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참고 기다리다_2012.02.21

(Subject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15.)

 

(하박국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루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기다림에 대한 교훈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우 특별한 교훈임이 틀림없다. 성경에는 기다림으로 인한 복과 실패가 수없이 기록되어 있다. 신앙의 좋은 위인들은 모두 혹독한 기다림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다. 오늘 나도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환경에서 다시 한 번 참고 기다리며, 인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기억하실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약속 받은 후에도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도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심지어 군대장관으로 성공한 이후 10년의 도망하는 방랑의 세월을 지나며 훈련 받아야 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 총리 대신이 되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려야 했다.

 

성경이 그리스도인에게 강조하는 중요한 메시지 중의 하나는 분명 오래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왔기에 근신해야 된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은 오시지 않았다. 구원을 받고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장 오실 것만 같았던 주님은 여전히 침묵하신다. 오히려 앞으로도 오시지 않을 것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희미해진다. 어쩌면 그래서 오래 참으라는 교훈은 더 중요해져 가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해이해 진 채 주님을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울은 기다리는데 부족함을 보여주었다. 사무엘이 이르기까지 7일을 기다려야 했지만 사무엘이 당도하기 직전 스스로 제사를 지내고 말았다. 믹마스에 모인 블레셋 군대, 흩어지는 백성들, 사무엘의 부재. 조급함에 초조해지기 시작한 사울은 마지막 고비를 참지 못하고 우를 범했다. 그때부터 사울은 인생의 내리막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울의 그런 불찰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불찰이 되곤 한다. 개인적인 생활에서 종종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더 좋은 것을 살 수 있었고, 얻을 수 있었고, 만나고자 했던 사람을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참지 못함으로 우를 범하곤 한다.

 

인내심이 부족하고, 오래 기다린다는 것에 익숙치 못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인내에 대한 특별한 훈련도 잊지 않으신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함을 입기 위해 모든 것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에 대해 무뎌져 간다. 그럼으로써 마지막 때 그리스도인으로 근신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윤리가 퇴색되어지곤 한다. 기다림에 약한 것이다. 시내산 아래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기다리는 것에서 실패했다. 그래서 우상숭배로 나아갔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데 실패하면 우리는 세상에 소망을 두게 된다.

 

사실 평안 중에 기다린다는 것은 좀 지루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힘들진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로 고난 중의 기다림은 가장 힘든 고통이 된다. 원망이나 반항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잠잠히 기다리라고 하신다.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으며, 우리를 시험하신다고 한다. 욥은 심한 고난 중에 잠잠히 기다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이전보다 배나 되는 축복으로 되갚아주셨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고 했다. 그 진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익숙히 받을 줄 알아야 될 사람들이다. 그러나 고난을 싫어하게 되면 인내할 수 없게 된다.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다. 좀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면 쉽게들 그만 두려했지만, 나는 그리스도인이 좀 힘들다고 안 하려고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며 꿋꿋히 해내곤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을 주셨고, 그곳에서 전도도 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어느날 나는 그런 순수한 마음과 겸손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힘들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는대로 피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마음을 나약하게 먹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오래 기다리고 참지 못했다.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도 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심한 어려움과 환란 중에서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내공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인내와 마지막 축복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감동을 더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단순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로 보다 나은 인간이 된 것처럼 생각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사실 삶의 여러 모양에서 종종 그리스도인이 부족을 보일 때가 많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업무상의 이유로 만나게 된 사람들 중에도 종종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들이 있는데, 오히려 그런 분들이 하나님을 믿으니 복을 받아서 좀 편하고, 쉽고, 단순히 일을 처리할 수 있어. 난 지옥가는 죄인이 아니고 하나님 자식이기 때문이지.’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그래서 소위 약았다.’라고 할 만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편, 그런 약은 모습이 때로는 내게도 있는 모습일 때가 있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좀 더 손해보도라도 내가 희생하고, 양보해야지, 더 책임감 있게 잘 해야지.’그런 모습이 아닌.

 

힘든 상황 속에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다. 잠잠히 기다릴 줄 안다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은 복을 얻기 전에 먼저 기다리는 것을 배우라고 하신다. 다윗처럼, 요셉처럼, 욥 처럼. 그리스도인 반드시 배워야 할 인격이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많은 문제들과 과오들이 해결되어져 간다. 시간이 약이란 말처럼 말이다.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행동할 때 그릇된다. 마치, 사울처럼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버린다. 그러면 상황은 더욱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요셉이 기다리는 것에 지쳐 여호와 신앙을 포기해버렸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셉이 고난의 시간을 인내할 수 없어 신앙을 포기했다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신앙의 위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믿음과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얻는 진리에 대해서 교훈 받을 수 없다.

 

언젠가 보았던 신문기사가 내게 크게 뇌리박힌 적이 있었다. 야구선수인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직후의 인터뷰였다. 노장의 박찬호에게 기자는 어떻게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되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생각했다. 운이 좋았고, 우승하기 위해 특별한 훈련과 노력을 했으며, 팀웍이 좋았고 등등. 그러나 박찬호의 신중한 대답은 짧고 단조로웠다.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 한마디에는 단순히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는 단편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한 마디에는 박찬호 선수의 야구인생이 모두 담겨있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전성기도 구가하고, 슬럼프를 겪으며 10여 년을 메이저리그란 혹독한 환경에서 인내한 결과였다. 슬럼프를 겪던 박찬호는 한 때, 소속팀에서 방출되기도 했으며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생활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정말 메이저리그와는 대우가 천지차이였다. 메이저리그 소속의 선수들이 전세기를 이용해 이동을 한다면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전세버스로 그 큰 대륙을 몇 박 몇 일 동안 이동해서 경기를 치뤄야 했다. 낡은 골방에 들어가 빵 몇 조각을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공을 던져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영광을 누려 본 그가 그 수치스러운 시간을 눈물을 훔치며 참고 기다렸다. 그는 자존심을 버리고 그 수치를 다 참아냈던 것이다. 공을 던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메이저리그로 입성할 수 있는 기회가 왔고. 드디어 그는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월드시리즈에 등판했으며 최종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러므로 많은 훈련이 있었고, 팀웍과 단결이 있었고, 우승을 위한 치밀한 전략과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찬호 선수는 그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정말 야구를 포기하고 싶었을 때, 정말 인내할 수 없었고 기다리고 싶지 않았을 때 기다렸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포기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낙심하고 좌절할 때도 많다. 구원받지 않은 가족들의 반대, 핍박. 이웃과 친구들의 외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는 외로움과 왕따의식. 구원받기 전에는 겪지 않았던 내적인 갈등과 자기 절제에 대한 특별한 의무. 그러므로 신앙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신앙을 떠나서라도 세상의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고독한 자기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은 사람들이다. 그들도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 못지 않게 특별한 자기 절제와 고독, 주변의 외면과 시기, 질투 모든 고난을 다 경험하게 되어 있다. 고난 없이 영광을 얻을 수 없다는 진리는 비단 그리스도인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유독 신앙의 고난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가운데 보다 적극적으로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만 세상에서 구별된 존재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의 길을 오래 참음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세상의 어떤 분야에 있는 사람이든 그는 구별된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배워야 할 정신 중 하나는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실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 중에 드러나는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것을 소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린다. 인내하지 못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역시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 참지 못하겠다고 비명을 지를 그대에 참고 기다릴 수 있다라면 분명 우리 신앙의 위치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될 것이다. 내 신앙의 욥, 내 신앙의 요셉, 내 신앙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승리를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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