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이스라엘_2012.07.22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50.)
(왕하 8:22, 개역)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날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일찍이 다윗왕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전 국가적인 평안을 선포하였을 때는 주변의 많은 이방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쳤었다. 그러나 이제 북이스라엘고 남유다로 분열되고 날이 갈수록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차츰 그 속국들도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국력의 쇠퇴이기 이전에 신앙의 퇴보였다.
여호와를 정직하게 섬기는 왕이 부족했다. 그나마 유다는 선한 왕들이 있었지만 북이스라엘은 아예 없었다. 다윗왕국의 위용은 단순히 국력이 아니라 신앙의 충만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다윗왕이 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순항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하나님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전 국가적인 영적침체와 신앙의 퇴보가 반복되었다. 그것이 분열과 국력의 쇠퇴로 이어졌고, 차츰 속국들이 그 틈을 노려 이탈해가기 시작했다.
한편,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신앙에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하나님과 개인적인 친교와 영성에 밝아져 있을 때는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마음에서 올라오는 기쁨과 감사함이 있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수고로움 속에서도 심령의 낙을 누리며 늘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다. 시험과 고난의 고통을 이기고 극복해나갈 담대함과 용기와 위로를 마음에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침체되고, 우리의 기쁨이 꺼지면 차츰 감사가 식어지고, 평강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생활 속에서 믿음과 은혜로 다스렸던 육신의 것들과 세속의 찌끼들이 통제의 사슬에서 이탈해가기 시작한다. 나태해지고, 불평이 많아지고, 제어하고 정복했던 육신의 감정과 기질, 세속의 욕망과 거짓들을 구속하는 힘과 능력이 후퇴하면서 그것들이 내 삶의 찌꺼기처럼 달라붙기 시작한다.
마치, 말씀에서처럼 에돔도 립나도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던 것처럼 말이다. 원인은 영적침체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독은 ‘영적침체’일 것이다. 통일왕국의 그 충만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을 그리워하고,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분열되는 것, 우상이 고개를 드는 것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 때로는 개인의 신앙에도 히스기야가 필요하다. 부흥이, 중흥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이 분열되고,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분열될 때, 침체가 반복된다. 신앙이 후퇴되기 시작할 때 차츰 정복하고 다스렸던 육신의 것들과 죄들이 다시 살아나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다윗왕의 통일 이스라엘과 같은 신앙이 필요하다. 신앙이 무너질 때는 히스기야왕 같은 개혁이 내 안에 필요하다. 다스리자. 그리고 부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