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굴암 최상단의 원형부는 오랜 세월 가운데 파손된 것이 아니라, 처음 축조 당시 파손되었다고 한다.그러나 도무지 재분리해서 다시 수정할 수 없었기에 그냥 둘 수 밖에 없었다.)
터치고 뿜어지다_2012.03.29
(Subject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26.)
석굴암은 통일신라 751년에 김대성이란 인물을 통해 창건되었다. 무려 1200년이 훌쩍 지난 유구의 세월을 간직한 문화재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몇 해 전, 모처럼 찾은 석굴암에 들어가 부처상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눈매, 콧등, 입술, 가부좌를 튼 다리, 손, 옷자락. 그리고 그 불상을 둘러싼 12지상들. 1200년의 세월 속에 분명 처음의 그 섬세함과 날카로운 묘사는 무뎌졌지만 그래도 세월을 무색케 하는 불상의 정교함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5분이 안 되는 시간 불상을 쳐다보고 지나칠 때, 나는 혼자 20분이 넘게 뚫어져라 그 불상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있었다.
저 엄청난 돌덩어리를 이 높은 곳에서 다듬고 다듬었다니…
1200년 전, 김대성과 그의 석공들은 장구를 꾸려 이곳에 올라왔다. 아무 것도 가꾸어진 적 없는 이곳에서 울창한 나무들을 쳐내고, 터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장작을 패서 불을 떼우고, 먹을 것도 실어 날랐다. 그리고 토굴을 파서 그곳에 저 단단한 화강암을 깍아서 그들이 갈망하는 신을 모신 것이다. 그 섬세한 석굴과 덩치 큰 불상이 무려 1200년의 세월이 무색하도록 견고히 앉아 수많은 세대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직 김대성과 석공들의 열망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고, 단시간이 이뤄지지도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김대성은 그의 생전에 석굴암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분명, 그들은 토함산의 그 높은 곳에서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을 보내면서 매일 일정한 작업시간을 거쳐 그의 신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무겁고 단단한 화강암을 정을 때리고 쪼을 때 전해졌을 강한 진동이 손목을 저리도록 전해져왔다. 그 돌깨는 소리와 다듬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겨울이 다가올 때는 산의 그 무서운 추위와 냉기, 눈발이 날려서 때로는 작업을 충분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와 바람. 여름의 잔인한 열기가 그들을 위협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랜 시간을 그 간절한 염원과 기도, 신앙의 숭고한 정신 속에서 부처상을 다듬고 만들었다.
내가 조롱해 온 한낱 돌덩어리 우상 하나가 나를 심오한 사색 안으로 이끌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너무나 많은 수고가 들어갔을 석굴, 너무나 무거워 보이는 불상. 이 높은 산에서 그 오랜 계절과 수난과 의식주의 불편, 짐승들의 위협 그 모든 것을 무릎 쓰고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 불타오르는 신앙심과 종교적 열망을 따라 그 모든 것을 표출하고 표현해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1200년이란 장구의 세월이 흘러 지금 내 앞에도 견고하게에 버티고 있었다.
인간의 가슴속에 담긴 종교적 감수성과 그 뜨거운 열망. 한낱 우상을 섬기면서도 표출되는 그 놀라운 신앙심의 발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을 향한 갈망과 염원은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지. 그것은 그렇게 이 높은 산에서 저 거대한 석굴을 통해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종교적 갈망은 그렇게 위대한 희생과 숭고한 갈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상상 해보았다. 석굴이 완성되고 그들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 어느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새벽이었을 것이다. 산 속의 야생짐승들이 울부짖고, 멀리서 희미하게 동트일 준비를 하면서 승려의 제복을 입은 그들은 비를 맞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석굴 앞으로 다가와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순결하고 뜨거웠던 걸까.
그리고 그곳에 선 우상의 전각지기 앞의 부끄러운 그리스도인 나를 바라봤다. 도대체 나에게 어떤 신앙심과 종교적 감수성이 있는 걸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고 표출해내고 있는 걸까? 신을 향한 인간의 열망이 그토록 간절하고 뜨거울 수 있다면 도대체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내 가슴 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왜 내겐 그것이 없을까? 그렇게 나는 쓸쓸하게 돌아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