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탄생_2012.08.04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51.)

 

(왕하 16:20, 개역) 『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하 20:21, 개역)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다. 우상숭배자 불신자였다. 성경은 그가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했다고 증거한다. 또한, 이방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다. 아마, 몰렉 우상을 섬겼던 것 같다. 심지어 아하스왕은 앗수르왕의 초청으로 다메섹에 갔다가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단의 구조와 제도를 본따 예루살렘에 단을 세웠다. 철저한 우상숭배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성경은 히스기야왕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노라고 말이다.

 

다윗 이후 유다의 신앙부흥과 회복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왕이 히스기야왕이었다. 그는 분명히 종교적 개혁가이자 유다의 영적부흥과 중흥의 리더였다. 그리고 히스기야왕도 잠들었다. 이제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이었다. 성경은 므낫세 왕에 대해서도 증거한다.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쪼차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하 일을 본받아서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 왕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시을 숭배하여 섬겼노라고.

 

므낫세는 섬길 수 있는 우상은 모조리 모아다 섬겼던 유다 최악의 우상숭배자였다. 심지어 성전 마당에서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점을 쳤다. 그는 지독한 우상숭배자인 동시에 종교혼합주의자였다.

 

아하스와 히스기야, 므낫세로 이어지는 유다왕의 종교적 취향을 통해 무엇을 발견하는 것일까.

 

우상숭배자에게서 여호와 신앙의 부흥가가, 신앙의 부흥가에게서 혼합주의 우상숭배자가 나왔다. 이 분명한 모순이 사실은 가장 일반적이다.

 

복음의 확장과 교회의 성장은 어떻게 이뤄졌던 것일까. 오늘날 우리교회가 현재의 성도 규모에 이르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신앙의 전승과 그리스도인의 계승은 오직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그 혈통을 통해 이뤄져 왔던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복음의 확장은 너무나 더딜 뿐이다. 복음이 수없이 많은 우상숭배자들과 각양각색의 불신자들에게 전해지면서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불신자였다. 그러나 그 자녀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인해 거룩해지고 그 복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족들에게도 전파되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의 밑에서 탄생했다. 물론, 그리스도인에게서 그리스도인이 탄생되기도 하지만 숫적으로 비교하자면 오히려 불신자의 밑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한편, 불신자는 어떻게 탄생될까. 대부분의 불신자는 불신자 부모로부터 탄생된다. 당연하다. 불신자 부모가 자녀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까.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따로 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정 안에서 불신자들이 탄생된다. 부모는 믿고 거룩하게 되었으나 그 자녀들 가운데는 믿음으로 화합치 않은 불신자들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장성해가면서 교회를 떠나고, 구원의 확신이 없고. 세상의 종의 된다.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현상이 매우 희귀한 현상이 아니라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어느 정도 보편적인 현상이란 것이다.

 

우상숭배자 아하스에게서 위대한 부흥개혁가 히스기야 왕이 탄생했다. 그렇다.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불신자의 부모 밑에서 비롯된 예가 너무나 많다. 오히려 믿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그리스도인보다 불신자의 부모 밑에서 믿음의 투쟁과 좌절을 극복한 그리스도인이 훨씬 더 뜨겁고 강한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비롯된 그리스도인보다 불신자로부터 비롯된 그리스도인이 더 출중한 예가 많다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다.

 

위대한 신앙개혁가 히스기야 왕에게서 유다 제일의 우상숭배자이자 종교혼합주의자 므낫세왕이 탄생했다. 가장 지독한 우상숭배자.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켰던 무모한 왕. 불신자의 자녀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현실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자녀가 지독한 불신자가 되는 경우들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탄생은 어디서부터인가.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더 많이는 불신자의 자녀로부터 그리스도인이 된다. 불신자는 어디서부터인가. 대부분의 불신자는 불신자로부터 비롯된다.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희귀한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옛날 복음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었던 영국과 미국이 오늘날 빈 껍데기가 되어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할까. 17~18세기를 복음이 불로 태웠던 잉글랜드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자녀들은, 그 후손들은 불신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좀 씁쓸한 사실이지만, 교회는 뜨겁지 않다. 복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한편 교회는 뜨거웠고, 오래갔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복음의 수혜를 입는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복음과 교회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복음은 여행을 했으며, 교회는 역사는 옮겨다녔다.

 

한때는 불신자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탄생했고, 불신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던 교회가. 나라가. 지역이 이제는 불신자들만 자라나는 황무지가 되기도 한다. 한때는 복음의 수혜를 조금도 볼 수 없었고, 불신자로부터 불신자만 탄생했던 나라와 지역이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 탄생되는 기적의 장소가 된다. 그렇게 복음은 전세계에서 동시다발로 매 시대에 불변하면서 타올랐던 것이 아니라 옮겨다니며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리스도인은 어디로부터 탄생되었던가. 불신자는 어디로부터 탄생되었던가. 그 출처를 알고 발견하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 아닌가. 불신자로부터 그리스도인이 되는 아름다운 현상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서 반드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이치가 항상 적용된다라면 세상은 이미 복음화되었을 것이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책임. 그리스도인 부모가 된다는 것의 책임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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