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심령_2012.08.09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53.)

 

(왕하 20:2-5, 개역)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분열왕국 남유다의 위대한 개혁가 히스기야왕에게도 위험은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왕은 시한부인생을 선고 받고, 하나님께 통곡의 눈물로 호소하며 회개했다. 분명, 간절히 심장을 다 받치는 간곡함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간절한 부르심에 즉시 반응하셔서 이사야로 하여금 돌아가는 도중에 다시금 왕궁으로 되돌아가 회복을 명할 것을 지도하셨기 때문이다.

 

히스기야왕은 하나님께 호소했다. 자신이 진실함과 전심을 다해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했던 삶을 회상해달라고 말이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정직하려 했던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추억하셔서 다시금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 상한 심령. 히스기야왕의 마음은 바로 그것이었다.

 

성경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대조적인 상한 심령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먼 과거 롯의 경우로 그가 소돔에 들어갔다가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고 했다. 죄악으로 충만한 세상을 겪으면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 그것은 영적침체와 어두움. 양심의 타락이었다. 적어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그 어느 때보다 롯과 비슷한 상함을 처절히 경험하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 타락한 세상의 죄악상을 보면서 우리의 의로운 심령도 무뎌지고, 양심의 무뎌지곤 한다. 나는 가끔 환경오염에 대한 뉴스 기사를 볼 때, 오늘날의 세대는 모든 것이 오염되는 세대라는 생각을 해본다. 환경도 오염되고, 사람들의 사상과 죄악도 날로 오염되고, 그리스도인도 오염되어져 가는 세대. 그것이 바로 말세의 끝에 다가온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마,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매체의 발달로 말미암아 죄악을 보고, 듣고, 양심을 파괴시키기에 유리한 세대가 된 지금 결코 그리스도인도 오염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너무나 악한 세대의 이야기들을 날마다 보고, 듣게 된다. 죄의 귀신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것을 무감각하고, 익숙하게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돔에 살던 롯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암튼, 또 하나의 상한 심령이 있다면 바로 다윗으로 대표되는 심령인 동시에 여기 히스기야왕의 상한 심령이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의 북받쳐 오름. 양심의 갈망의 쏟아 부어짐. 바로, 그 상한 심령 말이다. 회개의 심령, 눈물의 심령,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간절히 바라는 심령. ,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에서 찾고 싶어하시는 상심이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상심이다. 간절한 기도는 바로 상한 심령에서부터 비롯된다. 다윗의 기도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늘 묻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상한 심령이 기도하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스도인은 회개에 승리해야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회개의 승리 역시 상한 심령에 달려 있다. 히스기야왕을 보라. 그의 상한 심령의 회개와 간구가 그를 회복시켰다. 회개에 빠르면, 회복도 빨라진다.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무뎌진 양심의 상한 심령으로 이끌어 가고 있을 때, 그리스도인은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갈 수 있는 통로와 기폭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세상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 만드신 그 모든 만물과 인간마저도 타락되고 오염되어지는 막장의 세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마저 오염의 세대가 될 처지에 놓인 무서운 세대 앞에서 하나님은 더욱더 그리스도인의 상한 심령을 찾길 원하실 것이다.

 

원한을 갖고 간절히 매달렸던 과부를 인용하시면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그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셨다. 적어도 그런 간구하는 심령. 그 믿음을 보기 힘든 세대가 분명하다. 그것은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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