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껍질 밑 얇은 속살_2011.11.19
(신 3:25-27, 개역) 『[25]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 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두고 모세는 말한다. 자신은 절대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없노라고. 그러나 그것이 결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말이다. 모세, 그는 하나님의 가로막으심으로 결단코 가나안을 밟을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이 설교를 하는 모세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의 여정을 되돌아본다.
40세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목동으로 살아가던 살인자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그의 무능을 호소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억눌러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내세우셨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직분을 맡았다. 모세는 그 자체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거기에다 그의 사역의 시작은 너무나 비참했다. 바로 앞에 나아갔다가 오히려 백성들의 학대가 더 거세져 민족적 배반자로까지 내몰렸다. 일당 백도 아닌 일당 수 백만명.
홍해 앞에서 또 한 번 원망과 미움을 받았다. 기적도 있었고 환희도 있었다. 그러나 광야를 맴돌면서 그는 수 없는 비난과 화살과 당을 짓는 무리들과 비겁자들과 불신자들과 불신앙의 회중들과 다투고 싸워야만 했다. 그는 철저히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수없이 참아야 했다. 수없이 울어야 했다. 수없이 부러지고 고통 받아야만 했다.
므리바 물에서 물이 없다고 격노하는 회중의 경박한 신앙과 불신앙과 철없는 모습에 딱 한 번 맞대응 했다. 분을 삭히지 못해 반석을 두 번 세차게 내리치며 물을 쏟아져 나오게 했다. 그러므로 그 일이 불씨가 되어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결단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임을 천명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있을 무렵이 아니었다. 슬펐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40년의 광야생활의 종지부를 찍는 오늘 이 시점에 다다르면서 그는 얼마나 하나님께 매달렸을까? 정말 저 가나안에 나 역시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의 마음은 얼마나 미어져왔을까? 뿐 아니다. 사실 그는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했을까? 지난 40년의 세월 그가 얼마나 수고했단 말인가? 그의 뼈저린 희생과 피눈물과 고난들이 무엇 때문이었단 말인가? 무지한 백성을 가나안에 입성시키기 위해 그가 그 모든 것을 감수하였건만 정작 그는 그 므리바 물의 한 사건을 말미암아 영원히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되었다니!
그러나 오늘 저 비통한 설교를 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자. 진정 내가 모세였다면 나는 태연히 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쏟아지는 눈물과 서러움에 목이 매여 말하지 못하진 않았을까? 아니, 오히려 격노하며 하나님께 대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모세의 설교 장면서는 결코 모세가 울었다든지.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저 단단한 사람 모세를 보자. 저 견고한 사람 모세를 보자. 사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슬픔과 뼈저리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눈앞에서 모든 수고의 대가를 그저 바라만 보고 밟을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코 그는 울지 않는다. 목이 매이지도 않는다. 왜? 바로, 그것이 지난 40년의 숱한 고난과 좌절과 훈련과 희생과 징계과와 고통으로 빚어진 단단하고 견고한 그의 심장 때문이다. 그는 심하게 낙심하지만 결코 외형적으로 무너져 내리진 않는다. 결코 나약하지 않은 내공! 그 사람이 바로 모세인 것이다. 그 많은 고난과 수고와 훈련이 만들어준 모세의 웅장한 모습에 겸허해진다. 당신은 위대한 사람! 그러나 당신의 그 여린 속마음을 느낄 수만 있을 것 같다. 수 백 년을 살아온 고목의 껍질은 숱한 세월의 풍파에 굵고 단단하지만 여전히 그 질기고 단단한 껍집을 파고 들어가보면 속에는 여리고 부드러운 속살이 있음을 말이다. 장구한 세월의 풍파를 이겨온 고목처럼 여리지만 흐트러지지 않는 견고한 당신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