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딤의 공포_2011.06.22

올 여름 전국을 강타할 초특급 스릴러~ ‘더딤의 공포’ 흐흐흐~

(출 32:1, 개역)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라』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것은 ‘기다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림’과 ‘인내’만큼 우리를 가장 시험하는 것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 현재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보랏빛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지라도 지금 현 상태가 어느 정도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없다면 상황은 불투명해진다.

더딤의 공포. 그 공포를 경험한 유명한 사람이 있다. 바로 사울이다. 블레셋과의 전투상황에서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간절한 기다림의 때 사무엘은 모두를 실망시키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험이 도래했다. 백성들은 혼란 속에 요동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블레셋 군대는 믹마스에 까지 진을 치고 모여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울은 어떤 대안이든 세워야했고,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는 그 자신이 나서서라도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뒤늦게 나타난 사무엘은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사울에게 망령되다고 호통 쳤다.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든다. 참 뻔뻔한 사무엘! 약속기한에 늦게 도착해서 일을 그르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무엘의 손을 들어주시니...

우리에게 기다림이란 마치 이와 같은 이치이지 않은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막 제사를 드리고 나면 그 사무엘이 나타나기를 몇 번이었던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기다림이라 하는 것이 결코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시내산 아래 도착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모세는 그저 불친절했다. 기약도 없이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는 그저 내려올 생각을 않으니 백성들도 지칠만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엄습해오는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애굽에서부터 그 열가지 재앙과 바다를 가르는 하나님의 이적과 맛나와... 그 이적의 대언자였던 리더 모세가 감감무소식이니 이 낯선 광야에서 리더를 잃은 그들의 불안과 공포는 결코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새 그들은 하나님보다 모세를 더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인도하여 낸 모세’에 대해 그들이 외치는 말을 들어보자. 그들은 ‘우리를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부르짖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하나님보다 어느새 모세를 더 의지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계시되지 않았다. 모세를 통해 말씀해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모세는 더욱 실존적인 존재였다.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일 것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묻는 동시에 믿음에 앞선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그러다보면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귀기울이기 보다 즉시로 사람의 말과 의견을 더 들으려고 할 때도 있다.

아무쪼록 모세의 부재는 그들에게 불안감을 증폭시켰으며, 모세의 기약 없는 불친절한 부재는 그들의 공포심에 불을 붙였다. 더디옴. 그것만큼 그들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더딤의 공포이다.

우리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보다 더 위대하지 않다. 더 믿음 위에 서 있지 않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곧 우리 믿음의 연약함을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도우심, 내 소망에 대한 반응이 더디다는 것으로부터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기약 없는 불친절한 기다림에 우리는 거의 기쁨을 잃어버릴 때도 있다. 기다리는 것만큼 우리를 훈련시키는 것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기다림에 대해 훈련하시는지!

이스라엘이 모세의 부재로부터 오는 공포를 다스릴 인간적인 목적에서 고안해낸 방법이 금송아지였다. 빈자리는 무엇인가 채워야만 하나보다. 하나님께서 더디 행하실 때 우리는 무엇을 고안하고 있었는가. 인간적인 목적과 방편으로 만들어낸 나의 불행한 금송아지들이 지금도 있진 않은가. 그러므로 그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날 모두 갈아서 마셔야만 할 고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