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라 일컫는 하나의 보석_2013.01.08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72.)

 

(마 1:25, 개역)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 대한 성경의 증거는 그가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서 예수의 아버지 요셉에 대해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의 아버지이지만 실제 혈육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요셉을 의로운 사람으로 증거하는 성경에 대해 우리는 쉽게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그가 마리아의 잉태소식을 듣고 대처했던 행동에 그것이다. 요셉은 마리아의 부정을 눈감아주었다. 비록 그가 마리아의 부정에도 불구 결혼을 강행할 용기는 없었지만, 부정한 마리아를 공개처형에 폭로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존경 받을만한 인물이었다. 그 배신감과 분노를 생각할 때, 시대적 상황이나 유대교의 율법사상에서 간주할 때 그것은 굉장한 관용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분노하지 않았다. 배신감은 느꼈을지언정 그 깊은 상심은 있었을지언정 그는 그것을 덮어두기로 했다.

 

두 번째, 요셉의 의로운 증거는 그가 천사의 계시로 마리아와의 결혼을 진행한 후 이다. 요셉은 잉태한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다. 아마, 마리아가 요셉과 정상적인 혼인을 했다는 것은 잉태한 후 그리 오래지 않아 결혼을 했을 거란 가정을 두게 한다. 만삭이 되었다면 아마 마리아는 결혼도 하기 전에, 굳이 요셉이 폭로하지 않았더라도 돌에 쳐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또한, 예수의 출생시기를 고려하더라도 잉태한 시점과 결혼의 시점이 너무 동떨어지면 곤란할 수 있었다. 소위 속도위반으로 드러날 테니. 글쎄, 성경에서 그 시기에 대한 상호 거리를 분명히 알 수 있는 표현은 없기에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추측건대 요셉은 그리 늦지 않게 결혼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통상적으로 임신기간이 10개월임을 감안할 때, 결코 적지 않은 기간을 혼인 후에도 수절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은 혈기왕성한 남자다. 남자라면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충분히 공감하리라. 요셉 만만세!! 요셉이 왜 의로운 사람인지 더 이상의 추가검증은 불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가치와 증거는 바로 절제에서 드러난다. 요셉의 자기절제의 능력은 충분히 우리 절제의 한 표본이 된다. 절제가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미덕이 되는지는 다음 구절에서 명백해진다.

 

(고전 9:25, 개역)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에는 반드시 절제가 수반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절제해야 하는 걸까? 답은 이미 명시되었다. 모든 것! Everything!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뿐 아니라 무엇인가 하고자 희망하는 것 및 무엇인가 피하고자 희망하는 모든 것. , 자기 의지내지 자신이 희망하는 모든 선함과 이기심을 다 통틀어서이다. 그것이 옳은 일일지라도 절제는 필요하며, 그것이 그른 것이라도 절제는 당연히 요구된다.

 

식욕,성욕,명예욕,수면욕,탐욕 욕구는 항상 절제의 첫 번째 대상이다. 또한, 단순한 식욕 뿐 아니라 몸에 해로운 음식도 절제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욕심을 이루는 그 수단과 방편 안에도 절제해야 할 세부적인 요소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식욕을 절제한다고 안 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가려서 먹는 것은 필요한 절제가 된다. 잠을 자는 것은 창조의 섭리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적당히 자야 한다. 지나치게 잠을 안 자려고 자기를 학대하는 방식도 굳이 유익하지는 않다. 물론, 상황과 경우에 따라 그렇게 행할 때도 있겠지만 밤 늦게 사사로운 소일거리를 한 답시고 몸을 괴롭힐 이유는 없다.

 

요약해서 죄악 된 것에 대한 절제는 두 말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생각을 영역을 확장해보자. 선한 것에도 절제는 요구된다. 어떤 이들은 열심당이다. 열정과 의욕이 넘쳐서 쉽게 다른 형제, 자매님들과 충돌되기도 한다. 열심도 좋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잘 절제된 열심을 품어야 한다. 아무리 선한 것도 절제하지 않으면 시험의 도구가 된다. , 선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지나치면 해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해 한다. 신앙생활 동안 여러 번 보았다. 열심 있는 형제들이 스스로의 열심을 제어하지 못함으로 제 풀에 꺾여 나가 떨어지는 것을.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한다. 선한 목적일지라도 오히려 자신의 신앙에 시험이 될만한 것이 있다라면 그것을 절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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