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BIG FISH PROJECT_2012.09.21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62.)

 

( 1:3, 개역)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성경에서 발견하는 선지자 가운데 가장 고집 세고, 모진 마음을 가진 선지자가 있다라면 나는 주저 없이 요나를 뽑을 것이다. 쉽게 말해, 요나는 못된 선지자’(?)’였다. 하나님과 논쟁을 벌이는 요나의 객기는 여타의 선지자들이 보여준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는 정반대이다. 선지자이지만 전혀 다른 DNA를 가졌다고 할까? 한편으론, 꽤나 용감하고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코믹한 선지자일 수도 있다. 또한, 요나의 그러한 모습은 매력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요나 같은 그리스도인을 보게 해주는 거울이기에.

 

요나서는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참 절묘하게도 1-2장과 3-4장이 같은 상황의 출발점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요나의 상반된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마치, 인생극장처럼.(그래 결정했어!)

그와 동시에 공통의 요소도 있는데, 요나의 회개와 니느웨의 회개가 비교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났을 때, 겸비했다. 두려워 떨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요나님은 보란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의 목적지는 다시스였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니느웨는 동편에 위치한 곳으로 육로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개구리 요나는 지중해 욥바항에서 배를 타고 서쪽 다시스로 항로를 이용했다. , 하나님께서 가라신 방향과 정반대의 그것도 끝으로 가려고 했다. 아주 작정하고, 하나님 명령을 무시하려고 했던 것이다.(이렇게 작심하고 하나님 명령에 청개구리로 행동하는 선지자를 봤는가.)

 

하늘에서 내려다 보실 때 요나의 기막힌 도주가 꽤나 흥미로우셨을 것 같다. ‘어허, 고 놈 꽤나 알차게 튀기 시작하는구나 아주’. 그리고 지중해를 흔드셨다. 요나와 함께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이 요나 덕분에 고래밥이 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도 요나는 안하무인이었다. 배 밑층으로 내려가 잠을 청했다. 그것도 깊이 잠들었다고 했다. 불순종이라든지 자기 때문에 모두가 위기에 처했다든지 그런 것은 안중에 없었다. 요나의 모진성품을 엿볼 수 있다. 그냥 마음 편히 잠만 잤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 명령을 거부하는 것. ‘니느웨? 난 결사반대!’ 거의 뭐, 하나님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겨뤄보자식 같다. 그리고 친히 하나님은 겨뤄주신다.

 

제비뽑기에서 요나가 색출, 검거되었다. 짧은 청문회에서 요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로 말하자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요!. 일종의 선지자라 할 수 있죠...’-_-;;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주문했다. 결연한 요나. ‘내가 죽을지언정 하나님 명령을 따르진 않으리!’

 

요나의 결연한 의지. 불굴의 의지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도 방법은 있었다. 미리 준비해 두신 숨은 병기. 일명 ‘BIG FISH PROJECT’-‘초특급 대작, 뱃속에서 회개하리라 주연 요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3일만에 눈물 쏙 빼고, 하나님께 항복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의 기도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리스도인들도 요나 같을 수 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가기에 바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 힘겨워 불순종의 길로 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쩜 그렇게.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분명히 있다. 룰루랄라. 이건 필연이야. 그렇게 배를 타고 나간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 않고 불순종하게 될 때, 우리는 종종 우리의 그릇된 결정이 처음에는 옳은 것인냥 술술 풀리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기로 맘먹고 욥바항에 내려갔을 때, 마침 다시스행 배가 요나님, 타시옵소서. 기다리고 있었나이다.’라고 반겨주었던 것처럼. 그러나 결코 그것이 요나의 선택을 옹호해주는 것도, 인정해주는 현상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물고기 뱃속이 어디였던가. 요나는 그곳을 스올이라고 표현했다. , 죽음과 지옥의 고통 같은 장소였다. 다시 말해, 우리의 불순종, 우리의 고집, 오만, 모진성품. 그 모든 것들이 버려지게 될 만큼 고통스러운 징계와 연단, 고난과 훈련을 받게 되는 장소 바로 그곳이다. 우리의 불순종은 우리를 바로 그런 연단의 처소로 이끌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욥바항에서 다시스행 배를 만났다고 기뻐 날 뛸 것이 아니다. 그 배 입구로 들어서면 물고기 뱃 속이 나오기 때문에. 그러나 또, 기뻐할 수 있다. 하나님도 이겨 먹으려는 못된 자아가 모진 성품이 드디어 항복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 아래 있다. 그 다스리심과 통치하심 그 아래에 있다. ‘뛰어봐야 벼룩이란 속담이야 말로 하나님 앞에 선 그리스도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요나 같은 마음이 있다. 그 언젠가, 때때로 우리는 요나 같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스올의 뱃속을 경험해야 했다. 그 외로움, 그 고통, 그 눈물, 그 좌절감. 그 시련. 하나님 앞에서 겸비할 수 없었던 그 하나의 모진 마음과 교만과 이기심과 도전정신과 어리석음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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