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그의 친구, 고난._2012.11.25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68.)

 

(딤후 1:8, 개역)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울이 종종 언급했던 말이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디모데에 대한 그의 애정과 사랑. 위로와 격려를 더불어. 자신의 처한 고난과 희생. 디모데에 대한 애틋한 연민의 정까지. 인간 바울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초반부에 보여지는 디모데의 눈물에 대한 언급을 고려해볼 때, 분명 이 서신은 디모데에게 주는 위로의 서신이자 동시에 디모데가 매우 힘든 현실 가운데 낙심해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바울은 특별히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며, 그에 대한 마음에 저려오는 연민을 갖고 이 편지를 썼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서신은 과거 바울의 기록한 체계적이고 논리 정연한 한편의 논문 같은 로마서와는 매우 대조적인, 감성과 인간냄새가 풍기는 서신이기도 하다. 바울은 특별히 고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그것이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해답이었다. , 복음을 소유하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 전도인의 길이란 것. 성도란 것. 그것의 의미는 복음과 더불어 고난을 감수하는 삶. 복음과 함께 고난 가운데 인내하는 삶 그 자체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으로 인해 갇히고, 매맞고, 고난 받을 때 이 복음조차 부끄러울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때, 바울은 이 복음과 함께 고난은 받을지언정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고 몇 번이고 거듭 말했던 것이다. 바울은 현재 이 땅에서 복음과 영광이 아니라 복음과 고난이란 사실을 명백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딤후 1:12, 개역)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리고 또 하나.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세밀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으로 시작하는 이 한 마디.

 

바울은 자신에게 이 복음을 의뢰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동시에, 자신에게 의탁한 복음전도의 사명을 이루실 때까지 자신을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 디모데는 복음을 전하면서 전도인의 일을 감당하면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그 현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회의감을 느끼곤 했다. 복음과 고난은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그런 디모데에게 바울은 한 가지의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 디모데야. 내 눈물을 생각하라 때, 내 마음이 저려오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구나. 내가 누차 이야기했듯 나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단다. 아들아, 주를 위해 갇힌 나를 혹이라도 부끄러워하지 말려무나.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서 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렴. 이 복음은 고난과 함께 있단다.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저 복음의 친구일 뿐이란다. 그래서 나는 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는 것이란다. 그리고 또 하나 말이다. 나는 처음부터 내게 이 복음의 사명을 주신 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단다. 그것은 부끄럽고, 안 부끄럽고의 문제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란 의미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고난이 세차게 몰아칠지언정 결코 이 복음의 사명. 하나님의 내게 의탁하신 그 일이 이루기 전에는 결코 내가 실패하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란다. 난 그것을 온전히 확신하게 되었지. 그러므로 아들아, 기억하렴. 고난은 복음의 친구일 뿐이란다. , 네게 의탁하신 분이 하나님이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렴. 그리고 그 하나님은 결코 네 곁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그것을 알고, 반드시 확신하는 경험이 필요하단다. 그렇게 될 때, 복음은 그리고 고난은 네게 부끄러운 것이 되지 않을 것이란다.’

 

그리고 2장에서부터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역자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설명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복음이 그리스도인에게도 부끄러운 것이 되기도 한다.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구별되어지는 그 순간들이 부끄럽고, 곤란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고난은 고사하고, 복음 그 자체가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그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라 할지라도 때로는 그런 경험을 한다.

 

그런 우리 자신 앞에서 바울의 당당한 복음과 그 고난에 대한 그의 너그러움을 볼 때,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정작 고난의 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복음을 부끄러워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것을 경험해보았던 사람이었다. 우리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처럼 경험에 있어서 성경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세대가 또 있었던 걸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의미가 오늘날처럼 퇴색되어진 세대가 또 있었던 걸까? 그러한 사실 앞에서 우리가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을 줄 모른다는 사실이 더 서글픈 것이다. 우리는 부끄러워하는 법만 배웠다.

 

이 복음이 하나님이 의탁하신 것이란 명백한 사실을 상기하는 것. 하나님께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자들을 끝까지 지키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은 모두에게 필요한 경험이다. 바로 그랬을 때, 우리도 복음과 함께 고난에 참예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노라고 그저 입으로 부르는 찬양의 한 구절이 아닌, 당당한 삶의 고백으로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