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변명_2011.07.06.

(레 10:19-20, 개역) 『[19]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20]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회중을 위해 속죄제사로 드린 예물의 고기를 성소에서 먹어야 했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의 그릇된 제사가 그들의 죽음을 초래했다. 그리고 아론은 제물의 고기를 먹지 않고 다 태워버렸다. 그럼으로 모세는 아론에게 분을 내며 어째서 제물의 고기를 먹지 않고 태워버렸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아론은 제물로 드려 제사를 지내는 와중에도 그릇된 불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거늘 그 제물의 고기를 먹는 것이 과연 선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므로 모세는 아론의 근신하는 마음과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알고 오히려 좋게 여겼다.

FM이 있다. 무엇은 어떻게 하고, 어떤 것은 또 어떻게 해야 되고... 그러나 흔히 FM적인 것은 융통성이 없다 라고도 한다. 그러나 신앙인 규례들은 융통성보다 규례적인 것을 더 소중히 여길 때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아론의 변명 속에서 우리는 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구약의 관점이 제시하는 율법적 구속은 없다. 그러나 엄연히 그리스도의 율법이 있다. 또, 사실상 여전히 우리에게 구약의 율법은 우리 삶의 윤리에서 유효한 것이다.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일반적이고 관례적인 규례와 신앙의 규칙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론의 경우처럼 먹어야 될 제물을 먹지 않는 문제에 있어서 그것이 비록 일반적인 규례를 벗어난 것일지라도 그 의도와 목적이 하나님을 경외함이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사실 모든 신앙적 규례와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다면. 예를 들어, 살인이나 간음과 같은 것이 아니라한다면 우리는 좀 더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단지 표면적인 규례를 어긴 것으로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 할 수만은 없다. 때를 따라서는 그 의도와 목적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달리 적용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사례를 이해하고 관용할 수 있다면 상대방의 믿음을 판단하는 우를 적게 범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불필요한 죄책감을 피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도와 목적, 동기의 문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자.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먹는 자도 주를 위해 먹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해 먹지 않는다면 그 어느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하나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속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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