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목적지로 활을 쏘다_2012.03.07
(Subject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20.)
(룻 1:1, 개역)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룻기 1장만 읽어보더라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값지고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를 발견할 수 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 그 시기와 정황에 대한 언급은 구체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오미 가족이 이주를 결정할 정도였다면 그 흉년이 결코 쉬운 흉년은 아니었을 수 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나오미 가족들은 인내심이 부족했거나 사업가적 기질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이고 육신적인 비전을 앞세우는 삶의 윤리를 지닌. 어쨌든 베들레헴의
흉년을 인해 그들은 모압으로 이주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모압족속은
롯의 후예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린 기억해야 된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불 가운데 구원을 얻은 인물로
대표적인 신앙의 실패자였다. 롯은 소돔.고모라가 멸망할 때
두 딸과 함께 탈출했고, 두 딸은 롯과의 근친상간을 통해 자손을 잇게 되었는데 그들이 모압족속이었던
것이다. 즉, 나오미 일가가 이동한 모압지방은 하나님 앞에
그릇된 곳이었다.
모압에 내려간
나오미 일가는 그곳에서 두 아들 말론과 기룐에게 모압여인을 아내로 삼아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신앙의
신념과 지조를 버리는 무책임하고 불신앙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자식들에게 이방여인을 아내로 삼아줄 정도면
그 상황이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결코 엘리멜렉(나오미의 남편)이나
그 가족의 신앙심이 탄탄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추측케 된다. 그런 신앙의 그릇된 면을 생각해볼 때, 어쩌면 모압으로 이주한다는 결정자체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큰
흉년이나 기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잠시의 고난이 싫어 섣불리 이주를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코 엘리멜렉과
그 가족들에게는 신앙심이라든지, 믿음이라든지 그러한 고결한 가치는 중요한 의미부여가 되지 못했다. 한편, 모압으로 이주한 후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사망했다. 미뤄볼 때, 이는 분명 불신앙적인 삶의 윤리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교훈은 이것이다. 흉년은 고난이다. 고난의 때에 가장 큰 시험을 받는 그리스도인은
불신앙적인 그리스도인이며, 믿음이 부족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므로
고난은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의 시금석이다. 신앙의 흉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열매와 소득이 없으며, 만족과 기쁨이 없이 그저 괴롭고 고통스러우며, 근심과 갈등으로 맞물리는 시기가 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흉년이 올
때 종종 모압으로 이주하게 된다. 즉, 고난을 피해 안식을
찾아 자신이 있어야 할 신앙의 땅을 버리고 불신앙의 땅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것이
실수가 된다. 삶의 암초에 걸려드는 신호탄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불신앙의 땅은 어디일까? 현재의 고난을 피하기 위해 계획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의 처소이다.
어찌보면
서글픈 얘기일테지만,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피해가야 할 벽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장애물이다. 그것이 우리 믿음의 시험이며, 우리 믿음의 시금석이며, 최종 우리 믿음의 내공이 견고해지는 기회이자 훈련이다. 그것을 피해가는
그리스도인들마다 또 다른 시련을 만난다. 이것이 우리가 자주 겪는 개인적인 안타까움의 한 모습일 것이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그 어떤 것.
신앙의 흉년을
만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은 자기 수단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믿음의 표지이다. 그렇지 않고는 자기 수단과
방법대로 모압으로 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멜렉은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지 않았으며, 자기 수단과 방법대로
흉년을 피하기 위해 모압으로 가기로 결정해서 행동에 옮겨버렸다. 그것이 불신앙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이다. 우리는 종종 자기 수단과 방법을 버려야 된다는 가르침을 받는데, 이
의미가 곧, 그저 믿음으로 기다리라는 것이다. 인내야 말로
자기 수단과 방법을 버렸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모압으로
이주한 엘리멜렉이 자기 수단과 방법을 의지함으로써 실패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오래지 않아 베들레헴의
흉년이 회복이 되었다는 기록 때문이다.
(룻 1:6, 개역)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베들레헴의
흉년은 영원한 흉년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곳은 신앙의 땅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땅에 임하는 흉년은 지독할 수는 있어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권고하신다. 우리는 것을 믿어야 한다. 결국
엘리멜렉 일가는 불신앙과 자기 수단.방법을 의지함으로 생명을 잃어버리고, 풍족히 나가서 비어 돌아오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고난을
피하려다 더 큰 시련을 만나는 분명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이 흉년의 때를 기다렸더라면
모든 것이 순조로워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