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아래서 증명된 믿음_2013.01.19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75.)

 

( 19:38, 개역)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그렇게 허무하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제자들은 모두 흩어져버렸다. 말고의 귀를 자를 만큼 담대했던 베드로도 없었다. 유대인의 왕이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죄인이 달린 십자가 아래에는 가족과 세 명의 여인들이 있었을 뿐. 그리고 이 한 사람 아리마대 요셉.

 

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은 고작 몇 구절 안 된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단 하나만 나타나 있다.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 자기 무덤에 장사하였다는 사실이다.(27:60) 우리는 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이렇게 단순하게 이해한다. 그가 유일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빌라도 앞에서 당돌히 요구했고, 그의 새 무덤에 안치했다라고. 그러나 이 요셉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준다.

 

그는 유력한 지위의 공의회 의원이었다.(15:43) 동시에 그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 그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드러내지 못했다. 그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자신의 믿음을 드러냈을 때 따르게 될 위험에 대해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 공의회 의원으로서 지위를 박탁당할 것이다. 하루 아침에 그는 권력과 존경과 삶의 기반에 중요한 부분들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마음에서 믿었지만 외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게 되었을 때, 제자들의 소망이 끊어지게 되었을 때, 자기 믿음을 드러내었다.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으로 돌아가보자. 제자들과 동행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이적을 베풀던 예수님. 예수를 시인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나누어진 현실. 분명 그때 아리마대 요셉은 판단받는 믿음의 소유자였다. 만약, 제자들을 비롯 그 믿음을 드러낸 사람이 아리마대 요셉을 알았다면 그는 분명 판단 받았을지 모른다. 용감하지 못하고 비겁한 겁쟁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 날이 왔다.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다. 소망이 처형된 날이 되자 제자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베드로가 한 일은 고작 말고의 귀를 자른 것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동안 그 믿음을 숨겨왔던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을 드러냈다. 그 숨은 믿음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지난 시간까지의 비겁자 같은 모습이 아니라 소망이 끊어졌다고 울부짖을 그 시점이 되었을 때 그 요셉의 믿음은 가장 눈부시게 증명되었다. 그는 겁쟁이란 오명을 그렇게 벗어 던지고 나타났다.

 

( 14:4, 개역)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는 제자들이 가장 훌륭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비록,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가장 많이 질타했음에도 말이다. 그때 아리마대 요셉은 비겁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받아든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아리마대 요셉이었다. 그리고 그는 친히 자기의 새 무덤으로 예수님을 안치했다. 그동안 유대인의 출교를 두려워해 은휘해 둔 그의 믿음의 비겁함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죽은 소망의 육체를 떠안고 그렇게 위험한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담대함을 한 방에 증명해냈다. 이토록 멋있게.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누구나 동일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같은 형틀에서 찍혀져 나온 붕어빵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평소에 그 믿음이 누구에게든 인정될 만큼 잘 드러난다. 그러나 누군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이나 그리스도인이나 외모를 본다. 그래서 남의 하인을 판단하듯 그 신앙과 믿음을 드러나지는 것으로 판단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전부가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시간. 소망이 매달리고, 비전이 빛을 잃을 그 시간이 될 때 참된 믿음은 드러난다. 그때는 우리가 알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증명이 드러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역시 그 믿음이란 것은 평소에는 감춰진 경우가 많다. 연약해 보이고 소극적이고 종종 잘 주목 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잠잠히 주를 섬기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 많이 있다. 드러나는 열심이 없다고 그 믿음을 판단하는 우를 자주 범하기도 한다. 그런 우리에게 요셉과 로마서는 이런 우리 경솔함에 대해 권면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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