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경배_2011.06.05.
(출 20:23, 개역)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시내산 위에 강림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을 전수해 주신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한 부탁은 이와 같은 것이다.
‘너희는 지금 무형의 하나님을 음성을 통해 만나느니라. 나는 무형이니라. 그러니 부디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해 유형의 하나님을 빗어 만들지 말아라.’
우리는 실물의 존재이다. 사실 인간에게 실존이란 실물에 거의 가까운 의미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강한 의심과 거부반응을 일으키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 실물의 인간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무형이시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며, 불만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섬기고 싶은 신(神)은 실물하는 신(神)일 때 더욱 좋은 법이다.
역시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욕망을 통찰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무형의 존재로 만족하지 않고, 유형의 존재로 재창조해 낼 것을 알고 계셨으며 그것을 경계시키셨다.
특별히 여기서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시도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정의 내리신다. 다시 말해, 인간이 무형의 하나님을 유형화 시켜서 경배하는 의도와 행위 자체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 자신을 위한 이기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무엇을 통찰할 수 있을까?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유형화 시켜서 경배하였음을 증언한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겼다. 그들은 진정 하나님을 섬겼다. 여호와를 섬기는 예식을 전적으로 뒤집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갈망하는 하나님의 무형을 유형화 시켰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토록 문제가 되는 것일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방법론이 잘못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들은 그들의 기질에 유리하고 부합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편을 선택함으로써 무형의 하나님을 섬기는 본질적인 방식을 거부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방법을 불편하지만 수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적인 편리의 방법으로 대체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란 의미이다.
이 사실은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경적인 방법과 원리들을 끊임없이 교훈 받는다. 그러나 수없이 그 방법들과 부딪히며 논쟁하며, 다툼으로 소모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따름이다. 시내산에서 음성으로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오늘 내 손안에 놓여진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너의 이기적인 원리에 부합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말고, 고난에 참예하며 희생하며 너 자신을 굴복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이다. 본연의 하나님을 섬기라고, 거짓의 유형화 된 하나님으로 만들어 섬기려 하지 말라고 말이다.
나는 내 앞에 있는 하나의 기괴한 현상을 발견한다. 탁자 위엔 대가리가 박살난 금송아지가 놓여있고, 방 주위엔 파편과 동강이 난 수많은 금송아지를 본다.