를 갈망하는 것에 빠지는 것이므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험을 경계할 것과 이기는 법을 말한다. 물론, 이에는 우리가 잘 아는 정욕을 죽이는 것과 말씀, 묵상, 기도와 같은 방법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다.

 한편, 그는 죄 죽이는 일의 중요성과 이것이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원리도 충분히 설명해준다. 다만, 우리가 유혹을 적게 받거나 성화된 많은 면모가 나타난다고 죄의 세력이 줄어들거나 죽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자칫 죄가 소멸해가는 것으로 착각함으로 범할 수 있는 우를 잘 지적해주고 있다.

 결국 우리는 죄라는 것이 결코 구원받은 신자 안에서 변화되거나 축소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제어될 수 있고 약해질 수 있고 절제될 수는 있지만 결코 소멸되거나 축소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기 전과 다를 바 없는 죄의 욕구를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웬 목사님 역시 매일같이 죄를 죽이는 일을 반복하라고 말해준다. 이것은 우리가 육체 안에 거하는 한 영원한 싸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의 변함없는 위상 앞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성결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다스림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오웬 목사님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님께서는 때로 죄를 범하는 것 자체를 막으심으로써 우리를 범죄와 시험에서부터 지켜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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