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그리스도인_2012.09.17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61.)
(대하 33:13, 개역) 『기도한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므낫세왕은 위대한 개혁가 히스기야왕의 아들이었다. 히스기야왕은 다윗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앙회복운동을 일으킨 왕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 그의 아들 므낫세왕은 신앙의 실패자로 등장한다. 므낫세는 위대한 아버지만큼이나 위대한 불신자로 지독한 우상숭배와 종교혼합주의에 빠져 하나님 앞에서 구부러진 삶을 살아간다. 그 결국 하나님은 앗수르 왕을 보내 므낫세를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가버린다. 분명, 그것은 징계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므낫세는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후부터 므낫세는 하나님께 구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불신자에게 그 환난의 시간이 하나님을 부르게 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비록 악했지만, 므낫세에게는 돌이킬 수 있는 일말의 양심이 있었다. 아무도 그 지독한 우상숭배자 므낫세가 바벨론으로 끌려가 거기서부터 하나님을 찾게 될 거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므낫세는 그것을 성공시켰다.
므낫세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환난을 당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고, 회개하게 된다. 스스로를 겸비시켰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누그러들고, 하나님은 놀랍게도 므낫세로 하여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왕위를 회복하게 해주셨다. 그 악한 왕이, 신앙의 실패자요. 쇠사슬에 결박되어 끌려간 자가 다시 왕위를 회복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바로 그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바로 므낫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참 이상한 부분이기도 하다. 므낫세의 아버지는 위대한 개혁가 히스기야 왕이 아닌가. 그런 위대한 신앙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 므낫세왕이 왜 하나님을 몰랐던 것일까?
히스기야왕에게도 불찰은 있었다. 그는 말년에 병들었고, 시험에 빠졌으며 그 시험에서 실패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심중을 아시고자 바벨론 사신들을 보냈고 거기서 히스기야는 실패했다. 히스기야는 말년에 교만에 빠져 있었고, 그런 교만한 자신으로부터 돌이키지 못했다. 분명, 그러한 내막은 성장기에 있었던 므낫세의 신앙관과 종교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즉, 어떤 그리스도인이 그 청년의 시기를 주 앞에서 온전한 열심으로 충성스럽게 살았더라도 그의 마라톤에서 뒤쳐지기 시작하여 중년과 장년에 이르러서, 신앙에 실패하기 시작한다면 사춘기와 청년기를 겪게되는 그 아들에게는 신앙의 온전한 것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아마도 히스기야왕의 우울한 말년의 신앙은 므낫세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섬겼다는 아버지의 초라한 말년을 보면서 ‘여호와 신앙’에 대한 회의감 내지 불신을 가졌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방향을 명백히 정립하지 못한 므낫세는 각종 우상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어느 우상이 진짜인지 마치 찾아내기라도 하듯이 각종 우상을 혼합하여 섬겼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철저한 실패. 심지어 자신의 왕권을 잃어버리고 종으로 끌려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버지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자신이 잘못된 결정과 신앙을 선택한 것이었다면 돌이키게 해달라고.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 응답해주셨다.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이것은 므낫세의 참된 체험이었다. 지독한 우상숭배자에서 여호와 신앙으로 회귀하는데 있어서 므낫세의 체험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우상이 진짜인 것인양 맹목적으로 쫓던 때와는 달리 그는 실제 삶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다. 히스기야왕의 아들로 자랄 때에도 분명 신앙에 대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했다. 지식은 배울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경험해볼 수 없었다. 그것은 므낫세에게 불가능한 종교였다. 신앙이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자 영역이란 것을 므낫세는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므낫세는 여호와 신앙에 대해서는 회의감을 가졌다.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도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답게 만드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배우며, 교제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지식과 교리를 익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몇 가지의 진리와 신앙관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를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식은 신앙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근본이자, 신앙을 지키게 하는 첫째 방패이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지식에 준하는 경험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능력이 된다. 그것이 참으로 신앙의 저력과 힘으로 자리잡는 실제의 근육들이다.
신앙은 단지 배워서만 익혀지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 익혀지는 것이다. 나아가 경험은 보다 깊고, 보다 높은 신앙의 지식에도 이르게 도와주는 밑거름이 된다. 므낫세왕의 지극히 개인적인 하나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던 그 참 고백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숙명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워지기 위한 좋은 보약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해보는 것.’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