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Lord come?_2013.01.05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71.)
(계 22:10-12, 개역)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신약시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무렵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이 생존할 때 재림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약 서신서 전반에 당시가 말세 내지 곧 예수님이 오신다고 여러 번 표현되어 있다. 지금보면 이미 2000년이 지났건만. 어쨌든 그것이 당시의 믿음이었다고 하니.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마지막으로 기록한 성경이다. 그는 환상을 보았다. 당시로서는 상상못할 어떤 미지의 세상과 환란을 보았다. 역사의 종말을 보았고,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분명, 그 환상이 당시의 시대상과는 다른 그 무엇이었음이 분명했었음에도 계시록의 마지막은 결국 타 서신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즉, 여전히 때가 가깝다고 말한다. 분명, 요한이 본 환상은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동떨어졌음에도 말이다. 2000년이 지났고, 주님 오시기 전의 모든 예언은 다 이루어졌음에도 사도 시대부터 말세라 칭해지던 그 종국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적어도 우리는 물어볼 수 있다. ‘주님은 언제 오실까?’
어찌보면 무모한 질문 같다. 당장 오실 것처럼 생각한 사도들의 시대로부터도 2000년이 다 되도록 실현되지 않은 주님의 재림. 정말 예언이 다 이뤄진 세상의 말미라고 말하는 우리 세대조차 여전히 기다리는 주님. 2000년간 말세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주님은 오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날. 도적과 같이 임하신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가 점점 주님의 오심에 대해 무감각해져가는 그것이 주님의 오심의 또 다른 증거인지 모르겠다. 주님은 여전히 안 오신다고 차츰 믿어갈 때, 그렇게 갑자기. 정말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신다면 바로 그것이 실현되는 한 날이 온다면 정말 당황스러울 것 같다. 정말 주님이 오신다고 믿고 생활하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자기 세대와는 다른 세대를 통해 종말을 보았던 사도 요한 조차 때가 가깝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시고 2000년이 흘렀다는 그 시간적인 의미는 그리 중요하진 않은가 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정말 때가 가깝다고 믿는 그것. 주님의 언제든지 오심에 깨어있는 삶을 사는 그것. 그게 더 중요한 것인가 보다. 2000년이 다 되어가는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 때가 가까워 곧 이뤄질 예언이기에. 그러니 2000년이란 것이 아무리 무구한 역사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시간으로써 큰 의미가 있는가. 경점일 뿐. 그러나 시간 속에 구속되어져 살아가는 우리는 경점이 아니기에 주님의 다시 오심은 너무나 지루한 역사의 기다림처럼 보여진다. 마음은 무뎌진다. 그러나 성경은 확증은 변함이 없다. 때가 가까웠다. 주님이 오신 이후 복음과 성령의 역사가 이뤄지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때는 가까움 그 자체이다. 즉, 언제든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그 소망의 믿음으로 세상에 속하지 말고, 깨어 기다리는 삶의 자세로 나그네의 인생을 사는 것 바로 그것을 일깨우시는 가르침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주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너무나 주님의 재림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다. 주님은 안 오실 것만 같이 비춰졌다. 그래서 세상을 조금씩 사랑했고, 세상과 조금씩 타협했고, 세상의 것을 좀 더 얻고 싶어 갈등했다. 구별된 참된 삶의 모습이 아닌 슬그머니 한 쪽 발을 걸치면서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롭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그리하라고. 선물은 각자 그 행한대로 받는 것이라고. 모두가 자신의 가치관과 그 믿는 바대로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그 일상의 반복이 변함없이 이뤄지는 그 한 날. 그날이 바로 주님이 오시는 날인 것이다. 어제나 오늘, 과거나 현재 아무런 차이가 없이 항상 동에서 해가 뜨고, 서에서 해가지고 그렇게 일상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제각각 그 살아오던 삶의 양식대로 살아오는 그 평범한 날 주님은 갑자기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 삶에 대해서 그 행한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주님의 다시 오실 날은 단지 시간의 개념에서 멀리 있는 그 날이 아니다. 생활의 관점에서 지금 내 삶의 이 모습이 반복되는 그 평범한 날 주님은 감쪽같이 나타나실 것이다.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 오실 날을 사모하지 않았던 이상 놀랄지 모를 일이다. 정말 주님 오실 날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살아온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
체질이 풀어질 그 날이 다가온다. 내가 보고, 내가 딛고, 내가 만지고, 내가 누리는 모든 삶의 풍요와 양식과 문명이 태워질 날이 앞에 있다. 시대를 자각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인의 이 세대를 살아간다. 주님은 오신다. 분명, 다시 오신다. 그러나 나태하고 세상에 마음이 혹 하는 나는 불의하고 더럽다. 웃는 그리스도인의 얼굴 뒤에 감춰진 이방인의 불의와 더러움의 묘한 가면을 걸치고 있다. ‘주님은 아직 안 오셔’라는 시간적인 관념에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시켜버리지 말자. 아니다. 때가 가까웠다. 마음을 깨우고 근신하자. 속히 오실 그리스도께서 내게 줄 상이 있다. 무엇을 받을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